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동대문 네팔 타운요? 이젠 ‘나마스테’ 대신 ‘신 짜오’입니다

  •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2-08-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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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 →7, 3년 새 절반 넘게 사라진 네팔 식당

    • “돈벌이 안 되니 떠날 수밖에”

    • 불법이지만… “인건비 올라서” “8개월치 월급 버니까”

    • “네팔타운 변화는 경기침체 때문”

    서울 종로구 창신2동 베트남 식재료 상점. 베트남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동네에 등장했다(위). 동대문역 인근에서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유명 쌀국수 가게. 지난해 세 번째로 확장 · 이전했다. [이슬아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2동 베트남 식재료 상점. 베트남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동네에 등장했다(위). 동대문역 인근에서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유명 쌀국수 가게. 지난해 세 번째로 확장 · 이전했다. [이슬아 기자]

    붉은 삼각형을 위아래로 이어붙인 모양의 국기, 언뜻 낙서처럼 보이는 데바나가리 문자,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 그림. 서울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로 나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네팔의 상징’ 세 가지다. 동대문역 3번 출구 일대는 ‘서울 종로구 창신2동’이라는 정식 명칭 외에 ‘네팔타운’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골목 사이사이로 네팔 국기와 네팔어 간판을 내건 가게가 보인다.

    이들 점포 대부분은 식당이다. 십중팔구는 인도, 티베트 음식도 함께 판다. 지리적으로 이웃한 세 나라 음식 문화가 비슷하게 발달한 덕분이다. 흔히 알려진 메뉴는 ‘커리’지만 네팔인에게 더 친숙한 건 ‘달(녹두를 비롯해 여러 종류 콩으로 만든 수프)·바트(쌀밥)·타르카리(감자, 콜리플라워 같은 채소를 강황가루에 볶은 반찬)’다. 한국 음식으로 치면 백반이라 할 수 있는 이 메뉴를 맛보기 위해 지방에서 일하는 네팔인도 쉬는 날이면 네팔타운을 방문하곤 했다.

    근래 네팔타운 명맥이 끊어지고 있다. 과거 네팔인은 크게 산업연수생(중소기업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며 선진 기술을 전수받던 저개발국 외국인)과 불법 체류자(이하 미등록 외국인)로 나뉘었다. 후자 중 상당수가 신분이 불분명해도 일자리가 있던 ‘창신동 봉제골목’ 인근에 터를 잡은 게 네팔타운의 기원이다. 봉제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며 네팔인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하나둘씩 동대문을 떠나갔다.

    7월 5일 기준 동대문역 근처에 네팔 식당 일곱 곳이 남아 있다. 2019년 스무 곳에 달하던 식당 수가 3년 사이 절반 넘게 쪼그라들었다. 남은 일곱 곳 중 하나도 올해 안으로 폐업할 예정이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한국으로 넘어온 ‘1세대 네팔인’이 동대문에서 자취를 감추며 생긴 변화상(像)이다.

    서울 종로구 창신2동 베트남식 커피 전문점에 붙어 있는 메모지. 대부분 베트남어로 쓰여 있다. [이슬아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2동 베트남식 커피 전문점에 붙어 있는 메모지. 대부분 베트남어로 쓰여 있다. [이슬아 기자]

    ‘네팔’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베트남’이다. 창신2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동대문역 일대에 베트남 식당, 카페, 식재료 상점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쌀국수 가게만 아홉 곳이다. 7월 4일 동대문의 베트남식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 원광닝 씨는 “요즘 동대문에 베트남 (사람) 많아요. 길에서 ‘신 짜오(베트남 인사말)’ 많이 들려요”라며 웃었다.



    생업(生業)의 변화는 곧 생(生)의 변화다. 지금, 네팔타운의 변천은 오래된 것이 저물고 새로운 것이 떠오르는 교차 지점에 서 있다.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국적 교체가 이뤄지는 네팔타운에선 시대의 흐름이 읽힌다. 7월 4일, 5일 이틀에 걸쳐 머지않아 이름이 바뀔 네팔타운을 찾아 변화 양상을 살폈다.

