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먹으면 낫는데 방치해 폐렴 앓아
내 음악적 원천은 비 오는 날
창작은 가위 눌리는 느낌 같은 것
남이 서 있는 줄에 줄 서지 말아야
김태원은 “창작의 고통 속에서 노래를 만들어야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홍태식 객원기자]
창작과 표절 사이
표절 논란은 유희열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노래 ‘아주 사적인 밤’이 일본 영화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 곡 ‘아쿠아(Aqua)’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유희열은 6월 22일 “곡의 메인 테마가 유사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무의식 중 기억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고 사과문을 올리고 13년간 진행한 음악 프로그램 ‘스케치북’에서도 하차했다. 원저작자인 사카모토가 이를 문제 삼지 않아 일단 법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유희열을 향한 비판과 도덕적 비난은 이후 더욱 거세졌다. 유희열의 다른 노래들도 표절 시비에 휘말린 탓이다. ‘아주 사적인 밤’뿐만 아니라 ‘그럴 때마다’(토이),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토이), ‘내가 커지는 시간’(유희열), ‘안녕 이젠 안녕’(유희열)은 사카모토의 다른 노래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2002년에 발표된 ‘해피 버스데이 투유(Happy Birthday To You)’(성시경)는 일본 록그룹 안전지대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다마키 고지 노래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김태원은 7월 5일 방송된 MBC 시사 프로그램 ‘100분토론’에서 유희열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표절이) 병이라면 치료되기 전 방관한 것”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작가로서 핑계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후 우리 가요계에 만연한 표절불감증을 근본적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년 넘게 대중가요를 만들며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김태원이라면 표절을 근절할 해법을 알 것 같았다. 방송에서 못다 한 얘기를 듣고자 8월 2일 경기 고양시 일산구 자택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비 오는 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비를 좋아했어요. 내가 만든 노래에 비에 관한 것이 많은 것도 그 덕분이죠. 비는 음악적 영감의 원천 가운데 하나예요.”
땅바닥에 내리꽂는 듯한 세찬 빗줄기를 바라보며 그가 말문을 열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도 김태원은 렌즈가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 인조가죽 점퍼를 걸친 모습이다. 이것이 ‘록 스피릿’인가. 참 한결같다.
‘100분토론’에 나와 유희열 표절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유희열을) 공격하거나 비난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원래 그런 거 잘 못한다. 화면으로 보면 그렇게 세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날 분위기는 선배로서 할 말을 한 것이다. 감싸줄 부분도 있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거라고 얘기하는 게 그 친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같이 출연한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와 그 부분을 짚다 보니 강도가 높아 보인 것 같다.”
표절 시비 리스트에 오른 곡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이들이 듣고 표절 의혹을 먼저 제기했다. 사실 이 문제는 어른들의 방관이 부른 것이다. 어른들이 나서서 말렸어야 한다. 유희열 씨가 슈퍼스타다 보니 이 지경이 된 거다. 주변에 냉정하게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만 추구하면 표절 유혹에 빠지기 쉽다. 남의 노래를 베껴 쉽게 만든 노래로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100분토론’에서도 표절에 대한 비판보다 창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창작의 고통 속에서 가사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그 정도로 괴로운 사람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거울을 보라”
‘100분토론’ 방송 말미에 ‘거울을 보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내가 말의 90%를 은유로 하는 습관이 있다. 거울은 은유다. 그것은 사실 산책을 얘기하는 거다. 베토벤의 산책과 같다. 베토벤은 산책을 즐긴 작곡가다. 산책을 통해 악상을 떠올린 거다. 산책하듯 자신을 들여다보며 사색하라는 의미에서 거울을 보라고 한 것이다. 유희열 씨는 내가 아무리 은유로 말해도 알아들을 만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감성이 충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너무 장시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만나고 그 사람들 얘기만 들으면서 절제, 잘라내는 것을 못 하게 된 것 같다.”
방송에서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8마디 유사’를 강조한 이유가 뭔가.
“우리나라 저작권법이 오랫동안 ‘8마디의 멜로디와 리듬이 같은 경우’를 표절로 인정해 왔다. 곡의 뉘앙스가 비슷해도 8마디가 똑같지 않으면 표절이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표절 시비가 붙어도 표절로 판정 난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표절은 친고죄여서 원저작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다. 표절해도 원저작자와 합의가 잘 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도 ‘8마디 유사’를 표절의 기준으로 하나.
“그렇지 않다. 곡의 전체 뉘앙스를 본다. 8마디가 같지 않더라도 뉘앙스가 비슷하면 표절로 인정한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죄도 무겁다. 영원히 음악계 퇴출이다. 우리는 아직 선한 기운이 있어서 매몰차게 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는다. 표절을 무거운 죄로 보지 않는 것이다. 그건 공범과 다를 바 없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표절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생각을 갖고 스윽 들어온다.”
