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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日에는 보복 못 해… 韓도 ‘기술 선도국’ 돼야

미·중 전략경쟁 시대, 한국의 선택은?

  •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

中, 日에는 보복 못 해… 韓도 ‘기술 선도국’ 돼야

  • ● 국방·외교+경제로 안보 개념 확대
    ● ‘경제 블록화’ ‘공급망 재편’ ‘산업정책 경쟁’ 3각 파고
    ● 바이든 ‘가치’ 중심 국제 통상 질서 재편 시도
    ● 韓, 전략적 위상·대외 레버리지 자신감 가져야
    ● 핵심기술 확보+전략산업 육성에 생존 달려
 5월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맨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스1]

5월 20일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맨 오른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스1]

바야흐로 국제사회는 경제안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국방과 외교 영역으로 여겨지던 안보가 경제 분야로 확대된 것이다. ‘경제안보’란 외부의 경제적 위협과 위험으로부터 국가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지킬 국가이익은 현재의 생존과 미래의 생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전자는 안정적 공급망 확보와 직결해 있고, 후자는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첨단 핵심기술 확보와 첨단전략 산업 육성에 달려 있다.

미국과 중국이 공급망 재편과 함께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전략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은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중 국교 정상화 이후 40년 동안 미국은 중국의 근대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많은 중국 유학생을 받아줬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도왔다. 무역 측면에서 양국의 상호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중국의 정치체제,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포용정책은 유지됐다.

오바마 정권 말기와 트럼프 정권 시절부터 중국과의 경쟁(competition)이 본격화됐다. 그 배경에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이 거세진 점이 있다. 미국은 대(對)중국 무역적자를 문제 삼으며 지금까지의 경제협력 관계, 상호 의존을 재검토하고 첨단기술 기업을 중심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미·중이 경제안보를 앞세워 패권 경쟁을 벌이는 현 상황에서 한국은 크게 세 가지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경제 블록화, 둘째는 공급망 재편, 셋째는 산업정책 경쟁이다.

경제 블록화

지난해 9월 29일(현지 시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EU 간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9월 29일(현지 시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EU 간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미·중 경쟁이 점차 체제 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제사회는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신뢰와 가치에 기반을 둔 경제 블록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현상은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 기조에 기반을 두고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



대중 정책에 있어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변화 유도에 목적을 둔 데 반해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변화가 아닌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서 유리한 환경 조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은 현재 가치를 기반으로 한 지역별, 기능별 소다자체제(minilateral initiatives)를 구축하고 동맹국 및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파트너 국가와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시작으로 올해 5월 14개 국가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6월 아메리카대륙에 위치한 국가들과 미주경제번영파트너십(APEP), 11개 국가들과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G7 국가들과 글로벌 인프라투자 파트너십(PGII) 등을 연속해서 출범시키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중국,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와 서방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디커플링을 한층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한국에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협력관계 유지를 희망하면서도 미국의 대중 견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연일 한국이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에 동시 접근을 목표로 하는 한국 기업들에 현 상황은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리스크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미·중 양측의 압박 속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다.

미국이 반중(反中) 경제블럭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동참을 강하게 압박할 경우 한·중 경제관계 축소는 필연적이다. 한국으로서는 경제 번영의 토대인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경로로 나타날 수 있는데 첫째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제재를 따를 경우 직접적으로 대중 수출 및 중국 내 사업이 타격을 받는다. 둘째는 한국이 미국의 앞선 기술력, 금융패권, 동맹관계 등을 이유로 미국에 전면적으로 편승하게 될 경우 중국이 경제보복을 할 가능성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을 양 진영으로 한 블록화는 일부 핵심 첨단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미국은 수출통제, 수입 규제, 투자심사 강화, 금융제재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중국과 첨단기술 분야의 디커플링에 나섰다.

중국을 최대 시장으로도 바라봐 온 산업계에서조차 최근 일부 디커플링의 필연성에 대한 지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 등 산업계 인사들이 참여해 2020년 말 발간한 ‘비대칭 경쟁: 대(對)중국과 기술 전략’ 보고서는 “중국은 산업 스파이 활동, 불법 감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모호한 경계를 활용해 이익을 취하는 등 미국과는 다른 규칙을 따르고 있기에 양국 간 어느 정도의 디커플링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하다”고 언급한다.

