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단독] “질 낮은 軍 운동복, 이유 있었다”…보증서 조작 납품

“500만 원 주면 원단 보증서 위조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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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07-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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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질조사 결과 8개사 기준·규격 미달

    • 품질 보증서 위조한 업체도…檢 수사 나서

    • 품질보증서만 보는 규정…보증서 위조 ‘신종 수법’

    • 공인기관 보증서 위조해 입찰…방사청 제도 ‘구멍’

    • 방사청 뒤늦게 기품원과 업체 보증서 동시 발송

    • “원단·완제품 동시 확인해야”…방사청 “여력 없어”

    • ‘비 새는 베레모’ 비난 커지자 국방부 뒷북 대처

    5월 10일 서울역에서 군 장병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왼쪽). 현재 군에서 장병들이 입고 있는 운동복. [뉴스1, SBS뉴스 화면 캡쳐]

    5월 10일 서울역에서 군 장병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왼쪽). 현재 군에서 장병들이 입고 있는 운동복. [뉴스1, SBS뉴스 화면 캡쳐]

    군 장병에게 지급되는 운동복·베레모 등의 피복류를 생산하는 업체가 공인기관의 원단 성적 인증품질보증서(이하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원단으로 피복을 만들어 군에 납품한 사실이 ‘신동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원단의 품질보증서만 확인하고 완제품의 성능은 확인하지 않는 현 군납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것이다.

    ‘신동아’ 취재 결과, 피복류 납품업체 A사는 최초 피복류 원단의 품질보증서와 전혀 다른 원단을 이용해 운동복을 만들어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사청이 지난해 12월 피복류 납품업체를 조사한 결과, A사가 원단의 보증서와 다른 원단을 이용한 것을 확인하고는 1월 19일 해당 업체에 ‘3개월간 입찰 금지’ 조치를 내렸다.

    2월 18일에는 이 사건을 수원지방검찰청에 ‘사문서 위조 및 품질조사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의뢰했고, 현재 수원지검에서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원단 품질보증서만 있으면 무사통과

    이처럼 불량 운동복이 군에 납품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비한 관리 규정’에 있다. 군수품은 원칙상 완제품의 품질보증서를 받지만 군복을 제외한 피복류(운동복·내의·베레모 등)의 경우 업체가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등 공인 검사기관에 검사를 의뢰해 품질보증서를 받은 뒤, 군 당국에 보증서만 제출하면 이후 완성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받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A사는 공인기관이 보내온 보증서를 위조한 뒤 입찰에 참여해 납품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군수품 품질경영 기본규정’(7조)에 따르면, 운동복과 베레모는 ‘대량 자동화 전문 생산품’ 등과 같이 형태가 단순하고 품질이 안정된 품목을 의미하는 ‘단순품질보증형(Ⅰ형)’으로 분류된다. 군납 운동복은 2016년 ‘군수품 품질경영 기본규칙’이 개정되면서 단순품질보증형(Ⅰ형)에 편입됐는데, “사용 용도가 민수품과 유사하고 품질이 안정된 품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군복은 국방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업체만 생산 및 유통할 수 있는데, 안전성과 내구성 등 제품 성능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정부품질보증활동’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그에 반해 운동복은 A사 사례처럼 ‘품질보증서’만 방위사업청에 제출하면 성능 확인 절차가 끝난다. 물론 규정에는 “품질 관련 문제가 발생하거나 품질보증기관에서 위험 식별 및 평가 결과 제품 확인 등이 필요한 경우 정부품질보증활동을 확대해 수행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계약 체결 뒤 업체가 불량제품을 납품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의무 규정이 없다 보니 불량제품을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적 허점이 발생한 것이다.

    ‘원단 인증서 조작’이라는 유혹

    ‘원단 보증서 조작’ 사건 이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방위사업청 홈페이지]

    ‘원단 보증서 조작’ 사건 이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방위사업청 홈페이지]

    사실 지금까지 원단 품질보증서 위조 및 조작은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군이나 공공기관에 단체복을 납품하는 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지난해 9월 과거 함께 일했던 직원 C씨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C씨는 B씨에게 “품질보증서를 위조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500만~600만 원만 지급하면 저가의 원단을 써도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잠시 솔깃했지만 B씨는 ‘원단 보증서 조작’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저가에 질 낮은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납품했다가 오히려 손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 B씨의 설명은 이렇다.

    “군 장병들은 군에서 지급한 옷만 입어야 한다. 옷을 자주 입는 만큼 내구도가 낮은 원단을 쓰면 초기에 파손 가능성이 높다. 군 내부에서 불만이 많아지면 차기 입찰을 고려해 납품한 물품을 전량 교체하기도 한다. 이 경우 납품업체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 물론 A사처럼 이를 생각하지 않은 업체 몇 곳이 이 같은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군수품 조달관리규정 78조에 따르면 “품질보증기관은 필요 시 현장 확인 활동을 나갈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그간 운동복이나 베레모의 제조 과정을 확인하러 나온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사 사건이 발생하자 방사청은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가 사용할 원단을 공인검사기관에 보내면 검사 후 검사기관에서 국방기술품질원과 해당 업체에 품질보증서를 동시에 발송하는 방식으로 품질 인증 절차를 고쳤다. 국방기술품질원은 방사청 등 군에 납품하는 제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기관인데, 공인기관이 검사 직후 방사청에 보증서를 보내는 방식이다 보니 보증서를 위조할 ‘타이밍’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품질보증서 위조 범행이 발본색원된 것도 아니다. 군단이나 사단 등에서는 피복류 입찰을 할 경우 여전히 과거 방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아직 일선 부대는 납품 업체가 품질보증서를 보내주면 부대 담당자가 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예산이나 인력 문제로 시간이 걸릴 거 같다”고 설명했다.