외국에서는 표절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나.
“미국에서는 임진모 씨 말마따나 곡이 세상에 나오기 전 많은 사람이 모니터링을 한다. 모니터링을 수백 명이 한다. 사실 표절하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작가가 꿈이 아닌 생시에 가위에 눌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악상과 가사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된다.”
원곡자 사카모토가 “창작은 모방의 연속”이라며 되레 유희열 씨를 두둔한 것은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암 투병 중이라고 한다. 일종의 배려 아닌가 싶다. 죽게 생겼는데 표절이 심각하게 느껴지겠나. 아무튼 그 마음은 거짓이 아닌 것 같다.”
예전부터 일본 노래를 표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가 뭘까.
특정한 가사가 정해지지 않으면 허밍으로 작곡하는 경우가 많다. 허밍으로만 작곡하면 한계가 있다. 가짜 영어로 가사를 붙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일본어는 우리말과 비슷한 데다 받침이 없어 더 아름답게 들린다. 그러니까 표절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가 남의 음악을 안 듣는 건 음악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잔상이 남아 곡을 만들 때 영향받을 수 있어서다.
‘솔메이트’ 신해철
요즘은 미디(MIDI)로 작곡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당신은 어떤가.“예전에도 지금도 기타로 작곡한다. 마지막 하나 남은 아날로그 작곡가다. 미디로 하는 건 잘 안 된다. 익숙지 않다. 내가 방 안에서 작곡하는 모습을 너무 안쓰럽게 보던 신해철 씨가 한동안 ‘M1’이라는 최초의 미디를 들고 매일 찾아왔다. 녹음이 가능한 피아노 비슷하게 생긴 건반악기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왔는데 내가 끈기가 없어 ‘그만 와라. 못 하겠다’고 했다.”
신해철 씨도 여러 히트곡을 낸 실력파 작곡가다. 미디로 작곡하는지 몰랐다.
“우리나라에서 미디를 가장 잘 다루는 작곡가다. 표절에 굉장히 민감하다. 그 친구가 떠나고 난 다음 계속 생각난다. ‘사랑할수록’을 부른 김재기가 내 왼팔, 신해철이 오른팔이었다. 그 친구는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솔메이트(Soulmate)’였다. 우리 사이엔 형식이란 게 1%도 없다. 아무 조건이 없었다. 조건 없는 만남을 제일 좋아한다.”
신해철 씨와 어떻게 친해졌나.
“부활 1집으로 데뷔한 1986년, 팬으로 자주 찾아왔다. 당시 신해철은 고3이었는데 공연장 기기 설치를 도와주곤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사라져 유학 갔나 했는데 대학가요제에 나왔더라. 거기서 부른 노래 ‘그대에게’를 듣고 엄청 칭찬한 기억이 난다. 가요제에서 입상하지 못했으면 나한테 혼났을 텐데 대상을 차지하지 않았나. 그 달변가가 고3 때도 말을 너무 잘했다. 나도 말이 끊이지 않아 둘이 있으면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다.”
두 사람이 그런 사이인지 몰랐다.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내가 그런 얘기 잘 안 한다. 장례식에는 안 갔다. 그 전날 갔다. 그 친구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마음을 전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 그때는 네가 형으로 태어나라’고.”
신해철 씨와 표절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
“없다. 얘기할 가치가 없지 않나.”
남의 노래를 아예 안 듣는다고 들었다.
“음악이 뜨는 건 대중성이 좋기 때문이다. 들으면서 좋다고 느낀 부분은 몸에 묻게 된다. 그게 몸에 묻어 별처럼 떠 있는 자체가 작가에게는 공포다. 그래서 나는 남의 음악을 아예 안 듣는다. 1980년대 중반부터 줄곧 그랬다.”
표절하게 될까 봐?
“그렇다. 들으면 표절 유혹을 피하기 어렵다. 8마디만 같지 않으면 표절이 성립되지 않으니까. 그러면 음악이 아닌 수학을 하게 된다. 그래서 뉘앙스로 표절을 가려야 한다. 이렇게 내버려 두는 건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표절 시비에 걸리면 원저작자와 합의해 자기가 번 돈의 100분의 1도 안 주고 빠져나가는 거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음악을 할 수 없다. 그 사람은 어디 가서 음악한다고 하면 안 된다. 감성이 특출하게 민감한 사람은 미래가 있지만 이런 사람은 싹수가 노랗다.”
