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LG·롯데·한화 이어 신세계, LG도…
부동산 자산유동화로 재무구조 개선, 마통 효과도
자산 고가 매입 등 소액주주 주주가치 훼손 논란
신세계그룹은 신세계프라퍼티가 보유한 경기 스타필드 하남 지분 51%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가칭 ‘신세계스타리츠’의 상장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사진은 2016년 9월 9일 경기 하남시에 위치한 스타필드 하남의 개장 당시 모습. [뉴시스]
대기업 리츠는 ‘스폰서 리츠’라고 불린다. 대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리츠로 만들면서 대기업이 최대주주이자 임차인이 되는 구조다. 대기업 리츠는 다른 리츠 대비 높은 안정성을 내세우면서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대기업을 믿고 리츠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남모르게 속앓이하고 있다. 국내 리츠에 만연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대기업 리츠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 대기업 리츠는 자산 고가 매입 논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최대주주인 대기업만을 위한 경영 행태를 보이면서 눈총도 받고 있다.
10대 대기업 중 4곳 리츠 상장
현재 국내에 상장된 대기업 리츠는 삼성FN리츠, SK리츠, 한화리츠, 롯데리츠 등 4개사다. 2019년 10월 롯데리츠가 가장 먼저 상장했고, SK리츠는 그보다 2년 뒤인 2021년 9월 상장했다. 이후 2023년 3월에는 한화리츠가, 4월에는 삼성FN리츠가 각각 상장했다.
대기업 리츠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리츠 상장을 준비하거나 상장을 검토하고 있는 대기업은 신세계와 LG 등으로 파악된다.
이 가운데 리츠 상장이 가장 빠르게 가시화하는 곳은 신세계다. 신세계는 조만간 신세계프라퍼티가 보유한 스타필드 하남 지분 51%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가칭 ‘신세계스타리츠’의 상장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LG그룹은 2023년 말부터 지주사 LG의 100% 자회사인 디앤오(D&O)가 리츠 사업 진출과 관련해 외부 컨설팅을 받으면서 리츠 상장 추진 사실이 알려졌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LG트윈타워. [뉴시스]
GS그룹은 GS건설의 100% 자회사인 지베스코자산운용이 AMC 예비인가 신청을 중장기 계획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말 리츠 상장을 검토한 바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집단의 공정 자산을 기준으로 올해 5월 발표한 국내 대기업 서열에 따르면 삼성이 1위, 2위는 SK, 3위는 현대차, 4위는 LG다. 롯데는 포스코(5위)에 밀려 6위로 내려왔고, 한화는 7위다. GS는 HD현대(8위)에 밀려 9위로 내려왔고, 10위는 농협, 신세계는 11위다.
이를 살펴보면 오너가 있는 국내 최상위 대기업들은 대부분 상장 리츠를 가지고 있거나 리츠 상장을 추진 혹은 검토한 셈이다.
상장 리츠 선구자 SK, 보험사 통해 상장한 삼성·한화
리츠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부동산에 투자해 발생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금융상품이다. 리츠는 장기 지속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만기가 정해진 부동산펀드와 차별화된다.
국내에서는 2001년 부동산투자회사법이 만들어지면서 리츠가 도입됐다. 하지만 상장 리츠는 지난 2018년까지 6개사만 명맥을 유지하는 등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사들인 홈플러스의 자산유동화를 위해 2018년부터 ‘홈플러스 리츠’ 상장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3월 상장을 위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 상장을 철회해야 했다.
국내 리츠 상장이 활성화한 것은 정부가 2019년 9월 ‘공모형 부동산간접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해당 안은 상장 리츠를 3년 이상 보유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연 5000만 원 이하 배당소득에 9.9% 분리과세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은퇴자들을 중심으로 리츠 수요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기회를 가장 먼저 활용한 대기업은 롯데였다. 2019년 당시 자금이 필요했던 롯데그룹은 롯데리츠를 설립하고 롯데쇼핑이 보유한 롯데백화점 강남점 및 구리점, 광주점, 창원점, 롯데아울렛 청주점, 롯데마트 서청주점, 롯데마트 의왕점,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을 롯데리츠에 매각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했다.
롯데그룹 외에 다른 대기업들은 상장 리츠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저금리 시대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회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IPO(기업공개) 등으로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리츠는 그다지 매력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대기업 리츠가 다시 등장한 것은 롯데리츠 상장 2년 뒤인 2021년 9월 SK리츠가 상장하면서다. SK그룹은 2005년 SK인천석유화학(옛 인천정유)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사옥인 서린빌딩을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에 ‘세일 앤드 리스백’ 형태로 매각했고 우선매수권을 부여받았다.
서린빌딩의 소유권은 이후 하나대체투자운용으로 넘어갔고, 2020년 이지스자산운용은 서린빌딩을 3.3㎡당 3900만 원, 총 1조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임대 만기를 앞두고 있던 SK그룹은 고가 매각에 따른 임대료 인상을 우려해 우선매수권을 사용했고, 자금은 SK리츠를 설립해 조달하기로 했다. SK리츠는 SK U타워도 추가로 편입해 2021년 9월 상장했다.
