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 제작사 “심사위원과 선정 업체 감독 막역한 사이”
“심사위원 중 한 명은 같은 협회 소속에 고교·대학 동문”
공모 서류 접수 기간 두 차례 연장…“특정 업체 밀어주기”
재단 측 “예비 심사위원 명단 무작위 5명 뽑아”
한 심사위원 “공모 취지에 맞는 작품 선정했다”
4월 29일 발표된 ‘2021 전통공연 한류콘텐츠 개발 공모 결과’를 두고 불공정한 심사가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GettyImage]
재단은 2007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로 전통예술 활성화 사업을 진행한다. 재단이 사용하는 예산의 대부분은 국가보조금이나 문화예술진흥기금에서 충당한다. 재단은 2월 25일 ‘2021 전통공연 한류콘텐츠 개발 제작사 공모(한류콘텐츠 공모)’를 한 뒤 4월 말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업은 총 사업비 2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로, BTS(방탄소년단) 등 글로벌 아이돌의 인기로 ‘K-컬처’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한국 전통예술에 기반한 새로운 공연 상품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다. 선정된 제작사는 재단으로부터 보조금 16억 원을 지원받고 4억 원 이상을 자부담해 12월까지 공연 두 편을 제작해야 한다. 공모에는 모두 13개 팀이 참가했고 총 5개 업체가 1차 서류심사를 통과했다. 2차 면접심사 결과, A감독이 연출할 작품을 가지고 온 제작사가 선정됐다.
그러나 이번 사업 모집에 참여한 제작사 일부는 선정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번 한류콘텐츠 공모 면접 심사위원은 5명인데, 이 중 심사위원 B씨와 C씨가 당선작을 연출할 A감독과 절친한 사이”라는 것. 또한 “특정 업체를 밀어주고자 재단 측이 서류 접수를 두 차례 미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에 소문난 막역한 사이”
A감독과 한류콘텐츠 공모 심사위원인 B씨와 C씨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분야에서 함께 일했다. 넌버벌 퍼포먼스는 비(非)언어극으로,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로 구성된 공연 장르를 말한다.심사위원 B씨는 A감독과 고교 동문으로, 국내 유명 넌버벌 퍼포먼스 제작사 대표이사를 지냈다. A감독은 1999~2001년 해당 제작사에서 작품을 연출했다.
심사위원 C씨와 A감독도 인연이 있다. 2013년 11월 넌버벌 퍼포먼스 제작사 7곳이 참여한 관련 협회가 발족했는데, 초대 회장이 C씨다. 한류콘텐츠 공모 선정 업체와 국내 유명 넌버벌 퍼포먼스 제작사도 협회에 참여했고, A감독과 C씨는 고교·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한류콘텐츠 공모에 참여한 일부 제작사들은 이런 이유를 들어 심사위원 구성이 ‘편향적’이라고 지적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 D씨는 “심사위원 B씨와 A감독이 막역한 사이라는 것은 공연계 관계자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라며 “재단에서 진행한 다른 공모에서는 전통 공연에 조예가 깊고 참가 업체와 관련이 없는 심사위원을 구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류콘텐츠 공모 사업은 ‘아리랑 등 전통문화 확산’ 일환으로 추진됐는데, 이번 공모를 제외하고 2020년부터 현재까지 해당 분야 공연 사업 공모전은 모두 3건 있었다. 그동안 이들 공모전 면접 심사위원은 5명 모두 전통예술 관련 전공자거나 업계 종사자다. 그런데 이번 심사에는 전통예술 전공자는 2명이었다. 이번 공모 심사지표 네 항목 중 두 항목이 ‘전통예술에 대한 이해도 및 활용도·전통예술의 우수성 반영 여부’였지만 이를 평가할 전문가는 부족했던 셈이다.
두 차례 연기된 접수 기간…“참여 독려하고자”
‘아리랑 등 전통문화 확산’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진행하는 주요 사업 중 하나다. 그 일환으로 2월 25일부터 ‘2021 전통공연 한류콘텐츠 개발 공모’가 진행됐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홈페이지 캡처]
선정 결과에 대해서도 공모에 참여한 E감독은 “최종 선정된 두 작품은 이미 A감독이 과거에 각각 공연을 준비했거나 공연을 한 작품이어서 최근 트렌드에 맞는 한류 콘텐츠로 해석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류콘텐츠 공모에 참여한 제작사들은 심사위원 구성과 진행뿐 아니라 사업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공모 기간이 두 차례 연장됐기 때문이다. 재단 홈페이지에는 2월 25일 한류콘텐츠 공모 게시글이 처음 올라왔는데, 당시 서류 접수 마감일은 3월 19일이었다. 하지만 이후 3월 26일로 한 차례 서류 접수 기간이 연기됐고, 다시 4월 2일로 재연기됐다.
이에 D씨는 “지금까지 지원한 사업에서 공모 기간이 연장되는 경우는 없었다”며 “내용에 문제가 있다면 공모 자체를 취소하고 다시 공모를 진행해야한다”고 말했다. E감독은 “서류 접수가 두 차례 연장되는 일은 보지 못했다”며 “재단 측이 특정 업체의 상황을 배려해 준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특정 업체의 사업계획서 서류 준비 기간에 맞춰 접수 기간을 늘렸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연말까지 공연 두 편을 제작해야 하는 기획인데 공모 기간을 늘려 더 많은 제작사의 참여를 독려하려고 했다”며 “재연장은 공고문에서 해석상 이견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해당 부분을 수정하고 이에 따라 접수 마감을 미룬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사위원 선정에 대해서는 “연출 경험이 있는 감독·전통 예술 전문가·평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된 25명의 예비 심사위원 명단에서 무작위로 순위를 정한 뒤 일정이 맞는 심사위원을 위촉했다”며 “A감독과 심사위원 B씨가 같은 제작사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그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짧다”고 해명했다. 그는 “지원자와 같은 고등학교·대학교를 나왔다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심사위원에서 배제하긴 어렵다”고 부연했다.
심사위원 C씨는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류콘텐츠 공모 취지에 대한 이해도와 사업 수행 능력 등을 다각도로 보고 평가해 선정했다”고 말했다. 선정 업체 측에 관련 의혹을 문의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 제작자는 “심사위원과 지원자의 친소 관계에 따라 심사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업계 내부에서 계속 제기돼 온 문제”라며 “요즘은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나오면서 심사 과정을 공개하고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현장에서 함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공연계의 특성상 모든 지원자가 전혀 모르는 심사위원을 영입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김종헌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업계 전문가가 한정돼 있는 만큼 평소 친분이나 학연 같은 두루뭉술한 이유로 심사위원에서 배제하면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가 심사위원을 맡게 될 수도 있다”며 “그렇더라도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는 주최측에서 면밀하게 따져서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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