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특집 | ‘제재 융단폭격’ 후 북한

굶어 죽진 않지만 ‘차원이 다른 고통’ 온다

권력경제 휘청… ‘정권 아사’ 올 수도

  • 장진성 | 레이덴대 초빙교수, 前 북한 통일전선부 관료

    입력2016-05-02 08: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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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을 가진 철없는 김정은 정권’보다 ‘자유통일 한국’이나 북한의 개혁 정권이 중국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베이징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 대북 제재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중국 에 달렸다.
    중국 정부의 유엔 대북 제재 동참 후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이 폭등한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고난의 행군’ 때와 같은 대량 아사(餓死)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장담컨대 그런 형태의 비극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의 대량 아사는 식량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주민의 생존 공간 노릇을 하는 시장이 없어서였다. 북한 정권이 배급 능력을 잃으면서 방임적 시장이 허용됐고, 그렇게 등장한 자생적 시장이 나중엔 정권과의 대립적 시장으로 발전했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정권의 시장 개입이 한 축, 권력 기능이 시장에 흡수되는 것이 한 축이다. 정권과 시장의 대립적 공생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쌀값은 오히려 떨어져”

    시장이 위축되면 주민 아사 이전에 체제 아사가 일어나는 게 북한의 현재 경제 구조다. 이 같은 환경에서 북한이 중국의 압박을 무시하고 4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은 경제보다 체제 안전부터 챙기려는 관성 때문이다.



    그간 중국의 미온적 대북 태도 탓에 생긴 제재의 작은 구멍들이 빈곤한 북한 체제 유지에 기여했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북중 국경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에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했다. 평양은 최근 중국의 강력한 제재에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혼란의 경중을 파악하고자 필자는 북한에 거주하는 통신원들에게 시장 물가의 변화 양상을 물어봤다. 쌀 가격이 치솟았다는 국내 언론 보도와 달리 식자재 값의 변동은 크지 않았다.

    2월 초 핵 실험 이전과 비슷한 1㎏당 5000~5200원으로 유지되던 쌀 가격이 유엔 안보리 제재 이후에는 오히려 4600~4800원(3월 28일 기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례적으로 중국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대북 제재치고는 이로 인한 민생 경제의 혼란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얘기다.

    북한 거주 통신원은 “지난해 농사가 잘된 데다 국가의 배급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개인들의 식량 저축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5월로 예정된 당 대회와 관련해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자 정권 차원에서 쏟아내는 물량도 물가 안정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내부 통신원은 “국가가 군량미 비축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크게 줄인 조치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2009년 김정일은 “현대 전쟁은 1950년대처럼 3년의 장기전이 아니라 단 몇 개월 만에 끝나는 속전속결”이라며 군량미 비축 기간을 1년으로 줄이도록 했다. 이 때문에 ‘3년 묵은 배급 쌀’은 이젠 옛말이 돼버렸다.



    “기름 모자라 고생”

    북한 주민의 식량 소비 양태도 다양해졌다. 시장으로 말미암아 식습관이 다양해진 것이다.

    사회주의 배급제는 북한 주민의 식사를 ‘쌀밥’으로 통일시켰다. 식량 배급제 탓에 입맛까지 전체주의화한 것이다. 계층 등급에 따라 1일, 3일, 1주 단위로 나눠주던 간부 공급제는 위로 올라갈수록 식품 종류가 다양했다. 추가적 부식과 반찬 재료 등으로 사람을 차별한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배급제가 붕괴하자 주민들은 쌀을 구할 곳이 없었다. 대량 아사가 일어난 것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의 등장과 발전은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에서 다양화를 가져왔다. 쌀밥에서 빵, 떡, 국수 등으로 선택 폭이 넓어지면서 식문화가 바뀌었다. 이 같은 새로운 식습관이 쌀 가격 안정에도 기여했다. 과거에는 쌀 가격이 시장에서 가장 민감하게 움직였고 물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한 시장은 생존의 수단이 아닌 생업의 도구로 발전했다.

    유엔 제재 이후 북한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값이 오른 것은 휘발유다. 북한 내 통신원은 3월 초 중국 돈 6위안(북한 돈 7800원)이던 휘발유 1L 값이 4월 2일 기준 8위안(1만1400원)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중국의 대북 제재로 인한 현상으로 파악된다. 이 통신원은 “휘발유 값이 북한 시장 물가를 끌어올리는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정권이 대남 강경 자세를 보이면서 3~4월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맞서 군사 훈련 등으로 비축 기름을 탕진한 데다 5월 당 대회 준비와 맞물려 하루가 다르게 휘발유 값이 치솟는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이 과거엔 5, 6월 보릿고개 때 힘들었는데, 올해는 기름난으로 고생하는 것이다. 기름난 와중에 요동치는 곳이 외화 암시장이다. 북한 거주 통신원은 4월 3일 기준 중국 인민폐 1위안이 북한 돈 1350원이라고 전해왔다. 3월 28일에는 1위안이 1300원이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50원이나 올랐다. 중국의 대북 제재 소식이 환율 시장에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같은 환율 변동의 첫 피해자는 ‘기관경제’다. 북한에는 현재 국가경제가 없다. 사회주의라는 명분을 가진 터라 국가계획경제 붕괴 이후에도 경제정책 대안을 공론화하지 못했다. 이념과 현실의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의 경제화’

    평양은 역사 왜곡으로 만들어낸 수령 신격화를 유지하고자 폐쇄정치의 적(敵)인 개혁·개방에 결사반대해왔다. 북한 정권의 유일한 탈출구는 ‘권력의 경제화’다. 내부 시장을 허용하는 대신 대외무역 권한은 기관이 독점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당, 군, 국가안전부와 같은 특권기관이 시장의 우선 이익을 나눠 갖는다. 황금 알을 낳는 무역 권한은 주로 특권층이 휘두른다. 기타 하부 기관들은 업무 관련 소규모 무역이나 개인에게 건물을 임대하는 방식 등으로 기관을 유지한다.