미·중 간 기술의 탈동조화는 한국에도 큰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2020년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화웨이 제재를 대폭 강화한 바 있다.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화웨이가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심지어 중국의 반도체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기업으로부터 일체의 반도체 공급을 받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한 것이다. 이는 반도체 설계 및 제조 장비 시장을 미국이 지배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의 특징을 활용한 제재였다. 당시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중국의 SMIC 등은 화웨이와의 신규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미국이 규정한 첨단기술 전(全) 분야로 탈동조화 전략이 확대될 경우 화웨이 사례처럼 미국이 지닌 공급망상의 위상에 따라서 한국 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큰 고객을 잃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을 받는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첨단반도체 관련 투자를 향후 10년 동안 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 레일 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이익을 넘어 안보를 이유로 한 전략물자 및 첨단기술 관리 협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중국마저 미국의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고 있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보복제재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공급망 재편

6월 28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 [뉴시스]

6월 28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부부. [뉴시스]

두 번째 리스크는 공급망 재편이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은 최근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작업에 따른 국제 통상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최근 주요국은 자체적인 국내 생산 역량 강화와 함께 합종연횡식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나서고 있다.

제품의 기획·설계에서부터 원자재·부품 조달, 가공·생산, 최종 납품까지의 과정을 글로벌 각국 기업이 나눠 맡는 기존의 글로벌 분업 시스템은 1990년대부터 진행된 세계화의 산물이다. 특히 ①ICT 기술 발전 ②미소냉전 체제 붕괴 ③자유무역 증진 ④EU 통합은 세계화의 확산과 글로벌 공급망 발전의 배경이 됐다. 미·중 양국도 비교우위 및 시장의 선택을 기반으로 구조적으로 상호보완성을 높이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win-win) 관계를 구축해 왔다. 상호보완성은 생산원가를 낮추고 상품 종류를 확대해 양국 기업 및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켰다.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분업화가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분업화의 심화는 예상치 못한 공급망 교란이 생길 경우 모두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공급망의 혼란은 자연재해와 같은 불가항력적 요인으로 인해 야기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공급망상 일부 국가의 의도적 정책에 의해 야기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은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고,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미국은 백신 수출을 통제했다. 즉 핵심 물품의 국제 분업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비상시에 자국우선주의가 발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배웠고, 그것이 미칠 위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다시 말해 위기 시에는 경제적 이익 극대화라는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가 깨질 가능성이 크며, 안보라는 국가이익이 우선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배웠다. 문제는 미·중 전략 경쟁 심화가 후자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위기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전략적 목적에 의해 공급망을 활용한 경제적 공세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안정적 공급망 구축에 대한 강조는 공급망 취약성에 대한 깨달음, 그중에서도 신뢰할 수 없는 특정 국가에 대한 공급망상의 의존도와 그에 따른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에 근본적 배경이 있다. 지난해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 서명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국가 비상사태 시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려면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국제 통상 패러다임의 변화를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문제는 탄력적 공급망의 구축이 만약의 위기에 대비한 중복성 구축을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비경제적 비용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거의 발생하지 않을 위기를 위해 경제성을 무시하고 국내 생산시설을 구축한다거나 물품을 대량 비축하고, 인재를 확보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과 거리가 멀다. 시장에서 최소비용이 발생하는 공급선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민간에서 비용이 더 발생하더라도 공급선 다변화에 나서도록 하려면 정부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 기업과 정부 모두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기회비용과 마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 외에도 그 비용의 폭과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이다.

기술경쟁 심화와 각국의 산업정책 강화

중국은 일본이나 독일 같은 원천기술 보유 국가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동아DB]

중국은 일본이나 독일 같은 원천기술 보유 국가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동아DB]

미·중 대립의 근본 원인이 기술패권 경쟁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점에서 미·중 대립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압박을 받는 중국은 첨단기술의 국산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을 신뢰할 수 없는 경쟁자로 인식하는 서구는 이에 위협감을 느끼고 첨단기술 분야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즉 당분간 주요 국가들이 모두 정부 주도로 자국 내 첨단기술 역량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돼 첨단기술 분야의 무한경쟁 시대가 장기간 펼쳐질 공산이 커졌다. 따라서 이에 대비한 기술혁신 역량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가 우리에게도 사활적 과제가 됐다.

특히 중국의 기술 굴기가 급속하게 진행돼 한국이 기술적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단기적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중국은 2015년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고 반도체, 5G 네트워크 등에서 2025년까지 세계 제조 강국이 될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2017년 중국공산당 제19회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제조강국 만들기를 가속화하고 선진적 제조업의 발전 가속화, 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실체경제와의 고도 융합을 촉진한다”고 선언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첨예화되자 중국은 지난해 자체 공급망 구축 같은 경제적 자립자강과 핵심 원천기술 개발 투자 강화 등 첨단기술의 자립자강 전략을 담은 ‘쌍순환(雙循環)’ 정책을 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하버드대 벨퍼센터의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 등이 작성한 보고서는 10년 뒤 중국이 AI, 5G, 양자통신, 반도체, 바이오, 그린에너지 분야 같은 기반 기술에서도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항해 미국과 EU도 산업정책 강화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주요 산업의 경쟁력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과학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반도체 산업에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 외에도 국가 전략기술 육성, 혁신 역량 구축, 에너지 안보 기술개발 등을 위해 향후 5년간 2000억 달러 가까이 투입할 예정이다.

