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호

[진중권의 인사이트] 민주당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는 진짜 이유

“여당이 상대할 적은 오세훈 아닌, 유권자의 분노”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입력2021-04-01 1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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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위기, 극복된 게 아니라 지연된 것

    • 윤석열 정치로 내몬 여당의 기만과 오만

    • 상식과 정의 파괴한 집권여당의 독선‧위선 심판

    • 민주당, 근본적 반성·혁신 없으면 대선 결과도 같을 것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 중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동아DB]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유세 중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왼쪽)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동아DB]

    막대기만 꽂아놔도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선거. 그만큼 분노가 크다는 얘기다.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LH 사건이지만, 직원들이 그 짓을 이 정권하에서만 한 것은 아닐 터. 실은 그동안 쌓이고 쌓인 유권자들의 불만이 그 일을 계기로 폭발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게다. 지난 총선에서 180석의 압승을 했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 꼴이 됐을까.


    민주당을 버린 중도층

    민주당의 위기는 지난해 초에 시작됐다. 총선 전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지지율이 잠시 역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집권여당이 운 좋게 득을 보고, 야당이 수구적 행태를 반복하다 자멸하는 바람에 그저 위기가 위기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위기는 극복된 것이 아니라 지연된 것뿐이다. 

    당시 “금태섭 의원의 공천탈락을 계기로 중도층의 마음이 떠날 것이라는 분석은 안 해 봤나”는 기자의 물음에 민주당 관계자는 이렇게 대꾸했단다. “중도층은 미신이다. 쟁점마다 다른 투표를 하는 층이 있을 뿐이다. 중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따르면 그렇다. 영향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본다.” 

    중도층을 ‘미신’으로, 즉 아예 ‘없는’ 존재로 취급한 것이다. 그런데 “존재하지 않는” 그 중도층이 지금 국민의힘과 결합했다. 민주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굳게 믿었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게 어디 국민의힘이 잘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안철수와, 그들이 공천에서 탈락시킨 금태섭 전 의원이 거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도층만 없는 것 취급한 게 아니다. 180석만 믿고 야당도 없는 존재로 취급해 왔다. 민심이반의 결정적 계기는 결국 부동산. 작년 부동산 관련 3법은 국회에서 토론 한번 없이 통과됐다. 그때 야당의 의견을 수렴해 합의처리 했다면 정책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을 테고, 실정의 책임을 혼자 덤터기 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오세훈이 좋아서 찍어주는가

    민주당의 오만은 이른바 ‘중도’가 국민의힘으로는 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중도가 그쪽으로 가진 않는 한, 40%의 콘크리트층만으로도 통치는 물론, 재집권도 할 수가 있을 게다. 하지만 그 40% 지지율은 이미 깨졌고, 분노한 중도층은 벌써 국민의힘 지지를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 

    중도·보수 연합의 성공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희망을 잃은 야당에 어렴풋하게나마 재집권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아마도 내년 대선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이번 보궐선거에서 벌어졌던 일이 재연될 것이다. 태풍의 눈은 물론 윤석열 전 검찰총장. 그를 정치권으로 내몬 것 역시 여당의 기만과 오만이었다. 자업자득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 속에는 이미 이 가능성이 계산되어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한다. 즉, 그들은 오 후보가 정말로 좋은 후보라고 믿어서 찍어주는 게 아니다. 조국 사태 이후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 약속, 즉 상식과 정의를 파괴해 온 집권여당의 독선과 위선을 심판하기 위해 장기판 위의 말로 고른 것뿐이다. 

    이것이 민주당의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는 첫 번째 이유다. 즉, 좋아서 찍어주는 후보가 아닌 이상, 그 후보를 아무리 깎아내린들 유권자의 선택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변심한 유권자들을 진영의 ‘배신자’라고 탓해봐야 빈축이나 살 뿐이다. ‘우리가 오죽하면 그러겠냐.’ 민주당이 상대해야 할 적은 오세훈 후보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는 유권자의 분노다.


    공직윤리를 무너뜨린 것은 민주당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민주당에서 공직윤리의 기준을 형편없이 낮추어 놓았다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법무부 장관을 하고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의원을 하는 마당에, 오세훈 후보,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시장을 못 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부동산 투기는 자기들도 하는 것. 트집 잡아봐야 유권자들에게 ‘내로남불’ 소리나 듣게 된다. 

    ‘거짓으로 드러나면 사퇴한다고’ 했으니 오 후보는 당장 사퇴하란다. 그렇게 약속을 잘 지키는 당이라면 애초에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지. 자기들 책임으로 발생한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대국민 약속을 깬 것이 누구던가? 그러니 오세훈 후보에게 당당히 사퇴를 요구하려면 먼저 박영선 후보부터 사퇴시킬 일이다. 

    네거티브가 먹히지 않으니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하겠단다. 아무리 절절한 사죄의 말도 조국 전 장관의 말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이에 내 말을 추가하자면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 퍽~~” 

    사실 민주당에서도 유권자의 분노를 몰랐던 게 아니다. 그래서 주류인 친노·친문과 거리가 먼 박영선 후보를 낸 것이다. 운동권 주류 우상호 의원로는 애초 가망이 없음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박영선 후보의 선거운동에는 대통령이 빠져 있다. 최근 그는 점퍼의 색을 민주당 상징인 파란색에서 하늘색으로 바꾸었다.


    원칙 있는 패배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겠는가. 점퍼의 색을 바꿀 게 아니다. 당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망 없는 네거티브는 포기하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원칙 있는 패배’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필자는 올해 초에“민주당 몰락은 확정되었다”고 단언한 바 있다. 민주당 후보가 제 당의 상징색을 지운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사태를 부른 민주당의 위기는 구조적인 것이다. 꼼수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라도 철저한 반성과 혁신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 당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근본적인 반성과 혁신이 없으면 내년 대선의 결과도 이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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