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하이엔드 미니멀리즘 상징 PRADA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입력2022-09-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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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9년 동안 혁신을 거듭하며 하이엔드 미니멀리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패션 브랜드 프라다. 성공한 여성의 전유물을 뛰어넘어, 뉴밀레니엄 시대의 아이콘이 된 프라다의 혁신적 브랜드 스토리를 쫓아가 봤다.
    (왼쪽부터 시계방향)리나일론 백팩. 프라다 두블레 사피아노 스몰백. 아디다스 프라다 리나일론 컬렉션.

    (왼쪽부터 시계방향)리나일론 백팩. 프라다 두블레 사피아노 스몰백. 아디다스 프라다 리나일론 컬렉션.

    브랜드 ‘프라다(Prada)’는 109년 전 마리오 프라다(Mario Prada)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한 가죽용품 회사에서 시작했다. 당시 이탈리아 왕실의 가죽 및 의류 제품의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으로 유명했다.

    이에 머물지 않고 프라다는 혁신을 거듭해 왔다. 가죽 소재에서 벗어나 선택한 나일론 소재는 지금의 프라다를 있게 한 기반이 됐다. 이는 또 기존 하이패션의 개념을 뒤엎어 패션사에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시대가 바뀌면서 프라다의 명성은 높아져 갔다. 1990년대 한국에 상륙한 프라다의 나일론 가방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90년대의 미니멀리즘’을 대변했다. 2000년대 프라다는 명품을 넘어 야망과 성공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됐다.

    이탈리아 왕실에 가죽·의류 공식 공급

    브랜드 프라다의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 [프라다 홈페이지]

    브랜드 프라다의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 [프라다 홈페이지]

    밀리노 태생인 마리오 프라다는 동생인 마티노 프라다와 함께 1913년 이탈리아 밀라노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II 아케이드에 고품질 가죽 제품 전문 매장 ‘프라텔리 프라다’를 열었다. 형제는 다양한 디자인의 화장품 케이스, 가죽 핸드백, 가죽 장갑 등을 수공으로 제작해 이름을 알려나갔다.

    마리오 프라다는 여행을 좋아해 유럽과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패션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그는 은을 비롯해 체코의 보헤미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급 크리스털인 보헤미안 크리스털과 세계 각국의 라인석(모조 다이아몬드), 거북의 등딱지 등 진귀한 소재를 이탈리아에 들여와 패션 상품에 응용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했다.



    프라다의 제품 중에는 영국에서 수입한 바다코끼리 가죽, 악어가죽 등 특이한 소재로 만든 방수 핸드백, 여행용 가방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러한 진귀한 제품은 유럽 왕가와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1919년 프라다는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의 가죽 및 의류 제품의 공식 공급 업체로 지정됐다. 이후 프라다 로고에 사보이 왕실의 문장과 매듭이 추가됐는데, 이는 프라다의 트레이드마크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함께 브랜드의 인지도가 떨어지면서 사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1950년대 마리오 프라다는 가업을 아들인 알베르토 프라다에게 물려주려 했으나 알베르토가 원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딸이 경영을 맡았다. 1958년 마리오 프라다가 세상을 떠난 후 딸 루이자 프라다가 가업을 물려받아 20년간 운영했다. 그러나 경영 악화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회사는 파산 위기를 겪는다.

    파산 위기 가업 구한 ‘미우치아 프라다’

    1977년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의 외손녀이자 루이자 프라다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파산 위기에 놓인 프라다 가업에 동참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194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라다 창업주 마리오 프라다의 딸 루이사 프라다와 해군이던 아버지 루이지 비안키 사이에서 태어났다.

    미우치아 프라다의 젊은 시절은 패션과 거리가 있었다. 그는 밀라노 국립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에는 밀라노의 피콜로 극장에서 5년간 마임을 공부했다.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공산당의 당원이자 이탈리아 여성연맹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편 패션을 가업으로 하는 부유한 집안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일반 당원과 달리 이브 생 로랑과 같은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고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 일은 신문에 대서특필 보도되기도 했다.

    그는 1977년 파산 위기에 놓인 프라다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하면서 가업 경영에 뛰어들었다. 미우치아는 안목은 있었으나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재단과 재봉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스타일을 디자인팀에 전한 다음 디자인팀에서 제안하는 소재와 재단, 봉제 방법을 함께 의논하는 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던 1977년 미우치아는 밀라노에서 열린 한 국제 가죽 박람회에서 동업자이자 인생의 반려자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를 만났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이탈리아 중부 도시인 아레초 지방의 법조계 가문에서 태어나 볼로냐대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으며, 정교한 가죽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미우치아는 파트리치오와 프라다 브랜드 가죽 제품 컬렉션에 대한 독점 계약을 맺었다. 파트리치오의 권유로 1984년 여성 신발 라인을 론칭했고, 영국에서 완제품 형태로 수입해 오던 가방과 여행용 트렁크 등 가죽 제품을 프라다만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1985년 나일론 천을 소재로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Prada Classic Handbag)을 출시했다. 프라다 클래식 핸드백은 심플한 디자인과 가벼운 나일론 소재의 실용성으로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 가방의 인기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다.

