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문준용 ‘6900만원 지원금’은 공정한 경쟁인가?

[노정태의 뷰파인더㊵] 겸양 없는 대통령 아들과 능력주의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1-06-2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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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당한 태도’가 일으킨 논란

    • 마찰 없는 평면 위 경쟁은 없다

    • ‘모든 것은 내 노력이니 빚진 게 없다’

    • JYP는 왜 아이유를 놓쳤을까

    • ‘소년등과’ 강용석과 ‘9수’ 윤석열

    • 능력주의, 도덕적으로 완전무결?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22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22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 씨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18일, 미디어 아트 작가 문준용 씨의 페이스북에 게시물이 올라왔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에서 제가 6900만원의 지원금에 선정되었다”며 “102건의 신청자 중 저와 비슷한 금액은 15건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전체 선정자는 24명이니 약 4.25대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금을 받게 된 셈이다.

    그가 미술 활동에 대한 지원금을 받아 논란이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문준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이며, 여러 예술 활동 지원금은 대부분 국고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이뤄져있다. 이미 여러 차례 공정성 논란과 특혜 시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문준용은 ‘나는 실력이 있다,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앞서 소개한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입장을 밝혔다. 공정한 논의를 위해 생략하지 않고 문단을 그대로 인용한다.

    “예술기술융합은 제가 오랫동안 일해왔던 분야라, 심혈을 기울여 지원했습니다. 이 사업에 뽑힌 것은 대단한 영예이고 이런 실적으로 제 직업은 실력을 평가 받습니다. 축하 받아야 할 일이고 자랑해도 될 일입니다만, 혹 그렇지 않게 여기실 분이 있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응답해야 할 의견이 있으면 하겠습니다.”



    문준용의 ‘당당한’ 태도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향후 국정감사에서 문준용을 증인으로 소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문준용은 페이스북을 통해 배현진에게 질문을 던졌다. “배현진 의원님이 심사를 한다면 대통령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뽑겠습니까? 실력이 없는데도요? 비정상적으로 높게 채점하면 다른 심사위원들이 알아보지 않을까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리다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22일 공개된 문준용 씨의 작품 ‘Augmented shadow(증강 그림자)’. [뉴스1]

    ‘2020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해 10월 22일 공개된 문준용 씨의 작품 ‘Augmented shadow(증강 그림자)’. [뉴스1]

    이 논란은 능력주의에 대해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자. 첫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 중 많은 부분은 객관식 시험 등을 통해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유형의 것이다. 즉 양적 평가가 아니라 질적 평가가 필요하거나 우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떠올려보자. 탄광촌에서 태어난 빌리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한다. 놀림감이 되면서도 권투 글러브 대신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춘다. 탄광 노동자인 아버지는 탄광 파업에서 이탈해 빌리가 로열 발레단에 오디션 보러 갈 돈을 번다.

    천신만고 끝에 다다른 오디션장이지만 빌리는 너무 긴장했다. 애초에 실력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어색하고 뻣뻣한 몸짓으로 춤을 춘 후 풀 죽은 모습으로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다. 심사위원들의 채점표를 볼 수는 없지만 손동작을 놓고 볼 때 ‘불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많은 부분의 평가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같은 날 동시에 치르는 시험을 통해 평가받는 일은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평가는 양이 아니라 질을 기준으로 하는, 또는 심사위원의 취향과 안목에 따라 점수가 나오는 형태다. 바꿔 말하면 정량(定量)평가가 아닌 정성(定性)평가일 수밖에 없다.

    정성평가는 정량평가에 비해 논란의 여지가 크다. 각 심판이 점수를 매긴 후 그것을 합산하여 결과를 낸다 해도 심판이 ‘왜’ 그 점수를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거나 자의적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발레리노를 운동선수처럼 점프 높이나 달리기 속도 등으로 뽑을 수는 없다. 완전한 공정성을 보장하는 양적 평가만으로 세상이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강용석과 윤석열의 사법시험

    이 대목에서 우리는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보게 된다. 질적 평가로 양적 평가를 뛰어넘는 모든 경우를 부정적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분야와 상황에 따라서는 ‘공정한 기준’을 넘어서 누군가를 뽑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경우가 있다.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가자. 빌리는 오디션을 엉망으로 봤다. 어깨를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던지 심사위원 중 누군가 묻는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 탄광촌 노동자의 아들 빌리는 세련된 말을 할 줄 모른다. ‘잘 모르겠어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요. 모든 걸 잊어버려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 같아요.’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은 이후 빌리가 다시 춤을 추고 심사위원들을 감동시키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빌리는 어눌하지만 진심어린 말투로 자신이 얼마나 춤을 사랑하는지 설명하고, 집에 간다. 그리고 얼마 후 합격 통지서를 받는다. ‘객관적’인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진심 어린 태도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유명한 로열 발레단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이 아니라고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훗날 크게 성공한 사람이 ‘공정한 경쟁’의 관문을 넘지 못해 좌절하고 방황하거나 적어도 단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를 우리는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가수 겸 연기자인 아이유다. 아이유는 대형기획사 JYP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지는 등 약 20여 차례 낙방을 한 경험이 있다.

