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현장 르포

‘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퇴사 거부자 ‘인격 고문’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2/2

“마음먹으면 누구라도…”

금융권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회사의 구조조정 칼바람을 피해간 50대 초반의 이모 씨는 이런 사연을 들려줬다.

“부하직원이 상사로 발령 나면 그동안 ‘○과장’이라고 부르며 반말을 하다 하루아침에 ‘○부장님’이라며 존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회사를 그만두자니 애들 학자금과 등록금이 눈에 밟히고, 버티자니 부하 직원들 보기 창피하고…스트레스가 극심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인사실무팀 후배로부터 매일 퇴직 압력 전화를 받거나 대면해서 퇴사를 강요받으면 정말 환장할 지경이 된다. 그쯤 되면 대부분 모멸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사표를 내더라.”

50대 초반의 대기업 계열사 인사담당 정모 씨는 “부하직원을 상사로 승진 발령, 핵심 부서에서 한직 부서로 발령, 보직 자체를 없애고 대기발령 등 회사가 점찍은 직원들의 목을 조르다시피 해서 제 발로 나가게 만드는 편법 해고 수단은 다양하다.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쫓아낼 수 있다”고 했다. 잦은 인사발령, 보직 변경, 저성과자 교육을 빙자한 압박, 다른 직원들을 동원한 따돌림과 감시, “안 나가면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협박, 공개적 망신, 지속적 면담으로 괴롭히기 같은 다양한 압박 수단이 동원된다.
 
주류업체 금복주의 일명 ‘여직원 결혼 퇴사 종용’ 사건은 회사가 퇴사 거부자를 지속적 면담으로 어떻게 괴롭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1년 이 회사에 입사해 홍보팀 디자이너로 일한 여직원 B씨는 지난해 6월 입사 5년 만에 여직원 최초의 주임으로 승진했다. 이후 결혼을 두 달 앞두고 B씨가 이를 회사에 알리자 디자이너 업무와 상관없는 판촉 부서로 발령 내는 등 퇴사 압박이 시작됐다.
 
그 과정에 B씨는 소속 부서 팀장-인사담당 팀장-사장으로 이어지는 수차례의 ‘면담 압박’에 시달렸다. B씨는 면담 때마다 대화 내용을 녹음했고, 그 내용이 3월 중순 공중파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은근한 압박, 협박성 압박, 언어폭력에 가까운 험악한 발언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며 충격을 던졌다. 이후 전국의 여성·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 금복주 불매운동을 벌이고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의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자 회사는 결국 대표이사 명의로 두 차례 사과문을 발표했다
.
지난해 6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서유정 부연구위원은 공공행정·서비스·운수·금융·교육·보건의료·건설·기타 등 8개 업종 종사자 4589명(정규직 70%, 비정규직 30%)을 대상으로 업종별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자 중 직장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는 정규직 12.4%, 무기계약직 17.7%, 비정규직 22.2%였다.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괴롭힘 피해자 비율은 더 높았고(22.9%), 피해자가 6개월간 괴롭힘을 당한 횟수는 184.8회에 달했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기업의 피해자 비율은 8.9%, 6개월간 괴롭힘 횟수는 96회였다. 괴롭힘의 유형으로는 사직 종용, 의견 무시, 모욕 등이 많았다. 특히 사직 종용은 조사 대상 8개 업종 중 7개에서 1위였다.
 


3가지 반응

회사가 온갖 치졸한 수법으로 압박하는 동안 지원군 하나 없이 홀로 버티다 결국 밀려난 사람 중 상당수가 우울증, 강박증, 불안감, 적대감, 편집증, 정신증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다.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스트레스가 생명의 위협이다. 현대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최전선은 직장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무너지고 가족의 생계가 달린 직장생활이 무너진다는 건 생명의 위협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서구에서도 해고와 이직이 보편적으로 이뤄지지만, 복지 인프라가 잘 갖춰진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의 해고와는 충격의 강도가 다르다. 해고는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복지 차원의 문제다.”
채 교수에 따르면 퇴직 압박에 이은 강제적 퇴직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불안과 공포, 미래에 대한 걱정과 전전긍긍 등으로 인한 두려움이다. 둘째는 심정적으로 처지고 무기력해지며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우울감이다. 셋째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 하는 화(분노) 반응이다.
 
