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질하는 사람’, 20년간 광화문 지켜
튀니지 구두공에 영감 얻어 만든 작품
단순하고 꾸밈없는 움직임이 만드는 감동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사옥 앞 조형물 ‘망치질하는 사람’. [동아DB]
이 조형물의 특징은 망치를 든 팔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점. 작품에 모터를 설치해 망치를 든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했다. 가까이서 잠시 멈춰 눈여겨보면 망치를 든 오른손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속도는 35초에 한 번.
광화문 일대 직장인이나 근처를 자주 찾는 사람에겐 꽤 익숙해졌지만, 길을 걷다 거대한 인간의 망치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건 신선한 만남이고 흥미로운 경험이다. 저 거인의 망치질을 보면 여러 궁금증이 밀려온다. 저 사람은 누구인지, 왜 망치질을 하는 것인지, 대장장이의 망치질인지, 목공의 망치질인지, 구두 수선공의 망치질인지, 지금 즐거운 마음인지, 고통스러운 마음인지, 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얼굴은 어떤 표정인지, 오늘 밤엔 평화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을지….
스무 살 망치질하는 사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된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에 있는 동명의 작품에 비해 크기가 다소 작다. [동아DB]
서울 도심의 한 박물관 앞에는 두 남녀가 벤치에 앉아 행복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뜬금없기도 하고 좀 유치하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거리 미술은 대체로 창의성이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감동을 주지 못한다. 원이나 곡선, 직선으로 구성한 추상적 분위기의 조형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망치질하는 사람’은 좀 다르다. 감히 말하건대, 이 작품은 거리 조형물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다.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 이 작품이 당시에 그리 부각되지 못했지만, 2002년 ‘망치질하는 사람’의 서울 출현은 국내 거리미술 역사에서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설치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20년 동안 광화문과 새문안로를 지켜보며 쉼 없이 망치질을 해온 저 사람. 때로는 힘들고 지루해 망치를 집어던지고 싶었을 텐데…. 스무 살의 이 청년은 이제 우리의 이웃이다. 어엿한 서울시민이 된 것이다.
20년간 한자리에서 묵묵히 망치를 두드리는 모습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때로는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오묘한 감정이다. 저 오묘한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망치질이라고 하는 인간의 노동을 표현했기 때문일까. 노동을 표현한 작품은 많은데, 왜 유독 이 작품이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일까.
가장 크고 힘센 망치질
‘망치질하는 사람’의 시발점은 1979년 뉴욕에서 열린 보롭스키의 개인전이다. 보롭스키는 이 전시에 3.4m 높이의 나무 조각 ‘워커(Worker)’를 선보였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나왔고 그는 이후 재료를 나무에서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바꾸었다. 크기도 키웠고 작품 이름도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 맨)’으로 바꾸었다. 금속 재질의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해 미국 뉴욕에 처음 설치됐고, 이후 미국 시애틀·로스앤젤레스·미니애폴리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일본 나고야, 스위스 바젤, 노르웨이 릴레스톰 등 11개 도시에 설치됐다. 서울 흥국생명 앞에 설치된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 8번째 작품.세계 곳곳에 서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은 크기와 무게가 모두 다르다. 서울 광화문의 ‘망치질하는 사람’이 가장 크고 가장 무겁다. 전체 무게 50t에 망치를 든 오른팔 무게만 4t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육중하고 웅장하다. 망치를 쥐고 서서히 오르내리는 팔의 움직임도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소장자는 태광그룹의 세화미술관(흥국생명빌딩 3층)이다.
흥국생명은 2008년 ‘망치질하는 사람’을 도로 쪽으로 4.8m 옮겼다. 시민애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당시에는 조형물이 건물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광화문 네거리 쪽(동쪽)에서는 잘 보이지만 서대문 네거리 쪽(서쪽)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아쉬움을 해결하려고 5m 가까이 도로 쪽으로 빼낸 것이다. 원래는 전체를 철제로 제작했지만, 망치질의 부담을 줄이고자 망치와 망치를 든 오른팔을 가벼운 알루미늄 재질로 교체하기도 했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실제 노동자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망치질하고 주말과 공휴일엔 쉰다. 5월 1일 노동절에도 망치질을 쉰다. 점검 및 유지 관리 비용으로 1년에 7000만 원가량 들어간다고 한다.
