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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전문가 옥동석의 ‘이재명식’ 국가부채론 비판

재정지출 늘린 文, 더 늘리자는 李 “여당 채무 증가론은 기회주의… 결국 재정파탄”

  • 옥동석 전 조세재정연구원장 dsoak@naver.com

조세전문가 옥동석의 ‘이재명식’ 국가부채론 비판

  • ● 국가재정 공유화로 정치세력 오남용 시작
    ● 文 정부, 국가채무 늘리는 일에 적극적
    ● 젊은 복지국가 한국, 국가채무 수치는 고혈압
    ● 고령층인 OECD보다 수치 낮다고 안심해선 안 돼
    ● 기재부 재정준칙은 미래세대에 부담 미루는 기회주의
    ● 뒤늦게 재정준칙 내놨지만 채무 줄일 수 없어
    ● 적자 막아 채무 줄이는 독일식 재정준칙 필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10월 6일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단상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에서 10월 6일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단상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뉴스1]

지금 대한민국 국가재정의 실태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촌철살인의 은유는 ‘재정 공유지의 비극’이다. 공유지에서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그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떠넘길 수 있다. 드넓은 초원에서 가축을 더 많이 방목할수록 나의 혜택은 커지지만 초원이 말라가는 부담은 추후에 이 초원에 가축을 방목할 사람들이 더 많이 지게 된다. 국가재정의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재정지출의 혜택을 누리는 일과 그 재원을 조성하는 일 사이에는 아무런 연계가 없기에, 공유지의 초원이 결국 황폐화되는 비극은 국가재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

공유지에 대한 이러한 예측과 달리 ‘재정 공유지의 비극’이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고대국가라도 국가재정을 함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기 떄문이다. 과거 국가들은 재정을 가계의 살림살이와 비슷하다고 인식했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예산의 제약 내에서 최선의 이익을 선택해야 한다. 국가재정에서도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에서 “모든 가정생활에서 지혜로운 것은 위대한 왕국에서도 결코 어리석은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국가 예산을 사용할 때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골라내야 한다는 의미다.

고전경제학의 대표적 이론가 애덤 스미스도 저서 ‘국부론’에서 “국가재정 운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아DB]

고전경제학의 대표적 이론가 애덤 스미스도 저서 ‘국부론’에서 “국가재정 운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동아DB]

대의민주주의는 국왕 재정을 의회 재정으로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국가재정 수지 균형의 준칙은 현대 정치체계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절대왕정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에는 국왕의 재정이 곧 국가재정이었으며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곧 그 왕조의 운명을 좌우했다. 국왕의 재정은 국왕이 소유하는 재산으로부터 상당 부분 조성될 수 있었기에 조세 부과와 국가채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재정 운영의 기본 원칙이 될 수 있었다. 세금을 줄여야 국민의 삶이 나아지니 쉽게 씀씀이를 늘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1830년대 영국에서 국왕의 재정이 국가재정과 분리됐다. 당초 영국 왕실은 국가재정을 사용했지만 국가재정과 왕가의 재정이 경비와 분리되면서 의회는 출연금의 형태로 국왕의 경비를 재정에서 일부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가재정이 국왕의 개인 금고에서 의회가 운영하는 공금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변모한 것이다.

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절대왕정과 달리 국가재정을 운용하는 의사결정자 어느 누구도(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 자신의 재산과 소득을 국가재정에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도 세금을 내겠지만 과거 왕정시대의 왕과 비교하면 재정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 사실상 재정운용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그 결정의 부담과 비용을 전혀 책임지지 않는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결국 사유재산이던 국가재정이 공유재산으로 변모하며 ‘재정 공유지의 비극’은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고 말았다.