삼성과 한화그룹은 보험 계열사들이 리츠 상장에 나선 케이스다. 2023년 1월 1일부터 국내에서도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회계기준은 보험사들이 그동안 매입원가로 평가하던 자산과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제도인데 보험사들이 유동성 위험에 대비해 더 많은 현금을 보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K-ICS의 경우 보험사가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하락에 대비해 의무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준비금을 대폭 늘리도록 하는 규제가 담겨 있었다. 보험사들은 기존에는 부동산 자산의 6~9%만 준비금으로 보유하면 됐지만 K-ICS 도입 이후에는 최대 25%까지 확보해야 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같은 대형 보험사가 있다면 리츠 상장이 대안이었다. 리츠를 만들고 보험사들이 보유한 부동산을 리츠에 매각하면 직접 소유가 아니기에 준비금 부담이 줄어들고 부동산 매각에 따른 현금 유입으로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자본 확충 문제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한화리츠는 지난해 3월 상장 당시 한화손해보험 서울 여의도 사옥과 수도권 한화생명 사옥 4곳 등 계열사 빌딩을 편입했고, 지난해 4월 상장한 삼성FN리츠는 삼성생명이 주 임차인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삼성생명대치타워와 중구 세종대로 에스원빌딩 등 2곳을 자산으로 편입했다.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SK리츠의 ‘배신’
대기업 리츠는 임차인이 대기업이고 최대주주도 대기업이기에 타 리츠 대비 투자자들이 더 선호하는 리츠였다. 대기업 리츠는 타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리츠보다 1~2%포인트 낮은 배당수익률을 제시했지만 투자자 모집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SK리츠가 2023년 7월 3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명목은 기존 회사채를 상환하기 위한 유상증자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는 SK하이닉스를 지원하기 위한 유상증자였다. SK리츠는 그해 9월 3061억 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빚을 내 SK하이닉스의 수처리 시설을 1조1000억 원에 매입했다.
SK리츠 지분 43%를 보유한 최대주주 지주사 SK는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배정된 몫의 10%만 참여했고, 나머지 90%는 포기했다. 스폰서 리츠의 최대주주인 대기업이 주주들에게 유상증자 자금조달 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투자자 반발에 유상증자 청약은 결국 미달이었지만 결국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들이 실권주 물량을 인수하면서 자금조달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SK리츠의 SK하이닉스 수처리 편입은 대기업 스폰서 리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 훼손을 불러일으켰다.
역설적으로 SK리츠 사례는 대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이나 유상증자, IPO가 아니더라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눈을 뜨게 하는 계기가 됐다. 환금성이 낮은 부동산 자산을 필요시 제값을 받고 비교적 빠르게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입장에서는 리츠를 상장하면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두는 효과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높아진 금리에 따른 부담도 리츠 투자자들에게 어느 정도 떠넘길 수도 있었다. 리츠 투자자들은 금리인상에 따른 이자 지출 증가로 ‘배당 삭감(배당컷)’을 겪어야 했다.
롯데리츠를 살펴보면 상장 이후 2022년 6월까지 반기마다 주당 160원 내외를 배당했다. 하지만 2023년부터는 주당 100원 내외로 반기 배당금이 줄어들었다. 대기업 리츠는 안정적이라는 생각에 롯데리츠에 투자했던 투자자로서는 2023년부터 리츠 배당금이 급감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SK리츠나 롯데리츠 외 다른 대기업 리츠에 대해서도 투자자의 불만이 그치질 않고 있다. 특히 최근 금리인하가 가시화하면서 국내 상장 리츠가 잇따라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는데, 대기업 리츠 역시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투자자들과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한화리츠는 지난 8월 한화생명으로부터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을 8080억 원에 매입했고, 매입 당시 빌린 4500억 원을 갚기 위한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한화리츠 투자자들은 한화리츠가 한화빌딩을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한화그룹이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한화생명은 한화리츠 지분 46.18%를 보유하고 있는데, SK리츠 당시처럼 유상증자 과정에서 배정된 금액의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를 다른 소액주주에게 떠넘길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삼성FN리츠의 경우 최근 삼성화재 판교 사옥 편입을 위한 642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무난히 마쳤다. 삼성FN리츠는 최대주주인 삼성생명 등이 배정된 유상증자 물량에 100% 참여한 것이 유상증자 청약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삼성FN리츠의 삼성화재 판교 사옥 편입 역시 결과적으로 상장 시 약속한 배당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감추는 역할을 했다.
삼성FN리츠는 지난해 4월 상장하면서 향후 3년간 연 5.6%의 배당수익률을 약속했다. 이는 2024년 10월 말 이후부터 대출금리가 낮아질 것이라는 가정으로 제시한 것이다. 삼성FN리츠의 대출 이자율은 91물 CD금리에 1.1%가 가산되는 방식인데 10월 전까지 91일물 CD금리가 2.5% 이하로 떨어져야 향후 3년간 연 5.6%의 배당수익률이 가능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시중 대출금리는 크게 내려가지 않았고, 이번 유상증자가 없었다면 향후 논란이 불거질 수 있었다.
삼성FN리츠는 상표권 수수료에 대한 투자자의 불만도 적지 않다. 국내 대기업들이 받는 통상적인 브랜드 사용료는 매출의 0.2% 수준인데 삼성FN리츠는 임대수익의 0.5%에 달하는 높은 수수료를 삼성그룹에 지급하고 있다.
알짜 부동산을 토대로 한 대기업 리츠는 안정적이라는 이점이 크지만, 모회사의 마이너스 통장 역할을 한다는 비판과 모회사 빌딩 고가 매입으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 논란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국내 일반 상장 리츠와 차별화하고 장기적 주가 상승을 위해서라도 대기업 상장 리츠사의 책임감 있는 경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