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정치적 중립’에 포박된 국가정보원[백승주 칼럼]

대한민국 ‘제1 안보 방어선’ 역할하고 있나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1-06-30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北 장거리 미사일, 美 뉴욕·워싱턴 타격권

    • 쿼드(QUAD) vs 중·러 군사협력…격동의 한반도

    • 지도자 의지가 승패 결정하는 ‘4세대 전쟁’ 시대

    • 文 대통령 새 원훈석 제막…한가해 보이는 국정원

    • CIA “우리는 국가의 첫 번째 방어선”…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6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국정원법이 새겨진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6월 4일 국가정보원에서 원훈석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국정원법이 새겨진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6·25전쟁 71주년을 앞둔 6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새 원훈석 제막식을 하고는 ‘이름 없는 별을 추모하는 공간’에 묵념했다. ‘이름 없는 별’은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이름을 알릴 수 없는 국정원 요원을 말한다. 그리고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당부했다. 대통령의 국정원 방문 행사를 보면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6·25전쟁 발발 직전에 작성한 비밀 보고서가 생각났다. 지금은 비밀 해제된 문서다.

    미 CIA는 1950년 6월 19일 ‘북한 체제의 현재 능력(Current Capabilities of The Northern Korean Regime)’이라는 제목의 비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북한이 군사적으로 기습해 서울을 함락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중국과 소련의 상호 영향력 견제 때문에 중공군 또는 소련군이 직접 참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 국무부 연구 및 정보 별 보좌관, 육·해·공군 정보국장에게 보고되면서 한국전 대응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따지고 보면 보고서 내용 중 일부는 적중했고, 일부는 틀렸다. 6월 25일 북한이 기습 남침해 불과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됐지만, 중·소 갈등 때문에 중국과 소련이 직접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중국군 참전으로 틀렸다.

    그렇다면 71년이 지난 오늘날 CIA가 북한 핵능력과 한반도 군사 정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정치 의지 등을 통해 같은 주제의 비밀 보고서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

    CIA의 북핵 능력 평가

    CIA는 북한이 이미 핵탄두와 다양한 투발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말기인 2020년 11월 ‘2021년 미국 국방력 지수’ 보고서에서 “CIA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정상 궤도로 비행한다고 가정할 때, 대기권 재진입 핵탄두가 충분히 정상 작동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클링너가 공개한 CIA의 북핵능력 평가 자료에 따르면, 이미 북한이 개발한 장거리 미사일은 사거리가 1만3000km로 추정돼 뉴욕과 워싱턴을 비롯해 미 본토 대부분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국장과 CIA 국장을 지낸 마이클 헤이든은 2016년 9월 “5차 핵실험을 자행한 북한이 앞으로 3~5년이면 미 서부 시애틀을 공격할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헤이든 전 국장은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핵탄두(device) 개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울러 헤이든 국장은 “북한 핵무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을 겨냥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전술적 사용 범위까지 공개 언급했다.



    미국 CIA는 클린턴 행정부 이후 미국 역대 대통령이 다양한 방법으로 추진해 온 북한 비핵화 정책이 현 단계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교 업적으로 내세운 북한의 ICBM 개발 중단도 이미 군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근거로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인도, 파키스탄 등과 함께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고 평가하고 있다.

    북한 스스로도 지난 1월 노동당 8차 전당대회를 통해 신형 핵미사일을 탑재한 원자력 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정찰위성, 무인공격기(UCAV) 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임을 선언했다.

    동북아 군사 정세: QUAD vs 중·러 군사협력

    지난해 12월 23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 중국군 훙(H)-6K 폭격기가 서태평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뉴시스, AP=뉴시스]

    지난해 12월 23일 러시아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 중국군 훙(H)-6K 폭격기가 서태평양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뉴시스, AP=뉴시스]

    지난해 8월 31일 미국은 일본·호주·인도와 함께 ‘쿼드(QUAD)’를 출범시켰다. 쿼드는 대(對)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기 위한 아시아 태평양 주요국의 반(反)중국 안보협력체로 발전하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 3월 쿼드 4개국 화상 정상회의를 하고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한 공동 비전에 단합해 있다”며 “자유, 개방, 포용과 민주적 가치에 닻을 내리고 억압으로부터 제한을 받지 않는 지역을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공동성명에서 외교적 표현으로 사용한 ‘억압’의 주체는 중국을 뜻한다. 정상회담 직후 4개국은 프랑스까지 참가한 가운데 벵골만에서 해상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주도의 동북아 질서에 대해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협력 강화, 북한과의 동맹 강화 확인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은 2019~2020년 연속으로 동해에서 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2019년 7월 23일 1차 훈련에서는 중국 폭격기 2대와 러시아 폭격기 2대, 정찰기 1대 등 5대가 동해상을 연합 비행하며 수차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찰기 1대는 독도 인근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해 군이 F-15K 전투기를 출격시켜 360여 발의 경고사격을 가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2차 중·러 연합훈련에서는 러시아 전투기 15기, 중국 전투기 4기 등 총 19기의 전투기가 참가했다. 주목할 점은 양국이 똑같은 항로로 훈련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3시 20분 15대의 러시아 공군 Tu-95MS 전략폭격기, 베리에브 A-50 공중조기경보기(AEW&C), 그리고 Su-35 전투기가 울릉도와 독도 상공 KADIZ를 진입한 이후 남해 이어도 근처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앞서 이날 오전 8시에는 4대의 중국 H-6K 전략폭격기가 서해 KADIZ에 진입해 이어도 공중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를 지나 KADIZ를 벗어난 이후 KADIZ에 재진입해 똑같은 항로로 남하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군사훈련은 동북아 지역에서 진영 간 군사 분쟁이 발발할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합동으로 주일미군, 주한미군 전력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운용을 제한하고 차단하는 목적의 훈련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두 차례 훈련을 통해 동해 중심에서 A-50 정찰기를 운용해 미군과 한일 양국의 전력 배치 현황을 밀착 부석해 기존 정보를 확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 양국은 연합군사훈련을 하면서 북한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 2019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완화를 위한 공동계획을 제안하는 등 북한 입장 지지를 강화하면서 북·중·러 군사협력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쿼드와 중·러 군사협력으로 동북아에서 새로운 냉전 질서가 형성되는 가운데 대만해협 안전 문제도 양 진영의 갈등을 부추긴다.

