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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자에 혹했다 ‘이자폭탄’ 맞는다

여성 전용 대출의 덫

  • 강지남 기자 | ayra@donga.com, 유설희 인턴기자 | 고려대 철학과 졸업

무이자에 혹했다 ‘이자폭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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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인근에서 주부 이모(40) 씨를 만났다.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최근 개인파산 신청을 한 그는 “2년 전 여성 전용 대출업체에서 남편 몰래 돈을 빌렸다.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1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 못 사 입은 지 오래고, 화장품도 샘플을 얻어 써요. 그런 거는 괜찮아요. 애들 학원비 내주지 못하는 게 제일 한스러워요.”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욕심이 화근이었을까. 이씨는 중학교 3학년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키우기엔 방 두 칸짜리 59.5㎡(18평) 아파트가 너무 비좁다고 생각했다. 방 세 칸짜리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택담보 대출, 저축은행 대출을 다 끌어모았다. 그러고도 모자란 3000만 원을, 남편 몰래 여성 전용 대부업체 4곳을 돌아다니며 마련했다. 이율은 연 36~38%로 높았지만, 담보를 요구하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대부업체들은 텔레마케터로 일하며 월 200만 원가량 버는 이씨의 소득증빙만 요구했을 뿐이다.

대부업체에 내야 하는 이자는 모두 합쳐 월 100만 원 남짓. 이씨는 44㎡(13평) 규모의 호프집을 차렸다. 열심히 장사해서 차차 빚을 갚아나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가게 임차료도 겨우 내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성 대출’로 집값 보탰다가…

이자 납부가 늦어지자 빚 독촉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여성 전용 업체니까, 여자 직원이 다른 곳들보다는 ‘친절하게’ 채권 추심을 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돈을 빌릴 때는 여자 상담원이 응대하더니, 빚 독촉 전화는 고압적인 말투의 남자로부터 걸려왔다. 그는 큰 빚을 진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수시로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덜컥 겁이 났어요. 돌려막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수에도 손을 댔네요.”

100만 원으로 시작한 일수 빚은 얼마 안 가 1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한 달 이자로만 대부업체에 100만 원, 일수에 200만 원을 내야 했다. 뒤늦게 남편에게 사정을 털어놨지만,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월 200만 원을 버는 남편도 뾰족한 수를 낼 수 없었다. 결국 이씨가 파산 신청을 하고, 남편은 신용회복 신청을 하는 지경이 됐다. 부부는 2억 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호프집 보증금 2000만 원을 돌려받아 빚 청산을 했다. 지금도 일수 빚으로 860만 원이 남아 있다. 그의 가족은 현재 서울 도봉구 상가주택에 세 들어 산다.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짜리다.

이씨의 사례는 폭발적으로 성장한 여성 전용 대출시장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 중 여성 비율이 2012년 41.5%에서 2015년 50.1%로 크게 뛰었다. 특히 주부 이용자의 급증세가 눈에 띈다. 전체 직업군 중 주부의 비율이 2013년 하반기 6.3%에서 2014년 하반기 8%로 상승했다.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여성이 크게 늘어난 것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은행 등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는 직업, 소득, 신용등급 등을 꼼꼼하게 따져 대출 여부를 결정하기에 자기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가 은행에서 돈 빌리기는 쉽지 않다. 2015년 시중은행에서 신규 대출을 받은 고객 중 여성 비율은 34%에 그친다.

반면 여성 전용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 절차는 일반 대부업체에 비해서도 매우 간단하다. 신용카드 연체 이력만 없으면 최대 300만 원가량의 소액에 한해 별도의 서류 제출 없이 바로 대출이 성사된다.


女心 자극 광고 주의보

이들 업체의 ‘여심(女心) 공략’ 마케팅 역시 대부업체를 찾는 여성 고객 증가에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TV 등에서 ‘여자 맘은 여자가 아니까’, ‘여성 우대 대출’ 등의 문구를 내세우는 대부업체들의 여성 전용 대출상품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 선두권의 한 여성 대부업체는 지난 한 해 동안 광고비로 117억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0% 여성 상담원이 대출을 안내한다’는 마케팅은 여성들이 대부업체에 대해 갖는 두려움 내지 반감을 없애는 데 유효했다. 최근 여성 전용 대부업체에서 300만 원을 빌린 주부 김모(42) 씨는 “여성 상담원이 안내해준다고 해서 안심하고 전화를 걸었다”며 “채권 추심을 당하더라도 다른 곳과는 달리 여성 상담원이 부드럽게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사실과 다르다. 몇몇 여성 대부업체에 문의하니 “대출 상담만 여성이 할 뿐, 채권 추심까지 여성 상담원이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여성 전용 대출상품은 여성 상담원이 대출을 안내해준다는 것 외에는 일반 대부 상품과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귀띔했다.

주부 박모(37) 씨는 남편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일을 쉬게 되자 여성 전용 대부업체로부터 생활비 용도로 300만 원을 빌렸다. 그는 “‘여자는 100일간 무이자’라는 광고를 보고 돈을 빌렸다”며 “중도상환 수수료도 없으니 금방 갚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무이자 마케팅에 혹하다간 자칫 이자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위 7개 대부업체는 무이자 혜택을 주는 기간이 끝난 직후부터는 남은 대출 약정 기간 법정 최고 금리를 부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A라는 대부업체에서 1년간 300만 원을 빌린다고 가정해보자. 이 업체는 신용 7등급인 고객에게 연 29.9%의 금리를 적용하는데, 여성 고객에 한해 ‘한 달 무이자 혜택’을 제공한다. 그러나 한 달 무이자 혜택이 끝나면 법정 최고 금리인 34.9%가 적용된다. 한 달 무이자 혜택을 받으면 연간 이자는 104만7000원이지만, 혜택을 받지 않으면 연간 이자는 89만7000원이다. ‘여성 혜택’ 때문에 오히려 15만3000원의 이자를 더 물게 되는 셈. 만약 3년간 이를 갚지 못하면 빚은 이자 포함 2배, 615만 원으로 불어난다.



대부업체 찾기 전에…

그런가 하면 주부 김모(35) 씨는 ‘소득 없는 가정주부에게도 즉시 대출해준다’는 여성 전용 대부업체의 TV 광고를 보고 해당 업체를 찾아가 300만 원을 빌렸다. 그는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지는 알아보지 않았다”고 했다.

한 개인회생 관련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많은 주부가 급전이 필요하다고 제도권 금융 대출은 알아보지 않은 채 대부업체를 찾아가 더 많은 이자를 물고 신용등급도 하락하는 위험에 처하곤 한다”고 답답해했다. 민영완 신용회복위원회 제도기획부장은 “일정한 소득이 없고 신용 등급이 낮은 여성이라도 햇살론, 바꿔드림론, 새희망홀씨 등 정부가 정책적으로 마련한 서민금융상품에서 대출이 가능하다”며 “대부업체를 찾아가기 전에 이러한 상품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 혹시 모를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신동아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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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남 기자 | ayra@donga.com, 유설희 인턴기자 | 고려대 철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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