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논란, 부진한 국내 주식시장에 울상인 투자자 폭발
대주주에 유리한 물적분할로 일반 주주 몫 편취 비일비재
한국 증시 고질병 보여준 카카오, 두산밥캣
세금·ETF 같은 잔기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못해
[Gettyimage]
그렇다면 난도를 좀 더 높여보자.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점쳐지는 상황, 우리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할까? 공화당이 추진해 온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바뀔 것 같으니 대미 수출기업일까. 아니면 민주당의 탈탄소 정책에 맞춰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일까. 모두 틀렸다.
정답은 한성기업이다. 한성기업은 게맛살 ‘크래미’를 만드는 회사다. 게맛살이 미국에 잘 팔려서가 아니다. 한성기업 대표가 조 바이든과 같은 대학(미 시라큐스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한성기업 대표의 나이 차이는 30살도 넘는다. 인연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한성기업은 대표가 바이든과 동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이든 테마주’로 분류돼 2020년 미 대선 당시 주가가 크게 올랐다.
한국 증시는 ‘단타용’?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는 모두 실제 벌어진 일이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심지어는 회사 대표가 유력 대권주자와 성이 같다고 테마주로 분류되는 일이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어떨 땐 재무제표보다 ‘오늘의 운세’가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같다.
주식으로 장난하는 거 아니라는 ‘가치투자자’들에게 ‘개미투자자’들은 항변한다. 그럼 대기업 주식은 뭐가 좀 다르냐고. 회사 비전을 보고 장기 투자하면 돈이 벌리느냐고.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10년 동안 그 주식을 소유할 의사가 없다면 10분도 소유하지 마라”고 했다. 만일 그가 한국에서 태어나 국내 주식에만 투자했다면 결코 지금 같은 수익률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주식을 10년 소유하는 동안 나온 배당금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만 했을 것이고, 사업이 잘돼 주가가 오를 만하면 회사는 핵심 자회사를 떼어내 물적분할을 단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2023년 12월 공개한 보고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될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내 물적분할 후 상장 비중은 8.5%로 미국(0.5%)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프랑스나 독일(각각 2%)에 비해서도 몇 배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는 자회사 물적분할과 대주주만 누리는 경영권 프리미엄, 소각 없는 자사주 매입 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이라며 ‘대주주와 일반 주주가 한배를 탈 수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주식은 근본적으로 대주주와 일반 주주 사이에 의결권 행사, 수익 배분 등에서 차별이 없어야 하지만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아 대주주가 일반 주주들을 편취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
현실이 이러하니 투자자, 특히 2030세대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주식을 ‘단타용(단기 매매용)’ 정도로만 취급한다. 속된 말로 ‘짤짤이’ 판과 다를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가치를 내다보고 장기 투자해 봐야 결국 대주주들 배만 불리니 그럴 바에는 테마주로 잠깐 투자해 단기 매매차익이나 챙기는 게 낫다는 것이다. 도박판 같은 테마주가 싫은 이들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미국 증시로 향한다. “국장(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격언으로 떠돈다.
물론 단기 투자를 미국에서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2023년 말 한 기사에서 “미국 유명 레버리지 ETF 상품 다수가 한국인 투자 비중이 20%를 넘는다”고 보도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여름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900억 달러(약 120조 원)를 오르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직전 해인 2019년의 10배다.
“금투세를 재명세(이재명세)로 부르자”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주식 투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부터 이어진 빅테크, AI 열풍으로 미국 주식 가치가 크게 오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투자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유튜브를 통해 미국 시장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증권사들이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거래비용을 낮추면서 부담도 크게 줄었다. 미국 주식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은 반대로 한국 증시 울타리도 함께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싫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시장, 그게 오늘날의 한국 주식시장이다.
절이 싫어 떠나는 중을 잡기 위해 정치권은 비기(祕器)를 내놓았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다. 금투세는 조세 형평성 제고 등의 목적으로 2020년 도입됐다. 당시 여야는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폐지하는 대신 금투세 도입에 합의했다. 소득이 3억 원 이하일 경우, 5000만 원 초과 금융투자소득에 금투세 20%와 지방소득세 2%가 부과된다. 3억 원 초과는 금투세 25%+지방소득세 2.5%.
원래 2023년 1월 1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윤석열 정부가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2년 연기했다. 2년은 한국 증시를 정상화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아니, 정부와 국회가 손 놓고 있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하겠다. 2025년은 예정대로 눈앞에 닥쳤다. 정치권은 금투세라는 격랑에 빠졌다.
