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은 사회적 약자… 국가가 희생 강요하면 안 돼”
국민의힘 ‘이준석 돌풍’의 숨은 조력자
‘새로운 보수’ 기치로 2030 지지 확보
친북에서 반북, 기성정치에서 청년정치로 두 차례 전향
의무 복무는 큰 희생, 합당한 보상책 마련해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당대표 선거에서 나타난 ‘이준석 현상’에 대해 “청년들이 보수 정치에 힘을 실어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조영철 기자]
“이준석 돌풍, 절반은 알았고 절반은 몰랐다”
- 절반은 알고 절반은 몰랐다는 게 무슨 뜻인가.“알았던 절반은 ‘세대 확장의 힘’이다. 우리 당은 오랫동안 6070 중심 정당이었다. 나와 ‘이준석’은 이 흐름을 바꾸려고 여러 해 동안 같이 노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총선에서 둘 다 2030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준석이 낙선하기는 했지만 서울에 출마한 다른 보수 후보에 비하면 선전했다. 나는 부산 전체 국회의원 18명 가운데 득표율 1등으로 당선했다.”
- 그 배경에 2030의 지지가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2016년 총선 때는 내 득표율이 부산 내 9등이었다. 같은 지역구에서 선거를 치렀는데 4년 만에 순위가 크게 올랐다. 이유를 분석해 보니 젊은 층 지지 덕분이었다. 이런 경향이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나타났다. 2030 유권자가 더불어민주당보다 국민의힘에 더 많은 표를 줬다. 이 선거에서 자기들 힘을 확인한 2030은 정치에 점점 더 많이 참여하는 추세다. 이번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그런 흐름이 뚜렷이 보였다. 그들의 지지가 이준석한테 쏠릴 테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 ‘이준석 현상’을 낳은 또 한 가지 원인은 뭔가.
“기존 보수 지지층의 ‘올드보수 불신’이다. 원래 우리 당을 지지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요즘 ‘판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그분들이 당대표 선거 과정에서 이준석을 대안으로 여기면서, 그쪽으로 더욱 힘이 모이게 됐다고 본다.”
- 기존 보수 지지층이 왜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고 생각하나.
“우리 당이 선거에서 번번이 졌기 때문이다(현 여권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보수층은 ‘기존 사람들로는 내년 대선에서도 이기기 어려울 텐데’ 하며 불안을 느끼던 참이다. 그분들 앞에 2030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 거다. ‘새로운 사람을 밀어주면 이길 수 있겠다’ 생각하니 어르신들 또한 이쪽에 힘을 모아줬다. 2030세대 확장 효과에 올드보수 불신 효과가 더해져 ‘이준석 현상’이 나타났다고 본다.”
정치에서 소외됐던 청년들, 보수의 새로운 지지층으로 부상
4월 18일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올라온 군부대 부실 급식 고발 사진. [인터넷 캡처]
“선입견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과거 이른바 ‘태극기 보수’를 많이 비난했다. 그분들이 뻣뻣하기만 한 줄 알았다. 이번 당대표 선거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당 지지자들은 유연하고 총명하다. 그동안 오해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 의원은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새누리당을 탈당해 ‘개혁보수신당’ 건립에 앞장섰다. 이후 2020년 범보수권이 ‘미래통합당’ 깃발 아래 다시 모일 때까지 바른정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 등을 거치며 보수의 활로를 모색했다. 내내 이준석 대표와 함께였다. 이 시기를 지내며 두 사람이 공유한 어젠다가 ‘청년 정치’다. 하 의원은 “당시 2030을 보수 쪽으로 끌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메가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 결실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 2030세대가 보수당을 지지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유가 있나.
“당시 내가 몸담은 정당 지지율이 도무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개혁보수’ 노선을 제창했을 때 염두에 둔 건 기존 보수 지지층이었다. 우리가 ‘깨끗한 보수, 따뜻한 보수’를 선언하면 그분들이 눈길을 줄 줄 알았다. 그런데 효과가 전혀 없었다. 보수를 혁신하려면 새로운 지지자를 찾아야 했다.”
- 그게 2030세대였나.
“그렇다. 이런 생각을 본격적으로 한 게 2018년 무렵부터다. 당시만 해도 청년세대에게 ‘자유한국당’은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젊은이에게 ‘너 자유한국당 지지하냐’라고 묻는 건 조롱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진보 성향 정당이 청년층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지 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정치권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청년들은 갖은 억압을 감내하며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약자다. 그들 목소리를 들어보자. 그곳에서 보수의 새로운 길을 찾자’고 결심했다.”
하 의원은 이후 젊은 층이 관심을 기울일 만한 이슈를 집중적으로 찾아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인기 게이머가 소속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고발한 것이 한 사례다. 하 의원이 2019년 입수해 공개한 프로게이머 서진혁 씨(닉네임 카나비) 고용계약서에는 “소속팀과 연락이 두절되면 팀은 즉시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등 불공정한 조항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하 의원은 이것을 “사실상의 노예계약”이라고 비판하며 게임업계 혁신에 앞장섰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다시피 해온 문제에 그가 관심을 기울이자 청년들은 뜨겁게 화답했다. 하 의원은 “관련 기사 아래 달리는 댓글, 커뮤니티 게시글 등을 통해 청년들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무렵부터 몇천 원, 몇만 원 단위 소액 후원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내 안의 꼰대의식 통렬하게 반성하고 거듭났다”
그가 매번 젊은 층의 칭찬만 받은 건 아니다. 2019년 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병사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가 비난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당시 하 의원이 올린 글의 골자는 이랬다.“4월부터 병사들이 일과 후에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면 대한민국 군대는 당나라 군대가 된다.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 어느 정도 금욕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생활해야 인내심이 길러지고 위아래 챙기는 법도 배운다. 국방위원으로서 (병사 휴대전화 허용을) 결사반대한다.”