“퇴직과 관련한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월 20~30명이다. 환자들은 이들 3가지 반응 중 개인의 성향에 따라 어느 한 가지 반응만 보이기도 하고 3가지를 다 합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더욱이 병원을 찾지 않는 숨은 환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조퇴를 하거나 외출을 허락받아야 한다. 안 그래도 회사에 찍혀 잘리기 직전인 사람들이 병원 간다고 자리를 비울 수 있겠나. 사회가 개입해 그들을 치료해야 한다.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를 앞둔 기업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정신과 의사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자 중 문제 제기를 한 근로자는 37.9%에 불과했다.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직장생활에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25.6%, “인사상 불이익이 걱정”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21.3%였다. 헤드헌팅업체 이모 부장의 전언이다.
 


평판조회도 압박 수단

“이직이나 재취업 상담을 하다보면 부당한 퇴직 압박에 시달리고도 아무런 항변이나 이의제기를 못한 채 그만둔 사람을 종종 만난다. 퇴사 후 재취업에 걸림돌이 될까봐 ‘조용히 사표 쓰고 나왔다’는 사람이 많다. 부정적인 소문은 해당 업계가 좁을수록 빨리, 널리 퍼지는 경향이 있다.
 
설사 소문이 안 났더라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이나 고발 등 갈등을 일으키다 그만둔 사람의 경우 우리가 평판조회를 하면 전 직장에서 그 사람에 대해 좋게 말해줄 리 없다. 직장인은 이직이나 재취업에 걸림돌이 되는 게 무서워 조용히 사표를 내고, 회사는 그런 약점을 퇴직 압박에 이용하기도 한다.”
인사노무컨설팅 사람세상 이건종 대표노무사는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고용을 유연화한다며 관련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 이때 기업이 해고와 비정규직 채용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면서 해고(퇴사) 압박이 빈번해졌다. 그런 분위기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퇴직 압박에서 빚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인력 배치 전환이나 전직, 지방 발령은 인사권의 일환이라 부당징계나 부당해고로 다투기가 쉽지 않다. 이 문제로 고용노동청에 고발하거나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면 회사 업무의 필요성과 개인생활의 불편함 중 어느 쪽이 더 중한지를 다투게 되는데, 둘 중 개인생활의 불편성이 더 크다는 걸 근로자가 입증해야 한다. 근로자 처지에선 자료 수집이 쉽지 않기에 업무 필요성에 대한 가치 판단이나 수익성을 판단하기 어려워 직권 남용 등 회사의 잘못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이건종 대표노무사)
또한 모욕 주기, 언어·물리적 폭력, 위협과 협박 등의 괴롭힘은 근로기준법에 처벌 규정이 없다. 이를 다투려면 형사소송으로 가야 한다.
 
강퇴, 찍퇴, 부당해고 등에 동반되는 기업의 갖가지 교묘한 퇴직 압박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이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신설된 근로기준법 제15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등)에 있다. 이에 따르면 사용자와 근로자가 직위나 업무상의 우월한 지위 등을 이용해 다른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앞날에 대한 계획 세워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도와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반복적으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행위, 정당한 이유 없이 6개월 이상 업무에서 배제하는 행위, 불필요하거나 모순적인 업무 지시를 반복하는 행위, 반복적으로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해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 반복적으로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했다.

다음은 채정호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갈수록 해고가 빈번해질 것이다. 100세 인생 시대에 한 직장에서 끝까지 근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해고를 남의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여기고, 분노와 두려움 대신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끝까지 버티다 수동적으로 밀려나기보다 그 기간에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 스트레스가 덜할 수 있다.”  





신동아 2016년 5월호

2/2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목록 닫기

‘면벽 근무’ 다반사 성희롱 사건 조작도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