줄곧 “시행 반대”를 외친 국민의힘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의 사정은 복잡했다. 여론을 보니 유예나 폐지로 가야겠는데 그랬다간 “부자 감세를 옹호한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주당이 추구해 온 납세자 부담 능력에 맞게 공평한 과세를 해야 한다는 응능원칙과도 상충한다. 저항 없는 과세가 어디 있겠냐만 금투세 시행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워낙 컸다. 오죽하면 “금투세를 재명세(이재명세)로 부르자”는 주장이 인터넷을 뒤덮을 정도였다.
9월 24일 더불어민주당은 금융투자세 시행과 유예로 편을 나눠 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뉴시스]
2030세대가 자주 찾는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튜브 채널의 여론은 대체로 금투세 시행에 부정적이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한국 증시에서 큰손들이 빠져나가 쭉정이가 될 거라는 우려가 많다. 심지어 금투세 폐지 여론은 민주당에 우호적인 커뮤니티에서조차 대단히 높았다. 한동안 금투세 시행과 유예·폐지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던 민주당의 태도가 한국 증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민주당으로선 금투세로 쏟아진 비난이 억울할 법도 하다. 금투세는 여야 합의에 따라 도입하기로 약속한 제도다. 도입 당시만 해도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폐지한다는 반대급부도 제공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놓쳤던 건 논리가 아니다. 감정이다.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국내 주식시장 때문에 울고 싶었던 투자자들에게 금투세 시행은 일종의 트리거였다. 민주당은 일순간 울고 싶은 친구 옆에서 말 잘못해서 뺨 맞는 ‘눈치 더럽게 없는’ 친구가 된 꼴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근본 해결책
금투세 도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표면적 이유 중 하나는 될 수 있다. 다만 본질이라고 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투자자도 거의 없다. 경제학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즉 다른 조건은 다 같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금투세 있는 미국 주식’과 ‘금투세 없는 한국 주식’ 중 어느 곳에 투자할까. 당연히 미국 주식이다. 앞의 가정도 무의미한 게 이미 많은 사람이 세금·수수료 등에서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한국이 아닌 미국 증시에 투자하려 하고 있다. 미국 기업 실적이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국 주식은 장기간 보유하고 있으면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있다. 즉 회사가 잘나가는 만큼 주주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설령 지금 당장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회사가 건실하기만 하면 언젠가 주가는 오른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주식은 어떤가. 장기 투자한답시고 주식을 계좌에 묵혀뒀다간 눈 뜨고 코 베이기 십상이다. 국내 대표 혁신기업으로 손꼽히는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카카오 주식을 산 주주들은 뱅크, 페이, 게임즈로 갈기갈기 찢긴 회사를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시가총액은 크게 늘어도 지수는 오르지 않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다. KB자산운용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4년까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 성장 규모는 7.7배로 8.7배인 미국 나스닥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수는 여전히 노무현 정부 때 돌파했던 2000포인트대에 머물고 있다. 차라리 유럽처럼 산업 전반적으로 경쟁력을 잃어 침체에 빠진 상태라면 이해라도 하겠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도 그 온기는 좀처럼 일반 주주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 문제로 시끄러웠던 7월, 두산밥캣 주주였던 외국인 투자자 션 브라운 테톤캐피털 이사는 한 세미나에서 “날강도 당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텍사스 건설 현장을 누비며 두산밥캣이 장기 투자할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놓친 변수가 있다면 두산밥캣이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종목이었다는 점뿐이다. 두산의 지배주주들은 두산밥캣 지분을 높이기 위해 껍데기만 큰 회사였던 두산로보틱스와 거의 대등하게 거래하는 기적의 상재(商才)를 펼쳤다. 비록 합병은 무산됐지만,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와중에 벌어진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논란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한국거래소는 9월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다. 시장 대표성(시가총액 400위 이내), 수익성(2년 연속 적자 또는 2년 합산 적자 배제), 주주환원(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 시장평가(전체 또는 산업군 50% 이내 PBR), 자본효율성(산업군별 ROE 순위) 등을 바탕으로 100개 종목을 담았다. 반응은 싸늘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거리가 먼 종목이 대거 포함됐다는 이유다. 앞서 논란을 겪은 두산밥캣, 주주환원에 인색했던 엔씨소프트가 그랬다. 세워놓은 기준에 맞춰 종목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책결정권자들과 일반 투자자 사이의 인식 격차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수치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주식은 심리다.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면 각종 지표를 끌어올린다 한들 효과를 보기 어렵다. 정부와 정치권은 세금이나 ETF 같은 잔기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 할 게 아니라, 시장의 잃어버린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배주주들이 개미투자자들 털어먹으려고 온갖 법적 기술을 동원하는 지금의 시장 구조가 바뀌는 게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금투세를 폐지한다고 한들 한번 떠난 국내외 투자자들이 다시 한국 증시로 돌아오긴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