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인사파동, 민정수석 아닌 대통령 ‘패싱’
‘중수청 속도조절’ 말 바꾸기 공방…文 레임덕
신현수가 檢 관계회복 시도하자 靑 ‘하극상’
나는 4년째 공석인 文 특별감찰관 역할
검찰 들볶으니 尹 ‘대국민 여론전’으로 승부
[지호영 기자]
윤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기 하루 전인 3월 3일, 검사 출신 곽 의원에게 윤 전 총장 향후 거취에 대해 다시 물었다. 그는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본다”며 그 이유로 “그에게는 조직을 지켜내야겠다는 총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최우선이다. 여당이 (검찰 직접수사권을 완전 폐지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하겠다고 공언하는 상황에서 검찰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는데 총장이 던지고 나가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결정적인 상황이 왔을 때 심사숙고할 것이다. 윤 총장은 무조건 검찰 조직을 우선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총장이 2년 임기를 마치는 쪽에 무게를 뒀지만 중도 사퇴하고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하지만 7월까지 임기를 마치면 (대선 출마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 임기가 끝나면 지지율도 빠질 것이다. 무엇보다 (여당이) 저렇게 들쑤셔대니 어디로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치가) 본인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결론적으로 곽 의원의 예상은 살짝 빗나갔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결정적 순간을 4개월이나 앞당긴 것이다. 마치 윤 전 총장이 한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때맞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윤 전 총장은 즉각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주장하며 “부정부패는 정부가 의도해서든 무능해서든 한두 번 막지 못하면 금방 전염되는 것이다. 이러면 정말 ‘부패완판’이 된다”고 했다. 사실상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여당 내분 만천하에 드러내
- 윤 전 총장의 공개 발언이 이어지면서 ‘중수청 3월 내 발의, 6월 내 처리’라며 속전속결을 외치던 여권에서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이 나왔다. “직을 걸고 막겠다”는 그의 결기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나.“(검찰 조직을) 들볶고 들쑤시니까, (‘검수완박’은 안 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안 되니 윤 전 총장이 직접 국민에게 읍소한 거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중수청 ‘속도조절’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정·청은 아직 입장 정리가 안 됐다. 그러니 국민을 설득하면 정부 여당이나 청와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이 대국민 여론전을 한 것이다.”
- ‘검수완박’은 윤 전 총장이 ‘정치인’으로 나서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지만, 정작 당·청은 대통령의 속도조절 주문을 놓고 국회에서 진실 공방을 벌이지 않았나.
“장악력이 떨어진 대통령이 속도조절 주문을 했다는 게 문제다. 혼선의 시작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었다. 1월 임명장 수여식에서 했다는 대통령 발언을 박 장관이 전했고, 이를 언론이 받아 ‘대통령, 중수청 속도조절 주문’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몰아가면서 혼선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2월 24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직접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물어본 거다. 유 실장은 ‘박범계 장관이 임명장 받으러 온 날 대통령께서 속도조절을 당부했다’고 했다. 내가 다시 박 장관이 다른 인터뷰에서 ‘속도조절은 청와대 얘기가 아니고 언론이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하니, 유 실장이 ‘팩트는 임명장 주는 날 대통령께서 차 한 잔 하면서 당부할 때 이야기가 나온 사항’이라고 확인해줬다.
그런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잠깐’ 하고 끼어들더니 ‘(대통령) 워딩이 속도조절 이렇게 말씀하신 건 아니잖아요’라고 했다. 유 실장이 정확히 그 표현은 없었어도 그 자리에서 들어보니 대통령이 그런 취지로 말씀하신 거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여당 원내대표가 흥분해서 계속 아니라며 비서실장과 치고받더라. 여당의 내분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일 뿐 아니라 문 대통령이 국정 장악이 안 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원래 그날 국회운영위의 주요 안건은 중수청 속도조절이 아니라 검찰 인사 과정에서 신현수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패싱’ 논란 아니었나.
“그렇다. 유 비서실장은 ‘인사안이 확정되고 그다음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언론에 발표했고, 그 뒤에 전자결재를 했다며 ‘정상적인 프로세스’라고 해명했다. 내가 ‘대통령 승인이 났으면 당연히 민정수석에게도 통보됐을 텐데 왜 신 수석이 세 번, 네 번 사의를 표명하느냐’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만호 국민소통수석이 기자 브리핑을 하면서 ‘법무부 장관 안이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보고·발표돼 신 민정수석이 사의를 밝혔다’고 했다. 이 말은 승인이 안 났다는 의미다. 결재가 진행 중인데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발표했다면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한 것이다. 이것이 레임덕이 아니고 무엇인가.”
