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호

20대가 스스로 ADHD 의심하는 이유

“회사에서 덤벙이로 인식될까 봐 무서워요”

  • 이나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dlskdud3790@naver.com

    입력2022-09-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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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 ADHD 환자 7.8%→19.6%

    • 단기기억력·집중력 약하고 소리에 예민

    • 학업과 사회생활에 영향 줄까 늘 불안

    • “약물치료 안 받아도 되지만…”

    [Gettyimage]

    [Gettyimage]

    졸업을 앞둔 대학생 김강연(25) 씨는 5월 3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ADHD(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남들보다 ADHD 점수가 높게 나온 그는 한 가지 일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컴퓨터를 하다가 주방에 가서 요리하기도 하고, 요리를 끝마치기 전에 청소를 시작한다. 문제는 한 가지 일을 시작한 지 10~20분 만에 다른 일을 하고, 시작한 일을 끝맺지 못한다는 점이다.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이 주로 앓는 병으로 여겨져 온 ADHD는 최근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청년에게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20대 ADHD 환자가 약 4배 증가했다. 2016년엔 20대 ADHD 환자가 6068명으로 전체에서 7.8%를 차지했으나, 2020년엔 2만4448명으로 19.6% 비중을 나타냈다.

    산만하면 ADHD?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20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가 약 4배 증가했다. [동아DB]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20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가 약 4배 증가했다. [동아DB]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은 산만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 중인 재수생 김희찬(20) 씨는 단기기억력이 좋지 않다. 종합심리검사의 일부인 웩슬러 지능검사에서 단기기억력에 해당하는 작업기억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암기과목을 상당히 못해요. 어떤 개념을 외워야 하는데 외우더라도 금방 까먹어요. 그래서 모의고사에서 사회탐구 과목은 5등급도 나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은 박우현(25) 씨는 욕구를 자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참지 못하고 흥얼거렸다. 친구한테 얘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수업시간이더라도 친구에게 바로 말해야 했다. 박씨는 “거의 매일 그런 일이 있어 선생님께 자주 혼났다”라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김은선(28) 씨는 집중력이 남들보다 약하고 주변 소리에 예민하다. 집중력이 약해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 어릴 때부터 2~3개월에 한 번꼴로 발목을 다쳤다. 피곤한 상태로 계단을 내려가거나 길을 걷다가 발목을 접질렸다. 오후에 집에서 공부할 땐 부모님이 걸어 다니는 소리나 떠드는 소리에도 신경이 쓰인다.

    “낮엔 시끄러워서 공부를 하나도 못 하는데 밤이 되면 고요하니까 항상 새벽에 공부해요. 근데 아침 6시, 7시까지 공부하다가 밤낮이 완전히 바뀌어서 생활 패턴이 이상해졌어요.”

    “약 먹지 않으면 말실수할까 걱정”

    ADHD 환자가 아닌 경우엔 약을 먹어도 증상이 낫지 않지만, ADHD 환자는 약물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확연히 나아진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재수생 김희찬 씨는 약을 먹은 후 집중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약을 먹기 전엔 30분 넘게 집중한 적이 없어요. 그림 하나를 제대로 완성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약물치료를 받고 미술학원에 가니까 처음으로 두 시간 넘게 집중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갑자기 그림을 잘 그리니까 학원 선생님이 놀라셨어요.”

    ADHD를 의심한 계기는 다양하다. 김은선 씨의 경우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친구는 처음엔 김씨를 그저 활발하다고 여겼다. 알고 지낼수록 그의 충동적 성격도 보게 됐다.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는 그가 자신이 알고 있는 ADHD에 해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ADHD 검사를 추천해 줬지만 김씨는 번거로워 따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면서 낮은 집중력 탓에 불편함을 느껴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중이 더 잘됐으면 했어요. 아무래도 기업 인·적성 시험을 볼 때 집중력이 많이 필요하고 아는 문제여도 실수로 틀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ADHD는 다른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대학생 정예현(26) 씨는 우울증을 앓아 최근 1년간 항우울제를 복용했다. 약을 끊고 우울증이 사라져도 해결되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거나 시간을 지키는 일이 여전히 어려웠다.

    “항우울제를 끊고 해결 안 되는 증상이 있어 집 주변에 있는 다른 병원을 갔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께서 제 주의력에 문제가 있다며 ADHD가 의심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김희찬 씨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4월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병원에 방문할 때 ADHD 검사를 같이 받았다. 그는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ADHD 탓에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병원에서도 ADHD가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제가 힘들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ADHD가 원인이었어요. 공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하지 못하니까 힘들었어요.”

    ADHD 진단을 받은 20대들은 자신이 가진 질환이 학업이나 사회생활에 영향을 줄까 봐 늘 불안함을 느낀다. 프론트엔드 개발자인 박우현 씨는 약을 먹지 않은 날엔 어느 순간 회사에서 멍 때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까먹고 약을 회사에 못 챙겨 가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혹시나 말실수할까 걱정돼 다른 사람들에게 말 걸기가 무서워지거든요.”

    김강연 씨는 2021년 2학기 때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이전에 연구실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김씨는 처음엔 인턴 동기보다 실험을 익숙하게 진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기는 실수 없이 실험을 진행했지만 김씨는 실험할 때마다 실수를 반복했다. 당초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지만 연구실에서 일한 이후 흥미가 떨어져 석사 과정 입학을 꺼리게 됐다.

    “같은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하면 익숙해져 실수가 줄어야 하는데 안 줄었어요. 용액을 10번 넣어야 하는데 숫자를 세다가 놓쳐 실험을 다시 해요. 사수는 괜찮다고 했지만 처음 일하는 인턴 동기보다 실수를 자주 하니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사회는 ADHD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박우현 씨는 ADHD를 일종의 성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사회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박씨는 “ADHD가 심각한 질환에 해당하지는 않다 보니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약물치료를 안 받아도 된다”면서도 “사회에 잘 적응하고 싶어 약 처방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김강연 씨는 주변의 시선 탓에 치료를 받기로 결심한 경우다. 그는 “취업해야 하는데 주의력이 부족하고 실수를 너무 많이 한다”며 “회사에 들어가면 ‘덤벙이’로 보일 텐데 그런 내 모습이 싫어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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