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특집 | ‘제재 융단폭격’ 후 북한

“태평만댐 송유관 잠가라” 중국 몰아붙여야

‘평양 투항’은 對中외교에 달렸다

  • 이정훈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6-05-12 17: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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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퀀텀 점프(quantum jump).

    박근혜 정부 통일 정책이  북한 체제를 교체(regime change)하겠다는 쪽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대북 정책은 정치(精緻)하지 못하다. 한국 처지에서 통일은 북한 정권을 없애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북한에는 이렇다 할 기업이 없다. 대부분 정부 소유다. 북한 당국, 노동당과 군 등은 북한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조직이다. 통일은 이 조직을 없애는 것이다. 이 조직 안에서 생존해온 이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통일에 저항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도주한 선조가 명나라를, 6·25전쟁 때 낙동강 방어선으로 몰린 이승만이 미국을,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안북도 강계로 쫓겨간 김일성이 중국을 끌어들인 것을 떠올려보자. 통일이 임박하면 북한 권력집단은 중국을 끌어들여 존속을 모색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거나, 아예 일어나지 않을 방안을 마련해놓고 ‘통일 대박’과 ‘정권 교체’를 외쳐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외교를 보면 그런 것 같지가 않다. 정권 교체를 거론한 것에 만족하며 자화자찬에 빠진 듯한 느낌이다. 이 같은 태도가 대북 정책에 허점을 낳을 수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대북 제재(2270호 결의안)가 과거의 결의안보다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 정부의 노력 덕분에 이런 강력한 결의안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점에 입각해 살펴보면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람과 조직은 에너지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원유는 산업사회를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북한은 필요한 원유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공급받는다. 러시아나 친북 성향의 산유국에서 이따금 공급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중국에서 공급받는다.

    압록강 하구 단둥(丹東)에서 상류 방향으로 50㎞쯤 올라가면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는 호산장성(虎山長城)이 있다. 만리장성이 베이징 동북방의 산해관(山海關)에서 끝난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땅 욕심’ 많은 중국은 이렇듯 억지를 부린다. 그런데 호산장성 옆 압록강에 ‘또 하나’ 기분 나쁜 것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많지 않다.

    압록강에는 북한과 중국이 합작으로 건설했거나 운영하는 댐이 4개 있다. 하류부터 살펴보면 태평만(太平灣, 타이핑완)-수풍-위원-운봉댐이다. 태평만댐은 1987년 호산장성 옆의 중국 콴뎬현(寬甸縣)과 북한의 삭주군 방산리까지 1158m를 막아 완공했다. 18만㎾의 발전 설비량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이 댐은 전기만 생산하지 않는다. 압록강을 막은 이 댐에 북한으로 이어진 송유관이 개설돼 있다. 중국은 매년 50만t 넘는 원유를 북한에 보내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2004년 4월 22일 평북 용천역에서 대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가는 경의선(북한에서는 ‘평의선’이라고 한다)은 출발하자마자 둘로 갈린다. 하나는 용천으로, 다른 하나는 피현으로 간 다음 염주에서 합쳐져 평양까지 한 선으로 이어진다. 일제가 만든 경의선은 용천만 지났는데, 북한이 피현으로 돌아가는 철도를 추가했다. 철도를 추가 건설한 것은 피현에 중국에서 온 원유를 정제하는 정유공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피현으로 가는 철도는 산업선이라 여객의 수가 적다. 대신 석유를 받아가려는 화차들이 모여든다. 북한은 ‘1호 동지’에 대한 경호를 매우 중시하기에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김정일이 탑승한 열차를 여객이 적은 피현역 쪽으로 달리게 했다. 그래서 피현역에 있던 다수의 화차를 용천역으로 이동시켰는데, 그때 질산암모늄을 실은 화차가 기름을 실은 화차와 충돌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엔 2270호 결의안이 가동되는 지금도 피현 정유공장이 돌아간다고 한다. 정유공장의 가동 여부는 정찰위성으로 파악한다. 가동 중인 정유공장에서는 열이 나오기 때문에 주변보다 온도가 높은데 정찰위성이 이 열을 감지하는 것이다. 열 감지는 겨울에 더 잘할 수 있다. 북한은 5월 말까지도 제법 쌀쌀한데, 피현 정유공장에서 적잖은 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코크스도 계속 제공 가능

    다칭(大慶) 유전 등에서 나오는 원유를 중국이 ‘떳떳이’ 북한에 공급하는 것은 2270호 결의안에 원유를 공급하지 말라는 조항이 없어서다. 과거의 안보리 결의안에도 북한에 대한 원유 제공을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으로 가는 원유 차단만큼은 극력 반대해왔다. 2270호를 결의할 때 미국은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 조항도 결의안에 넣으려 했으나, 중국은 그러한 초안을 만드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결국 항공유 공급을 차단한다는 내용만 초안에 넣기로 했는데, 러시아가 ‘24시간 숙려’를 요구하는 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해 이것마저 빠졌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원유를 차단하는 내용이 중국의 조용하지만 완강한 반대로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아 다른 나라들도 북한에 원유를 공급할 수 있다.

    원유가 공급되는 한 북한 정권은 존속한다. 북한은 전쟁이 일어나면 전쟁으로 대응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일으킬 수 있다.



    정보 관계자들은 중국이 북한에 3가지 전략물자를 제공한다고 본다. 첫째가 원유 공급이고, 둘째는 7만 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를 중국에서 일하게 해주는 것, 셋째는 철광석을 녹이는 코크스 등 원유만큼이나 중요한 전략물자 공급이다. 이 셋을 막으면 북한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중국이 2270호에 따라 이행하겠다고 한 것은 북한 근로자 수입뿐이다. 북한산 광물자원은 수입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북한이 필요로 하는 핵심 광물자원 공급 중단을 약속하진 않았으니 코크스 등은 원유와 함께 계속 제공할 수 있다.

