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이제 저는 ‘명의’가 아니라 ‘명환(名患)’입니다”

[사람 속으로] 척추 명의에서 파킨슨병 환자로 박춘근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10-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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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워서 들어갔다 걸어 나오는’ 기적의 척추 명의

    • 신경외과 집도의에게 파킨슨병은 사형선고

    • ‘오십견’인 줄 알았는데…아집 때문에 놓친 조기 치료

    • 변비, 수면장애 전구증상 무심코 지나쳐 병 키워

    • 완치에 매달리지 말고 삶의 질 높여라

    •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가장 경계·대비해야 할 질환

    • ‘행복 호르몬’은 스스로 만드는 것, 절대 포기하지 마라

    박춘근 교수와 부인 정숙희 씨. 박 교수는 자신과 같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슨 수를 쓰든지 증상을 완화하며 오래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해윤 기자]

    박춘근 교수와 부인 정숙희 씨. 박 교수는 자신과 같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무슨 수를 쓰든지 증상을 완화하며 오래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해윤 기자]

    2010년 7월 박춘근(72)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주임교수는 파킨슨병 확진을 받았다.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결과 왼쪽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중뇌의 흑질 신경세포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도파민은 흥미, 쾌락, 집중력, 성취감, 동기부여, 삶의 의욕 같은 감정 조절에 관여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린다. 또한 운동신경을 자극하거나 억제하는 등 인간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조절해 주는 기능을 한다. 도파민 결핍에서 오는 대표적 질환이 파킨슨병이다. 물컵만 쥐어도 손이 덜덜 떨리고, 관절이 굽고, 자세는 구부정해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결국 거동조차 못 하게 된다.

    “제게 파킨슨병은 사형선고예요. 암하고 다를 게 없어요.”

    섬세한 손놀림이 생명인 외과 집도의에게 운동장애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이라니. 환갑도 지나지 않은 나이였다. 정확히는 58세 생일을 막 지난 터였다. 박 교수는 확진 판정을 받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도 잠시, 전국에서 몰려드는 환자들을 어찌할지부터 걱정했다. 병원 측에 발병 사실을 알리고 수술 스케줄을 조정한 뒤에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 침묵. 아내 정숙희 씨는 평생 척추 수술 등 병원과 교회밖에 모르던 남편에게 닥친 크나큰 불행에 할 말을 잊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멍하니 앉아 오랫동안 속울음만 삼켰다.

    박 교수는 1998년 국내 최초로 골다공증성 척추체 골절 환자에게 ‘척추성형술’을 시행한 뒤 명의 반열에 올랐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던 환자가 몇 시간 만에 ‘누워서 들어갔다 걸어서 나오는’ 치료로 알려진 이 시술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가 한 달 평균 200명에 달했다.

    불치병의 미로에서 길 잃은 척추 명의

    10년쯤 지나자 그가 도입한 척추성형술은 척추외과를 표방한 병·의원이라면 어려움 없이 시행하는 ‘국민 시술’로 자리 잡았다. 그사이 박 교수는 풍선척추성형술, 경요추부 인공디스크 수술, 새로운 척추내시경 수술 등 더욱 발전된 척추외과 신기술과 새로운 수술 접근법 및 삽입물 등을 소개하며 수많은 의사를 교육하는 의사가 됐다. 2006년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주임교수, 2008년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신경외과 과장이자 척추센터 소장 자리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학술 활동도 활발히 했다. 2002년 척추신경외과학회 산하 최소침습척추학회를 창립했고, 2004년 국내에선 최초로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척추 의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척추인공관절학회를 창립했다. 2009년 1월 20여 개국 400여 명이 참가하는 척추인공관절학회 아시아-태평양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척추인공관절학회 회장으로 선임돼 영국 런던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정상에 있던 그에게 파킨슨병이 찾아왔다. 박 교수는 이때를 “날개를 펼쳐 비상하자마자 파킨슨병이라는 강한 폭풍에 날개가 꺾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EBS ‘명의’에 출연했다.

