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미꾸라지 찾다’가 국정 싱크홀…文정권 人治 정치

유전자 따지는 청와대, 침묵하는 대통령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1-06-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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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리스트 의혹에 “怏心 품고 보복하는 것”

    • 신재민 폭로에 “꼴뚜기 뛰니 망뚱이 뛰어”

    • 秋 아들 군 휴가 특혜 논란에는 “단독범”

    • 탈원전 監査 최재형에게 “원전 마피아”

    • “적과 동지 구분, 제도적 마인드 부족”

    • “文은 좌고우면하는 내향적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이 6월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6월 7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 참석해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2018년 12월 15일 윤영찬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사흘 뒤. 이번에는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현 열린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같은 해 12월 28일.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완전히 비리 혐의자 아닌가. 앙심(怏心)을 품고 보복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발언한다.

    세 문장은 문재인 정권의 망탈리테(mentalité·정신구조)를 간결하게 압축한다. 고결한 곳에 지저분한 존재가 끼어들었고, 우리는 너희와 씨부터 다르며,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이 발악을 한다는 투다. 요약하면 ‘미꾸라지론’ ‘유전자론’ ‘앙심론’이다. 문재인 정권의 정치는 여전히 이 세 단어의 자기장(磁氣場) 안에서 움직인다.

    “먹고살려고 영상 찍은 사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8년 12월 17일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던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폭로로 촉발됐다. 윤영찬, 김의겸, 우상호 의원이 직접적으로 겨냥한 인물도 김 전 수사관이었다. ‘미꾸라지론’과 ‘앙심론’이 한데 뒤엉켜 있다.

    당시 공개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 현황 문건’은 환경부 산하 환경관리공단,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산업기술원,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국립생태원, 낙동강생물자원관, 환경보전협회, 상하수도협회의 기관장·임원·감사 등을 적시한 뒤 각각에 대해 “사표제출예정” “반발(새누리당 출신)” “반발(KEI 출신)” “사표제출” “사표제출예정” “現정부 임명” “후임 임명 시까지만 근무”라고 ‘현재 상황’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나온 결과만 놓고 보면 김 전 수사관의 말이 진실에 부합한다. 지난 2월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관련 내용은 106쪽 기사 참조)

    이번에는 2018년 12월 29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유튜브를 통해 기재부가 청와대 지시로 박근혜 정부 때 선임된 백복인 KT&G 사장을 교체하려 했고, 이는 당시 기재부 차관에게도 보고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튿날 신 전 사무관은 모교인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 ‘고파스’에 글을 올려 “정권교체기인 2017년에 국내총생산 대비 채무 비율을 낮추면 향후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세수가 20조 이상 남았지만 국채 조기 상환을 취소했다”고 했다. 쉽게 말해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임기 연도인 2017년 국가 채무 비율을 높이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여권 내부에서 ‘미꾸라지론’의 변형인 ‘망둥이론’이 튀어나왔다. 같은 해 12월 31일 홍익표 당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불법행위,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 유포 행위에는 응분의 책임이 따를 것”이라며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뛰는 것일까”라고 했다. 같은 날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신 전 사무관의 유튜브 동영상을 틀며 “맨 마지막에 저러고 국민을 놀리고 있다. 먹고살려고 영상을 찍은 사람”이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의 군 휴가 특혜 논란이 전개되는 과정도 유사했다. 관련 의혹은 2019년 12월 추 전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때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서씨에 대한 공익제보 내용을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서씨는 2016년 11월부터 21개월간 육군 카투사(KATUSA·한국군 지원단)로 복무했다. 의혹의 핵심은 2017년 6월 5~14일 1차 병가, 같은 달 14~23일 2차 병가, 24~27일 정기휴가였다. 서씨는 당초 병가 종료일인 6월 23일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는데, 이를 놓고 군무이탈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논란거리가 됐다.

    관련 내용을 처음 제기한 당시 당직사병 A씨는 서씨의 부대 미복귀 사실을 파악한 뒤 서씨에게 복귀하라고 전화했고, 곧 상급 부대 대위가 찾아와 서씨에 대한 휴가 처리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관련 내용은 112쪽 기사 참조)