    1987년 미우치아는 파트리치오와 결혼했고 이후 파트리치오가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임명됐다. 프라다는 파트리치오가 경영을 맡고 미우치아는 디자인을 맡아 2인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1987년 프라다는 여성용 기성복 컬렉션을 시작했는데 이 데뷔 컬렉션에서 100벌이 넘는 의상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미우치아와 파트리치오는 2006년 ‘타임(Time)’지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플 10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와 ‘프라다 스포츠’

    올해 1월 출시된 아디다스 프라다 리나일론 컬렉션. [프라다 홈페이지]

    올해 1월 출시된 아디다스 프라다 리나일론 컬렉션. [프라다 홈페이지]

    프라다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프라다는 1993년에 10~20대 여성을 겨냥한 세컨드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를 출시했다. 브랜드 이름 ‘미우미우’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애칭에서 따온 것으로, 브랜드 콘셉트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자아 혹은 가상의 친구를 떠올리며 보다 자유롭고 발랄한 느낌’의 걸리시룩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우미우는 단순히 프라다보다 가격대가 낮고 소비자 연령이 어린 세컨드 브랜드가 아닌 독창적인 콘셉트로 자리 잡았다. 미우치아는 밀라노를 대표하는 프라다와의 차별화를 위해 1995년 미우미우의 첫 컬렉션 무대를 뉴욕에서 진행했다. 1996년 수족관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화이트 드레스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입은 네이비블루 웨딩 슈트를 디자인해 미우미우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성공적으로 뉴욕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미우미우는 1997년 런던으로 무대를 옮겨 변화를 주었고, 2006년부터는 파리에 정착해 지금까지 개성적인 의상으로 사랑받고 있다. 1994년 남성복 프라다 ‘워모(Uomo)’, 1997년 언더웨어 프라다 ‘인티모(Intimo)’, 1998년 프라다 ‘스포츠(Sport)’를 차례로 론칭했는데 프라다의 레드 스트라이프 로고는 또 하나의 브랜드 시그너처가 됐다.

    프라다 스포츠 첫 컬렉션에서는 패션계 최초로 정장을 입은 남성 모델이 운동화를 착용하고 등장했다. 이는 정장에 활동성을 부여한 최초의 시도로서 당대 패션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프라다의 상징이 된 ‘사피아노 백’과 ‘나일론 백’

    패션에서 소재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금은 다양한 브랜드에서도 사용할 만큼 보편화된 사피아노 가죽(Saffiano Leather) 사용의 시작은 프라다였다. 마리오 프라다는 1913년에 프라다를 설립함과 동시에 사피아노 가죽을 개발했다.

    사피아노는 이탈리아어로 ‘철망’을 뜻한다. 사피아노 가죽은 소가죽의 부드러운 부분에 빗살무늬 또는 철망무늬 스탬프로 패턴을 넣은 후 다시 광택을 내서 만든 것이다. 1913년 사피아노 가죽 소재를 활용한 제품으로 사피아노 럭스 백(Saffiano Lux Bag)을 출시했다. 그러나 당시에 사피아노 가죽은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다. 가죽 본연의 느낌보다 인위적인 가공으로 눈속임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죽에 가공을 잘하면 일반 가죽보다 우수할 것이라 생각했고, 공방과 협력해 사피아노 코팅 소재 및 제작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노력 끝에 오늘날 사피아노 가죽 가방은 프라다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됐다. 프라다 사피아노 가죽 제품은 일반 가죽 제품보다 스크래치에 강하고 생활 방수도 된다. 프라다는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사피아노 가죽을 발전시키며 제품에 적용하고 있다.

    1979년 미우치아는 사피아노 가죽만큼 실용적인 소재를 개발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가방 보호용 소재로 사용했던 포코노(pocono) 나일론 소재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행을 즐긴 마리오 프라다는 여행을 다닐 때 나일론 천으로 가방을 감싸 보호했는데 이는 나일론 소재의 장점인 내구성과 세탁의 용이함, 방수를 포함해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프라다 포코노 나일론 소재의 가방은 가죽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좋고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주었다. 기존의 ‘가방은 천연 가죽을 사용해야 고급스러워 보인다’는 인식을 바꾼 혁신적인 소재 선택이었다.

