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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체력? 나를 모르고 하는 말”

‘100억 FA 시대’ 연 최형우

  • 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나이? 체력? 나를 모르고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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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사판 일당 3만5000원으로 버텨
  • ● 해외 진출? “두 살만 젊었어도…”
  • ● “자만심은 毒…초심 잃지 않을 것”
  • ● “대표팀에 민폐 안 끼치게 잘해야죠”
2017년 KBO리그에서 ‘대박’을 친 사나이. KIA 타이거즈와 4년간 100억 원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최형우(33)는 KBO 최초로 몸값 100억 원 시대를 열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 2차 지명 6라운드(전체 48번)에 지명된 후 15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15년의 시간은 ‘우여곡절’ ‘파란만장’이라는 말로 정리된다.

2005년 시즌을 마치고 부진 끝에 방출당한 최형우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먹고살 일을 걱정했고, 경찰청 야구팀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야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했다. 경찰청 선수로 퓨처스리그를 ‘씹어 먹은’ 후 삼성에 재입단해 신인왕 수상,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의 대기록을 완성했다. 그러고는 100억 원의 FA 계약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지난 12월 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최형우를 만났다.

최형우는 이날 ‘2016 레전드 야구존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서 은퇴 선수들이 선정한 ‘2016 최고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이 줄을 짓다 보니 서울을 떠나지 못한다고 행복한 비명이다. 2016년 한 해 받은 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 2016년 시즌 타율 1위(0.376), 타점 1위(144개), 최다 안타 1위(195안타), OPS 1위(1.115) 등 공격 전 부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터라 많은 상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타율, 타점 등 4관왕

▼말 그대로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것 같아요. FA 계약도 잘 마무리됐고, 성적에 대한 보상으로 상복도 터졌고요.



“솔직히 스케줄이 많아 힘들긴 해도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2011년에도 상을 일곱 번 받았는데, 그때랑 느낌이 또 다른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서울은 너무 복잡해요. 직접 운전해 다니는데 교통 체증이 심해 이동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촌놈이라 그런지 복잡한 서울 생활이 적응 안 되네요”

▼요즘 계속해서 좋은 일이 생기는데 기분이 어떤가요.

“불안감이 더 커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아니라, 좋은 일 생기다 행여 안 좋은 일이 나타날까봐 걱정되는 정도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올 한 해 내가 갖고 있는 ‘운’을 다 쓴 게 아닐까 싶은.”

▼FA 계약 후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안타까운 선수도 있습니다.

“저는 실력에 대한, 기록에 대한 부담은 갖고 있지 않아요. 자신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그랬거든요.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내 것만 해나가는….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제가 걸어가야 할 길만 보고 갈 작정입니다. (옆에 있던 에이전트사 스포츠인텔리전트그룹 김형식 팀장을 가리키며) 저는 지금도 이렇게 ‘케어’받는 게 익숙지 않아요. 이전까진 모든 걸 혼자 감당했거든요. 에이전트사와 계약하니 이렇게 좋은 형님이 절 도와주시지만, 아직은 이런 상황이 낯설어요. FA 계약을 맺기 전이나 계약 후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거예요. 야구도, 생활 면에서도 그럴 겁니다.”

최형우가 100억 원대 FA 계약을 맺은 후 적지 않은 이가 그의 미래를 걱정했다. 거액을 받는 FA 선수가 된 이후 이전처럼 성적을 내지 못하면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최형우는 그 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다”고 목소리에 힘을 줘 대답했다. 환경이 변했다고 해서 중심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다.



새벽 3시 인력시장 출근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최형우는 전주고 졸업 후 포수로 삼성에 입단했다. 2002~2005년 4년 동안에는 1군에서 대타와 대수비로 6경기에 출전해 7타수 2안타를 기록한 게 전부였다. 2군에선 매년 2할 중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수비, 특히 송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어깨는 강한 편이었는데 연습 때는 잘되던 송구가 경기 중에는 야수의 키를 넘기곤 했다. 송구 에러가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최형우의 발목을 잡는다.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나요.