    2011년 9월 방영된 ‘명의’에 그는 “맹신과 불신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신경외과 척추·디스크 전문의”로 소개됐다. 척추질환 환자들은 수술만 하면 통증이 깨끗이 사라질 거라는 맹신과 아무리 아파도 허리에는 칼을 대는 게 아니라는 불신 사이에서 방황한다. 무조건 수술을 해달라는 환자를 “물리치료 한 달 하고 오세요” 하고 돌려보내면 10명 중 7명꼴로 수술 없이도 좋아졌다. 반대로 시간이 지체될수록 악화할 우려가 있는 환자에겐 강하게 수술을 권했다. 그 위태로운 줄타기에서 박 교수는 환자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명의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파킨슨병이라는 미로에서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수술 후 으레 찾아오는 어깨결림이 외과의사의 직업병이라 생각했지 파킨슨병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끝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그는 “의사로서 마지막 악을 쓴 것”이라고 했다.

    “완치될 수 있는 병이라면 벌써 받아들였겠죠. 인정하는 순간 너무 비참해지니까요. 마치 내 머리에 총을 대고 쏘는 것과 같았어요.”

    ‘나는 환자다’ 인정하기까지 걸린 13년 세월

    박춘근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자신이 쓴 [신경외과 전문의 파킨슨병 실제 투병기]를 보여주는 박춘근 교수.  [박해윤 기자]

    박춘근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자신이 쓴 [신경외과 전문의 파킨슨병 실제 투병기]를 보여주는 박춘근 교수. [박해윤 기자]

    공식적으로 파킨슨병 환자가 된 지 14년. 올해 박 교수는 ‘신경외과 전문의 파킨슨병 실제 투병기’(바이북스)라는 책을 펴냈다. 극심한 피로감에 한 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자신의 투병 경험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 곧 파킨슨병 환자가 된 의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사명이라고 받아들였다. 수년 전부터 “신경외과 의사이며 파킨슨병 환자로서 아빠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큰딸 소언의 권유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께 ‘왜 하필 제게 이런 병을 주셨느냐’고 묻고 또 묻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죠. 매일 절망 속에 몸부림치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환자다’라고 받아들이니까 삶이 완전히 바뀌더군요. 파킨슨병 환자인 신경외과 의사의 시각에서 새로운 증상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치료 과정과 경과를 정리한 투병기를 쓰면 막 투병을 시작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고개는 15도쯤 왼쪽으로 기울고 말은 어눌하지만 두 차례 동영상 촬영에도 응했다. 공개된 영상들의 조회수를 합치면 100만 회를 훌쩍 넘는다. 그 영상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한결같이 “평생 환자를 위해 일해 온 의사로서 본인의 병을 드러내기 어려웠을 텐데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박 교수 자신도 책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직업적으로나 전문 분야에서 정상에 도달하였던 나에게 닥쳐온 파킨슨병이었지만 의사로서 어떤 특혜도, 예외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한 명의 파킨슨병 환자일 뿐이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13년의 긴 세월이 걸렸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의 자긍심보다는 환자로서 긍정적 사고와 인내심이다.”

    9월의 마지막 날 경기 수원의 자택에서 만난 박 교수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친 뒤 병원으로 출근할 때처럼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휠체어에 앉아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만큼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피부는 맑았고 표정은 밝았다. 환자로서 긍정적 사고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는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인터뷰하는 박춘근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박해윤 기자]

    휠체어에 앉아 인터뷰하는 박춘근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박해윤 기자]

    ‌“파킨슨병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허니문(파킨슨병 환자가 초기 약물치료만으로 정상인처럼 지낼 수 있는 시기)’을 전후로 갖가지 증상이 나타나는데, ‘불치병이니 어쩔 수 없다’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이후에는 진통제, 안정제로 버티는 거죠. 의사로서 완치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간 이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환자의 처지에서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살아갈 의욕이 생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진정한 명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현대의학이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얻은 뒤 10여 년간 육체적·정신적 고통 속에 성숙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 이성희 연동교회 원로목사는 그에게 ‘명의’를 넘어 ‘명환(名患)’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상처받은 사람이 치료의 전문가가 된다”는 말처럼 명환이 된 박 교수가 진정한 명의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명환이란 완치에 매달리지 않고, 자기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조그만 증상이라도 전문적 치료를 받아서 그때그때 해결하며 삶의 질을 유지하는 적극적인 환자입니다. 명환이 돼야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투병 과정에서 새로운 증상이 발현될 때마다 하나하나 치료하다 보면 삶의 질이 바뀐다는 사실을 저를 통해 증명하고자 합니다.”