- 실제로는 민정수석이 아니라 대통령 패싱이었다는 말인가.
“두 사건(검찰 인사 발표, 중수청 속도조절)을 지켜보면서 여권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식으로 일을 해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최소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 1년 동안 대통령 의중과 다르게 진행된 일들이 있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추 전 장관이 지난해 윤 전 총장에 대해 직무배제 명령을 내리자, 윤 전 총장이 반발해 직무정지 집행정지 신청을 했고,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때 문 대통령은 (추·윤 갈등을) 여기서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은 두 번째 조치인 ‘정직 2개월 징계’까지 밀어붙였다. 이미 민주당 사람들은 대통령 의중에 반하는 일을 해도 어떻게 못 한다는 것을, 밀어붙이면 밀린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주저앉으면서 최저를 기록했다. 대통령이 기댈 곳이 민주당밖에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본다.”
한통속 거부한 신현수 ‘패싱’
- 신 수석이 민정수석 노릇을 제대로 하려다가 안 되니까 사표를 냈다?“그렇다고 본다.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인 신 전 수석이 (2020년 12월 31일) 민정수석으로 임명되자 내가 (1월 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서한을 띄웠다. 민정수석은 청와대 내 구성원들의 비리를 색출하고 감찰하는 책임이 부여된 자리니 제대로 확실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유재수 감찰무마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윤석열 찍어내기’ 감찰로 대표되는 대통령 직권남용 등 청와대가 범죄와 비리 온상이 되고 있는데 신 수석이 이런 문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느냐, 한통속이 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범죄로 부부가 재판을 받고 있고, 후임인 김조원 전 민정수석은 강남 부동산 지키려고 그만두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청와대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김종호 민정수석은 4개월(2020년 8~12월) 수석 하면서 윤석열 찍어내기 징계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신 수석 당신까지 이런 전철을 밟으면 국가가 불행해진다. 민정수석은 대통령과 적절한 긴장 관계가 있어야 하고 직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 달라고도 했다.”
-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에 대해 국민께 송구하다”며 검찰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신현수를 발탁한 건 당연히 검찰과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고 본다. 지금 와서 보면 지난해 대검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총장이 ‘총선 이후 민주당에서 사퇴하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서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라고 전해 주셨다’고 했는데, 그 메신저가 누구인지 추정할 수 있다. 당시 대검은 ‘정해진 임기 동안 소임을 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하고 메신저를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메신저가 신현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 대통령 생각에 (청와대) 밖에서도 잘했으니 민정수석을 맡아달라고 했을 것이다.”
- 이번 인사 파동이 알려지면서 이광철 민정비서관 사의설이 돌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위해 움직이더라도 여당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1월 29일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을 눈여겨봤다. 그동안 검찰 소환에 계속 불응하다 신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오자마자 출석한 것이다. 이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 조국 이후 감사원 출신 김조원, 김종호 민정수석이 무기력할 때 독자 세력화했다.
