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 ‘태풍의 눈’ 2030 MZ세대
‘내로남불’, 부동산, 일자리 문제로 文정부에 등 돌려
MZ세대 ‘세력화’와 ‘대선 파괴력’ 확인
브레이브걸스처럼 ‘팬덤 현상’ 만든 이준석
李 지지층 47%가 尹 지지…‘새로운 기회’
‘이준석 현상’ 이해하는 자, 大權 얻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 14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대표는 당권 선거에서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아무리 봐도 경험과 경륜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석 돌풍은 이준석 개인에게 한정된 현상이 아니었다. 이준석 현상은 정치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태풍이었다.
이준석 현상 ‘태풍의 눈’ 2030 MZ세대
태풍의 눈에는 정치판에서 주변부에 머물렀고 들러리처럼 인식돼 온 2030세대, 즉 ‘MZ세대의 반란’이 있었다. 이들은 정당정치에서 확실하게 공천을 받기보다는 청년 가산점에 의존하는 신세로 취급됐다.한편으론 이준석 현상은 ‘신진 세력의 반발’이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2030세대는 정치 현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았다. 고작해야 청년 최고위원직을 부여받거나 청년위원회에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청년 정치인들은 정당의 경쟁력 강화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음에도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의 공천 제도는 청년이 가산점을 받더라도 이미 지역 또는 정당 내 기득권을 독차지하고 있는 현역 의원이나 주요 당직자 출신을 이기기 어려운 구조다. 반발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준석 현상은 ‘청년 정책 반영’을 요구하는 목소리였고,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이상적이라기보다는 청년들의 요구를 대변할 존재가 필요했기에 가능했다.
2030 MZ세대는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기대감을 실어줬다. 여당이 압승하는 데 2030세대의 기대와 희망이 큰 역할을 했다. 민주당이 완전무결한 정당이어서가 아니라 걸핏하면 야당에 발목 잡혀 정책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탈피해 보라는 결단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1년여간 정부와 여당은 2030 MZ세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들이 원하는 정책은 기회의 공정, 결과의 정의, 문제의 해결이었다. 정치권이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보려고 여당에 힘을 실어준 게 아니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시대 변화’와 ‘세대교체’의 염원을 등에 진 대변인이었던 셈이다.
2030세대라고 하더라도 이준석 대표와 이념을 달리하는 다른 정당 지지층도 있기 마련. 특히 ‘페미니즘’ 이슈로 곤란을 겪은 이 대표이기 때문에 2030세대 여성 응답자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가능성까지 감안하면 압도적인 결과였다.
‘이준석 현상’을 단순히 이준석 개인의 영향력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집단적인 세력화로 볼 수밖에 없다. 이준석 대표는 2030 MZ세대의 집단적 응원을 받아 일종의 ‘팬덤 현상’을 만들어냈다. 전당대회 기간에 이준석에게 모인 관심은 빅데이터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구글 트렌드에 전당대회 기간 이준석과 주요 인물을 입력해 보면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지사보다 이준석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게 나왔다.
또 다른 빅데이터 분석 도구인 소셜메트릭스인사이트에서 ‘이준석’을 입력하면 유명 연예인인 ‘유느님’ 유재석보다 언급량이 훨씬 많다. 말 그대로 이준석 현상이다. 마치 브레이브걸스가 ‘롤린’이라는 노래로 뒤늦게 차트 역주행을 하며 음악 랭킹을 휩쓸어 버린 것과 다름없다.
집단적 세력화는 선거에서 매우 중요하다. 19대 대선과 2018 전국동시지방선거, 그리고 지난해 총선은 철저한 이념 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중도층까지 진보에 힘을 실어주며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고, 여당은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부터 판세는 달라졌다. 중도층은 정부의 정책 실패와 지나친 이념 구도로 진보로부터 멀어졌다. 굳이 따지자면 보수층에 더 가까울 정도로 진보 지지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브레이브걸스처럼 ‘팬덤 현상’ 만든 이준석
현재 중도층은 중도진보와 중도보수 그리고 ‘그대로 중도’로 나뉜다. 경우에 따라 진보 쪽에 더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래서 중도층에 필적할 집단 세력이 MZ세대로 분석된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만 18세 이상부터 30대까지 비율은 3분의 1 정도인 34% 가까이 된다. 이전 선거에서 이들은 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했고, 대체로 다른 연령대보다 투표율이 낮은 편이거나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계층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더는 MZ세대가 정치 무관심층이거나 정치 취약층은 아니다. 부동산 폭등이나 일자리 문제처럼 자신들의 이익이 훼손되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변화나 교체 요구가 어느 때보다 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관성도 사라졌다. 이준석 현상으로부터 발견하는 MZ세대의 첫 번째 영향력은 ‘집단적 세력화’다.MZ세대로부터 발견하는 두 번째 영향력은 ‘대선 파괴력’이다. 대선이 9개월여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대선 구도는 불분명하다. 민주당 유력 후보로 이재명 지사가 부각돼 있고, 보수 야권은 윤석열 전 총장이 지지율에서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지사는 각종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여권 후보 중 가장 앞서 있지만 20%대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대선 행보에서 주춤하면서 이 지사는 그 자리를 파고들었고, 올 들어 여권 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친문 지지층이 추가로 결집되지 않으면서 지지율은 정체 국면이다. 여기에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몇몇 여권 내 후발 주자들이 견제 공격을 하면서 이 지사 지지율은 흔들리고 있다.