    또 한 가지 혁신은 역삼각형 금속 로고였다. 프라다의 나일론 가방은 기존의 인식을 뒤엎고 큰 로고나 현란한 장식 없이 브랜드 네임이 새겨진 작은 역삼각형의 금속 조각만으로도 시크함을 표현해 냈다.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가볍고 실용적인 프라다 가방은 정장이나 캐주얼에도 잘 어울려 소비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로 인해 미우치아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가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1985년 그는 포코노 나일론으로 제작한, 손에 들고 다니는 여성용 핸드백인 토트백(tote bag)과 등에 메는 가방인 백팩(back pack)을 출시했고 이는 프라다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됐다.

    성공한 여성의 상징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퍼스트 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퍼스트 런]

    2003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라는 소설과 영화가 성공하면서 프라다는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영화는 패션계와 패션 에디터들의 세계를 사실적으로 다뤄 화제가 됐다.

    또한 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실존 인물인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이자 패션계의 거물 안나 윈투어(Anna Wintour)를 모티프로 한 편집장 미란다 역할을 실감 나게 연기해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를 통해 프라다는 패션 리더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이면서,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문화를 대변하는 브랜드로 인식됐다. 또한 프라다는 ‘성공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도 성공했다.

    프라다는 또 한 번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2013년 미우치아가 1920년대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을 그린 패션을 재현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참여한 것. 그가 직접 나서 상류층의 화려한 의상을 2000여 벌 제작했고, 미우치아는 그해 오스카 의상상을 받았다.

    협업으로 혁신한 LG ‘프라다 폰’

    제네시스 프라다. 뉴시스.  LG 프라다 폰. [LG전자]

    제네시스 프라다. 뉴시스. LG 프라다 폰. [LG전자]

    2007년 프라다는 LG전자와 제휴해 LG 프라다 폰을 출시했다. 프라다 폰은 세계 최초의 풀터치 폰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패션과 전자의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모바일폰의 역사를 새로 쓴 상징적 모델이다. 2008년 LG 프라다 폰 II, 프라다 3.0 버전이 출시돼 선풍적 인기를 모았다.

    프라다는 예술과 건축, 영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는 것으로 패션 분야를 뛰어넘는 혁신을 보여주는 브랜드다. 예술, 건축과의 협업 시도는 1993년 폰다지오네 프라다(프라다 재단) 설립 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09년 프라다 재단은 세계적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서울 경희궁의 ‘프라다 트랜스포머’에서도 현대 아트 전시회를 열어 색다른 문화 활동을 선보였다.

    프라다와 현대차의 인연도 특별하다. 2009년 현대차는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를 후원했고, 양사 협력을 통해 특별 제작된 스페셜 에디션 ‘제네시스 프라다’ 3대를 서울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해 이목을 끌었다. 이후 2011년 5월 제네시스 프라다는 2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5.0리터 V8 엔진을 탑재한 ‘GP500’ 단일 모델 1200대를 한정판으로 국내에 출시했다.

    2012년 9월에는 3.8리터 V6 엔진을 탑재한 ‘GP380’이 추가된 ‘2013 제네시스 프라다’를 출시했다. 특히 2013 제네시스 프라다는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조인성의 차’로 등장해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13 제네시스 프라다는 고객들의 외관 차별화 확대 요구를 반영해 리어 범퍼 왼쪽 하단부에 ‘PRADA’ 로고를 새롭게 부착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외관 차별성을 강조했다.

    프라다는 프라다에서 영감을 받는다

    프라다는 남다른 역사와 아카이브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프라다의 패션 철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지적인 스타일로 프라다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프라다 그룹은 럭셔리 패션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답게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보호하는 사업에도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다.

    환경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프라다는 브랜드의 성장을 이끌어준 나일론 소재를 다시 돌아보며 환경문제를 새로이 조명했다. 이에 프라다는 2019년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바다에 버려진 낚시 그물이나 각종 폐기물을 재활용한 재생 나일론인 ‘에코닐(ECONYL)’로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 프라다는 2021년 말까지 기존 프라다의 나일론 제품을 모두 에코닐로 대체했다.

    에코닐 소재는 가볍고 면이나 캔버스 소재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며, 무기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22년 1월 프라다는 아디다스와 협업한 ‘리나일론 컬렉션’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프라다는 2020년부터 모피 사용도 중단하기로 해 동물애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처럼 브랜드 프라다의 혁신은 시대정신을 담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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