“지금까지 세 차례 정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야구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 ‘내가 야구를 왜 하지?’ 하는 반항심으로 사춘기를 보낸 셈이죠. 가출이요? 네, 했어요. 방황 끝에 가출하고는 붙잡혀 와 감독, 선배들한테 맞기도 했고요. 야구보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을 더 좋아하던 철부지 시절 일화예요.

그다음은 2005년 시즌을 마치고 삼성에서 방출됐을 때입니다. 그땐 말도 안 되게 힘들었죠. 미친 듯 술 퍼마시고, 방송이 끝난 TV가 지지직 소리를 낼 때까지 멍 때린 적도 있고요. 야구 선수로서의 삶뿐 아니라 제 인생이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었어요. 가진 돈도 없었고요. 밥은 먹고 살아야 했기에 몸으로 때우는 일을 시작했죠.”

▼공사판에서 일했다고요.

“네. 야구 외엔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으니 몸 쓰는 일을 할 수밖에요.”

▼일자리를 얻기는 수월했나요.

“인력시장이라는 곳…새벽에 그곳에 나가면 선착순으로 뽑혀갑니다. 늦게 나가면 허탕 치는 거고요. 새벽 3시께 나가 대기하다가 뽑히면 승합차를 타고 공사판으로 가서 일하는데 막노동이긴 했지만 몸이 건강하니 견딜 만했어요. 당시엔 몸이 힘들어야 야구 생각을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몸을 혹사한 거죠.”

▼삼성 입단 후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쳤을 텐데 방출당한 이유는 뭔가요.

“모든 선수가 입단한 후 최선을 다해 노력합니다. 열심히 안 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 가운데 누구는 운이 있고, 누구는 운이 없는 것이죠. 누구에겐 기회가 주어지고, 누구한테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요. 저도 노력했지만 주변 상황이 맞아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기회도 많이 받았는데 제가 못 이뤄낸 겁니다. 그래서 방출당했을 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없었다”

▼방출 후 연락 온 팀은 있었나요.

“한 팀도 없었으니 공사판을 전전한 거예요. 저를 원하는 팀이 없다는 게 더 충격이었죠. 공사판 일당이 4만5000원이었거든요. 수수료 1만 원을 떼고 3만5000원을 받았는데 그걸로 용돈을 썼죠.”

방황을 거듭하던 최형우의 선택은 입대였다. 야구에 미련을 못 버리고 상무 야구팀 입단을 타진했으나 성사되지 않으면서 또다시 좌절을 맛봤다. 그러던 차에 경찰청 야구팀이 창단됐고, 김태완·최진행 등과 함께 경찰청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최형우는 경찰청에서 김용철 감독의 권유에 따라 외야수로 전향한다. 송구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최형우의 타격 자질을 살리고 수비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최형우는 입대 1년차부터 경찰청 중심 타자로 활약하면서 팀 내 타율 1위(0.344), 홈런 공동 1위(11홈런)를 기록했다. 2년차인 2007년에는 2군 북부리그에서 타율 1위(0.391), 최다 안타 1위(128안타), 최다 2루타 1위(41개), 홈런 1위(22홈런), 타점 1위(76타점), 득점 1위(72득점), 장타율 1위(0.731) 등 타격 부문 7관왕에 오르며 2군 북부리그를 평정했다.

경찰청 복무를 마칠 즈음 최형우는 모든 구단의 ‘러브콜’을 받았는데 ‘뚝심의 최형우’는 자신을 버린 삼성과 다시 계약을 맺는다. 삼성 복귀 첫해인 2008년 시즌 최형우는 신인상을 수상하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굴곡진 삶으로 얼룩진 선수가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기어코 신인상을 거머쥔 것이다. ‘인생 역전’이나 다름없다. 최형우는 “비로소 사람들이 내 재능을 알아봐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그때를 떠올렸다.

▼야구 인생의 세 번째 위기는 언제였나요.

“2012년 시즌이에요. 2011년만 해도 홈런, 타점, 장타율 3관왕을 차지하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거든요. 그때 좀 자만했던 것 같아요. 많은 상을 받다 보니 야구를 쉽게 봤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성적을 낼 것 같았어요. 한마디로 건방졌던 거죠.