유희열은 표절 의혹에 엇갈린 사과로 논란을 키웠다. [동아DB]
“약간 수줍어하거나 웃는 모습이 순수해 보인다.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때 내가 음악을 안 듣는다고 했더니 유희열 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반문하더라. 그 친구는 음악을 들어왔기에 미묘하게 그 음악이 묻을 수 있다. 유희열 씨는 이번에 큰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이런 경우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색의 기회로 삼는 사람이 있다. 유희열 씨는 후자일 거라 생각한다. 마음이 공허하니까 산책을 하면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적기 시작할 거다.”
표절 불감증? 예방 필요
가요기획사에서 작곡가에게 표절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요즘 많다고 한다. 베낄 음원을 대놓고 갖다 주기도 한단다. 같이 집 털자고 해도 작곡가가 거절하면 된다. 같이 털러 가면 공범이다. 그게 더 비겁하다. 잘못인 줄 알면서 말리지 않았으니까.”
생계를 위해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작곡가는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노래를 만들기 위해선 창작의 고통을 회피해선 안 된다. 청자에게 솔(soul)을 갖다 바쳐야 울림을 줄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많은 아이돌그룹이 해외에서 인기를 모아 한국 대중음악 위상이 크게 높아졌지만 표절에 대한 인식은 선진국에 뒤처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2007년 저작권법 일부가 개정돼 ‘8마디 유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표절을 가릴 근거가 생겼지만 이 또한 규정이 모호해 표절이 인정된 사례가 흔치 않다. 심지어 한 곡 원저작자가 여러 명이어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표절 시비를 가리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난 일도 있다. 무엇보다 표절이 친고죄여서 법정까지 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원저작자와 합의하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많은 곡을 들어 무의식적으로 표절한 경우라도 예외를 두지 않고 표절로 판결한 사례가 다수 있다. 또한 표절로 인정되면 원저작자에게 로열티를 반납하거나 원저작자를 공동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한국도 국제 기준에 맞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방송에서 “표절은 습관이고 병”이라고 말했다.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이 뭘까.
“감기약 먹고 나을 수 있는데 방치해 폐렴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표절 유혹을 방치하면 큰 병을 키우게 된다. 작곡가가 유명해지면 돈을 싸들고 온다. 그러면 초심을 잃고 솔을 파는 이가 있다. 관객의 솔을 조롱해선 안 된다. 그건 정말 나쁜 짓이다.”
표절은 잠재적 폭탄이다. 아이돌 가수 노래가 표절로 판정나면 지금까지 쌓아올린 K-팝 위상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법의 잣대가 지금보다 엄격해져야 한다. 미국처럼 곡 뉘앙스로 표절 여부를 가리게 해야 한다. 아울러 표절 판정을 받은 저작자가 같은 잘못을 다시 할 경우 더는 음악을 만들 수 없도록 해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 표절 여부를 심의할 기관도 필요하다. 음악을 많이 들어 전문가 수준인 일반인 집단과 저작 경험이 풍부한 작가 집단, 법적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법률가 집단이 같은 비중으로 참여해 표절 여부를 검증한다면 표절 불감증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 같다.”
아름다운 공포가 몰려올 때
표절 유혹을 느낀 적 있나.“1980년대 중반까지 딥 퍼플, 레드 제플린, 핑크플로이드 노래를 들었다. 나 같은 경우는 (들은 음악이) 너무 아름다우면 공포가 몰려온다. 잘못하면 내가 음악을 멈춰야 하니까 스스로 계속 경계하고 단속한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고독이 몰려와 생시에도 가위에 눌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고독이 몰려오면 어떻게 대처하나.
“극도로 외로운 어둠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산책하고, 사색하며 영감을 떠올려 음악을 만든다. 지금까지 그런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에서 영감을 얻나.
“주제를 정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계절, 비 같은 거에서 생각을 시작하면 엄청난 형용사가 떠오른다. 그걸 말로 녹음하기도 하고, 종이에 쓰기도 한다.”
부활의 노래 대부분을 직접 작사, 작곡해 명곡을 낳았다. 작사를 먼저 하나.
“그때그때 다르다. 평소 기록해 둔 것을 토대로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거나 가사에 어울리는 멜로디를 만든다. 초안은 거의 2~3일이면 나온다. 초안을 토대로 세상에 내놔도 좋겠다 싶을 때까지 1년 정도 수정한다.”
한 곡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정규 14집 앨범 일부가 9월 초 싱글로 나온다. 그 노래는 꼬박 2년 걸렸다. 이승철 씨가 부른 ‘네버엔딩스토리’는 초안이 1주일 안에 나왔는데 1년 걸려 완성했다. 승철이가 곡을 듣고 나서 ‘잘할 자신이 없다. 대중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하더라. 사실 나는 대중적 곡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만든 곡이 대중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른다. 학생들이 나를 흉내 내는 건 좀 위험하다. 온통 사색과 고독인데 그걸 권장하고 싶진 않다. 삶의 30~40%는 골치 아프게 생각하고 나머지는 재미있게 살아야 더 좋은 곡이 나온다. 쉼이 있어야 한다.”
