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중략)…아침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별이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연기가 굴뚝을 떠났다.”
하종오 시(詩) ‘밥 먹자’의 한 대목이다. 시인들이 섬세하게 써 내려간 음식에 대한 시를 읽으면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식구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오른다.
칙칙폭폭 밥 끓는 소리와 훈훈한 밥 냄새는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GettyImage]
비록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어요/ 날개 없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멎은 채로 가슴 안에 키우는 꿈/ 푸른 하늘이지요/ 당신은 겨우 나를 후라이팬에 튀겨/ 김밥 속에 쑤셔 넣고 있지만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가슴 안에는/ 작은 아침 해 하나/ 금빛 꿈으로 들어앉아 있었다구요
이외수 시인의 ‘계란’을 읽고 대학에 갈 둥 말 둥 하는 불안한 내 처지가 떠올라 눈물이 찔끔 났다. 고운 편지지에 시를 옮겨 적어 고만고만한 친구들에게 선물도 했다. 우리는 언젠가 프라이팬에 튀겨질지언정 금빛 꿈은 품고 있자고. 그런데 함께 시를 읽고 “좋구나” 했던 엄마, 아빠, 오빠는 하늘도 보지 못한 안쓰러운 달걀을 굽고 삶아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다. 나는 한참 동안 우리 가족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가슴에 들어앉아 있던 금빛 꿈
시인 이외수는 달걀노른자를 ‘작은 아침 해’ ‘금빛 꿈’ 등의 아름다운 시어로 묘사했다. [GettyImage]
한참 후 읽게 된 정철훈 시인의 ‘식탁의 즐거움’이다. 그래, 화목한 우리 집 반찬으로 올랐던 수많은 달걀은 어쩌면 까르르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리숙한 나는 달걀 걱정을 하느라 스스로 누구의 밥이 돼야겠다는 어진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어느새 어른이 돼버렸다.
세월은 나만 관통해 나이도 나만 먹는 것 같았는데, 얼마 전 엄마가 일흔아홉 번째 생일을 맞았다. 오랜만에 모인 아들, 딸, 며느리와 사위는 식당에서 남의 손으로 차린 저녁 한 끼 같이 하고는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점심까지 엄마 밥을 얻어먹었다. 당신 생일인데 당신은 먹지도 않는 온갖 밑반찬을 만들어두고, 미역국도 아닌 해장국거리 장만하고, 생김치 빨갛게 담가두고, 데친 오징어에 절인 무 섞어 칼칼하게 무쳐두고, 다 큰 손주 먹일 우유에 갖가지 과일까지 사두셨다. 엄마 냉장고를 열어보고 기막혀하는 나를 보고 “에미가 다 그렇다”고만 하신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중략)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_ 안도현 詩 ‘스며드는 것’
시구에 담긴 한없이 좋은 우리 엄마
엄마는 채소 하나도 ‘지지고, 다듬고, 다지고, 버무려’ 풍성한 밥상을 만들어주셨다. [김도균]
어릴 적엔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재깍 뛰어와 식탁에 앉은 적이 거의 없다. 하던 거 마저 하고, 보던 거 마저 보는 게 먼저였다. 그럼에도 엄마가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는 소리와 냄새가 집 안에 차오르는 시간은 무척이나 좋았다.
땅거미가 져서야 들어온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뛰노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종일 일한 애비보다 더 밥을 맛나게 먹는다/ 오늘 하루가, 저 반그릇의 밥이/ 다 아이들의 몸이 되어가는 순간이다 (중략) 아이들의 밥 위에 구운 갈치 한토막씩 올려놓는다/ 잘 크거라, 나의 몸 나의 生/ 죽는 일이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 시간이 맴돌이를 하는 어느 저녁 때다 –황규관 詩 ‘어느 저녁 때’
나의 부모님은 계절 좋은 봄이 오면 어린 우리 남매를 데리고 어디든 가서 뭐라도 보여주려고 애를 쓰셨다. 당시에는 집 나서서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 주로 도시락이어서, 엄마는 단란한 한 끼를 준비하느라 소풍 가기 전날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분주하셨다.