하 의원에게 “청년 편에 서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글을 썼느냐”고 묻자 그는 너털웃음부터 지었다. “머리로는 청년을 위해야지 생각했지만 실상은 ‘꼰대’였던 거 아니겠나”라며 “그 일을 계기로 내 한계를 알았다. 철저히 반성하고, 좀 더 겸허하게 청년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됐다”고 했다.
- 얼마 뒤 SNS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더라.
“청년들 항의를 받으며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을 알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이다. 정치 시작하며 젊은 시절 친북(親北)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공개적으로 ‘전향했다’고 밝히지 않았나. 이번에도 똑같이 한 거다. 그때 페이스북에 ‘내가 꼰대였다는 걸 인정합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꼰대가 되겠습니다’라고 썼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두 번째 전향’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 의원이 웃음기 가신 얼굴로 한 얘기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이다. 이른바 ‘386운동권’ 출신으로, 졸업 후 고 문익환 목사가 이끄는 ‘통일맞이’ 등 재야단체에서 활동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일도 있다. 이후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하 의원은 자신의 삶에 대해 “대학생 시절엔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억눌린 계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북한 정권이 행하는 인권탄압을 알게 됐고, 북한 주민을 위해 싸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정치권에 들어와 청년이라는 새로운 약자를 보면서 삶의 방향을 또 한 번 바꿨다. 하 의원은 “‘친북’하다 ‘반북’으로 돌아선 게 내 첫 번째 전향이라면, 기성세대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다 2030 쪽을 향하게 된 게 두 번째 전향”이라고 말했다.
하 의원이 청년 가운데서도 특히 군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같은 맥락에서라고 한다. 의무복무하는 사병이야말로 온갖 억압과 부조리를 겪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최약자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군 부실 급식 문제로 들끓었다. 하 의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군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자기 삶을 희생해 가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병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복무하는 청년 희생 존중해야 젠더갈등 완화된다”
[조영철 기자]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안타깝다. 군 급식을 개선하려면 예산이 필요한 건 맞다. 하지만 급식비를 올린다고 바로 식사 질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좀 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급식 예산을 올리자’는 얘기만 하는 건 전형적인 ‘꼰대 짓’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나를 비롯한 기성세대는 넉넉지 않은 시대를 살았다. 먹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요즘 청년들은 우리와 DNA부터 다르다. 그들은 얼마나 먹는지보다 무엇을 먹는지를 더 중시한다. 지금 군에 필요한 건 급식 증량이 아니라 메뉴 다양화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군대 식당이라고 모든 사병이 다 똑같은 음식만 먹어야 할 이유가 있나. 푸드 코트처럼 여러 메뉴를 제공하고, 사병이 입맛에 맞는 걸 골라 먹을 수 있게 해주면 급식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물론이다. 부대 식당 운영을 민간에 맡기면 된다. 군인은 국방에 전념하게 하고, 조리와 식당 관리 등은 민간인이 하도록 하자는 게 내 의견이다. 이렇게 하면 규모가 큰 부대는 정말 푸드 코트처럼 메뉴를 다양화할 수 있다. 작은 부대도 가능한 선에서 장병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예산은 이런 데 써야 한다.”
하 의원은 “이 문제는 ‘차차 바꿔가자’는 식으로 미뤄둘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병 복지를 개선하는 것이 현재 사회문제로 부상한 젠더갈등을 완화하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성세대는 군복무를 남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겼다. 그때는 군대에 다녀온다고 취업 등 사회 활동에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사병으로 입대하는 청년들이 우리 사회를 위해 큰 희생을 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합당한 보상도 제공해야 한다. 이런 논의 없이 의무만 강요하는 건 불공정하다. 그러니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하 의원은 병역의무를 마친 청년에게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20대 국회 시절 ‘새로운보수당’ 1호 법안으로 ‘청년병사보상3법’을 발의한 바 있다. 현재 국방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그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기존 법안을 수정 보완해 청년을 위한 합리적인 보상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 현재 여성은 사병으로 입대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머잖아 우리나라 군 관련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거라고 본다. 출산율 저하 속도가 매우 빠르다. 병력 자원이 크게 줄었다. 이 상황에서 국방력을 유지하려면 군인 복무기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 모병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하 의원은 “모병제가 시행되면 사병에 대한 대우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군인이 정당한 임금을 받으며 직업인으로서 생활하게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 시대에 남성만 군 입대를 허용할 수 있겠나. 여성도 사병이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게 분명하다.”
하 의원은 이 대목에서 “최근 군의 자동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면서 “체력이 군복무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런 전망 하에 그는 여성도 희망할 경우 사병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여성희망복무제’ 관련 법안 또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조만간 성별에 관계없이 군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만 입대해 직업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라를 지키느라 희생한 장병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군 문제를 둘러싸고 청년세대 내에서 젠더갈등이 심화하는 것으로 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청년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 문제는 ‘586의 기회 독점’이다. 586이 질 좋은 일자리를 독차지하고 정년까지 연장해 가며 모든 것을 누리는 사이, 청년들은 얼마 안 되는 파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86 철밥통을 깨고 공정을 회복하려면 2030이 연대해 세대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 싸움에서 청년을 돕는 게 정치인으로서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하 의원의 얘기다. 그는 “청년의 미래가 곧 국가의 미래”라며 “청년 문제는 내가 정치하는 동안 끝까지 가져갈 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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