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미·중 바이오 갈등, K-바이오에는 기회다

[바이오 인사이드] 반도체 다음은 ‘바이오 패권 경쟁’ 시대

  • 유수인 뉴스웨이 기자 suin@newsway.co.kr

    입력2024-11-12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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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바이오기업 겨냥한 美 생물보안법 급물살

    • 합성생물학 분야 세계 10위 모두 중국 기관

    • 원료·CDMO 경쟁 본궤도, 인도·일본도 기회 노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오른쪽)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아 ADC(Antibody-drug conjugate·항체-약물 접합체) 제조 시설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오른쪽)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아 ADC(Antibody-drug conjugate·항체-약물 접합체) 제조 시설 건설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중국 바이오기업을 겨냥한 ‘생물보안법안(Biosecure Act)’이 9월 9일(현지시간) 찬성 306표, 반대 81표로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미국 안보에 우려되는 해외 적대국의 바이오기업과 거래 제한을 뼈대로 한 것으로 계약 및 보조금·대출 지원 등을 금지한다. 제재 대상에는 우시바이오로직스·우시앱텍·BGI(베이징유전체연구소) 등 중국 5개 바이오기업이 포함됐다. 법안 유예기간은 2032년 1월까지다.

    최종 통과까지는 상원과 대통령 승인 과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당초 해당 법안이 규칙정지법안(Suspension of the Rules)에 포함돼 하원 전체 회의를 빠르게 통과했고, 상·하원과 대통령 모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아 연내 생물보안법 통과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규칙정지법은 하원 상임위에서 통과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법안을 수정 없이 원안대로 신속하게 통과시키는 절차다. 앞서 생물보안법안은 5월 15일 하원 상임위에서 압도적(찬성 40, 반대 1)으로 통과된 바 있다.

    美 위협하는 중국 바이오 기술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앞세워 첨단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했다. 관세, 기술, 금융(투자) 등의 대(對)중국 견제를 심화했고, 바이든 행정부 이후 이행 수단을 강화하면서 대상과 범위를 구체화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산업 경쟁력 저하, 무역적자 심화 등 경제 여건이 악화되면서 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은 바이오산업으로 확산했다. 특히 중국은 제약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과 원료 공급, 신기술 개발 속도 격차를 빠르게 줄이고 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바이오, 에너지, 환경, 인공지능 등 64개의 핵심 기술에서 최근 5년간(2019~2023) 연구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국가 순위를 분석한 결과, 중국은 57개 기술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 분야 핵심 기술에는 합성생물학, 바이오제조, 신규 항생제·항바이러스제, 유전공학, 유전체 시퀀싱·분석, 핵산 및 방사선 의약품, 백신·의료 대응 기술 등 7개 기술이 포함되는데, 이 중 중국이 4개, 미국이 3개 기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합성생물학에서 세계 최고 10개 기관 중 10개 모두를 보유하고 있고,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도 57.7%를 차지해 13.1%를 차지한 2위 미국보다 4.4배 많았다. 바이오 제조에서도 세계 최고 10개 기관 중 9개를 보유하고 있고, 영향력 있는 논문 점유율도 28.5%로, 2위 인도(10.3%)보다 2.8배 많았다.

    미국이 위기감을 느끼며 중국 바이오기업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자 한국, 인도, 일본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 바이오기업 약 80%가 중국 CDMO 기업에 의존하고 있어 빈자리를 대체할 만한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5월 미국바이오협회(BIO)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중국 CDMO에 대한 의존도 및 중국 CDMO와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 기업 124개사 중 79%는 중국에 기반을 두거나 중국이 소유한 제조업체와 최소 1개 이상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3분의 2 이상은 직원 수 250명 미만의 신흥 바이오기업이었다. 또 설문 응답 기업의 74%는 전 임상 및 임상 서비스를 위해 중국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다고 밝혔으며, 응답 기업의 30%는 승인된 의약품의 제조를 위해 중국과 연계된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 중국 대표 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매출 절반은 북미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中 우시 빈자리 노리는 亞 CDMO

