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사법 리스크’ vs ‘김건희 특검법’ 허송세월
중단된 출근길 대국민 직접 소통 ‘도어스테핑’
‘바이든 날리면’에 묻힌 ‘尹-바이든’ 48초 회동
첫 국무위원 탄핵으로 이어진 이태원 참사
체포동의안 가결 후 기사회생한 이재명
“여권 내부와 소통하며 주변 문제부터 정리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22년 5월 11일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11월 9일로 임기 반환점을 도는 윤석열 정부 전반기 2년 6개월은 ‘다사다난’이란 말보다 ‘이·사·김·특’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임기 전반기에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한결같이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두 이슈는 ‘이재명 사법 리스크’와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었다는 점에서다. ‘이사김특’을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전반기 임기 동안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한 주요 사건을 통해 윤 정부 2년 6개월을 돌아본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도어스테핑’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대통령은 국민 속으로
윤 대통령 취임 첫날인 2022년 5월 10일 0시.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전격 이전했다. 관저도 청와대를 벗어나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옮겼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던 청와대는 윤석열 시대 개막과 동시에 국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대통령실 이전’은 그의 10대 공약 중 하나였다. 취임과 동시에 속전속결로 공약을 이행한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대한 국민 여론은 찬반이 팽팽히 나뉘었다. 2022년 6월 7~9일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좋게 본다’는 여론과 ‘좋지 않게 본다’는 여론이 각각 44%로 동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가 ‘잘 한다’ 53%, ‘잘 못한다’ 33%였다. 전광석화 같았던 집무실 이전에 대해 대통령을 지지하는 층에서조차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던 셈이다.
충분한 협의 없이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이 추진되면서 비용과 보안 문제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됐다. 당초 윤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이전 비용은 496억 원이 들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야당은 대통령실 주변 정비와 관저 리모델링, 외교부 장관 공관 이전 비용, 정부서울청사 리모델링 비용 등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관련 비용으로 827억 원 더 집행됐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청와대 영빈관을 대체할 신축 예산 878억 원을 책정했다가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전액 삭감되기도 했다.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총 비용이 1조 원이 넘는다는 야당 주장에 대통령실은 ‘이전 비용은 최초로 밝힌 496억 원이 맞다’며 ‘뒤따르는 비용은 부대비용’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후 새롭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가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 즉 ‘도어스테핑’이었다. 관저와 집무실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 있을 때에는 기자들이 출근하는 대통령을 마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후 기자들이 출근하는 대통령을 청사 로비에서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해 질문하는 게 가능해졌다.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2022년 5월 11일 시작된 도어스테핑은 대통령과 언론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란 점에서 초창기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고, 몇 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반년 만인 11월 18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48초’ 만남과 ‘바이든 날리면’ 논란
2022년 9월 15일 유엔총회를 1주일 앞두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유엔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하고 시간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문제와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원 달러 상승세를 해소할 방안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등 민감한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은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 참석 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동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무대 위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48초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주최한 리셉션에 참석해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짧게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9월 18일 런던에서 개최된 찰스 3세 영국 국왕 주최 리셉션, 이날(21일)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 및 바이든 대통령 내외 주최 리셉션 참석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IRA, 금융 안정화 협력, 확장억제에 관해 협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은 한미 정상회담이 ‘48초 환담’으로 대체된 것은 ‘외교 참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과 환담 후 박진 장관과 이동하면서 윤 대통령이 미 의회를 겨냥해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MBC 보도가 나와 파문이 크게 일었다.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논란이었다.
외교부는 MBC에 대해 윤 대통령 발언을 보도하는 과정에 내보낸 자막의 정정보도를 청구했고, 1심은 MBC에 정정보도를 명했다. MBC는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방송심의위원회는 1심 판결을 근거로 MBC에 법정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을 의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9월 26일 방심위 처분에 대한 MBC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바이든 날리면’ 후유증이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첫 국무위원 탄핵으로 이어진 이태원 참사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해밀턴 호텔 서편 골목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던 수많은 인파가 몰려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했다.
사고 원인은 핼러윈 행사를 즐기려는 10만 명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 내리막길에서 인파가 넘어지면서 다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었다.
사상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해밀턴 호텔 옆 골목은 좁은 내리막길로 번화가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시작해 대로변인 이태원역 1번 출입구와 이어진 통로였다. 이 때문에 이태원역에서 세계음식거리로 이동하려는 인파와 대로변으로 나오려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인파가 더욱 밀집했고, 내리막길 중간 지점에서 몇몇 사람이 넘어지면서 사람들이 그 위로 쌓여 피해가 커졌다.
이날 사고는 서울 시내 대규모 집회를 통제하느라 경찰 병력이 분산돼 충분한 경찰 인력이 배치되지 못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2021년의 경우 핼러윈 축제 기간에 이태원에 3개 기동대 중대가 배치됐으나 2022년에는 기동대가 배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2022년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뉴스1]
이 전 서장과 함께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는 “용산구청에 밀집된 군중을 해산할 권한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박 구청장과 함께 기소된 용산구청 관계자 3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박 구청장에 대한 무죄선고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2023년 2월 8일 민주당 등 야 3당은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 책임을 물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은 헌정 사상 첫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167일 만인 2023년 7월 25일 재판관 9명 전원 일치로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다.