    운명 공동체 : 네팔타운 - 봉제산업

    봉제골목에서는 옷감과 완성된 옷을 실어 나르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이슬아 기자]

    봉제골목에서는 옷감과 완성된 옷을 실어 나르는 배달용 오토바이를 자주 볼 수 있다. [이슬아 기자]

    7월 4일 오후 2시께 방문한 봉제골목은 고요했다. 간간이 재봉틀 돌리는 소리와 옷감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굉음이 들렸지만 전반적으로 잠잠한 분위기였다. 한 봉제 공장에서 완성된 옷을 수거하던 한 배달 기사는 “봉제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지 않으냐”면서 “20년 전에도 일감 줄었다고 우는 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그땐 오토바이로 물건을 한 번에 못 옮겼다. 이제는 이것뿐”이라며 오토바이에 실린 검정 봉지 더미를 가리켰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와 비교하면 창신동 봉제 공장 일감은 크게 줄었다. 같은 날 찾은 완성품업체에서는 하루 평균 1000장의 옷을 만들어 거래처에 넘긴다. 봉제 공장은 임가공업체(천을 재단하고 가봉해 옷의 형태를 만드는 곳)와 완성품업체(다림질, 워싱 넣기를 비롯해 옷 제작 마무리 단계를 담당하는 곳)로 나뉘는데, 외국인 노동자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일할 수 있는 완성품업체에서 주로 일한다. 이 완성품업체 사장 A씨는 “그때(20여 년 전)랑 지금은 비교가 안 된다. 당시에는 매일 4000~5000장씩 주문이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봉제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주문량이 줄자 공장은 가장 먼저 직원을 정리했고, 네팔인이 동대문에 머무를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대부분 미등록 외국인 신분이던 네팔인 노동자 상당수가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체류 자격을 얻어 지방의 공업지대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A씨는 “전에는 이 근처 공장 대부분이 직원을 10명 이상 두고 있었다. 지금은 반토막 났다. 우리 공장만 해도 5명이 일하는데, 그중 2명은 시간제”라고 설명했다.

    럭스미 구릉 씨가 20년째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 식당 ‘뿌자’. [이슬아 기자]

    럭스미 구릉 씨가 20년째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네팔 식당 ‘뿌자’. [이슬아 기자]

    같은 날, 동대문역 인근에서 20년 가까이 네팔 식당을 운영하며 네팔타운의 터줏대감 구실을 해온 럭스미 구릉(한국 이름 나민경) 씨는 ‘1세대 네팔인’이 이곳을 떠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쉽게 말해 돈벌이가 안 돼요. 공장 사정이 안 좋아지니 하나둘씩 다른 살길을 모색한 거죠. 그간 번 돈을 들고 네팔로 돌아가거나 등록 외국인으로 재입국해 숙식까지 다 해결하는 지방 공장으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수원, 평택 쪽에 네팔 식당이 많이 생겼어요. 예전처럼 지방에서 일하는 네팔인이 동대문으로 고향 맛을 찾아올 이유도 없어진 거죠.”

    공생 : 베트남 유학생 - 공장주

    봉제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한 봉제 공장에서 직원들이 다림질하고 있다. [이슬아 기자]

    봉제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한 봉제 공장에서 직원들이 다림질하고 있다. [이슬아 기자]

    봉제산업이 쇠퇴하며 전일제 일자리는 시간제로 서서히 바뀌었다. ‘알바’ 자리를 두고 공장주와 용돈벌이라도 하려는 외국인 유학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17만6186명)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베트남인(6만7948명)이 이곳으로 대거 유입했다(법무부 ‘6월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네팔타운’이 ‘베트남타운’으로 변모한 이유다.

    7월 5일 동대문에서 만난 베트남 유학생 팜후이탕(가명·22) 씨는 1년 가까이 봉제골목의 한 공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후이탕 씨가 속한 곳 역시 완성품업체다. 이곳에서는 통상 오후 3~4시부터 다음 날 오전 1~2시까지 작업이 이어진다. 늦은 오후부터 일할 수 있어 학교생활에 지장을 주지도 않는다. 유학생이 일하기 편한 환경이다.

    공장 일과는 단순하다. 새벽까지 일하고자 오후 4시 30분쯤 모든 직원이 모여 밥을 먹는다. 밥과 국, 반찬 서너 가지로 구성된 한식 한 끼를 제공한다. 5시부터는 작업에 본격 돌입한다. 이날 식사를 마친 후이탕 씨는 작업대에 쌓인 베이지색 남성용 바지를 하나씩 다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강한 증기를 뿜어대는 뜨거운 다리미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했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주 6일 일하고 그가 받는 돈은 200만 원 정도다.