    단독범과 원전 마피아

    그러자 여권은 ‘미꾸라지론’과 ‘유전자론’을 뒤섞어 활용했다. 황희 민주당 의원(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20년 9월 12일 페이스북에 A씨의 실명을 적시하면서 “그동안의 언행을 보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A씨에 대한) 철저한 수사 내지는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썼다. 또 “이 세력이 의도하는 목적이 단순한 검찰개혁의 저지인지, 아니면 작년처럼 대한민국을 둘로 쪼개고 대혼란을 조장하기 위함인지 국민은 끝까지 추궁할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당시 황 의원은 당직사병의 이름을 익명으로 바꿨고, 단독범이라는 표현도 ‘단순 제보’로 수정했다. 황 의원이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인 올해 1월 20일에는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던 게시물을 모두 ‘비공개’로 전환했다. 정치권에서는 황 의원이 ‘단독범’ 논란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탈(脫)원전 감사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발언에는 ‘미꾸라지론’과 ‘유전자론’이 절묘히 섞여 있다. 2020년 8월 4일 송갑석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최재형 감사원장을 겨냥해 “원전 마피아들이 했던 논리와 사고구조의 말들이 감사원장 입을 통해 나온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원장이 탈원전 정책에 선입견을 가지고 감사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최 원장의 두 동서 중 한 분이 원자력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고 다른 한 분은 언론사 논설주간”이라고 답했다.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감사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다. 유전자가 다른 원전 마피아 세력이 감사원장이라는 미꾸라지를 침투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1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1년 넘게 월성 원전을 감사해 놓고 사상 초유의 방사성물질 유출을 확인하지 못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는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원전 마피아와의 결탁이 있었는지 등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발언은 현직 집권여당 대표 신분으로 꺼낸 터라 파장이 컸다.(*관련 내용은 118쪽 기사 참조)

    여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갈라치기 정치”라면서 “여권은 스스로 절대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 근거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도덕성은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행태와 관련돼 있다”고 꼬집었다.

    “文은 내향적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앞서 소개한 사례들에는 어떤 규칙과 질서가 보인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적법한 절차를 우회하고 청와대가 낙점한 인사들 임명을 위해 장관이 채용에 불법 개입했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 폭로의 요지는 청와대가 민간 기업 사장 인사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과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국가채무 비율을 조정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입증된 바 없다. 추미애 전 장관의 아들 서모 씨의 군 휴가 특혜 논란 역시 절차를 지켰느냐 무시했느냐의 문제였다. 탈(脫)원전 감사도 적법한 직무 수행인데, 이에 대해 여권은 ‘마피아’라는 단어를 써가며 낙인찍기를 시도했다. 신율 교수의 진단을 들어보자.

    “여권에는 제도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정부라는 제도적 기관이 인치(人治)적 요소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본인들은 (야당일 때) 낙하산을 비판해 놓고 똑같이 낙하산을 하고 있다. 자신들에게는 관대하다. (이런 행태는) 남은 임기 중에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특징은 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등장하지 않고 청와대 참모나 여당 인사들이 강성 지지자들을 의식한 발언을 내놓는다. 지지자들은 잇따르는 강성 발언에 친문(親文) 핵심부의 의중이 담겼다고 해석한다. 대통령의 침묵이 그 자체로 메시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최고위 정무직 공무원이다. 의견이 첨예하게 갈릴 때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상황을 정리해야 할 의무가 부여된다. 이 때문에 지난 4년간 불필요한 소모전이 반복된 원인으로 문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에 주목하는 전문가도 있다. 정치심리학에 정통한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의 설명이다.

    “국정 운영 스타일의 뿌리는 리더십이고, 리더십의 뿌리는 성격이다. 문 대통령의 성격은 칼 융의 해석을 빌리자면 내향형이다. 특징은 느리고 무겁고 꼼꼼하고 치밀하다는 점이다. 내향적 지도자들의 국정 운영은 안정적이고 또 예측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 초기나 중반기에 강점을 발휘한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나 임기 말에는 단점이 부각된다. 내향적 지도자들은 답답하고 좌고우면하며 망설이는 스타일이다. 예컨대 조국 교수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할지 말지를 두고 얼마나 망설였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추미애 장관을 바꿔야 할지 힘을 실어줘야 할지 또 얼마나 질질 끌었는가. 잘못이 있으면 빨리 바꾸거나 중단해야 하는데, 너무 느리고 질질 끈 것이다.”

    열망-실망-절망

    진보 원로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지난해 6월 발표한 논문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한국정치연구)에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이 민주주의를 이해했던 방식이 그러했듯이, 촛불시위 이후의 정치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개혁의 사령탑을 자임했다”면서 “사회로부터 개혁의 요구가 강하게 분출할 때, 거의 독점적이고 일방적으로 통치권을 부여받은 것처럼 이해하고 대응했다”고 썼다.

    촛불의 환호와 함께 개막한 ‘문재인 시대’도 열망-실망-절망의 수순에 접어들었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는 문재인 정권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민주주의에 독단과 선민의식이라는 짙은 자국을 남겼다. 그 자국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해 권부(權府)만이 애써 모른 척을 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신재민 #추미애아들 #탈원전 #최재형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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