    걷다가 꽈당, 자다가 벌떡, 아집 때문에 놓친 조기 치료

    국내 파킨슨병 환자 수는 13만 명이 넘는다. 10년 전 8만 명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증가세다. 발생률은 전체 인구 가운데 약 0.3%에 불과하지만 연령층을 높여서 살펴보면 65세 이상 인구 중 2%, 85세 이상에서는 4%로 급격히 증가한다. 2025년 초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진입을 앞둔 우리에게 파킨슨병은 가장 경계하고 대비해야 할 질환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파킨슨병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파킨슨병의 전구증상(prodromal stage)으로 변비, 수면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전구증상이란 어떠한 질환이 임상적 진단을 받기 전 그 질환과 무관한 듯 나타나는 임상증상을 가리킨다.

    막상 환자가 되고 보니 조기 진단과 치료 기회를 놓친 것이 뼈아플 뿐이었다. 오히려 파킨슨병 전구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애써 다른 데서 원인을 찾고 방치하거나, 엉뚱한 치료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그에게 나타난 대표적 전구증상이 변비와 수면장애였다.

    “진단 5년여 전부터 변비가 심해지더니 1년 전쯤 해외 학회에 갔다가 일주일째 변이 안 나와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호텔 화장실에서 일회용 장갑을 끼고 돌처럼 딱딱해진 변을 파내야 했지요. 두 번째 전구증상은 렘수면(rapid eye movement sleep)행동장애입니다. 자다가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나다 부딪혀 이마가 찢어지고 입술이 찢어졌는데도 그냥 잠투정이나 잠꼬대라고만 생각한 겁니다.”

    파킨슨병은 운동신경 조절 능력 장애로 인한 질환이다. 가만히 있어도 손발이 떨리거나, 근육이 경직되고, 자세가 불안정해지고, 행동이 느려지는 것과 같은 운동성 증상이 나타나면 비로소 이 병을 의심하게 된다. 반면 변비나 수면장애처럼 질환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비운동성 증상은 놓치기 쉽다. 박 교수는 “파킨슨병의 비운동 증상으로 렘수면행동장애, 후각 소실, 변비, 소변 기능 장애, 기립성 저혈압, 지나친 낮잠, 우울증 등 여러 가지인데, 50대 이후 이 중 두 가지 이상 증상이 관찰되면 파킨슨병을 의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실 진단 3년 전부터 박 교수는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고생했다. 어깨에 이어 무릎관절 통증이 생겼고 그 무렵 자주 넘어졌다. 뒤에서 누가 부르면 급히 돌아보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 귀가 찢어진 적도 있다. 그때마다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 탓으로 돌렸다. 실제로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사지가 마비됐다가 회복된 적이 있다. 소아마비 장애도 극복한 그였기에 웬만한 증상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동료 의사들은 평소보다 손놀림과 행동이 느려지고, 경미하게 손이 떨리며 무표정해지는 등 그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파킨슨병 가능성을 꺼냈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의 어깨를 치료하던 정형외과 의사가 신경과 치료를 권했다. 영상의학검사 결과는 파킨슨병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치료를 시작하자 그토록 오랫동안 괴롭히던 어깨통증이 싹 사라졌다. 박 교수는 “의사로서 파킨슨병에 대한 나의 부정적 아집이 정확한 진단을 지연시켰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그는 “파킨슨병이 의심되면 돈 아까워하지 말고 뇌 영상의학 검사부터 해보라”고 충고한다.

    파킨슨병 환자는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물 치료를 받는다. 대표적인 경구 치료제가 레보도파(엘도파와 카비도파 복합제)다. 적은 양(최초 용량 200㎎)으로 시작해 최대치(1500㎎)까지 차츰 늘려나가며 정상인처럼 지낼 수 있는 허니문 기간을 가능한 한 길게 유지하는 것이 기본적인 치료 방법이다. 다만 약의 부작용이 심해서 복용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최대치로 갈수록 무도병, 도리깨질증, 근육긴장이상, 근육간대경련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이를 ‘레보도파-유발 운동장애(Levodopa-induced dyskinesia·LID)’라고 한다. 약물 투여 3년 이내에 LID를 경험하는 환자가 30%가량 된다.



