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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로 본 중국 | 윈난성

샹거리라엔 샹그릴라가 없다?

云 ‘세상의 끝, 새로운 세계’

  • 글 · 사진 김용한 | yonghankim789@gmail.com

샹거리라엔 샹그릴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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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명 이후에도 윈난의 독특한 자립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청초, 청말 윈난은 반란의 거점이 된다. 평서왕 오삼계는 윈난에서 군사를 일으켜 순식간에 중국 대륙의 절반을 휩쓸었다. 운귀·양광·복건 세 지역의 반란, 즉 삼번의 난(三藩之亂)은 강희제에게 최대의 시련을 안겼다. 청말에는 국정이 문란해지자 윈난 역시 가혹한 토지세와 금은광 분쟁에 시달렸다. 회족 두문수(杜文秀)는 베이징에 가서 탄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족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윈난 전체도 장악하지 못한 채 끝나기는 했지만 두문수는 술탄을 자처하며 16년 동안 회족 독립국을 운영했다.
항일전쟁 시기 장제스는 충칭을 임시 수도로, 윈난을 후방 지원기지로 삼았다. 후방기지의 임무 중 하나는 인재 양성이다. 서남연합대학은 피난온 베이징대, 칭화대 등 당대 최고 명문대 교수와 학생이 한자리에 모인 인재의 요람이었다. 운남육군강무당은 중국의 주더·예젠잉, 한국의 이범석, 북한의 최용건, 베트남의 보응우옌잡 등 4개국의 국방부 장관과 많은 전쟁영웅을 배출했다.



윈난은 그대로인데…

윈난의 역사는 이처럼 만만찮은 투쟁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멀고도 험한 변방, 사나운 이민족, 풍토병 등에 대한 중원인의 두려움은 소설에 적나라하게 투영됐다. 닿기만 해도 죽는 독천(毒川), 창으로 찔러도 죽지 않는 등갑병. 야만인들은 맹수를 부리고, 오독교는 거미, 지네, 두꺼비, 뱀, 전갈 등 기괴망칙한 동물의 독을 쓴다. 사악한 독을 쓰는 윈난 먀오족은 광명정대한 검법과 권법을 쓰는 중원의 명문정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21세기 삭막한 현대화에 시달리는 중국은 사유의 전환을 겪는다. 윈난은 잃어버린 인간미와 파괴된 자연을 되찾고 힐링할 수 있는 곳이 됐다. 이에 따라 야만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이해 못할 차이는 신비로움으로, 독천으로 상징되던 거친 환경은 깨끗한 자연으로 이미지가 180도 변했다.
실제로 윈난의 아름다운 자연과 개성적인 문화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해발 5000m가 넘는 위룽쉐산(玉龍雪山)과 하바쉐산(哈巴雪山), 그 사이에 낀 18km의 대협곡 후탸오샤(虎跳峽), 히말라야의 마지막 봉우리 창산(蒼山), 아름다운 호수 얼하이후(洱海湖)와 루구후(瀘沽湖).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삼강병류(三江並流) 지역에 나란히 흐르는 세 강은 장강의 원류 진사강(金沙江), 메콩강의 원류 란창강(蘭滄江), 중국과 미얀마를 관통하는 누강(怒江)이다.
다채로운 카르스트 지형은 창검이 도열한 듯한 석림(石林), 거대한 지하세계를 방불케 하는 구향동굴을 빚었다. 대리석 문양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해 중국인은 말한다. “베이징에 가면 만리장성에 올라야 하고, 시안에 가면 진시황릉의 보물을 봐야 한다. 상하이에선 사람을, 쑤저우·항저우에선 여자를 구경해야 한다. 그리고 윈난에서는 돌을 감상해야 한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복잡한 지형은 다양한 식생을 낳았다. 또한 ‘민족전시장’이라 불릴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어 다채로움을 더한다. 윈난의 500년 중심지 다리엔 바이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 리장엔 나시족, 루구후엔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모숴족, 라오스 접경지대 시솽반나엔 타이족, 다랑논으로 유명한 위안양엔 하니족이 산다.
하지만 이들이 옛날에는 없었나? 천하 정복을 위해 웬만한 풍광은 다 봤을 법한 쿠빌라이조차 “황제가 아니라면 윈난왕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왜 최근에야 각광을 받고 있는가. 윈난은 예전과 다름없되 중국인의 시선이 변한 것이다.



무릉도원의 그림자

산업화에 신물 난 서양인들이 오리엔털리즘의 시선으로 동양을 동경했듯이, 현대화한 중국인은 윈난을 동경한다. 이런 시각이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샹그릴라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원래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창조한 가상의 공간이다. 가상의 공간이기에 실존 여부를 따질 수도 없건만, 중국은 대대적인 탐사대를 파견하더니 윈난의 중뎬(中甸)이 바로 샹그릴라라며 이름마저 샹거리라(香格里拉)로 고쳐버렸다. 김윤식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일찍이 무릉도원이라는 멋진 이상향을 창조해낸 중국인들이 어째서 “그 좋은 자기 것을 헌신짝 모양 버리고, 한갓 케임브리지 대학생이 지어낸 ‘샹그릴라’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까”라고 탄식했다. 이제 속세에서 벗어난 이상향 샹그릴라는 단체관광객들로 바글대는 관광지로 변했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돈에 영혼을 팔아먹었다고 개탄하기도 힘들다. 중뎬은 낙후한 오지 마을로 인근 신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 텅빈 유령마을로 변할 위기에 있었다. 샹거리라로 개명하고 관광지로 변질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없어질 뻔한 마을이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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