구두, 구두 수선공, 망치질
빈센트 반 고흐 1886년 작품 ‘낡은 구두 한 켤레’. [Gettyimages]
그런데 ‘망치질하는 사람’의 탄생 과정이 흥미롭다. 보롭스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친절한 거인 이야기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거인의 모습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할지 고민했다. 구체적 형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 고민하던 중 1976년 한 장의 사진을 만났다. 튀니지의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구두, 수선, 망치질…. ‘망치질하는 사람’의 형상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렇다면 저 망치질은 튀니지 구두 수선공의 망치질이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구두 그림이 떠오른다.
1880년대 고흐는 여러 점의 구두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그림 속 구두들은 모두 낡은 모습이다. 그래서 작품의 제목도 대부분 ‘낡은 구두’다. 이 가운데 1886년작 ‘낡은 구두’ 그림은 훗날 철학자와 미술사가의 관심을 끌면서 예술의 존재 의미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논쟁에 참여한 사람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 미국의 미술사가 메이어 샤피로, 프랑스의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모두 20세기의 쟁쟁한 철학자이자 미술사가다.
고흐의 구두에 먼저 주목한 이는 하이데거다. 1935년 저서 ‘예술 작품의 근원’을 통해 고흐의 구두 그림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내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이 구두의 주인은 농부 또는 농부의 아내다. 고흐는 신발이라는 도구를 통해 농촌 사람들의 고단한 삶, 대지와의 연관성, 거기 깃든 존재의 진리(존재론적 진리)를 드러냈다. 구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두라는 존재의 의미를 드러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예술이다.”
구두와 망치에 담긴 애환
하이데거는 이런 논의를 거쳐 자신의 예술론을 피력했다. “예술 작품은 아름다움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구두)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리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고흐의 구두 그림을 통해 예술의 존재 의미를 이끌어낸 것이다.그런데 고흐가 그린 구두가 정말로 농부(농부의 아내)의 것인가. 그걸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30여 년이 흐른 1968년, 미술사가 메이어 샤피로는 이렇게 반박했다. “그림 속 구두는 농부의 것이 아니다. 반 고흐가 파리에서 생활할 때 신은 것이다. 구두는 고흐 자신이 걸어온 삶, 예술가로서의 고뇌, 좌절과 열정 등을 상징한다. 결국 구두 그림은 고흐의 초상화이자 자화상이다.” 샤피로는 고흐가 파리 시절 구두를 즐겨 신었고 구두를 그리고 싶었다는 증언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 주장 또한 샤피로의 주관적 주장일 뿐이다.
10년 뒤인 1978년, 데리다는 해체주의자답게 제3의 시각을 제시했다. 데리다는 그림 속 구두가 누구의 것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주인에 관한 논의나 해석은 무의미하다. 예술은 늘 다양한 해석을 가져오고, 다양한 생각을 생성하는 것이 예술이다.”
보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을 얘기하면서 ‘고흐의 낡은 구두 논쟁’을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구두의 상징성 때문이다. 보롭스키는 구두 수선공이 망치질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이 작품을 형상화했다. 구두를 수선하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 깊은 통찰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구두는 그런 것이고 망치질 또한 그런 것이다. 고흐 그림 속 구두의 실체를 놓고 논쟁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 그림에서처럼 구두에는 우리네 삶의 애환과 내력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런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망치질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망치질하는 사람’이 구두 수선공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다. 그것이 구두를 수선하는 망치질이든, 대장장이의 망치질이든, 목공의 망치질이든 상관이 없다. 구두 수선공의 망치질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네 일상의 고단한 망치질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망치질은 인간 실존의 삶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동작인 셈이다. 데리다의 견해처럼 말이다.