경제안보 관련 법·제도 정비 필요

미국이 막대한 자금을 미·중 경쟁이 치열한 중점 산업에 투입키로 한 것은 대중국 견제의 핵심 수단으로 미국의 자체 역량을 강화기 위함이다. 즉 그만큼 미국의 산업정책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EU도 2021년 5월 새로운 산업정책을 내놓고 역내 생산 역량 확대에 나섰다. EU는 반도체, AI 같은 첨단기술에서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10년 동안 차세대 디지털 산업 개발에 15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2조 달러 규모의 EU 코로나19 경제 회복 패키지의 일부로 자금이 지원되는 새로운 ‘디지털 나침반(Digital Compass)’은 2030년까지 EU의 기술적 자율성을 크게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IPECI(Important Projects for European Common Interests)와 같은 구체적 정책을 통해 반도체, 배터리 같은 첨단 부분의 역내 산업 역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결국 주요국들이 모두 공격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자체적인 기술 및 생산 역량 확보에 나선 가운데, 장기적으로 첨단기술 분야의 글로벌 시장 경쟁의 심화와 함께 각국의 기술 교류에도 제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주요국이 자국 내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기술 및 산업 분야가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등 한국이 현재 주력으로 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먼저 우리의 선택은 미·중 가운데 어느 한 진영을 고르는 게 아니라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에 방점을 찍고 이뤄져야 것이다. 바이든 정부도 미·중 관계에서 대결적 자세를 취하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우리만 미·중 완전 대립 구도를 전제한 정책을 수립할 필요는 없다.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대중 제재는 점점 더 엄격해지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 내에서는 중국과 안전하게 비즈니스를 계속할 수 있는 시장 환경에 대한 요구도 있다. 현재와 같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는 진영을 선택하는 것보다 우리만의 가이드라인 또는 마지노선을 설정하는 동시에 자체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즉 미·중 갈등이 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만의 명확한 통상·외교 원칙을 수립하고 일관성 있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현 단계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일방으로 편중되고 특정국을 배제하는 배타적 접근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 최대한 배타적 접근을 피하는 동시에 우리 역량을 강화하면서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확대 및 심화될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첨단기술이 경제와 안보 모두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면서 상대국이 필요로 하는 핵심 기술 역량 보유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은 미·중 간 화웨이 5G 네트워크 장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을 때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미국 편에 동참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홍콩의 ‘일국양제’나 신장위구르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미국에 동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금까지 일본을 향해 특별한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산 첨단기술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면서 중국이 일본이나 독일 같은 원천기술 보유 국가를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초격차 유지 및 선도적인 핵심 기술·공정(choke-point) 개발을 통해 경쟁력 유지에 힘써야 한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 상승 및 경제적 이익 증대를 위해 기술 선도국이 돼야 한다.

셋째로는 한미·한중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미·중 양국과 다양한 사안에 대해 상시적으로 협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대화 채널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술 및 통상 문제에서 외교·군사 용어인 ‘동맹’ 표현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체제 대결이 아닌 ‘공정 경쟁’ 대 ‘불공정 경쟁’의 보편적 규범의 틀을 강조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미·중이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길인 동시에 위상을 높이는 방법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3대 리스크 완화를 위해서는 글로벌 규범 제정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한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내세우며 미·중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균형적 입장을 견지하는 유럽 국가들과 연대·협력을 강화하고, 미·중 양측의 압박에 대한 공동 대응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는 안보의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봐야 하기에 경제적으로 비합리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자유무역과 투자유치를 과도하게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무엇보다 경제안보를 확보할 수 있느냐를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안보를 위한 법 제정 동향에 주목하면서 우리도 자체적 경제안보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더라도 ‘진영’이 아닌 ‘룰’에 입각한 접근이라는 점에서 강화된 법과 제도가 우리의 행동 원칙 또는 판단 근거로 유용하게 활용돼 정책적 유연성을 확보해 줄 수 있다. 최근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높아지면서 우리의 전략적 위상과 함께 대외 레버리지도 강화되고 있다. 과도한 우려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신동아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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