    이는 결과물에 대한 판단이 수용자의 주관에 의해 좌우되는 문화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가장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는 분야, 가령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아홉 번이나 도전한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반면 현재 유튜버로 활동하는 강용석 전 국회의원은 대학교 4학년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소위 ‘소년등과’를 했는데, 그렇다 해서 강용석이 윤석열보다 유능한 법조인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거나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거나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탁월한 재능을 발견해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아이유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볼 수 있고,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보다 법조인으로서 더 훌륭한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그 속의 공정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은 언제나 필요하고 정당하다. 하지만 세상에 그 어떤 경쟁도 마찰이 없는 평면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물리 법칙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쟁을 개선하고, 경쟁이 필요한 곳에 건전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탈락하고 낙오한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보장하는 것이다. 세상에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은 없다.

    사회에 빚진 게 없다는 생각

    여기서 우리는 능력주의에 대해 알아야 할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능력주의는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그 승자는 자신의 성취를 온전히 자신의 것인 양 으스대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양적 평가를 통해 인정받았건 질적 평가를 통해 인정받았건 특정인의 성취는 재능이나 노력 외에도 운, 주변의 조력, 당대의 여건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이와 같은 엄연한 사실을 도외시하면 능력주의는 곧 타락하고 만다.

    이는 리처드 리브스의 ‘20대 80의 사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등,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 흔한 생각과 달리 미국의 청소년들 역시 살인적인 입시 경쟁을 거친다. 합격증을 받아도 워낙 많은 학비가 든다. 중산층 혹은 그보다 높은 계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매우 유리한 고지에서 출발하게 된다.

    하지만 이념이 되어버린 능력주의는 대학에 들어와 좋은 직장을 차지하는 중산층 자녀들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은 내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므로 나는 사회에 아무런 빚을 진 게 없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품은 이들이 공교육을 망가뜨리고 저소득층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여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 ‘20대 80의 사회’의 원제 ‘Dream Hoarders’가 뜻하는 바와 같이, 밝은 미래를 향한 꿈을 꿀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자신들만 독점해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만들고, 최대한 공정한 게임의 법칙 위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자. 이와 같은 이상적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능력주의를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거나 바람직한 체제처럼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모든 경쟁 구도와 마찬가지로 능력주의 역시 승자와 승자의 자식에게 유리하다. 능력주의 그 자체에 도덕적 당위를 부여하면 세상은 머잖아 유사 신분제 사회로 회귀하고 만다.

    문준용은 본인이 대통령 아들이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을 리 없다고 단정한다. 미디어 아트에 무지한 필자로서는 그의 항변이 옳은지 그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문준용이 실력이 있어서 지원금을 받은 게 사실이라 해도, 지원금을 못 받은 사람들이 실력이 없다고 할 근거 또한 어디에도 없다.

    떨어진 동료 아티스트들

    다 떠나서 정부 산하 기관에서 운영하는 기금에 대통령 아들이 신청서를 넣었고 거액을 받았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그보다 나쁜 여건에서 치열하게 작업 활동을 하던 누군가가 받았다면 그 6900만원은 더욱 요긴하게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아들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서, 문준용은 떨어진 동료 아티스트들을 위해서라도 겸허한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능력주의 체제의 승자들이 먼저 능력주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비판 앞에 열린 모습을 보일 때에만 능력주의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내가 잘나서 얻은 결과물에 네가 무슨 불만이냐’는 유아론적인 태도가 사회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이는 ‘잘난 내 자식이 못난 네 자식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유사 신분제로 향하는 미끄러운 비탈길과도 같다.

    진정한 능력주의 옹호자라면 능력주의의 한계와 맹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마땅하다.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실력을 쌓고 경쟁하되, 자신의 성취가 오직 본인의 능력에 의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허한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되기를 바란다.

    #문준용 #6900만원지원금 #공정한경쟁 #능력주의 #신동아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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