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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학살 증언한 청년은 시체 더미 속 꼬마”

戰犯 카라지치에게 40년형 선고 권오곤 前 국제유고전범재판소 상임재판관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학살 증언한 청년은 시체 더미 속 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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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걸린 카라지치 재판 

▼판결 선고를 들을 때 카라지치의 태도는 어떻던가요. 밀로셰비치와 비교해보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카라지치가 법원 절차를 좀 더 잘 따라줬어요.밀로셰비치는 증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단식투쟁도 불사했습니다. 사건 규모가 카라지치의 3배에 달했지요. 피해 지역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등으로 방대하고요. 밀로셰비치는 저를 ‘미스터 권’이라고 불렀고, 재판부가 선고 시 주문을 낭독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카라지치는 재판관들을를 ‘각하(your excellency)’라고 불렀어요. 선고 시 주문을 낭독할 때도 일어나더군요.”

▼카라지치에게 왜 40년형을 선고했습니까. 검찰은 종신형을 구형했는데.

“보스니아의 유기징역 최고형이 40년이고,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감형 가능성이 없는 무기징역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보는 시각을 고려했습니다. 카라지치가 보스니아 내전을 끝내고 나서 미국 주도의 데이튼 평화협정에 따라 당수직에서 내려왔다는 점이 감경 사유였지요. ICTY는 형의 일부를 복역하고 행형 성적이 좋으면 가석방해주는데, 피고인이 이미 8년 정도 구금된 점도 참작했습니다(카라지치는 1995년 전범으로 기소됐으나 13년간 도피하다 2008년 7월 붙잡혔고 2009년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권 재판관께서 이번 재판의 판결문을 90분에 걸쳐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이 재판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요한 재판 중 하나’라고 보도했더군요. 



“90분을 예상했지만 판결문 2600쪽을 읽다보니 실제로는 100분이 걸렸습니다. 이번 재판은 e-Court(전자법원)의 표본입니다. ICTY 홈페이지를 통해 판결문의 한 대목을 누르면 사건 소개는 물론 관련 증인의 심문 과정도 영상으로 볼 수 있죠.” 

▼2009년부터 재판을 받아왔는데 왜 지금에야 판결이 난 건가요.

“증거를 확보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재판 녹취문만 5만 쪽, 공소장을 비롯한 각종 결정서가 9만 쪽, 증거 기록이 18만 쪽에 달합니다. 국제 재판의 문제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데, 저만 해도 밀로셰비치 재판 4년 반, 포포비치 외 6명 재판 4년, 카라지치 재판에 6년이 걸렸어요. 카라지치 사건의 경우 보스니아라는 큰 나라에서 일어났는데, 별지 사실만 178개가 있습니다. 가령 크라비츠아 창고에서 1000명을 죽인 게 하나의 별지 사실인 겁니다. 이 별지 사건 하나만 재판해도 국내에선 역대 최대 규모일 겁니다. 카라지치 재판을 위해 600명의 증언을 들었는데, 어떤 증인은 피해 사실이 너무 많아 10일, 3주, 한 달에 걸쳐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아빠 찾는 피투성이 꼬마


▼일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피고인의 건강 문제도 있어 일주일에 나흘만 재판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수시로 들어오는 신청사건을 재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판사들과 모여 재판에 거론된 증언, 법률의 중요성을 판단하며 정리했습니다. 나중엔 피고인은 많이 잡혀오는데 법정은 한정돼 있으니 법정을 오전반(오전 9시~오후 2시 15분), 오후반(오후 2시 45분~오후 7시)으로 나눠 운영했지요. 재판 과정이 보통 3개 국어로 동시통역되니 또 시간이 걸리죠. 대개 오전반 재판 후 도시락 먹고, 오후에는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죠.”

▼참혹한 증언을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가슴 아픈 증언이 많았죠.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하차시켜 들판에 세워놓고 기관총으로 쏴 죽였는데, 그 틈에서 대여섯 살짜리 꼬마가 피투성이가 된 채 ‘아빠, 아빠’ 하면서 나왔대요. 지휘관이 ‘아이를 쏘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아이를 쏘지 못했는데, 그 애가 청년이 돼 우리 재판의 증인으로 나왔어요. 증언을 듣는데 목이 메더군요.”

▼그가 어떻게 증인으로 출석할 수 있었나요.

“ICTY는 증인보호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증인이 증언 후 신원을 바꾸고 외국에 나가 사는 비용까지 부담합니다. 그러니 운영비가 많이 들어요. 우리가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와 자매 법원(sister court)인데, 두 재판소가 유엔 1년 예산의 10분의 1인 1억 달러(약 1140억 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장 검증도 갑니까.

“갑니다. 밀로셰비치 재판 때는 사건이 너무 많아서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는 데다 변호인이 없어서 안 갔습니다. 하지만 ‘포포비치 외 6인 사건’ 재판을 맡아서는 현장검증을 1번, 카라지치 때도 2번 다녀왔습니다. 포포비치 사건과 카라지치 사건 때는, 1995년 7월 세르비아인들이 스레브레니차라는 유엔 보호구역을 침범해 무슬림을 쫓아내고 1주일 사이 8000명의 보스니아인을 죽인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이후 크라비차 창고와 필리차 극장에도 갔습니다. 크라비차 창고에는 1000명 정도를 가두고 수류탄을 던졌는데 생존자가 3명이 있었고, 필리차에선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현장이 보전된 덕에 수없이 많은 핏자국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피해 현장이 남아 있으니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겠군요.

“불충분합니다. 2차 대전 후 뉘른베르크 재판소 때는 독일 SS부대가 학살한 과정이 일기로 꼼꼼하게 남아 있어 증거 확보에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유고 재판에선 그렇지 못했어요. 다행히 인공위성 사진, 보스니아 사람들이 기록해둔 통화도청 기록을 통해 핵심 증거 한두 개를 찾았지요. 1995년 7월 5일까지는 멀쩡하던 땅이 일주일 뒤인 7월 12일에 찍은 인공위성 사진에는 파헤쳐져 있어요. 이걸 바탕으로 집단매장지를 찾아낸 겁니다. 그런데 세르비아인들이 이걸 알고는 집단매장지에 묻힌 시신들을 포클레인으로 끄집어내 수백 km 떨어진 곳에 묻어버렸어요. 이것도 결국 찾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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