    군납 피복업계 관계자는 “운동복은 군 장병들의 평상복인 만큼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자주 교체해 줘야 한다”며 “따라서 방사청이 직접 확인하는 물량과 달리 일선 부대가 직접 발주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비 새는 베레모’ 비난 커지자 국방부 뒷북 대처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민·관·군이 함께하는 장병 생활여건 개선 전담팀(TF) 출범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민·관·군이 함께하는 장병 생활여건 개선 전담팀(TF) 출범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입찰 단계에서 보증서를 조작하는 것과 달리 일각에서는 ‘원단 바꿔치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체가 공인기관 품질보증 검사를 받을 때는 좋은 원단을 보내 보증을 받은 뒤, 실제 납품할 때는 불량 원단을 사용해 피복을 만드는 일종의 ‘바꿔치기’식 납품 말이다.

    그러나 군납 피복업계 관계자들은 굳이 ‘바꿔치기’라는 번거로운 편법을 이용하기보다는 아예 품질보증서를 위조하는 식의 위법이 더 쉽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통상 군납 피복을 만드는 업체는 원단 품질보증서를 받고 군에 계약을 따낸 뒤에 해당 원단을 구매해 생산을 시작한다. ‘바꿔치기’라는 오해가 생긴 것도 이 같은 업계 관행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바꿔치기’를 감행하는 업체는 드물다. 군과 계약이 성사되면 (품질 검증을 받은) 원단 공급업체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피복 생산업체가) 비용을 아끼려 함부로 품질이 낮고 저렴한 원단으로 대체할 수 없다. 원단 공급업체가 금방 이를 눈치채기 때문이다. 원단 공급업체까지 설득해 공모하지 않는다면 ‘원단 바꿔치기’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이처럼 품질보증기관과 방사청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던 군 피복류 문제는 최근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으로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

    윤주경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방사청은 군에 납품된 피복류 6개 품목·18개 업체를 대상으로 품질 조사에 나섰는데, 이 중 3개 품목 8개 업체 제품이 기준 규격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8개 업체가 지난 5년간 군에 납품한 제품은 봄·가을 운동복 19만5000벌, 여름 운동복 30만8000벌, 베레모 30만6000개 등 총 81만여 벌(개), 182억 원 규모에 달한다. 8개 업체 중 A사는 최근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납품하다가 적발된 업체였다.

    윤 의원의 발표 이후 ‘땀 흡수가 안 되는 운동복’ ‘비가 새는 베레모’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0일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조사본부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피복류 납품업체에 대한 무작위 정기 불시 조사를 강화할 계획이다.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며 뒤늦게 제도개선을 약속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단순품질보증형(Ⅰ형)’ 규정을 악용한 납품을 예방하기 위해 납품된 군수품에 대해 정기적으로나 수시로 무작위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이 검사에서 부정이 적발된 업체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해 불량 납품 업체를 즉각 퇴출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방사청 “원단만 확인하는 체계 바꿀 계획 없어”

    한편 군 피복 납품 관련 업계에서는 “원단의 성능만 검사하는 식이라면 군이 원하는 수준의 활동복을 납품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단의 품질보증을 받았다고 해서 완제품 품질까지 보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류업계 관계자는 “바느질, 염색 등 옷감(원단)을 옷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원단의 내구성이 줄어들고 변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원단을 검사했을 때는 내구성·흡습성 등 성능의 문제가 없더라도 옷으로 만들고 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의류학회 등에서 원단을 옷으로 가공할 때 성능이 감소하는 정도에 관한 연구만 수백 건이 넘을 정도”라며 “방사청이 완제품을 검사할 생각은 안 하고 딴소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사청은 현재까지 완제품을 검사할 계획은 없어 보인다. 방사청 관계자는 ‘신동아’와 전화 통화에서 “(원단의) 품질보증서를 확인하는 지금의 방안을 폐기하지는 않을 계획”이라며 “납품업체에 대한 위험등급을 분류하고 고위험 업체에 대해서는 수시 검사 등 더욱 강화된 품질보증 활동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라 밝혔다.

    사건이 불거지자 군 당국은 군납품 대신 상용품을 사들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은 6월 3일 “양질의 피복류 보급을 위해 계약 및 조달 제도의 근본적 변화를 추진하며 내의, 운동복, 양말, 운동화 등 장병들이 항상 입고 있는 피복류는 MZ 세대 장병들의 요구 수준에 걸맞게 상용품 보급을 적극 확대하는 등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납 피복 업계에서는 “운동복 등 빠르게 해지는 물품은 그만큼 자주 바꿔줘야 해 소량으로 납품할 일이 종종 생긴다”며 “대량생산을 주로 하는 민간 의류업체가 담당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군납비리 #방사청 #국방부 #신동아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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