그가 인정하는 최고의 작곡가는 ‘위 아더 월드’를 만든 퀸시 존스와 ‘광화문 연가’를 비롯해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故) 이영훈 씨다. 그는 이씨와 특별한 인연을 떠올렸다.
“2005년쯤 딱 한 번 만났다. 변진섭 씨에게 곡을 주고 스튜디오 3층에서 녹음했는데 아래층 문이 열려 있어 슬쩍 들여다봤다. 사람이 앉아 있기엔 조명이 너무 어두워 잠깐 멈칫했다. 그때 안에 있던 남자가 먼저 ‘부활의 김태원 씨 맞죠? 저는 이영훈이라는 사람입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구부정한데도 포스가 남달랐다. 그러더니 공동으로 작업하자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숫기가 없어 ‘제가 감히요’ 하면서 나와버렸다. 조건이 없다고 그랬는데 잘할 자신이 없었다. 좀 더 멋지게 말할 걸 그랬다(웃음).”
딸과 당신 이야기
김태원은 현재 혼자 산다. 아내와 아들은 필리핀, 싱어송라이터가 된 딸 서현 씨는 미국에서 지낸다. 서현 씨는 2013년 ‘크리스 레오네’라는 예명으로 음반을 발표하고 가수로 데뷔했다. 딸 근황을 묻자 선글라스 너머 김태원의 눈가에 미소가 번진다.“버클리음대에 이어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작년에 졸업했다. 미국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정착하려고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삶이 온통 음악이다.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컬러가 아니다.”
딸에겐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해주나.
“용기가 필요한 나이다. 슬픈 일이 있으면 전화가 온다. 음악 얘기는 잘 하지 않고 내 경험을 토대로 아빠이자 인생 선배로서 조언한다. ‘남이 줄 서 있는 데 줄 서지 마라. 다 똑같아지는 것이다. 줄을 서 있되 다른 생각을 하라. 같이 기타를 치더라도 다른 세계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본적인 건 선(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음악은 거짓이 안 통한다. 만든 사람이 선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선한 사람은 30%를 먹고 들어간다. 선함 없이 70%까지 간 사람은 나머지 30%를 마무리하지 못한다. 표절 같은 부작용이 생긴다.”
한동안 건강이 악화돼 병원 신세를 졌다고 들었다.
“술이 화근이다. 알코올의존증 수준이었다. 술 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겨 쇼크가 오고 단기기억상실증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내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지 싶을 정도로 기억을 잘 못했다. 한 4년 동안 술 때문에 고생해 2년 전 술을 끊었다. 간 수술도 했다. 그랬더니 제 기능이 돌아오더라.”
무슨 수술인지 말해 줄 수 있나.
“간암 수술을 받았다. 엑스레이 기사가 이상하다며 정밀검사를 권해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수술받고 나서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 가족을 위해 산다.”
‘김태원클라쓰’라는 유튜브채널 구독자가 17만4000명에 달한다. 직접 만들었나.
“10년 전 그걸 만들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다. ‘인간극장’ PD다. 우리 가족과 필리핀에서 촬영하며 4박5일간 같이 있었는데 아내와 그 여자 PD가 굉장히 친해졌다. 이후 이 친구가 유튜브 채널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3년 정도 고심하다 공동 운영을 시작했는데 구독자들이 많이 재미있어 해주신다.”
40년 가까이 뮤지션으로 살았다. 가장 힘든 때와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이승철 씨가 부활에서 탈퇴한 1989년부터 1992년까지가 가장 힘들었다. 가장 보람찬 일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춘합창단 지휘를 맡은 것이다. 아내에게 처음으로 멋있다는 칭찬을 들었다.”
평소 마음으로 되새기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
“공연할 때 사인을 받으며 글을 적어달라는 팬이 있다. 그럼 이렇게 적는다. ‘그 누구보다 그대가 아름답다’고. 그 말로 나한테도 최면을 건다.”
음악인으로서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나.
“엄청나게 아름다운 음악을 쓰는 것이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노래를 만들고 싶다. 아직 많이 남았다. 후회는 없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접어둔 콘서트를 연내 열 계획이라고 했다. 그 시기는 “크리스마스 즈음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려 그의 표정을 세세히 읽을 순 없지만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더욱 또렷해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천생 뮤지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그가 이름 앞에 달고 다니고 싶은 수식어는 뭘까. 인터뷰를 마치며 물었더니 “의외의 김태원”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뻔하지 않은 김태원이고 싶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음악을 만들며 선한 방향으로 삶을 다하고 싶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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