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잎이 마련해준 물방울 방에 묵었어요
또르르륵 또르륵,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을 굴리다가
쌓여 있는 물결을 뒤적이기도 했어요
매번 바람에 흩어지는 이야기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을 땐 밖으로 나와
푸른 잎 테두리를 느긋이 걸었어요
잎맥을 세다 보면 연잎 한 장도 너무 넓어서
건너편 잎까지 둘러보진 못했어요
연꽃이 하나둘 문을 닫는 저녁에는
깨진 빗방울 모아 탑을 쌓고
별이 된 고양이 산문이를 떠올렸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슬픔도 향기롭게 우러나는 방
물방울이 다 마를 때까지
올해의 여름 휴가는 참 투명했어요
[Gettyimage]
●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 2008년 천상병 시상, 2020년 김종삼시문학상 수상
●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에세이 ‘겨울 가고 나면 따뜻한 고양이’ 등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