그러다 2012년 원인 모를 슬럼프를 겪으면서 2군으로 내려갔어요. 한 번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니 사정없이 내려가더라고요. 3개월가량 그런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도저히 다시 올라갈 기미가 안 보이다가 후반기에 간신히 올라서긴 했는데 그때 참 많은 걸 배웠습니다. 자만심이 경기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죠.



‘자만’이 ‘보약’ 됐다

시즌 앞두고 준비 과정은 똑같았거든요. 훈련을 게을리한 것도 절대 아니고요. 마인드 컨트롤을 못했던 거죠. ‘난 이미 모든 걸 다 이뤘고, 난 최고다’ 하는 자만심이 저를 바닥으로 떨어지게 한 겁니다.”

▼당시의 ‘건방짐’이 결국에는 ‘보약’이 된 듯한데요.

“정말 어이없는 일이에요.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고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말씀한 것처럼 보약이 된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 일 덕분에 FA를 앞둔 올 시즌, 가급적이면 FA를 떠올리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하려 했으니까요.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생각을 안 하고 싶다고 해서 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잖아요. 분명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FA 얘기는 꺼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내 것만 하자’며 시즌에 집중한 게 슬럼프 없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봐요. 만약 이전에 자만심이 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더라면 올 시즌 내내 요동치는 시간을 경험했을 지도 모릅니다.”

최형우는 2012년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빠졌음에도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부활하기 시작했다. 125경기에 출전해 14홈런 77타점 타율 0.271을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역대 3번째 만루 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 그는 이듬해인 2013년부터 팀의 주장으로 뽑혔고 류중일 전 삼성 감독은 그에게 4번 타자 자리를 맡겼다.

▼최형우=4번 타자라는 인식이 있어요. ‘4번타자’ 자리는 탐을 내면서도 부담스러워 하는 자리죠.  

“타순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에요. 4번이 중심 타자인 것은 분명하고, 그 중심 타자 안에서 다시 중심을 잡아주는 게 4번이지 팀을 대표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앞뒤를 연결해줄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진정한 4번 타자입니다.”



숫자로 가치 입증

▼FA를 앞둔 지난 시즌 해외 진출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왔어요. 스포츠인텔리전트그룹 김동욱 대표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 최형우 선수 영입과 관련해 작업을 벌였다고 들었는데 해외 진출을 접은 이유가 뭔가요.

“야구를 하는 모든 선수가 가슴 한 켠에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품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처음엔 무조건 가고 싶었어요.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두 살만 더 젊었더라면 선택의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몰라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무대는 KBO리그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주저 없이 한국 잔류를 택했죠.”

▼야구를 하면서 언젠가는 FA를 맞이할 거라 생각했을 텐데요, 100억 원을 받게 될 거라고 예상했나요.



“전혀요. 해마다 연봉 협상 들어갈 때 구단 관계자에게 ‘연봉 좀 많이 달라’고 말하긴 했죠. 그러다 좋은 성적을 내고 FA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면서 혼자서 막연히 세 자리 숫자를 떠올려봤어요. 상상 속에만 있던 숫자였죠.”

▼100억 원이란 돈이 어느 정도인지 와 닿나요.

“많은 사람이 축하해줘서 기분이 좋긴 하지만 아직도 크게 와 닿진 않아요. 그냥 (박)석민이가 NC 가면서 받은 96억 원보다 4억 원을 더 받았다는 것 정도? 그렇게 생각해야 제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요. 한 번에 100억 원이란 돈이 다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그냥 숫자로만 느껴질 뿐 제 돈이란 생각은 안 들어요.”

최형우는 2009년부터 매 시즌 최소 23개 이상의 홈런(2012시즌 제외), 77개 이상의 타점을 기록했다. 2013~2016년 시즌 동안에는 평균 타율 0.338, 평균 31홈런, 평균 116타점, 평균 장타율 0.596을 기록했다. KBO 리그에서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타자는 이승엽, 에릭 테임즈, 박병호, 최형우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015년 2월, 최형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FA 120억 원 시대를 열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비록 120억 원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최형우는 꾸준한 활약으로 자신의 가치를 숫자로 입증해냈다.  

▼그런데 공식 발표된 100억 원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받을 거란 얘기도 있어요.

