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콩에 자주색 무늬가 얼룩덜룩 있는 호랑이콩. 초여름에 먹으면 맛있다. [GettyImage]
아빠가 거대한 자루를 자전거에 겨우겨우 묶어 싣는 걸 보며 나는 좀 시큰둥했다. 콩 자루가 어찌나 컸는지, 아빠 등을 완전히 가릴 정도였던 게 기억난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초여름 햇살과 더운 바람 덕에 땀범벅이 됐다. 씻고 나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니 아빠가 신문지를 넓게 펼치고, 엄마는 커다란 소쿠리 몇 개를 내려놓았다. 이내 내 앞에 호랑이콩깍지가 수북하게 쌓였다.
아빠가 시키는 대로 꽃이 달린 머리 쪽 말고 꼬리 부분을 살짝 누르니 툭 하고 깍지가 터진다. 깍지를 쪼개듯 벌려 안에 든 콩을 빼낸다. 열심히 콩을 빼내는 사이 부엌에서 밀려오는 구수한 냄새에 코가 벌름거린다. 이내 찐 콩 한 사발이 우리 앞에 놓이고, 그때부터 생콩은 뒷전에 미룬 채 찐 콩 먹기에 바빠졌다.
산뜻하고 생기 넘치는 여름 맛 생콩
으깬 여름 감자와 삶은 완두콩을 섞어 마요네즈로 버무리면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 [GettyImage]
호랑이콩은 생콩 그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고, 백태처럼 삶아 콩국물을 만들어도 좋다. 생콩을 팔팔 끓는 물에 소금과 함께 넣고 푹 끓인다. 콩이 부드럽게 익으면 삶은 물과 함께 믹서에 넣고 곱게 간다. 콩국물 완성이다! 이때 물이 부족해 되직하다 싶으면 생수를 넣어 농도를 맞추면 된다. 호랑이콩은 간장으로 간을 하고, 설탕을 조금만 넣고 조려서 반찬으로 먹어도 맛있다.
요즘은 완두콩도 한창이다. 완두콩은 되도록 깍지에 든 것을 사서 손질해 먹어야 촉촉한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나는 어릴 때 완두콩을 유난히 싫어했다. 입에 넣으면 풀 비린내 같은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여름 생 완두콩은 달고 맛있기만 하다. 깍지째 소금을 흩뿌려서 푹 찌면 ‘단짠’ 감칠맛이 더 도드라진다.
콩알을 발라 잘 데쳐 익혀 놓으면 여기저기 쓸모도 많다. 여름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 넣고 ‘사라다’를 만들 때 넣어도 된다. 데친 완두콩 물기를 빼고 치즈가루와 버무려 오븐에 바삭한 느낌이 나도록 구워내면 짭짤하고 고소한 것이 간식은 물론 안주로도 그만이다.
고소한 콩과 아삭한 채소의 조화
익힌 콩을 아삭한 채소, 숏파스타와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GettyImage]
콩으로는 더운 요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시판용 파스타 소스, 그중에도 미트 소스에 삶은 콩을 넣고 푹 끓인다. 이때 마카로니나 펜네처럼 길이가 짧은 파스타를 삶아 곁들여도 좋다. 소스와 콩, 파스타가 어우러지게 끓인 다음 치즈가루를 듬뿍 얹거나, 향이 좋은 오일을 두르거나, 핫소스를 퐁퐁 뿌려 낸다. 삶은 콩을 되직하게 갈면 부침개가 되고, 생크림과 함께 갈면 수프도 만들 수 있다.
요즘에는 깍지째 먹는 ‘스위트피’도 종종 보인다. 이름 그대로 달고 아삭한, 과일 같은 깍지 콩이다. 익숙한 요리에 여름 풋콩을 더하면 초여름 맛을 한껏 즐길 수 있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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