    국내 기업 중에는 우시바이오로직스와 글로벌 경쟁 우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수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023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바이오의약품 CDMO에서 9.9% 점유율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위는 스위스 론자(25.6%)였고, 이어 우시바이오로직스(12.1%), 미국 캐털란트(10.1%) 순이었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글로벌 CDMO 기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규모·품질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가동 중인 1~4공장으로만 60만4000L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현재 짓고 있는 5공장(18만L)까지 더하면 78만4000L까지 확장 가능하다. 여기에 8년 뒤 2032년, 각 18만L 규모를 갖춘 6~8공장이 완공되면 총 생산능력은 132만4000L에 이른다. 또한 글로벌 수요 대응을 위해 차세대 모달리티(치료접근법)인 항체약물접합체(ADC) 전용 생산 공장도 짓고 있다. 해당 공장은 연내 가동이 목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O(위탁개발) 분야에서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강점은 압도적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한 CMO(위탁생산) 부분이지만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초기 단계의 CDO에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CDO 역량까지 갖춘다면 우시바이오로직스의 물량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이 물량이 상업적 생산으로 연결되는 CMO로까지 확장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최근 CDO 플랫폼 및 서비스를 총 9종까지 늘리며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고객사들의 수주 문의도 잇따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중소기업들도 중국 CDMO 물량을 흡수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는 생물보안법 수주 물량에 대비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9월 모회사인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900억 원을 확보했다. 차바이오그룹의 미국 CDMO 자회사인 마티카바이오테크놀로지는 기존 항체 의약품과 차별화된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분야 CDMO 서비스를 기반으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도, 일본 등 경쟁력을 갖춘 아시아 CDMO업체들도 생물보안법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혜택을 받기 위해선 정부 주도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후지필름의 CDMO 자회사인 후지필름다이오신스바이오테크놀로지는 202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동물세포배양 바이오의약품 CDMO 생산을 위한 20억 달러(약 2조7000억 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4월에는 제조 시설 확장을 위해 12억 달러(1조6600억 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초기에 투자한 시설은 오는 2025년, 이번에 추가로 투자하는 시설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후지 측은 해당 공장이 완공되면 북미에서 가장 큰 세포배양 바이오의약품 CDMO 시설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GC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일본, 미국, 유럽 3개 대륙에 걸쳐 7개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2023년 12월에는 일본 내 최대 규모 동물세포배양시설 건설계획을 공개하기도 했다. 500억 엔(3억5000만 달러)을 투자해 일본 요코하마 테크니컬센터에 바이오의약품 CDMO 생산 역량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인도는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CDMO 시장 성장이 가팔라지고 있다. 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인도 CDMO 시장은 2023년 196억3000만 달러(26조 원)에서 2029년 446억3000만 달러(59조 원)로 연평균 14.67% 성장이 예상된다. 특히 인도는 낮은 연구개발(R&D) 및 제조 비용, 숙련된 인력, 특정 시장에 대한 근접성, 위험 공유 및 운영 경험과 같은 요소를 갖춰 글로벌 제약산업 파트너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인도 제약 시장에는 약 3000개의 회사가 보유한 1만500개의 제조 시설이 있으며, 이 중 최소 100개사는 CDMO 전문기업이다. 인도 CDMO 기업의 생산 비용은 미국과 유럽에 비해 35∼40% 저렴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종적으론 ‘원료’ 잡아야… 품질 경쟁력이 관건

    인도가 바이오의약품 주요 생산 국가로 부상한 배경 중 하나는 정부 지원 정책이 꼽힌다. 인도 중앙정부는 인도의 바이오산업 규모를 키워 세계 주요 산업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의약품 자급률 제고의 일환으로 2020년 KSM(시료), DI(의약품 중간체), AIP(원료) 생산 연계 인센티브 제도(PLI)를 시행하기도 했으며, 제도개선을 통해 인도의 제조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원료의약품은 세계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아 미·중 갈등의 최대 수혜 분야로 꼽히고 있다. 원료의약품은 시장 및 가격경쟁이 심해 국내외 기업 대부분이 값이 저렴한 중국이나 인도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글로벌 원료의약품 공급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보여준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2022년 기준 중국에서 수입한 원료의약품 규모만 1조2000억 원(9.1억 달러)에 달한다. 인도도 미국 시장 원료의약품 점유율 24.4%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급국이다. 원료의약품 수출액은 인도 총 매출의 41.6%를 차지할 정도다.

    원료의약품은 의약품의 품질, 안전성 및 효능을 결정하는 중요한 핵심 원료다. 주로 합성·발효·추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조되며, 각각의 제조 과정은 원료 특성과 최종 제품 목적에 따라 채택된다. 제약사 대부분은 모든 원료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자체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워 CDMO를 활용한다. CDMO 기업들이 특화된 장비와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적 공정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맥시마이즈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원료의약품 제작 시 CDMO를 활용할 경우 제조 비용이 30%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원료의약품 CDMO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원료의약품 CDMO 시장은 1180억9000만 달러(약 163조6136억 원) 규모로 평가되며, 오는 2029년까지 연평균 8.61%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원료의약품은 의약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직접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에 품질관리와 안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큰 도전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글로벌 원료의약품 CDMO 시장 기회는 고효능 원료의약품(HPAPI) 성분에 있을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투자도 필요해 보인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결국은 원료를 잡아야 한다. 최근 인도에서도 생물보안법안의 기회를 잡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인도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품질 이슈가 크다”며 “품질 면에선 한국이 우세하기 때문에 우리 기업들이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투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간한 ‘2023 식품의약품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도는 11.9%로 10년 전인 2013년 31%에 비해서도 크게 감소했다. 전년과 비교해서도 반토막 났다. 국산 자급화에 필요한 정부 지원으로는 약가 우대, 연구개발(R&D) 지원, 세제 혜택 등이 꼽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원료의약품 CDMO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강점인 생산 역량을 부가가치 확대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라면서 “합성의약품 CDMO의 경우 중국와 인도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이른바 대량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려면 산업 활성화와 원료의약품 자급도를 올리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내 원료의약품을 활용한 완제약에 대해 가격을 우대해 주는 정책을 좀 더 전향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CDMO 사업은 공급망에서 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글로벌 제약사와의 거래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대응 방안 마련이 필수적이다. 최근 주요국들은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환경, 인권 이슈 등을 활용하는 추세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수석연구위원은 “반도체,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글로벌 원청 기업이 주요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를 요구하던 관행을 그대로 옮겨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내 한 CDMO 기업 관계자는 “최근 해외 대형 제약사들은 CDMO 기업을 선정하는 주요 판단 지표로 ESG 수준을 활용하고 있다”며 “지속가능경영 능력이 떨어질 경우 글로벌 CDMO 사업을 영위하는 데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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