“저로선 100억 원 이든, 120억 원이든 숫자보다는 제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이전 인터뷰에서 120억 원 운운했다는 내용도 그 숫자보다는 그만큼 가치 있는 선수가 되자는 의미였거든요. 많은 사람이 ‘알려진 액수보다 더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고 보니 박석민, 채태인, 그리고 최형우 선수까지 통합 4연패를 이룬 삼성의 주축 선수가 모두 다른 팀으로 옮겨갔네요.

“석민이가 NC로 갈 땐 FA가 돼 돈 많이 받고 간 거라 섭섭하기보단 축하해주는 마음이 더 컸지만, (채)태인이 형이 넥센으로 갈 땐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거라 섭섭한 마음이 컸어요. 이젠 저도 삼성을 나왔는데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리고 우리 ‘애기들(후배들)’은 저를 그리워해야 해요. 안 그러면 혼납니다(웃음).”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이 중심이던 삼성 타선은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을 주축으로 세대교체를 이뤘다. 이후 삼성은 외부 FA 선수 영입 없이 통합 4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해냈다. 가장 화려했던 삼성 왕조의 주역들이 불과 1년 사이에 모두 팀을 떠나 다른 팀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2017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는 이승엽이 남아 있으나 삼성 팬들이 느끼는 우려와 불안한 시선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은 낯선 빨강 유니폼

▼최근에 삼성이 아닌 KIA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 보도자료로 기자들에게 전달됐어요. 파란색이 아닌 빨간색 유니폼이 아직은 낯설더라고요.

“저는 더 낯설었어요(웃음). 어쩔 수 없나 봐요. 15년을 삼성 유니폼을 입고 뛰었으니 기분이 더 묘할 수밖에요. 그래도 김기태 감독님이 FA 계약 이후 직접 전화를 주셨는데 감독님과 통화하면서 50%는 이미 KIA에 적응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부담도 갖지 말고 오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어요. 따뜻하게 받아주신 것 또한 고마웠습니다. 제가 원래 김 감독님 팬이거든요. 쌍방울 시절부터 좋아했어요. ‘형님 리더십’으로 유명하시잖아요. 감독님과 함께 야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설렙니다.”

최형우는 KIA의 김주찬, 이범호, 윤석민, 김선빈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다. 더욱이 삼성에서 함께 뛰던 임창용을 KIA에서 다시 만나게 돼 큰 힘이 될 것 같다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KIA 선수로, 또 선배이자 동료, 후배로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덧붙였다. KIA에서 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희망사항도 담아냈다.



국가대표로 첫 선발

▼야구 인생이 이제 후반기로 넘어간 건가요.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죠. 중반을 조금 넘어간 상황이에요. 절대 후반기는 아닙니다. 물론 이렇게 당당하게 말을 하다가도 내년에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마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15년 프로에서 뛰며 ‘내구성’ 만큼은 자신 있었고, 그걸 인정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나이를 거론하거나 체력을 운운하는 것은 저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꾸준히 지켜본 분이라면 제 야구 인생의 지금을 후반기라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웃음).”

최형우는 프로 입문 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다. 2017년 3월 서울과 일본, 미국에서 열리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에 뽑힌 것이다. 그동안 뛰어난 타격 성적에도 수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 바람에 태극 마크와 인연을 맺지 못한 최형우는 뒤늦은 타이밍에 그 인연을 부여잡았다.

“대표팀은 제게 응원의 대상이었지, 제가 그 팀에서 뛴다는 건 쉽게 상상이 안 돼요. 그래서 좀 신기하기도 해요. 소속팀과는 아주 다른 기분을 안겨주는데, 잘 해야죠. 민폐 안 끼치게.”

인터뷰를 마친 최형우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에 또 다른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기자와 인사를 나누면서 “그동안 코트만 입고 시상식에 나갔는데 오늘 처음으로 양복 정장을 차려 입었어요. 괜찮아 보이나요?”라고 물었다. 물론 괜찮고, 충분히 멋있었다. 서른세 살, 야구 인생의 중반기를 ‘살짝’(그의 주장대로) 넘긴 최형우가 FA 이후에도 거침없이 자신의 길을 달려가길 바라며, ‘응원’을 이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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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 스포츠 전문기자 riveroflym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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