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실추된 명예 되찾기” 秋 아들 당직사병의 ‘끝나지 않은 전쟁’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06-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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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秋 아들 변호사가 입장문 내자 공격 시작

    • 부재중 전화 30통, 멘탈 흔들려 일상 엉망

    • 檢 수사결과 내 발언은 사실, 서씨는 무혐의

    • 秋, 사과하고 지지자들 공격 멈추라 해주길 바랐다

    • 사과 않는 秋, 현근택 변호사, 네티즌들 고소할 수밖에

    • 與野 모두 정치적 이용, 장기판 말 된 기분

    • 최초 대리 제보한 친구부터 말리겠다

    •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 문제 제기

    [Gettyimages]

    [Gettyimages]

    2017년 6월 25일 당직사병 A(27) 씨는 군입대한 여당 유력 정치인 자제가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복귀를 요청했다. 그런데 이후 한 장교가 찾아와 휴가 처리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유력 정치인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었고 자제는 아들 서모(28) 씨였다.

    2019년 12월 야당은 추 전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아들 서씨의 휴가 미복귀 의혹을 제기하면서 서씨를 이듬해 1월 3일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서씨의 휴가 미복귀 사건이 논란이 되자 A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당직사병으로 복무하며 겪은 일을 직접 밝혔고, 이후 그의 삶은 엉망이 됐다.

    지난해 9월 2일 서씨 변호인이 “A씨의 주장은 허위”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고, 추 전 장관과 여당 의원들이 A씨 주장을 ‘카더라’ ‘가짜 뉴스’라고 비판하자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A씨를 ‘검찰개혁을 막는 주범’으로 지목하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서씨의 휴가 미복귀 의혹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지난해 9월 29일 A씨의 제보 내용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의 욕설과 A씨의 폭로에 배후가 있다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고, 이에 맞선 A씨는 추 전 장관과 현근택 변호사, 네티즌 등을 잇달아 고소(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하면서 명예 회복을 위한 응전을 하고 있다.

    “명예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6월 8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을 처음 제기한 당직사병 A씨는 “내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한 것에 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사과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6월 8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을 처음 제기한 당직사병 A씨는 “내 주장을 거짓말이라고 한 것에 대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사과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6월 8일 서울 용산구 국방권익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추 전 장관이 내게 거짓말이라고 한 것을 사과하고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멈추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고소를 해서라도 명예를 회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첫 제보는 어떻게 이뤄졌나.

    “제대 후 친구들에게 서씨 휴가와 관련된 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19년 12월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 두 명이 ‘서씨 휴가 미복귀 의혹을 기자에게 말해도 되냐’고 물어왔다. 당시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중이라 정신없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간 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서 연락이 왔다. 기사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해 줬다. 이후 인터넷에 서씨 관련 글이 게시됐는데 사실관계가 달라 내가 직접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2월 두 언론사와 진행한 그의 인터뷰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7월 2일 ‘TV조선’ 보도 이후 그는 여야 대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A씨가 2017년 6월 25일 동료 사병과 나눈 SNS 내용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내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달라고 요청해서 ‘TV조선’ 기자에게 넘겨줬다. 6월 검찰 조사에서도 제출한 근거다. 이후 기자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 대응하지 않았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는데 석사 졸업논문 준비로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락을 받지 않으니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잠적했다’고 쓰더라.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단초, 9월 2일 문건

    이즈음 A씨는 서씨 변호인 측이 지난해 9월 2일 공개한 입장문을 가방에서 꺼냈다. A씨와 관련된 입장문을 요약하면, A씨와 서씨는 통화한 적이 없고, A씨가 언론을 통해서 한 주장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닌 전해들은 이야기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 A씨의 제보 내용은 사실로 인정됐다. A씨는 “작년을 돌이켜보면 해당 입장문이 나온 후 본격적으로 나를 향한 공격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 무슨 말인가.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한다더니, 서씨 변호인 입장문에 따르면 나는 실제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제보한 사람이다. 추 전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내가 왜 들은 내용만 가지고 제보했는지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니 ‘일베를 한다’ ‘배후가 있다’는 식의 추론으로 연결된 거다. 입장문에서 나를 ‘n차정보원’이라 칭했는데, 근거 없는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 옮긴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런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내며 내 제보를 폄훼했다.”

    A씨의 말대로 서씨 변호사 입장문이 공개된 후 여권은 A씨의 제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12일 페이스북에 A씨의 실명을 공개하며 “(A씨의) 언행을 보면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공범 세력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썼다. 다른 여당 인사들도 ‘배후설’ ‘거짓말’ ‘가짜 뉴스’ 등을 언급하며 의견을 보탰다. 추 전 장관 역시 같은 달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카더라’ ‘이웃집 아저씨의 오인과 추측’이라며 A씨의 제보를 일축했다.