망치질의 철학, 움직임의 미학
보롭스키가 만약 움직임 요소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어떠했을까. 움직임이 없었으면 그저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노동자상(像)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움직임이 있었기에 인간의 본질, 삶의 의미에 다가갔다. 이러한 관점이 바로 창의성이다.‘망치질하는 사람’을 두고 “노동의 숭고함과 현대인의 고독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또한 이 작품이 직접 망치질을 하기에 가능하다. 현대사회의 노동이라고 하는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우면서도 여운이 깊게 구현한 것도 이 덕분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망치질하는 모습이 엄숙하고 듬직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망치질하는 사람’은 은유적이며 상징적이다. 그런데 그 은유나 상징이 복잡하지 않고 현학적이지도 않다. 단순명료하다. 삶 속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쉽고 편안하지만 여운이 깊다. 그 여운은 곧 성찰로 이어진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또한 지나치게 멋 내지 않았다. 어떤 거리 조형물의 경우, 작가의 철학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지나치게 폼을 잡아 보는 이에게 부담을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폼을 잡지 않아 더욱 좋다. 우리 일상 속에서 인간 존재를 들여다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핵심이 단순명료한 망치질이다. 국내의 어느 조형물보다 가장 매력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조형물은 그 모습이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거창하게 말하면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 소박하게 말하면 그저 살아가는 모습이다. 예술이 삶이라고 할 때, 이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 삶을 가장 꾸밈없이 보여준 것이다.
서울역 걷는 사람
2009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 외벽에 설치한 미디어파사드에 영국 미술가 줄리언 오피 작품 ‘걸어가는 사람들’. [동아DB]
영상 속에선 줄리언 오피가 만들어낸 단순화된 모습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간다. 수많은 사람은 한쪽을 향해 걷고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반복적이지만 지루하거나 느슨하지 않다. 시종 활기가 넘친다. 한편으로 모두 한쪽 방향을 향해 획일적으로 걷는다는 점에서 다소 서글프기도 한다.
어두운 밤, 서울역을 나서면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 위로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이 작품은 신선하고 성찰적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는 어딘가로 가야 하기에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줄리언 오피는 영상 속 사람들을 최대한 단순화해 표현했다. 원으로 표현된 얼굴, 선으로만 표현된 몸체. 인간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하고 최소한의 본질만 남긴 것이다.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걷고 또 걷는다. 여러모로 광화문의 ‘망치질하는 사람’과 겹치는 대목이 있다.
서울역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사람이 맞닥뜨린 예상치 않은 만남과 낯선 감동, 그건 새문안로에서 ‘망치질하는 사람’을 만나는 신선함과 흡사하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낯설고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성찰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성찰로 이르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편안하며 재미있고 생동감 넘친다. 예술에서 이보다 더한 매력이 어디 있을까.
망치질 속도 60초 vs 35초
세계 곳곳에 서 있는 11명의 ‘망치질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울 광화문의 것이 가장 크고 힘이 가장 세다. 망치질 속도도 가장 빠르다. 1분에 한 번이 아니라 35초에 한 번 망치질을 한다. 너무 느리다는 원성(?) 때문에 망치질 속도를 조정했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주변 환경과 분위기, 사람들의 수용 방식 등에 맞추어 망치질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1분에 한 차례 망치질할 때엔 다소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35초에 한 차례 망치질을 하는 걸 보니 ‘저건 좀 빠르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개인(세화미술관) 소장품이지만 거리에 설치한 공공미술이라는 점에서, 소장자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망치질 속도를 조정할 수도 있으리라. 더 빨라져야 할지, 좀 느리게 하는 게 좋을지. 우리 사회에 스트레스가 많을 땐 좀 빨리, 평화로운 땐 좀 천천히 말이다. 이에 관해 과학적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명작은 이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前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