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압수수색 전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실시간 진주 LH본사 전경’이라는 제목의 불 켜진 LH 본사 사옥 사진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윤석열의 화두
3월 3일 대구고검과 지검을 찾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강조했다. [뉴시스]
문제는 이들이 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비리를 비리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예 정의와 상식의 기준 자체를 무너뜨렸다는 데에 있다. 그동안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이들은 자기들을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치외법권의 지대로 만드는 일에 골몰해 왔다. 그 결과 형사사법 제도 자체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사퇴를 하며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6%가 이 말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7.6%에 머물렀다. 앞의 여론조사의 35.9%와 비슷한 수치다. 바로 이들이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일 게다.
이른바 ‘선출된 권력’이 다수도 아닌 이들 소수의 콘크리트 지지를 바탕으로 정의와 상식,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 말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는 국민에게 돌아갈 그 피해가 어떤 것인지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당‧정‧청의 선수 치기
사건이 터지자 당‧정‧청이 선수를 쳤다.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 등 전 직원 및 가족에 대한 3기 신도시 토지거래 여부를 신속히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에서는 합동조사단을 꾸려 3기 신도시 대상지역 전부, 국토부와 LH 공사 직원과 가족에 대한 전면적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수사를 조사로 때우려 한 것이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진 신고한 이들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자”고 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들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발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샀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된 것 같다”는 것이다. LH 직원들에게 신이 내린 모양이다.
과거라면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바로 검찰에서 팀을 꾸려 수사에 들어갔을 것이다. 문제는 검경수사권 조정 결과 검찰의 직접수사가 불가능해졌다는 데에 있다. 검찰 대신 수사권을 갖게 된 경찰에서는 자신들에게도 수사의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나, 과연 이 수사가 제대로 될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압수수색에 들어가는 데에만 만 1주일이 걸렸다. 증거를 인멸하고도 남을 시간. 인터넷에는 압수수색 전날 새벽 2시에 불이 환하게 켜진 LH 본사의 사진이 올라왔다. 영장 발부에만 3일이 걸렸는데, 이유가 황당하다. 영장판사가 퇴근한 주말에 신청하는 바람에 휴일이 지난 후에야 발부가 됐단다.
국민들 가슴에 염장을 질러라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경찰의 수사를 비웃는 LH 직원의 글이 올라왔다.“털어 봐야 차명으로 해놨는데 어떻게 찾을 거임?”
그들에게는 그게 복지제도란다.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 극혐.”
‘공사’가 기득권집단이 된 것이다. 얼마 전 KBS 직원도 비슷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마시고 능력 되시고 기회 되시면 우리 사우님 되세요.”
공정에 대한 요구를 자기들 특권에 대한 질투와 열등의식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 했던 정유라와 뭐가 다른가.
꿀 빠는 일에 의원들이 빠질 리 없다. 민주당 하남시 김 모 시의원은 하남시 임야 4개 필지를 매입했다가, ‘우연히’ 신도시로 지정되는 바람에 2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의 어머니는 2019년 광명시 가학동에 토지를 매입했다. 그곳 역시 지난달 ‘우연히‘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은 아내 명의로 시흥시 장현동 일대의 땅을 쪼개기로 매입했다. 신도시 예정지로부터 5km 떨어진 지점이다. 양향자 의원은 화성시 그린벨트 지역 안의 맹지를 구입했다. 350m 떨어진 지점이 화성비봉 공공주택지구다. 그 역시 “개발호재 등은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다들 신이 들렸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대한민국 불평등의 핵심은 자산소득의 차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동산 부자를 따라갈 수는 없다. 그 능력과 노력으로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을 치를 수도 없다. LH 사건은 썩을 대로 썩은 이 사회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전엔 그것을 도려낼 메스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신도시 투기의혹 수사에 검찰을 왜 배제시키느냐”는 여론이 커지자 정부에서 검찰에 협조를 요청했다. 검·경 협의체를 꾸려 수사 정보를 공유하란다. 마치 수사에 참여시키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검찰은 협의만 하고 수사는 하지 말라는 얘기. 하긴, 자신들이 해온 ‘검찰개혁’의 결함을 인정하기 싫었을 게다.
이게 부동산만이겠는가.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하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시켜 버린 이들. 그 걸로도 모자라 아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외쳐대니 나라꼴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 그게 다 검찰에 한이 맺혀 하는 짓. 그러니 국가의 장래를 위해 당‧정‧청이 청와대 마당에서 한풀이 굿이라도 한번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