반면 윤석열 전 총장은 4월 재보궐선거 직후 지지율이 다소 정체 국면에 있다가 최근 상승 반전하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대체로 ‘반사체’ 성격이 강하다. 문 대통령, 검찰 갈등,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 등은 윤 전 총장 지지층이 결집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법무부의 검찰 인사가 논란이 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 전 총장을 수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윤 전 총장 지지율은 더 올라가는 추세다. 게다가 조국 전 장관이 ‘조국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자 정치적으로 윤 전 총장이 소환되는 현상도 벌어지며 국민의힘 지지자와 보수층이 더 결집하고 있다. 이런 대선 판도에 집단 변수로 MZ세대의 ‘대선 파괴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MZ세대 대선 파괴력
야권과 여권에서 각각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뉴시스]
이 결과를 보면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선두권을 유지하는 데 MZ세대의 지지가 중요하고, 특히 아직 차기 대권 도전이나 현실 정치참여를 선언하지 않은 윤 전 총장의 대선 후보 지지층에 20대와 30대 비중이 높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지사가 윤 전 총장보다 20대 지지를 더 많이 받는다면 판세는 달라진다. 윤 전 총장과 이 지사가 아니라 후발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 박용진 민주당 의원,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가 MZ세대의 표심을 전폭적으로 받게 된다면 전체 판세도 달라질 수 있다.
중도층은 기존 정치적 관성이 남아 있어 지지하던 후보를 갑자기 변경하기 쉽지 않지만 2030세대는 짧은 시간에 얼마든지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MZ세대가 차기 대권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준석 현상’은 누구에게 가장 유리할까. 이준석 현상에서 이준석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MZ세대의 분노와 반응을 정치적 영향력으로 소화해 낸 ‘내공’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는 갑자기 나타난 돌발 변수가 아니다. 2011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부터 비대위원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하기도 했고 또 관여하기도 했다. 유승민 전 의원과는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 서로의 선거에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받았다.
차기 대선에서는 이준석 대표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이 대표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차기 대선에 투표하는 2030세대 표심도 중요하다. 이들이 향후 이 대표 행보에 공감하게 된다면 차기 대선에 이 대표의 ‘세대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반면 이 대표를 지지하지 않는 MZ세대는 누구를 지지할지, 특정 후보를 집중적으로 지원할지 여부도 대선 판도의 관건이다.
그렇다면 우선 이준석 지지층은 누구를 지지하고 있을까.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머니투데이와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를 받아 5월 29일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전국 1004명 무선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포인트, 응답률 2.8%,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결과에서 ‘이준석 지지층’만 분리해 어떤 대선후보를 지지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당대표 적합도에서 이준석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층은 대선주자로 윤 전 총장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47%로 가장 높았다. 이준석 지지층이므로 윤 전 총장에 대한 선호가 높은 게 당연해 보인다. 윤 전 총장 다음으로 이준석 지지층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대선 후보는 이 지사였다. 윤 전 총장에 비하면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그림3).
이준석 지지 세대, 윤석열에게는 새로운 기회
나머지 후보들은 이준석 지지층의 선택을 별로 받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준석 대표의 탄생은 국민의힘 영입설이 제기되는 윤 전 총장에게 가장 유리한 기회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과 보수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는데, 2030세대의 지지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제3지대론’이나 ‘빅텐트론’은 국민의힘 정당 기반이 약화되는 국면에 고려할 시나리오다. 전당대회를 통해 더욱 견고해진 국민의힘 지지율을 감안하면 지금으로선 국민의힘 후보가 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30대 당대표의 탄생과 당내 혁신 움직임은 아직 정치 기반이 없는 ‘대선 새내기’ 윤 전 총장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당대표가 됐지만 아당 내 기반이 취약한 신임 대표에게 유력 대선 후보의 합류는 ‘2차 컨벤션 효과’(전당대회를 통해 정당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 1차 컨벤션 효과라면 대선후보 영입을 통해 지지율이 상승하는 2차 효과)를 가져온다.
차기 대선 구도를 전망할 때 기본적으로 이념 대결 구도는 불가피하다. 진보층 기반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과 보수층 기반을 가진 국민의힘 사이의 양당 대결 구도가 뚜렷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년 대선은 직선제 개헌 이후 아주 독특한 환경 속에 실시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기존의 12월이 아니라 5월에 대선이 실시됐고, 당선 직후 대통령이 취임하느라 정권을 인수받을 인수위원회조차 꾸리지 못했다. 이념 간 대결 구도가 분명한 선거였지만 대선 후보는 다자 대결 구도였다. MZ세대의 투표만 놓고 보면 그래도 문재인 후보가 2030 유권자의 지지를 더 많이 받은 선거였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문 대통령의 2030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2019년 이후 MZ세대 표심은 현격하게 달라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강조했지만 잇따른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과 부동산 정책 실패, 일자리 문제가 노정되면서 공정의 가치는 추락했고 문제 해결 능력도 찾기 어렵게 됐다.
결국 MZ세대의 성난 민심은 선거를 통해 나타났다. 4·7 재보궐선거는 집단 세력화의 시작이었고, 이준석 대표의 탄생은 ‘2030 파워 분수령’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더 중요한 이벤트인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준석 대표로 상징되는 ‘이준석 세대’가 차기 대선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이들은 MZ세대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청년세대의 고민에 공감하는 지도자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MZ세대 표심의 특성은 이념을 초월하고 계파를 탈피하고 지역을 넘어선다. 1980~1990년대 정치가 ‘지역’이었다면 2000~2010년대 정치는 ‘민주화와 반민주화의 충돌’이었다. 2020년대 선거판은 ‘낡음’과 ‘새로움’의 대결이다. 바뀐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룻밤 사이에 ‘신진’이 ‘꼰대’가 되는 세상이다. 이준석 현상은 MZ세대의 집단화로 태어났다. 차기 대통령은 MZ세대가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준석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을 이해하고 가장 잘 받아들이는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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