2021년 4월호

LH發 부동산시장 혼돈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집값 비싼데 정부는 못 믿겠고”… 실수요자 불안, 분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03-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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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H 사태 후폭풍,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 차질 우려

    • ‘시한부 임기’ 국토부 장관 … 부동산 정책 리더십 실종

    • 2·4 대책 후 숨 고르기 들어간 서울 집값 … 불안한 관망세

    • “공급 부족 현실화하면 부동산시장 다시 들썩일 것”

    3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기에 앞서 LH 투기 의혹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른쪽에 서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월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기에 앞서 LH 투기 의혹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른쪽에 서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 땅 투기 의혹에서 시작된 이른바 ‘LH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이 사건이 국내 주택시장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서울 집값은 2월 정부가 강력한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한 후 한 달째 숨 고르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LH사태가 주택 수요자 매수 심리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안한 공급 전망, 30대 ‘영끌’ 심리 자극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광명·시흥 7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수도권 부동산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실수요자 사이에서 4~5년만 기다리면 주택이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는 믿음이 퍼지던 상황”이라며 “LH사태가 이 흐름에 변화를 일으킬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고 원장의 얘기다. 

    “현재 신도시 예정지를 중심으로 투기 의혹 조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여파로 3기 신도시 개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야당 등을 중심으로 ‘사업 중단’ 요구까지 나온다. 신도시 완공을 기다리던 주택 수요자, 특히 30대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정부 공급 약속을 믿기 어렵다고 결론짓고 다시 ‘영끌’을 시작하면 부동산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도 “최근 집값 상승세가 다소 둔화하긴 했지만 하락이 시작된 건 아니다”라며 “이번 사태로 안정적 주택공급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면, 언제 부동산시장에 뛰어들까 시기를 가늠하던 수요층이 매수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3월 둘째 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07% 상승했다. 2월 첫째 주 0.10% 올라 올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 뒤 5주 연속 안정세를 이어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단기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지나치게 급등한 집값과 대출 규제, 금리 인상 등의 영향이다. 김규정 소장은 “LH사태 영향으로 매수 심리가 커진다 해도 지금은 수요자가 바로 시장에 뛰어들기 힘든 환경”이라며 “정부가 ‘이미 발표한 공급 대책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강조한 만큼, 당분간은 많은 이가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지금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 흐름이 지속될지 아니면 다시 매수세가 치솟을지를 가르는 것은 ‘3기 수도권 신도시 개발 속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얘기다. 

    “LH사태로 공공개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정부가 진행하는 투기 관련 조사 결과가 시민 기대에 못 미칠 경우, 전국 각지에서 토지수용에 대한 저항이 시작될 수 있다. 특히 신도시 조성 예정지 소유자나 관계인이 보상 가격 등에 불만을 품고 행정소송에 나서면 주택공급 차질이 현실화할 수 있다. 그 여파는 기존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또 수도권 신도시 사전청약 수요가 쌓여 전세시장에도 불안요소가 생길 수 있다.” 

    권 교수가 언급한 사전청약은 본 청약 1∼2년 전 아파트를 미리 공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7월 인천 계양 1100가구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수도권 3기 신도시와 주요 택지에서 3만 가구에 대해 사전청약을 실시한다고 밝힌 상태다. 

    사전청약을 하려면 청약 당시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이후 본청약이 진행될 때까지 의무거주기간(수도권은 2년 이상)을 채우고 무주택 상태를 유지하면 완공 후 입주가 보장된다. 이에 따라 남양주 왕숙(2400가구), 부천 대장(2000가구), 고양 창릉(1600가구), 하남 교산(1100가구) 등 사전청약이 예고된 신도시 예정지에는 지난해부터 사전청약을 노리고 임차인으로 전입한 이가 늘어난 상황이다.

    사라진 부동산 정책 리더십, 시장 불안 확산

    3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3기 신도시 농지 불법거래 규탄 및 농지소유실태 전수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 다섯 번째)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3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3기 신도시 농지 불법거래 규탄 및 농지소유실태 전수조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 다섯 번째)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사전청약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무주택자는 아파트 착공 전 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 주거 불안이 줄어든다. 부동산 수요 감소로 시장 안정 효과도 나타날 수 있다. 문제는 사전청약 후 주택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때 사례도 있다. 2009년 정부는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며 사전청약(당시 이름은 사전예약)을 실시했다. 그러나 토지 보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업이 지연돼 본청약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사업 예정지에서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사전청약 당첨자 상당수가 ‘전세 난민’ 신세가 됐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9~2010년 사전예약 당첨자 1만3398명 가운데 해당 주택을 실제로 계약한 사람은 5512명(41%)에 불과하다. 이 ‘실패’ 이후 국내에서 사전청약이 실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부동산 카페 등을 중심으로 “3기 수도권 신도시 사전청약도 MB정부 시절 사전예약의 복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LH 사태 여파로 인한 토지 보상 지연이 분양·입주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인천 계양, 하남 교산을 시작으로 신도시 예정지 토지 보상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보상 가격을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져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남양주 왕숙,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협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이런 참에 불거진 LH 투기 의혹은 개발 속도에 한 번 더 찬물을 끼얹을 전망이다. 전국 65개 공공주택지구 토지주로 구성된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는 3월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3기 신도시를 백지화하고 진행 중인 신도시 수용·보상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토지 보상이 절반쯤 진행된 하남 교산에서도 주민대책위원회가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가 끝날 때까지 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는 성명을 낸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이 난관을 돌파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12일 최근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밝힌 변창흠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에게 “2·4 공급 대책의 기초 작업까지만 담당하고 물러나라”는 ‘시한부 유임’ 통고를 했다. 부동산 정책 콘트롤타워에 사실상 ‘식물 장관’이 앉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국토부 직원들은 현재 본인과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에 대한 강도 높은 투기 의혹 조사를 받고 있다. 국토부에서 주택 업무를 이끄는 주택도시실장도 한 달째 공석이다. 2월 16일 전임 김흥진 실장이 국토도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서다. 

    신도시 관련 사업을 총괄하는 LH 상태는 더 심각하다. 직원 투기 의혹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존립 자체를 위협받는 처지다. 지난해 말 변 전 장관이 국토부로 자리를 옮긴 후 3개월째 사장도 선임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장 3월 말로 예정된 공공 재개발 후보지 발표 등 주택 공급과 관련된 정책이 차질 없이 진행될지 우려가 크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현재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부동산 상황에 불만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신도시 투기 의혹을 발본색원하고,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예정된 공급 물량은 차질 없이 시장에 나올 수 있게 해야 부동산시장 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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