헌재는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이 재난안전법과 공무원의 성실 의무 등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헌법상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동시에 “각 정부 기관이 대규모 재난에 대한 통합 대응 역량을 기르지 못했고 재난 상황에서의 행동 요령 등에 관한 충분한 홍보나 교육·안내가 부족했던 점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규범적 측면에서 그 책임을 피청구인(이상민 장관)에게 돌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체포동의안 가결, 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
윤석열 정부 전반기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된 데에는 이 대표가 대선 패배 석 달도 안 돼 6·1 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하고, 그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도전해 당대표에 오른 것과 무관치 않다.
대선 직후 ‘개혁의 딸(개딸)’들이 이 대표의 정계 조기 복귀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여권에서는 각종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이 대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당대표를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당시 한 여권 인사는 이재명 대표를 향해 “‘불체포특권’이 있는 국회의원 후보자로 ‘셀프 공천’하고, 당대표에 올라 방탄조끼를 하나 더 입은 것으로도 모자라 기소 때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당헌까지 고쳐 ‘3단 방탄조끼’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한 이후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대북송금, 위증교사, 법인카드 유용 등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가 이뤄졌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23년 2월 16일 첫 구속영장 청구 때에는 △대장동 개발사업 과정에서 성남시에 손해를 끼치고, 민간 개발업자들에게 부당이득을 안겨줬다는 혐의 △성남시장으로 성남 FC 이사장을 겸임할 당시 4개 기업으로부터 성남FC 후원금 명목으로 133억 원가량을 받고, 그 대가로 해당 기업들의 민원 처리를 도와주는 등 제3자 뇌물 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그러나 6·1 선거에서 인천 계양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 대표는 회기 중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특권’으로 구속영장을 집행하려면 체포동의안이 통과돼야 했다. 2월 27일에 치러진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 139, 반대 138, 기권 9, 무효 11표로 출석의원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됐다.
2023년 9월 21일 국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재석 295명 중 찬성 149명, 반대 136명, 기권 6명, 무효 4명으로 과반 이상 찬성으로 가결됐다. [뉴시스]
이 대표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은 불구속 상태에서 이 대표를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2024년 10월 현재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대장동 등 개발 비리 △불법 대북 송금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경우 11월 15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고, 위증교사 혐의로 기소된 재판도 11월 25일 1심 선고가 나올 예정이다. 나머지 두 사건은 현재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11월 이 대표에 대한 두 건의 1심 재판 결과에 정치인 이재명의 운명은 크게 엇갈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만약 ‘무죄’가 나와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다면 차기 행보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지만, 반대로 중형에 해당하는 ‘유죄’가 나올 경우 차기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이 대표가 1992년 대선 패배 직후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한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다면 윤석열 정부 전반기가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점철됐을까.
윤석열 대 이재명 양자 대결로 치러진 2022년 3·9 대선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끝났다. 하지만 윤 대통령 취임 직후 경쟁자이던 이 대표가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하면서 마치 대선 연장전처럼 ‘윤석열 대 이재명’ 대결 구도는 2년 6개월째 계속됐다.
당정 갈등 불씨 된 ‘김건희 여사’
김건희 여사가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수난·생명 구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뉴스1]
2023년 3월 24일 제출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은 여당의 반대에도 국회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고, 법사위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그해 12월 2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1월 5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는 2월 29일 재의결에 나섰지만 재석 281인 중 171명이 찬성하고 반대 109명으로 부결됐다. 재의결 요건은 재석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은 재의결 실패 후 또다시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했다. 두 번째 특검법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뿐 아니라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 대통령 집무실 리모델링 수의계약 논란, ‘명품 백’ 수수 의혹 등이 추가됐다.
2023년 11월 27일, ‘서울의 소리’가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가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위치한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방문해 디오르 파우치를 김 여사에게 건네는 영상을 공개했는데, 두 번째 특검법에 이 내용도 추가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특검법은 21대 국회의원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그러자 22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이성윤 민주당 의원 등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물론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제기된 각종 여사 관련 의혹을 망라해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을 다시 발의했다.
9월 19일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10월 2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10월 4일 재의결 절차에 들어갔다.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석한 재의결에서 찬성 194, 반대 104, 기권 1표, 무효 1표로 부결됐다. 그러나 이 같은 재의결 표결 결과를 두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8명 중 최소 4명의 이탈표가 나왔다는 분석이 있다.
김건희 여사 관련 논란은 여야 정쟁뿐 아니라 여권 내부에서조차 갈등의 불씨가 됐다. 특히 22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동훈 비대위원장 측에서 명품 백 수수 의혹에 대한 ‘국민 눈높이 사과’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윤·한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김 여사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한 대표는 ‘공개 활동 자제’를 언급하는 등 김 여사를 겨냥한 발언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여야 단골 정쟁 소재로 작용했던 김건희 여사 문제가 당정 갈등의 불씨로 옮아간 것이다. 임기 반환점을 돈 이후 하반기 윤석열 정부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임기 전반기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소통 실패’ 때문”이라며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면서 ‘소통 정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불리해지면 소통보다 불통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개혁도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힌 뒤 적극 소통해 해결하려 하기보다 외면하면서 장기화되고 있다”며 “임기 하반기에 굵직한 국정 과제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우선 여권 내부와 적극 소통해 대통령 주변 문제부터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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