    “어차피 다시 나빠질 텐데요”라는 의사의 말

    ‌다행히 박 교수는 2013년 가톨릭의대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모 척추전문병원 명예원장으로 2019년까지 근무하며 진료를 병행할 만큼 긴 허니문 기간을 보냈다. 비결은 꾸준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하지 근력을 키우는 운동, 상체 근육량 유지와 유산소운동 등 개인 운동을 주 2회씩 꾸준히 하고 물리치료를 받은 것이 비운동성 증상을 치료하는 데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느 재활의학과 의사에게 ‘이렇게 해보니까 좋아졌다’고 했더니 ‘어차피 다시 나빠질 텐데요’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의사가 파킨슨병 환자의 증상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고 수동적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무조건 환자의 증상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택해서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그중에는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완쾌되는 증상도 많습니다. 특히 개인운동이나 재활운동은 초기와 중기에 더 필요합니다. 말기로 가면 대부분 80세가 넘는데 질환이 없는 사람도 거동이 불편해지는 나이니까요. 파킨슨병 환자의 80%는 보행동결(걷는 도중 얼어붙는 것)이나 자세불안정증으로 넘어지면서 외상을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지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파킨슨병은 원인을 몰라서 불치병이지 증상을 치료할 수 없어서 불치병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에게도 허니문의 끝은 찾아왔다. 약물 부작용은 아니었지만 파킨슨병이 진행되면서 2019년 무렵 심한 자세 변형이 왔다. 서 있으면 상체가 앞으로 구부러지고 머리는 기억자로 뻗어서 상대방의 발만 볼 수 있었다. 척추 전문의로서 소견을 말하면 ‘두부가 좌측 전방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경흉추 후굴 변형을 동반한 중증 사경’이다.

    “척추외과 의사로서 한창 때 저 같은 척추 변형 환자가 찾아왔다면 주저 없이 수술 치료(경추 전후방 감압 및 유합 고정술)를 권했을 겁니다. 수술 치료는 목의 앞뒤를 열어 나사와 금속봉을 지지대 삼아 변형된 척추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머리는 세워지는데 목이 돌아가지를 않게 돼요. 재발률도 높습니다. 변형은 근육 이상에 의한 것인데 안정화를 위해 정상 척추뼈에 나사와 철심을 박으니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겠습니까. 일단 재변형 되면 남은 생을 땅만 보고 살아야 해요. 더 비참해지는 거죠.”

    이런 예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눈앞이 캄캄했다. 설령 수술은 받는다 해도 이 위험한 수술을 선뜻 집도해 줄 의사가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치료사가 팔꿈치 끝으로 통증 부위를 힘껏 누르거나 강직 부위를 아래위로 쓸어내리듯 마사지하고 목 부위는 세심하게 마사지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4개월 정도 꾸준히 하니 변형이 완화되기 시작했고, 6개월 정도 지나니까 어느새 떨어진 목이 돌아오고, 굽었던 척추가 펴지고, 사경이 완화되는 극적 변화가 나타났다. 박 교수는 지난해 척추인공관절학회에서 자신의 재활치료 경과를 발표했다.

    떨어진 목이 돌아오고 굽었던 척추가 펴지고

    “어느 신경외과 교과서에도 파킨슨병에서 관찰되는 척추 변형 수술 전에 재활치료를 먼저 시도해 보고, 증상의 개선이 없는 경우 수술 치료를 하라고 기술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물리치료만으로 완화된 제 상태를 보고 의사들 입이 쩍 벌어지는 겁니다. 의사들은 자기가 해봐서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잘 안 믿습니다. 그런데 저를 보고 안 믿을 수 있나요. 다들 속으론 ‘나도 해봐야지’ 했을 겁니다. 앞으로 저 같은 환자들이 비슷한 치료를 받아서 좋아졌다는 보고가 있으면 더 확실해지겠죠. 학회에서 제 사례를 발표한 이유는, 지금까지 척추 변형 환자의 치료가 수술 위주였다면 앞으로는 병의 원인을 따져서 근육 이상인지 뼈의 이상인지 정확히 판단한 후 치료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해도 해도 안 될 때 수술을 해라. 처음부터 손대지 마라’입니다.”

    파킨슨병은 시차를 두고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그중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주지만 누구에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 소변 기능 장애다. 박 교수는 파킨슨병 진단 6년 무렵부터 간헐적 요실금이 나타나더니 10년째부터는 화장실에 가는 도중 소변을 지리는 ‘절박뇨’가 빈번해졌다. 밤에 자다가 네댓 번씩 깨는 빈뇨 현상도 심해졌다. 후배 교수들에게 이런 증상을 상담하는 게 창피해서 혼자 해결해 보려 하다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결국 비뇨기과를 찾아갔다. 적절한 약물 치료로 증상을 잡고 나니 건강보다 자존심을 앞세운 어리석음에 한탄할 뿐이었다. 그 밖에도 진단 초기 렘수면행동장애는 수면제 처방으로 사라졌고, 현업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2021년경 찾아온 소외감, 박탈감, 생존 의지 저하, 불면증 및 피곤증 등 정신적 문제들도 역시 약물 치료를 시작한 뒤 빠르게 개선됐다.

