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과 인생을 합친 신조어
시간 허투루 쓰지 않는 생산적 삶
갓생러 스스로는 열심히 산다 생각 안 해
“주변 보면 생존 위한 갓생 많다”
번아웃 찾아와 무기력해질 우려
[Gettyimage]
캠퍼스 생활이 바뀌었다
‘갓생’이란 무엇인가. ‘갓생’은 신을 뜻하는 갓(God)과 인생을 뜻하는 삶이 합쳐진 신조어로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생산적 삶을 사는 생활방식이 바로 ‘갓생’이다.‘갓생’에 관한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는 Z세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갓생 브이로그’는 대학생의 일상을 담고 있다. ‘대학 가면 놀아도 된다’는 옛말이 됐다. 촘촘한 계획 속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캠퍼스 생활과 사뭇 다르다. 취업준비생이 아닌 학생 사이에서도 ‘갓생을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졌다.
어떤 사람을 보고 ‘갓생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갓생러’라고 불리는 대학생들을 만나 일상을 들여다봤다.
취재에 응한 허다영(21) 씨의 2021년 2학기 스케줄러. [임희봉]
고려대 경제학과 2학년 손성진(19) 씨는 학교로 가는 지하철에서 주어진 1시간 20분 동안 못다 한 공부와 과제를 하기로 했다. 성진 씨는 학업 외에도 학생회, 학회장, 기자단, 봉사활동 등 다양한 대내외 활동을 학업과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이 거의 없다. 할 일이 많다 보니 계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약속을 빼거나 잠을 줄여서라도 계획을 지키려 한다. 성진 씨는 “이번 3월에 잡혔던 밥 약속도 바빠서 미룬 탓에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토론 동아리의 내부 토론 대회가 있던 날, 성진 씨는 대회를 마친 후 곧바로 뒤풀이가 아닌 회의에 참가했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갓생러’들은 학업과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면서 쉴 틈 없는 일상을 산다. 그들에게 쉬는 날이 있는지 묻자 대부분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답했다. 시간을 촘촘히 나누어 쓰고 있음에도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2학년 김소연(21) 씨는 경영학과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를 복수 전공한다. 소연 씨는 학업 외에도 영상 동아리와 교내 PR 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휴학을 한 소연 씨는 인턴에 합격했다. 소연 씨는 그동안의 일상에 대해 “할 일이 너무 많아 매일 숨 막히는 하루였다”고 말했다. 정작 소연 씨는 자신이 열심히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들다가도 나보다 훨씬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싶더라고요. 제 주변만 봐도 갓생 사는 사람이 너무 많거든요.”
부산대 생명환경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혜민(20) 씨는 1학년 겨울방학부터 천연물화학실험실에서 학부 연구생 생활을 시작했다. 혜민 씨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실험실의 일을 돕고 있다. 퇴근 시간은 오후 6시지만 늦은 밤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실험실에 있는 경우도 많다. 학부 수업을 병행하다 보니 주말에도 실험실로 출근하는 일이 잦아 학기 중에는 거의 쉬는 날이 없었다. 이런 혜민 씨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라, 바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진짜 열심히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갓생러’들이 처음부터 치열하게 산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갓생’을 살게 된 계기가 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미디어 속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우울을 경험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느낀 자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시작했고, 남들이 ‘갓생’이라고 부르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취재에 응한 윤희선(20) 씨의 2022년 5월 9일자 플래너. [임희봉]
다른 이유로는 ‘어려운 현실’이 있다. 손성진 씨는 “요즘 취업도 힘들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도 어렵다. 노력해야 하는 수준이 훨씬 더 높아졌다”면서 “주변을 보면 생존을 위한 갓생, 어쩔 수 없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동적인 갓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몬 선택”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갓생’의 부작용은 없을까. 경희대 시각디자인과 박정우(20) 씨는 이번 학기에 휴학을 결심했다. 지난 학기에는 15학점을 들으며 휴먼시티 디자인 워크숍의 학교 대표로 참가하는 동시에 청량리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 청년기획단의 디자인 팀장을 맡았다. 정우 씨는 새로운 시각을 가진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해 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앞만 보고 달리던 정우 씨에게 번아웃(burn out·특정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 찾아왔다. 정우 씨는 “몸은 하나라 한 번에 모든 걸 잘할 수 없었고 나에게 실망하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꿈과 행복을 위해 한 일이었는데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몬 선택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갓생’이 트렌드가 된 지금, 많은 청년이 원하는 ‘갓생’은 정형화된 양상을 띤다. 구체적 목표를 세우고 그에 도달하기 위한 세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갓생’도 수많은 삶의 유형 중 하나에 불과하다. ‘갓생’이 청년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갓생러’로 불리는 김하영(22) 씨는 말했다.
“주변에서 뭐만 하면 ‘갓생살자’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갓생을 살지 않았다고 탈락자가 되는 건 아닌데 갓생을 살지 않았다고 아쉬움이나 자괴감을 느끼는 건 지양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