    북한은 도매 시장은 ‘기관경제’, 소매 시장은 ‘개인경제’로 엄격히 분리해 정권의 시장가격 통제 기반을 확보했다. 정권 밖에서 가동되던 시장 논리가 기관경제의 합법적 명분이 되는가 하면 거꾸로 정권과 정책 수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 주민에게는 피해를 덜 주고자 민생과 거리가 먼 사치품, 석탄, 지하광물 등으로 제재 품목을 한정했다. 그럼에도 중국의 대북 제재가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지속된다면 기관경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고난의 행군 시기 국영 상점과 식당이 모두 문을 닫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겪으리라는 얘기다.



    없을 때 느끼는 상실감과 있는 것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깊이가 다르다. 대량 아사 때는 누구나 똑같이 굶주렸다. 북한식 표현으로 ‘집체정서’도 살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시장이 가져다 준 혜택 덕분에 물질만능 사고가 팽배해 있다. 기관경제를 통해 부(富)를 획득하는 데 길든 간부들 또한 과거처럼 ‘관념적 충성분자’가 아니다. 3대 세습자 김정은의 핵 도박으로 기관경제가 파괴될 수 있는 것이다.

    기관경제에 투자한 개인들이 기관에 신뢰를 잃고 개인경제로 이동하면 경제 구조에 파란이 일어날 공산이 크다. 가격 통제를 통해 경제를 관리하던 국가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는 것이다. 기관경제를 통한 권력 유지에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기관의 물질적 기반이 붕괴된다는 것은 ‘제2 고난의 행군’ 피해자는 주민이 아니라 기관일 것이라는 얘기다.



    미·중 사이에 낀 불순물

    북한은 유엔 제재에도 평온해 보인다. 필자는 ‘폭풍 전야의 고요’라고 분석한다. 평양은 1980년 이래 처음 열리는 당 대회를 빌미로 주민들을 전시나 다름없는 상태로 묶어놓았다. 당 대회가 끝나면 주민들의 이완이 일어나고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경제가 동요할 소지가 크다.

    평양은 “끄떡없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중국이 지금처럼 단호한 태도를 이어가면 허약한 경제 체질로 인해 ‘정권 아사’로 나아갈 수 있다.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야망은 수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수령 독재의 특성상 내부 반발만이 북한 체제를 종식시키는 길이다. 국제사회가 기관경제에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북한을 다뤄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이 유엔 제재에 동참하는 것과 관련해 그 진정성에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물론 단기간의 대북 압박일 테지만 중국이란 대국의 ‘단기간’ 개념이 한국의 그것과 같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

    탈북민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1년 동안 네덜란드 라이덴대 북한학 초빙교수로 일하면서 한국에서 제공받지 못한 다양한 기회를 얻고 소중한 만남들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중국 정부 처지에서 북한 문제를 들여다보게 하는 여러 지식과 정보를 얻었다.

    현재 중국의 대외정책은 크게 네 갈래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남중국해 장악, 둘째는 대만 통일, 셋째는 동북지역(북한 포함) 발전, 넷째는 소수민족 관리다.

    중국 정부가 대북 제재 결심을 굳힌 것은 ‘괘씸죄’ 수준에서가 아니다. 그들이 보기엔 북핵이 동북지역 안정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남중국해 주변국의 군사화를 부추기는 미국에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북핵을 폐기하려면 정권 교체가 정답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북한에서 김정은을 대체할 세력이 없다는 점이 중국의 고민인 것이다.  

    북한에서 3대 세습이 안착한 것은 김정은의 정권 운영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북중 국경에서 발생하는 중국의 이익과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이익 사이에 낀 ‘불순물’이어서다. 미국과 중국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시한폭탄 째깍째깍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중국의 대립된 국익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모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국을 설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중국은 대국의 체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비공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유럽 선진국들은 중국과 협상할 때 정치 컨설팅 회사 등을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경험과 인맥, 지식과 실적이 축적된 민간의 협상가들이 쌍방을 잇는 비공식 가교 기능을 한다. 이들이 토대를 다진 후에 외교관들이 협상을 마무리해 결과물을 내놓는다.

    필자가 보건대 한국은 ‘관료 사회’다. 권한의 위임 등이 활성화하기 어렵다. 협상 문구까지 정하는 고위 관료들의 권위가 절대화했다. 미국에 전적으로 안보를 의존해온 역사가 창의적 협상 능력을 무디게 하지 않았나 싶다.  

    북한 핵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국제사회의 김정은 정권 교체 노력이 거세질 것이다. 시한폭탄이 터질 때가 다가온다. 중국의 대북 제재 수위는 북한 핵의 완성도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한국은 ‘핵을 가진 철없는 김정은 정권’보다 ‘자유통일 한국’이나 북한의 개혁 정권이 중국에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베이징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 대북 제재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중국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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