    흔히 ‘사레가 든다’고 말하는 연하장애는 사소해 보이지만 파킨슨병 환자에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다. 실제로 파킨슨병 환자의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연하장애로 인한 흡인성 폐렴과 낙상에 의한 대퇴골절 또는 척추 골절이기 때문이다. 연하장애 검사를 한 뒤 후두부 전기자극 치료를 포함한 구강-후두부 근력강화 운동 등 재활치료를 통해 한결 좋아졌다.

    “짧은 외래진료 시간 동안 의사는 환자의 증세가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운동을 하고 있는지 묻고 처방하면 끝이에요. 환자에게 수면장애가 있는지 소변 장애가 있는지 우울증이 있는지 의사가 알 턱이 없죠.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담당 의사를 만날 기회는 3~6개월에 한 번, 길면 ‘1년 뒤에 봅시다’라고 합니다. 그사이 환자에게 생기는 수많은 증상은 치료하지 않으면 회복될 기회가 없어요. 충분히 개선 가능한 증상인데 방치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의사가 알아서 치료해 줄 거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의사를 만나면 ‘제가 왜 잠을 못 잡니까’라고 물어보세요.”

    박 교수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다양한 과의 협진 체제 구축과 함께 파킨슨병 전문병원과 요양병원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환자의 치료에 다양한 과의 유기적 협조가 요구되며, 만성질환이면서 여러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발현되므로, 적절하고 빠른 대책을 위해 각 증상에 전문성을 지닌 의료진이 상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요양병원이 있다면 파킨슨병 환자들의 삶의 질은 뚜렷하게 개선될 수 있다고 했다.

    박춘근 교수가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선물한 꽃 바구니. [박해윤 기자]

    박춘근 교수가 생일을 맞은 아내에게 선물한 꽃 바구니. [박해윤 기자]

    ‘선으로 가득해 넘쳐나는’ 만선(滿善) 박춘근

    “10여 년을 앓다 보면 환자들은 고마움을 잊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의 지지와 도움 없이는 어떤 치료도 받을 수 없어요. 제 집사람도 저를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몸무게가 80kg까지 나갔던 제가 한번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진단 초기에 밖에서는 긴장을 하니까 괜찮은데 집에만 오면 두어 번씩 넘어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를 일으켜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으니 이게 마누라 골병들게 하는 병입니다. 그럼에도 제 못난 성품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가족들의 슬픔과 섭섭함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환자는 가족들에게 고마워하고, 가족들은 환자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가족과 함께라야 행복한 병상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아내 정숙희 씨는 박 교수를 지켜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도파민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이 병은 가족들의 웃음마저 훔쳐갔다. 하지만 박춘근 장로와 정숙희 권사, 두 딸 소언·소하 가족은 말라버린 도파민을 사랑과 신앙의 힘으로 채우며 웃음을 되찾았다.

    박 교수는 두 번째 투병기를 준비하고 있다. 다양한 증상의 치료 과정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무도병 등 약물 치료 부작용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특히 파킨슨병 환자가 겪는 정신의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철 가톨릭의대 명예교수와 공동 집필하기로 했다.

    박 교수의 호는 만선(滿善)이다. 파킨슨병 확진을 받고 환갑을 맞았을 때 이성희 목사가 지어줬다. “이런 몸으로 사느니 차라리 이제 그만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 달라”며 울부짖던 그에게 ‘선으로 가득해 넘쳐나는 사람’이라니…. 신은 그에게 무엇을 더 원하시는 걸까. 박 교수는 “의사가 아닌 환자로서, 파킨슨병의 실체를 파악해 환자들에게 육체적·영적으로 의미 있는 투병 생활을 이끌어주는 새로운 역할을 주셨다”며 미소 짓는다. 마지막으로 그가 파킨슨병 환자들에게 당부한 말은 “포기하지 말라”였다.

    “무슨 수를 쓰든지 증상을 완화하며 오래 살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오래 살면 완치되는 치료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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