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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격전장을 가다

“美·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지정학적 요충지’ 오키나와의 분노

  • 전계완 | 시사평론가, ‘일본, 다시 침략을 준비한다’ 저자 jke68@daum.net

“美·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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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간 주민 12만 사망

“美·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군용 물품 가게 앞에서 쇼핑하는 관광객. [사진제공·전계완]


주말 저녁, 오키나와 현청이 있는 나하(那覇)시의 국제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4월 초인데도 낮 기온이 25℃를 웃돌며 초여름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은 아열대 지역이라 매년 1월에 벚꽃 축제가 열린다. 1.6km의 직선 도로 양쪽으로 식당과 쇼핑시설이 빼곡하다. 일본인과 미군, 중국인 관광객이 섞여 관광 명소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국제거리의 별칭은 ‘기적의 1마일’이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미국과 일본이 벌인 최악의 오키나와 전쟁(1945년 4월 1일~6월 23일) 때 잿더미가 된 곳을 최단 기간에 재건했다고 붙인 이름이다. 전쟁 후 미국 통치를 받던 ‘기적의 1마일’에는 미국식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1953년부터 영업 중인 잭스 스테이크 하우스(Jack's steak house)와 아메리칸 스타일의 ‘스테이크하우스88’(스테키하우스 하치하치)은 오키나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소다. 토속음식점도 즐비하다. 미국 정통 문화와 오키나와 향토색이 국제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그런데 껍질을 한 겹 벗겨 속을 들여다보면 이내 비극적인 단면이 드러난다. 오키나와에선 1945년 전쟁 때 불과 3개월 만에 군인과 주민 등 20만 명 이상이 숨졌다. 오키나와 주민 3명 중 1명(12만여 명)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우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오키나와 전쟁 발발 70년 전으로 돌려보면 이곳은 일본이 아니다.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서 등거리 생존을 하던 류큐(琉球) 왕국이었다. 메이지유신(1868)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던 일본은 대만 침공(1874)으로 청나라를 제압한 뒤 류큐 왕국을 자국 영토로 만들고(1879) 오키나와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1945년 오키나와 전쟁은 엄격하게 말해 일본군과 미군이 류큐 왕국이던 오키나와 땅에서 벌인 최악의 지상전이었다. 미군이 쏜 포탄만 270만 발. 당시 주민 1명에게 472발의 포탄을 날린 셈이다. 오키나와 원주민의 눈으로 보면, 패권을 다투던 두 강대국이 남의 땅에서 전쟁을 치르고 자신들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떠넘긴 것이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하며 일본에 본토를 돌려줬지만 오키나와의 통치권은 계속 유지했다.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으로 넘어간 것은 1972년이다. 그런 두 나라가 오키나와 전쟁 70년을 넘긴 지금 적국으로 싸우던 땅에서 ‘세계 제일의 동맹’을 과시하며 ‘사상 최강의 군사기지’를 함께 만들고 있다.     





죽음으로 평화 기원

“美·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생존자의 기록을 남긴 ‘증언의 방’. [사진제공·전계완]

“美·日과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 어린이 관람객이 전쟁 때 숨진 오키나와 어린이 사진을 바라본다.[사진제공·전계완]

나하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쯤 내려가면 미일의 최후 격전지 이토만(絲滿)시가 나온다. 이곳에 ‘평화기념공원’이 있다. 섬의 모양이 바뀔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이곳 자료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전쟁이 인간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다는 생생한 체험 앞에서, 어느 누구도 전쟁을 긍정하고 미화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전쟁을 원망하며 오키나와를 반드시 평화로운 섬으로 만들어야 한다.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르고 이런 확고한 신념을 얻었다.’

자료관에는 ‘증언의 방’이 있다. 통계만으로는 실상을 제대로 알릴 수 없어 전쟁 체험 주민의 육성을 그대로 적고 영상으로 남겼다. 원통하게 죽은 이들을 대변하는 증거다.

증언에 따르면, 군과 민을 구분하지 않은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수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민간인으로 전투에 동원돼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다. 일본군에게 학살되고 집단 자결을 강요받은 증언록도 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끔찍하다.

오키나와 사람들도 일본인이었지만, 본토 일본군들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전쟁에 필요한 도구로 인식했다. 일본군은 피란 간 주민에게 “미군에게 잡혀죽지 말고 천황을 위해 영광스럽게 죽으라”고 했다. 집단 자결을 강요한 것이다. 자식이 어머니를 돌로 때려죽이고, 형제자매를 찔러 죽이게 했다. 후퇴하던 일본군은 민간인이 숨어 있던 동굴로 들어갔는데, 미군에게 들킬 것을 우려해 세 살 이하 어린이를 모두 죽였다. 젖먹이의 목을 조르거나 주사를 놔 죽였다.

오키나와 말을 하는 사람은 ‘미군 첩자’라며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집단 학살에 가담한 일본군은 죽에 청산가리를 타서 주민들을 죽였고, 동굴로 몸을 피한 주민들은 동굴 속 일본군에게 학살당하거나 바깥에서 쏘아대는 미군의 박격포에 무방비로 죽어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상황에서 전쟁의 부조리와 잔혹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 이곳을 오키나와 사람들은 ‘지옥의 전쟁터’라 부른다.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도 집단 학살을 피하지 못했다. 군대 징집, 비행장 건설, 탄약 운반 등으로 1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동원됐다. 위안부로 끌려온 1000여 명의 조선 여성 중 살아서 돌아갔다는 기록은 4명에 불과하다. 전쟁 막바지에 조선인이 일본군에게 간첩으로 몰려 학살당했다는 증언은 셀 수 없을 정도다. 오키나와에서 죽은 조선인만 1만 명이 넘는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전쟁에서 일본군을 제외한 모든 이를 적으로 간주하고 살해했다. 오직 미군의 본토 상륙을 지연시키기 위해 천황을 내세우며 모두를 총알받이로 내몬 것이다.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갖고 온 돌을 원형탑으로 쌓았고, 제단 앞에는 한국으로 향하는 화살표의 표석이 억울한 넋들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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