    원유와 핵심 광물자원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은 중국 정부가 관여하는 거래다. 베이징이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차단할 수 있는데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 근로자 수입은 중국 사기업이 해온 것이다. 중국에는 북한식당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대개 여성 종업원)만 있는 게 아니다. 훨씬 더 많은 남성 근로자가 일한다. 중국 역시 3D 업종에서는 일하려는 사람이 줄어들어 북한 근로자를 수입해 대처한다. 이러한 중국 기업의 이익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 북한 당국이다.

    북한은 정권 차원에서의 외화 벌이를 위해 인력을 수출한다. 노동당과 북한군이 만든 여러 기관에서 중국에 근로자를 파견한 후 임금의 상당액을 떼 간다. 중국은 북한의 이 같은 인력 수출을 막는 데는 동참하겠다고 했는데, 동참은 ‘불법’인 경우로 한정한다. 불법으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중국 정부 처지에서도 다소 골칫거리여서다.

    중국에는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북한 기관에서는 돈이 필요하니 돈이 들어오는 한 굳이 그들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중국 기업으로서는 싼 노동력이 필요한데, 불법 체류하는 북한 노동자보다 싼 노동력은 없으니 관계 당국에 그들을 신고할 이유가 없다.



    속으로 웃는 중국

    극동 러시아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하바롭스크 등에는 벌목 일을 하러 온 북한 근로자가 적지 않은데, 중국에서와 같은 이유로 이들은 불법 체류를 계속한다. 극동 러시아는 대평원이라 여름철에는 물이 빠지지 않아 벌목 작업을 할 수 없다. 벌목할 수 없는 해빙기가 오면 북한 벌목공들은 블라디보스토크 등 대도시로 나와 건설 현장에서 날품을 판다. 러시아 건설회사가 값싼 인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북한 근로자들은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약간의 뇌물을 주고 당당히 고향 방문을 하고, 날이 서늘해지면 다시 벌목을 하러 극동 러시아로 나온다.  

    북한 근로자의 불법 체류가 중국과 극동러시아에서 일상화한 것이다. 이들이 바치는 뇌물은 중요한 상납금이라 북한 기관은 이들이 해외로 일하러 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북한 근로자는 중국·러시아 범죄조직과 연계되기도 한다. 북한의 기관 중 일부는 마약과 위조달러, 양담배 등을 제조해 밀수출함으로써 조직 운영자금과 상납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물품을 세관을 통해 내보낼 수 없으니 불법으로 국경을 드나드는 북한 근로자에게 맡긴다. 근로자들이 이런 물품을 중국과 러시아의 범죄조직에 넘기면 이들이 세계 각국으로 유통시킨다.

    이 같은 범죄조직의 발호는 중국, 러시아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인력 송출을 제한하는 결의안 2270호에 동의한 것은 이러한 범죄 조직을 무력화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요컨대 중국과 러시아는 부담이 될 만한 제재는 피하고 자국에 유리한 것은 받아들였다.

    이렇듯 허점이 적지 않은 2270호를  놓고 박근혜 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만들었다”느니, 한발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을 교체하겠다”고까지 주장하니 중국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허풍을 정확히 꿰뚫어본 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3월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시 주석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공식적으로 압박했다.

    이전까지 베이징은 외교 관계자나 언론을 통해서만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밝혔는데, 워싱턴에서 박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중국이 2270호 채택에 협조했으니 한국도 중국에 협조하라는 압박이다.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우려를 외면하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여해 행사를 빛내줬는데, 시 주석은 그 은공을 깡그리 외면했다.



    만탑산의 비밀

    북한의 3세 세습 정권을 교체하려면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는 태평만댐에 있는 송유관을 잠그게 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상당수 외교 전문가는 “중국의 힘 때문에 송유관을 잠그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런 태도는 지레짐작이고 알아서 기는 행태다.

    북한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에서 핵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만탑산은 최고봉이 2100m쯤 되는 거대한 산군(山群)인데,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뤄져 핵실험을 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북한은 만탑산 곳곳에 굴을 만들어놓았다. 정상에서 600여m 아래쪽에 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북한은 굴에 핵폭탄을 넣고 굴 입구를 시멘트로 막은 다음 터뜨리는데, 산이 무너지지 않으니 방사능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핵실험 직후 방사능 증가량을 체크하려고 이륙한 미국의 WC-135 정찰기가 큰 소득 없이 돌아온 데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고 한다. 북한은 또 다른 굴에서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다. 조만간 5차 핵실험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할 때가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고 중국을 압박할 기회라고 지적한다. 또한 북한 유사시 자동적으로 중국의 참전을 보장한 ‘북중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 조약’을 폐기하라는 압력을 중국에 넣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중국을 압박하지 말고 한중 양자외교로 중국을 몰아붙이라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라도 해놓고 북한 정권 교체를 외쳐야 하며, 중국은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같은 점잖은 말로 압박해본들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외교부 차관을 지낸  안호영 씨를 주미대사로 임명했으나, 중국대사에는 부총리급인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씨를 파견했다. 중국 관계를 중시한 인사인데, 중국은 여전히 핵무장한 북한을 완충 국가로 유지하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중외교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한 중국의 입장을 180도 돌려놓은 뒤 북한 정권 교체를 거론해야 한다. 그래야 ‘통일 대박’에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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