    - 개인적인 공격도 받았나.

    “페이스북 메시지가 많이 왔다. 부모님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페이스북을 비공개하니 온라인에 나에 대한 추측성 글을 올리더라.”

    - 황당한 내용이 많았겠다.

    “아버지가 울산에 호화 요트를 가지고 있다는 글도 봤다. 급기야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의 사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 울산이 고향인 것은 사실인가.

    “그렇다. 추 전 장관이 ‘소설 쓰시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지 않나. 네티즌이 나와 관련된 일부 사실인 정보를 추가해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쓴 것이다.”

    - 일상에 지장이 생겼겠다.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휴대전화를 열면 부재중 전화가 30통씩 와 있었고 학교로 찾아오는 기자도 있었다. 당시 석사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멘탈’이 흔들리다 보니 논문 작성도 늦어졌다.”

    드레퓌스 사건 떠올려

    2020년 9월 17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추 전 장관은 당직사병 A씨의 주장에 대해 “카더라”라며 “A씨의 주장은 오인됐거나 과장됐으며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1]

    2020년 9월 17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추 전 장관은 당직사병 A씨의 주장에 대해 “카더라”라며 “A씨의 주장은 오인됐거나 과장됐으며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1]

    - 다시 2019년 12월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제보할 건가.

    “우선 기자에게 알리겠다는 친구부터 말리고 싶다.”

    - 지난해 11월 10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부패신고 협조자로 인정받았다. 사실상 공익 제보를 한 셈인데.

    “원래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난해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찍었는데, 그 이유는 야당 후보 선거운동이 소음처럼 느껴져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 큰 염증을 느끼게 됐다. 결국 나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건 한 개인을 파묻으려는 여당도 그랬지만 야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 무슨 말인가.

    “나는 서씨가 앞서 사용한 병가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아닌데, 자꾸 병가 쪽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 국민의당은 당 회의실에 ‘O병장(당직사병 A씨)은 우리 아들이다’라는 백드롭(뒷배경)을 걸기도 했다. 실질적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나를 장기판의 말처럼 사용했다. 일반 사람들이 내 제보 내용을 의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본인들에게 유리하도록 호도하더라.”

    A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드레퓌스 대위가 간첩 혐의를 받았다가 법정투쟁 끝에 무죄판결을 받아낸 사건을 말한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드레퓌스 대위의 간첩 혐의를 두고 재심 요구파와 반대파가 격돌했다.

    - 어떤 점이 비슷한가.

    “진실에는 관심없고, 이게 우리 편에 유리한지 혹은 불리한지만 따진다.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것과 유사하다. 9월 29일 서울동부지검은 추 장관 아들 서씨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동시에 A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이런 수사 결과가 나오니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거봐라 추 전 장관의 이야기가 맞고 당직사병은 역시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고,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반대로 ‘당직사병의 주장이 맞고 추 전 장관의 이야기는 틀렸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는 싸움

    지난해 10월 A씨는 추 전 장관과 현근택 변호사, 네티즌 800명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동부지검은 5월 24일 A씨를 소환 조사했다.

    - 왜 고소했나.

    “드레퓌스 대위는 결국 무죄를 받았다. 나는 제보 내용을 사실로 인정받았지만, 동시에 서씨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나에 대한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추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내게 거짓말이라고 한 것을 사과하고 지지자들에게 공격을 멈추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은 사과하지 않았다. 고소를 통해 명예를 회복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지난해 12월에 장경태 민주당 의원과 네티즌 5000여 명을 한 차례 더 고소했는데.

    “지금까지 나에 대한 허위 사실을 쓰거나 모욕한 댓글을 더 찾았다. 장 의원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나를 부패행위신고자로 인정한 날에 또다시 언론에 ‘허위 주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온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사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A씨는 명예 회복을 위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변호사가 옆에 있는데도 경찰이 수사하기 싫은 티를 내더라”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하나의 댓글에 허위 사실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이 동시에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경찰은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입건하길 바랐다. 그래야 영장 청구가 쉽다고 했지만, 수사 범위를 줄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IP주소를 특정해 가지고 오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건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당시 경찰은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LH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국민을 조롱하는 글을 썼을 때는 곧바로 압수수색을 했다. 생각해 보면 국민적 공분을 산 것은 맞지만 피해자는 없는 사건이다. 그럼에도 신속하게 수사절차가 진행되지 않았나.”

    A씨에 대한 명예훼손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당직사병을 검색하면 그에 대한 부정적 내용을 담은 글과 댓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씨의 맺음말이 비장하게 들렸다.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이를 다시 회복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당직사병 #추미애 #드레퓌스사건 #명예회복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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