점점 심각해지는 재정운용의 정치화

우리나라에서도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발전하며 재정의 정치적 오남용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와 경기대응과 복지지출이 강조되면서 세입 내 세출, 또는 수지 균형의 재정준칙이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은 여당의 정치인들은 경기부양과 복지지출만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됐다. 재정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더라도 이를 다시 채우는 책임은 현 정권보다는 차기 혹은 먼 미래 정권이 져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이 마냥 재정을 쓰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이전만 해도 정치인들은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면서도 국가재정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노력도 병행했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이명박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및 공기업 부채 감축 등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국가재정의 미래에 대해 책임 있는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런데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집권층 내에서 국가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 비율 40%의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며 국가채무 증가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심지어 일부 여당 정치인은 가계와 정부의 살림살이는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화폐를 찍어서라도 국가채무를 더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권 여당이 선출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역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비정상적으로 낮다며 선진국 수준으로 국가채무를 빠르게 증가시킬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11월 7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비율은 매우 높고, 국가채무 비율은 전 세계에서도 가장 낮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국가의 가계 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재정적자를 제한하는 재정준칙 시급하다

점차 국가재정의 건전성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인들의 발호가 더 심해지고 있다. 국가기관인 국회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가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의 사이렌을 계속 울리고 있는데도 정치인들은 여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선진국들에 비해 국가채무 수준이 낮지만 20~30년 뒤에는 150%대를 넘어 일본처럼 급등한다는 전망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복지국가 측면에서 이제 겨우 청년기에 접어든 우리나라를 중장년층 선진국들과 비교하며 국가채무가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하는 것은, 중장년층의 고혈압과 달리 청년의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가재정이라는 공유지가 정치적 이익에 오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최종 방어선은 재정 총량을 정권별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이다. IMF는 전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채택한다고 조사한 바 있는데, 수치스럽게도 한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는 2020년 10월 보도자료에서 “전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고, 선진국 중 한국, 터키만 재정준칙 도입 경험이 없다”며 “재정총량의 실효적 관리에 애로”가 있다고 실토했다. 여기서 기획재정부는 재정준칙으로서 ‘(국가채무비율/60%)×(통합재정수지비율/△3%) ≤ 1.0’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준칙은 다음 정부와 미래세대에 지출 조정의 부담을 전가하고, 현재 정부의 재정적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산식의 의미는 국가채무 비율이 60%에 미달하는 현재에는 재정적자를 3% 이상 허용하고,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초과하는 미래에는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채무의 증가 속도는 줄일 수 있어도 채무 자체를 줄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국가채무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미래세대에 지출감축의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기회주의적 준칙에 불과하다.

정권 바뀌어도 준칙 흔들리지 않아야

이러한 편법을 벗어나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재정준칙의 모범은 헌법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규정한 독일이다. 독일은 2009년에 재정건전성 훼손을 우려해 수지 균형의 재정준칙을 헌법에 규정했다. 다만 재량적인 투자지출을 위해 GDP 0.35%의 재정적자를 허용했고, 또 경기 대응을 위해 GDP 0.35%의 재정적자를 추가로 허용했다.

이 두 가지 허용을 초과하는 재정적자의 누적이 GDP 1%를 초과하면 GDP 0.35%를 반드시 변제해야 하고, 코로나19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의회가 그 예외를 의결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의 정치인들은 이러한 준칙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재정 공유지를 대대손손 지켜나갈 것을 맹약했던 것이다.

정권의 이해와 무관하게 재정준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통상적인 의결 요건보다 더 엄격한 요건이 요구된다. 당장의 헌법 개정 없이 우리가 재정준칙을 엄격하게 의결하는 방법으로 국회법을 이용할 수 있다. 국회법에서는 여야의 쟁점 법안에 대해 과반수보다 더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의 동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의 도입과 그 불가피한 예외에 대한 판단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동의와 같은 강화된 의결 요건을 확립함으로써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이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0월 26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10월 26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정치인 재정 약탈 유혹 벗어나기 힘들어

우리가 소중하게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대의민주주의의 장래는 ‘재정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거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좌우되는 정치인들에게 공유지 약탈의 유혹을 벗어나도록 우리가 도덕적으로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 재정 총량과 재정적자의 한도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재정 운용에 대한 백지수표를 정치인들에게 위임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정치 이익을 위한 재정 운용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기에 재정 공유지의 문제를 어떻게 관리할지가 우리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신동아 #재정준칙 #기본소득 #복지정책 #국민연금



신동아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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