    현행법상 외국인 유학생이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건 불법이다. 법무부가 외국인 유학생에게 허용한 ‘시간제근로 일자리’에 제조업은 포함되지 않는다. 통·번역, 판매업 등 법무부가 허가한 분야이더라도 노동시간이 주당 최장 30시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후이탕 씨는 매주 60시간 넘게 봉제 공장에서 땀을 흘린다. 법정 근로시간인 주 52시간마저 한참 초과한 수준이지만 봉제골목에서 이러한 알바 자리는 공공연하다.

    후이탕 씨는 베트남 가족에게 매달 100만 원 가량을 송금한다. 베트남 화폐 단위 1동은 한국 돈으로 약 0.06원이다. 환율 차이가 큰 탓에 100만 원(1800만 동)은 베트남 현지에서 직장인 4개월치 월급에 해당할 정도로 큰 금액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베트남 최저월급은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꼽히는 호찌민, 하노이 등을 기준으로 420만 동(약 23만 원)이다. 베트남은 지역별로 금액에 차등을 둔 ‘최저월급제’를 시행한다.

    봉제 공장의 베트남 유학생은 미등록 네팔인이 그랬듯 대부분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노동한다. 공장주가 계약 내용을 위반하더라도 불법으로 일하는 처지에 신고하기가 어렵다. 거래처에서 맡긴 작업량에 따라 하루에 15시간 넘게 일하는 날도 있지만 급여가 늘진 않는다. 야간수당도 받지 못한다. 작업대 옆에 놓여 있는 ‘박카스’ 한 상자만이 고된 노동에 따른 보상, 어쩌면 휴식이다.

    공장주에게도 이유는 있다. 후이탕 씨가 일하는 완성품업체는 하루 평균 옷 800장을 제작한다. 매달 1500만 원가량 순수익을 올린다. 1인당 300만 원가량을 받는 한국인 직원 2명, 200만 원가량을 받는 베트남 노동자 1명에게 월급을 주고나면 사장의 수중엔 300만~400만 원이 남는다. 공장 유지비와 세금은 별도다. 100만 원대에 형성돼 있던 인건비가 2배 이상 오르면서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장에게 저임금으로 부릴 외국인 알바생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국적 교체? 경기침체!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에 위치한 한 봉제 공장. [이슬아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골목’에 위치한 한 봉제 공장. [이슬아 기자]

    창신동 주민들은 “네팔타운은 이제 옛말”이라고 입을 모은다. 봉제골목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윤모 씨는 “네팔타운, 네팔타운 하지만 이제 네팔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근방에서 미용실을 하는 최모 씨도 “외국인 손님 80~90%는 베트남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가 봉제골목 특성에서 기인했다는 의견도 있다. 창신2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정문일 씨의 설명이다.

    “봉제공장은 대부분 영세해요. 직원 고용 형태가 바뀌면서 그에 맞게 외국인 국적, 신분이 바뀐 겁니다. 처음에는 조선족(한국계 중국인), 그다음은 네팔인, 수년 전부터는 베트남인. 앞으로는 몽골이나 기타 저개발국 사람들이 들어와 있을 것 같아요.”

    ‘동대문 네팔타운의 희노애락’(2018, 서울연구원) 저자인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서기관은 경기침체가 네팔타운 변화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책을 쓰기 시작한 2016년 무렵 네팔타운을 취재하러 갔을 때 1년, 2년 지나면서 이곳 경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당시에도 동대문, 청계천 평화시장, 창신동 봉제골목으로 이어지는 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있었거든요. 실제로 그 후 찾아갔을 때 50평 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은 30평으로, 30평에서 하던 사람은 그보다 더 작은 곳으로, 그것도 아니면 남의 공장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더라고요.”

    육성철 서기관은 이 같은 문제가 봉제골목에만 국한한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Difficult, Dirty, Dangerous) 업종에 저개발국 외국인이 들어오고, 그 자리가 또 다른 나라 노동자로 대체되는 양상은 동대문뿐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농업,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발생하는 전방위적 현상이에요. 창신동 골목의 변화에는 한국 봉제산업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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