그런데 신 수석이 들어온 뒤 이진석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기소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히자 자신도 곧 같은 상황에 내몰릴 것을 알고 ‘하극상’을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2월 6~8일 청와대에 출입한 법무부 관계자 출입 기록을 요청했다. 검찰인사안을 가지고 법무부 관계자가 청와대에 갔다면 100% 민정수석실로 찾아갔을 것이고, 수석과는 협의가 덜 된 안이니까 신 수석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경호실로부터 청와대 출입 기록은 제출 불가라는 답이 왔다. 과거 문 대통령이 옵티머스, 라임 관련 청와대 출입 기록 요청 시 제출하라고 명을 내린 적도 있다. 극비 사항도 아니고 공무원의 청와대 출입 기록인데 왜 제출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조국 페이스북, 정말 웃기는 소리”
곽상도 국민의흼 의원이 2월 2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공동취재단]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문제는 대통령이다. 법무부 장관을 불러서 조용히 확인하면 될 일까지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시를 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출금 사건,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월성원전 경제성 보고서 조작 의혹에도 대통령이 등장한다. 청와대 전체가 동원되려면 이를 지시할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결국 다 공범이다. 신 전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공범이 될 거냐, 이 구도를 깨고 정상 궤도로 갈 것이냐 선택해야 했고, 대통령의 권위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 순간 다른 사람들과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 중수청과 관련해 조국 전 장관이 페이스북에 “다른 이는 몰라도 유승민, 곽상도, 윤석열 등은 이 실천에 감사해야 한다”며 곽 의원을 거론하자 “감사라니, 정말 웃기는 소리”라고 응수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 내가 수사청법을 제안(2018년 11월 발의)했지만 정부 여당이나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제 와서 ‘소원을 들어줬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여당이 추진하는 중수청과 내가 제안했던 수사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여당은 검찰, 경찰, 공수처로도 모자라 중수청까지 신설하려고 한다. 수사공화국을 만들 작정인가. 검경 간 수사권 다툼하다가 4개 기관이 다투면 누가 조정하나. 관할권을 주장하면서 서로 수사하려고 하거나 관할권이 없다며 계속 ‘핑퐁’ 하면 조정할 방법이 있나. 어느 수사기관에서 수사하는지 알아내려고 변호사나 지인을 동원해야 하지 않겠나. 4개 기관에 돌아가면서 고소·고발하면 당사자는 몇 차례 수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제안한 수사청법은 수사기관을 단일화하자는 거다. 형사재판에 적용되는 일사부재리 원칙처럼 수사도 한 번만 받도록 하고 공권력도 최소한 행사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인권 차원의 문제다. 나는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간판을 내리게 한 장본인이다. 그로 인해 검찰 동료들의 미움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수사기관을 자꾸 늘리는 것은 결단코 반대한다. 이제 수사의 양은 줄이고 질로 승부 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저격수’에 이어 ‘대통령 가족 스토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의 예술지원금 특혜 의혹과 딸 다혜 씨 가족의 태국 해외 이주와 외손자 특혜 진료 의혹 등을 잇달아 제기했다.
“역대 정권은 대통령 가족을 공인으로 간주하고 관리 대상으로 삼았지만 어김없이 가족 비리 때문에 임기 말년에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 민정수석실은 어떤가.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 문제에 대해 이렇게 손을 놓은 경우는 없었다. 대통령 4촌 이내 친·인척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의 비위를 상시 감찰하는 특별감찰관도 취임 이후 4년 동안 임명하지 않았다. 대통령 가족관리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대통령 처남의 그린벨트 투기 의혹, 손아래 동서의 모 대학 총장 인사 개입 의혹과 자신이 재직하는 대학의 교육부 평가 개입 의혹 등을 공개했다. 이처럼 명백히 수사해야 할 사건도 다 묻혀버렸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감시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특별감찰관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한 것뿐이다.”
곽 의원은 3월 들어 태국으로 이주했던 다혜 씨가 서울 양평동 다가구주택 매입 후 21개월 만에 매도해 1억5000만 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과 관련해 매입 자금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문 대통령 처남 김모 씨가 과거 소유했던 경기 성남시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내 전답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수용되면서 47억 원의 토지보상 차익을 거둔 사실 등을 확인하고 투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종인의 당 대표 출마 가능성
- LH 사태 이후 국민 여론이 악화하고 있다. 4·7 재·보궐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나.“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서울, 부산 모두 야당이 승리할 것이다. 여당이 부산시장 선거를 위해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을 때 우리 당 안에서도 찬반 토론이 있었다. 부산이 지역구인 의원들이 신공항을 찬성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부산만 선거하나. 서울에선 가덕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더 많기 때문에 반대 의견도 충분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민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신공항 같은 개발 호재가 옛날만큼 먹히지 않을 것이다.”
- 선거와 함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임기도 끝난다.
“김 위원장의 거취는 이번 보궐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 완승을 거두면 전당대회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 차기 당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지만 차라리 김종인 위원장이 낫다. 일단 우리 당 지지율을 여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지 않았나.”
-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가능성이 있나.
“지난 연말에 같은 질문에 대해 그 방법(입당)이 쉬운 길이라고 했다. 정치하려면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다. 선택은 윤 총장에게 달렸다. 보수진영에는 그에 대해 반감이 남아 있지만 TK(대구·경북) 지역은 반문(反文) 정서 때문에 그를 지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