새벽에 너무 어두워/ 밥솥을 열어봅니다/ 하얀 별들이 밥이 되어/ 으스러져라 껴안고 있습니다/ 별이 쌀이 될 때까지/ 쌀이 밥이 될 때까지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랑 무르익고 있습니다
김승희 시인의 ‘새벽밥’을 읽을 때마다 희뿌연 아침에 엄마가 부엌에서 만들어내던 달그락 소리와 훈훈한 밥 냄새가 떠오른다. 박형준 시인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주문하고 나면 자기 앞에 밥이 차려질 때까지 밥 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미 퍼놓은 밥 한 공기를 온장고에서 꺼내주지만 마음속에서는 칙칙폭폭 밥 끓는 소리가 난단다. 밥 끓는 소리와 냄새 속에 자란 사람이라면 이토록 기분을 좋게 하는, 훈훈한 최면에 걸릴 수밖에 없다.
무탈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
어린 시절 학교 소풍엔 김밥을 가져가곤 했지만, 가족 소풍엔 땅콩과 잡곡을 넣어 지은 밥과 여러 가지 마른반찬, 달걀말이, 김치, 길게 썬 오이와 고추장 듬뿍 그리고 마른 오징어 한 마리가 늘 함께했다. 길가에 작은 정자나 한적한 주차장이 나오면 그곳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고, 보온병에서 바로 따라낸 따뜻한 보리차로 입가심을 했다.어머니 뭐해요 김밥 싸야지요/ 오늘은 휴일인데 아침해도 밝네요/ 고단하신 아버진 가을볕을 먹어야 해요/ 푸른 하늘물에 시린 눈동자 씻어야 해요 (중략) 오늘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천천히 흙길을 걸어보아요/ 우린 가슴샘에서 솟아나는 참얘기를/ 오롯이 나눈 지가 너무 오래 되었어요 (후략)
박노해 시인이 쓴 ‘김밥 싸야지요’의 일부다. 노동운동가로 길고 고단한 시절을 지낸 그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하는 소박한 한 끼, 아무렇지도 않은 산책 같은 바람을 김밥에 담았다. 시인의 ‘김밥’이 우리들 도시락처럼 발랄할 수는 없지만, 무탈하고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해주는 것 같다.
모두가 쉬는 날 떠나는 소풍은 어딜 가나 차가 막히고, 어디에 도착해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행복한 가족들 소리로 가득 찬 공원 잔디밭에 우리 가족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앉아 이내 하늘에 눈을 씻고, 바람같이 크게 웃는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후략)
서정주 시인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의 풍경과 닮은 가족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우리가 깔고 앉은 이곳에 돋아난 모든 풀이, 꽃이, 지나가는 나비가 함께 웃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작은 울타리에 우리 네 식구
함께 밥 먹을 가족이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축복이다. [GettyImage]
저녁 때가 지나 다 늦게 집에 돌아와도 엄마는 여지없이 새 밥을 짓고 된장찌개를 끓여 내셨다. 반찬은 도시락에 들었던 것과 똑같은 것이지만 집에서 먹으면 그 맛이 또 달랐다.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 새 맛이 든 것 같다.
작은 울타리에/ 우리 네 식구/ 하루의 먼지/ 서로 털어주며/ 저녁 식탁에 둘러앉으면/ 일상의 오만가지 티끌들마저/ 꽃이 되고 별이 되지// 삶의 중심점 위에 서서/ 온 마음 모은 작은 손으로/ 저녁상 차리노라면/ 오늘도 쉴 곳 찾아/ 창가에 서성이는/ 어둠 한 줄기마저/ 불러들여 /함께 하고프다
이 시는 최봄샘 시인의 ‘저녁 식탁’이다.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포근함이야말로 짧은 여행이 주는 진짜 기쁨이다. 함께 저녁밥 먹고 밤을 보낼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평범함이, 지금 돌이켜보니 기적 같은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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