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한 글자로 본 중국 | 후베이성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鄂 천하삼분 맹주

  •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2/4

삼국시대 화약고

진시황은 왕전이 늙어 무능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장군 이신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초를 정벌케 했다. 하지만 초의 명장 항연이 그간 패배를 모르고 연승하던 진의 20만 대군을 격파한다. 이에 진시황 역시 초나라가 최강의 호적수임을 절감하며 왕전에게 60만 대군을 준다. 60만 대군을 거느린 명장 왕전도 1년이나 지구전을 펼친 끝에야 항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초를 멸망시킨 진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어져 노도(怒濤) 같은 기세로 천하통일을 완성한다.

그러나 초의 군대는 꺾였지만 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초의 저잣거리에는 괴이한 노래가 나돌았다. “초나라에 단 세 집만 남아도 반드시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다(楚雖三戶,亡秦必楚).” 과연 그 말대로 훗날 항연의 손자 항우는 진나라를 멸망시키지만, 성공의 열쇠는 실패의 문 역시 여는 것일까. 근본을 잊지 않아 성공한 항우는 근본을 잊지 못해 실패한다. 물의 나라 초에 뿌리를 둔 항우는 강남을 못 잊어 관중·중원(산시·허난) 일대를 소홀히 하다가 한의 유방에게 천하를 넘겨준다.

한나라 때 후베이와 후난을 포괄한 지역이 그 유명한 형주(荊州), 즉 징저우다. 그러나 아직 후난은 후베이에 비해 개발이 덜 됐고 현지 이민족의 세력이 만만찮아서, 보통 형주라고 하면 후베이의 양양성, 강릉성 등을 중심으로 생각했고 후난만을 지칭할 때는 남형주라 불렀다.

한의 치세가 저물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되자 형주는 지극히 중요해진다. 동오의 대도독 주유는 말한다. “형주는 천하의 중심에 있는 요새입니다. 그곳을 차지해야만 중원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노숙 역시 거들었다. “형초(荊楚) 땅은 밖으로는 장강과 한수를 두르고 안으로는 험준한 산과 구릉이 있으며, 견고한 성이 있고 기름진 평야는 만리나 되고, 관리와 백성은 풍부합니다. 이곳을 차지한다면 제왕의 자본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갈량은 융중대(隆中對)에서 형주가 천하삼분지계의 핵심임을 역설했다. “형주는 북쪽으로 한수와 면수를 두어 남해에 이르기까지 다 이로운 땅이요, 동쪽으로 오회 땅과 닿고 서쪽으로 파촉 땅과 통하니, 이곳이야말로 군사를 거느리고 천하를 경영할 만한 곳입니다.”



형주의 중요성을 설파한 제갈량은 미묘하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러나 참다운 주인이 아니면 지킬 수 없는 곳입니다.” 모든 이가 이 땅을 차지하려 다투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3대 대전 중 2개가 바로 후베이에서 일어났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과 이릉대전이다.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위의 조조·조인·방덕·서황, 촉의 유비·관우·제갈량, 오의 주유·여몽·육손 등 당대 최고의 명장과 지략가들이 불꽃 튀는 쟁탈전을 벌였다.

조자룡이 백만대군을 헤치고 유선을 구하고, 장비가 조조의 백만대군을 떨게 한 장판파 역시 형주 땅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총 120회 중 무려 72회에 등장하는 형주는 삼국시대의 화약고였다.

기주(허베이)의 원소를 물리치고 중원의 패자가 된 조조는 숙적 유비와 손권을 제거하기 위해 형주로 진격한다. 유표의 아들 유종은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조조에게 얌전히 형주를 바친다. 단숨에 천하통일을 완수하려던 조조의 군대는 장강에서 유비-손권 연합군에 패한다. 거대한 불길이 조조의 대군을 불태워 장강의 절벽을 붉게 물들인 적벽대전이었다.



“皇子를 형주 장관으로”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장강 중류에 위치한 요충지 징저우에 있는 형주성(위)과 형주성벽 위에 전시된 관우의 청룡언월도.

승전 후 형주를 차지한 유비는 곧 촉을 얻고 한중왕이 되어 제갈량의 융중대를 실현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제 촉과 연합해 위를 친 오는 이제 위와 연합해 촉을 쳤다. 유비는 여몽의 기습으로 관우와 형주를 동시에 잃는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와 형주의 탈환을 위해 전 국력을 기울여 출진했지만, 육손은 이릉대전으로 유비의 칠백리 영채를 불살라버린다.

결과적으로 위·촉·오는 형주를 삼분하지만, 세 나라의 국력은 형주 점유율에도 반영됐다. 위와 오의 영향력이 가장 컸고 촉은 실질적으로 형주를 잃었다. 애초에 제갈량은 촉을 보급기지로 삼고 형주에서 군사를 움직이려 했다. 형주는 사통팔달의 땅이라 어디로든 치고 빠질 수 있어 신출귀몰한 병력 운용이 가능한 데다, 북으로 조금만 가면 수도 낙양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형주를 잃자 첩첩산중인 촉에서 나갈 길은 기껏해야 세 갈래에 불과했다. 따라서 위는 침공 지점을 예측해 방어를 튼튼히 할 수 있었다. 형주를 잃음과 동시에 이미 천하삼분지계는 망가진 꼴이었다.

후베이의 전략적 중요성은 이후 역사에서도 줄곧 드러난다. 5호 16국 시대 장강을 장악한 송나라의 왕 유유는 “형주는 장강 중류지대의 요충지다. 황자를 차례대로 형주 장관으로 임명하라”는 유서를 남겼다. 형주는 황실이 필수적으로 숙지해야 할 땅이라는 의미다.

훗날 당나라를 이은 송나라는 국방력은 약했지만 도시와 상업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장강 한복판에 있는 수상교통의 요지 후베이 역시 도시혁명과 상업혁명의 혜택을 입었다. 강기는 “우창의 10만 호, 석양에 낮게 드리워진 자줏빛 연기여”라며 우창의 번영을 노래했다.

부유하되 약한 남송을 삼키기 위해 원나라가 움직였다. 조조가 장강의 물길을 따라 손권을 정벌하려던 것과 마찬가지로, 원나라의 쿠빌라이가 쇠약한 남송을 정복할 때 제일 먼저 공략한  곳 역시 후베이의 양양성이다. 쿠빌라이가 남송의 보루 후베이를 차지하자 ‘장강 중류를 장악해 하류를 제압한다’는 전략이 수월하게 달성됐다. 손쉽게 임안(저장성 항저우)까지 진격한 쿠빌라이는 남송을 멸하고 중국을 재통일한다.

청대(清代)에 제2차 상업혁명이 일어나자 전국 각지의 상품들이 제국 전역을 오갔다. 자연스레 후베이는 각 지역의 온갖 산물이 모여드는 곳이 됐다. 후난·푸젠의 차, 안후이의 소금, 쓰촨의 약초, 산시의 목재, 동북지방의 수수·삼, 서북지방의 가죽·담배, 동남지방의 설탕·해산물·아열대 식품들이 장강 중류의 항구 한커우를 교차했다. 상업이 번성하던 항구도시 한커우에서 학문은 크게 대접받지 못했다. 19세기 한커우에는 ‘훈장’이라는 간판을 걸면 학생은 오지만 거지는 오지 않아 일거양득이라는 농담이 있었다. 훈장은 가난해서 거지가 구걸하러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2/4
글 · 사진 김용한 | 중국연구가 yonghankim789@gmail.com
목록 닫기

제왕의 자본 兵者必爭의 땅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