    ‘4세대 전쟁’ 김정은의 의지

    북한이 제8차 노동당대회를 기념하는 군 열병식을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김정은 당 총비서가 참석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제8차 노동당대회를 기념하는 군 열병식을 1월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열병식에는 김정은 당 총비서가 참석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미국은 1981년 발효된 ‘대만관계법’(중국과 수교로 단교한 대만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법안)는 이 법안이 규정하는 ‘서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대만의 안전으로 해석한다. 반면 중국은 대만과 대만해협 안전문제를 중국 내정(內政), 즉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 출범이후 미·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의 안전과 평화를 적시하자 중국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긴장과 대결로 흐르는 동북아 군사정세를 잘 말해준다.

    1991년 걸프전을 치르며 미국 전략가들은 ‘4세대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현대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4세대 전쟁을 연구한 저명한 미 해군 전략가 하메스는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요소를 중심으로 근·현대 전쟁의 세대를 분류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1세대는 상비군의 숫자가, 2세대는 대포의 위력이, 3세대는 기동력의 수준이 전쟁 승패를 결정한다. 4세대에서는 정치가의 정치적 의지가 승패를 결정하는데, 국민당에 승리한 중국공산당이 4세대 전쟁 승리의 전형으로 꼽는다.

    김정은 총비서의 최고 비대칭 무기는 하메스가 제시한 정치적 의지다. 경제적으로는 한참 열세이지만 정치적 의지로 한반도 전체를 북조선식 정치 질서로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핵무기를 가진 이상 북한은 외침에 의해 체제가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미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핵무기를 매개로 ‘거래’까지 해본 경험도 있다. 따라서 그의 머릿속에는 4세대 전쟁에서 승리한 중국과 베트남 정치 모델이 들어있을 것이다.

    북한 체제의 최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 서문에는 “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이란 내용이 실려 있다. 전국적 범위는 한반도 전체를 말한다. 북한 체제는 한반도 공산화를 당 존재 이유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체제의 대한민국 북한화라는 대남 의지는 분명하다. 그 수단은 4세대 전쟁일 것이다.

    2021 CIA 비밀보고서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회동 직후 ‘자유의 집’에서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동아DB]

    2019년 6월 30일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회동 직후 ‘자유의 집’에서 함께 걸어 나오고 있다. [동아DB]

    이처럼 북핵 평가 내용, 동북아 군사 형세, 김정은 총비서의 의지를 고려하면 2021년 현재 ‘북한의 군사능력과 전략정세’는 다음과 같다.

    “북한이 기습 남침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핵무기와 다양한 투발 수단을 보유한 북한은 언제든지 대한민국 정부를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자신감에 차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방패로 정치군사적으로 필요할 때 대한민국에 피해를 강요하는 군사도발을 할 것이다. 도발하고, 유리하게 협상하는 반복적 대남전술을 구사할 것이다. 북한은 경제력 열세로 인해 장기적 전쟁 수행 능력이 부족하다. 따라서 전면적 도발을 할 경우 핵무기의 전술적 사용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 대한민국의 반격을 현 군사경계선에서 억제할 것이다. 북한의 핵보복 능력으로 미국을 제외한 주변국들은 군사적으로 한국을 직접 지원하는 데 신중할 것이다. 미국 역시 자동 개입이 아닌 국내법적 절차에 따라 군사적 지원에 신중히 할 것이고, 외교적 해결을 선행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침략전쟁을 규탄하겠지만, 군사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미국 주도의 전쟁 종결에 대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에서 북한에 불리한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가 전쟁 양상과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 위정자들은 ‘정치적 의지가 군사 대결에서 종국적 승리를 이끈다’는 중국공산당, 베트남공산당이 만든 4세대 전쟁의 신화를 다시 쓰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안보 1차 방어선’ 국정원

    6월 4일 문 대통령이 국정원을 방문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불행한 헌정사 속에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정보기관을 격려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핵 문제, 김정은 체제의 내구력 문제, 동북아 정세 문제에 대해 보고하고, 최고 전략가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다는 뉴스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고, 새로운 원훈석 제막식을 열고는 새 원훈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을 공개했다. 원훈석의 글씨체는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어깨동무체’를 썼다는 노이즈성 설명이 따라다닌다. 돌에 글을 새기는 것은 반영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1961년에 창설된 정보기관의 원훈석이 정권교체 주기에 4번째 바뀌었다. 방문 이후 나온 뉴스는 한마디로 씁쓸하다. 국정원이 한가하게 보인다. CIA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CIA는 국가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하고 다른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 CIA에서의 경력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다. 우리는 국가의 일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배경과 삶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찾고 있다.”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앞두고 국정원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북핵 문제, 전략 정세 평가, 북한 위정자의 정치적 의지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정원이 대한민국 방어의 최전선이라는 명예를 회복해야 국가가 정상화된다. 이제라도 국정원이 ‘밥값 한다’는 평가를 받기를 바란다.

    #국정원 #문재인대통령 #CIA #신동아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