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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광장시위의 사회문화학

각자도생의 ‘헬조선’을 넘다

  • 정윤수 | 문화평론가,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각자도생의 ‘헬조선’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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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이후 생겨난 공포

3수 끝에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을 때, 그것이 자칫 지역경제 파탄과 환경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일부 학자들이 비판했을 때 민동석 외교부 차관은 평창 올림픽 유치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 벌어질 때 이 정책에 반대하면 “국민도 아니다”고 말했다. 자동반사적으로 나온 이 발언들은 지배 집단이 ‘국민’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것은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가 전시동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설정한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비교적 평화 시기에는 약간의 논란으로 그치지만, 비상사태에서는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6·25전쟁을 전후로 한 숱한 민간인 학살 사건은 물론이고 4·19와 5·18 악몽, 가까이로는 용산 참사와 세월호가 그렇다. 용산 참사가 발생하자 한나라당의 어느 의원은 철거민들을 ‘불순 테러 세력’이라고,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전 청와대 정무수석)는 세월호진상조사위원회에 대해 ‘세금 도둑’이라고까지 표현한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니까 모든 사태의 핵심은 결국 ‘세월호’에 있다.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 깊이 공포를 느꼈다. 아,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국가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구나, 뭐라도 요구하면 ‘비국민’으로 몰리는구나, 하는 참담한 감정 상태 말이다.

세월호 이후 각종 비참한 사건이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국가는 책임을 다하기보다 방관하거나 심지어 조롱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8월의 ‘광복 70주년’ 행사다. 나는 그때, 광화문광장에서 똑똑히 보았다. 광화문 바로 앞에 초대형 무대가 만들어졌고 드넓은 도로까지 완벽하게 통제해 크고 작은 공연이 벌어졌다. 군악대가 도로를 따라 광화문으로 행진하고 사물놀이단은 세종문화회관 쪽 도로를 이용해 광화문 앞 대형무대로 운집했다. 바로 그 자리에 1년 4개월이 넘도록 간신히 버티고 있는 세월호 천막 농성장이 있었지만 그 거대한 국가 행사는 오히려 세월호 천막을 비웃듯이 그야말로 ‘풍악을 울리며’ 진격했다.





혼자이면서 여럿인 광장

각자도생의  ‘헬조선’을  넘다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뉴스1]

아무리 광복 70주년을 기념하는 국가 행사라 해도, 어찌 됐든 자식을 잃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1년 4개월을 보내고 있는 유족들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자제할 법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세월호 천막의 좌우에서는 경사스러운 음악과 충만한 음향이 넘쳐흘렀다. 버스를 개조한 무대 위에서는 세월호 유족들을 내려다보면서 조롱하듯이 요란한 춤을 췄다.

그때 나는 모멸감을 느꼈다. 구경꾼의 처지에서도 마음이 극도로 심란해지는데, 유족들은 어떤 상태였을까. 그런 감정 상태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이 이번에 광화문광장으로 모여든 것이다.

이 광장에는 예술가들도 함께했다. 11월 5일 시작된 광화문 캠핑촌 농성은 주말의 집회 광장을 평일의 일상 광장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 예술가들(송경동, 신유아, 노순택, 이윤엽 등의 작가)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 성직자들, 시민들이 노숙 농성에 참여했다. 과거 몇몇 예술가가 공장과 생활 현장을 찾아갔다면, 한때 그들의 지원을 받아 외롭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캠핑촌 농성장을 찾아와 연대한 것이다. 록, 포크, 힙합, 레게, 국악 등 전 분야의 뮤지션들도 광장 무대에 올랐다. 갤럭시익스프레스, 허클베리핀, 크래쉬 같은 인디 뮤지션과 안치환, 강산에, 손병휘, 이은미, 정태춘, 전인권, 양희은이 나섰다.

이 광장을 채운 사람들은 ‘동원된 군중’이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누군가 ‘동원’한다고 해도 10만, 100만, 200만은 어림없다. 이들은 손에는 촛불을 들었지만 마음에는 뜨거운 횃불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다. 한복판으로 들어가 보면 원래 정해놓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운집해 벅찬 숨을 몰아쉬며 광화문 저 너머를 응시했다.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몸이 지배당하고 감정이 사육당한 사람들, 그들이 해방의 광장, 위계질서가 일시적으로나마 파괴된 카니발의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그들의 생존 조건은 저마다 다르며 그 기호, 감각, 취향도 다르다. 바로 이 ‘수많은 다름’이 의미가 있다. 그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행진을 한다.

그 흥미로운 증거가 독특한 깃발들이다. ‘장수풍뎅이연구회’를 시작으로 해 범야옹연대, 햄네스티, 트잉여연합, 민주묘총, 어부바연합, 전견련(전국견주연합회), 사립돌연사박물관 같은 깃발들이 펄럭거렸다. 100만, 200만은 이런 사람들의 참여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예감, 기대, 가능성

무한경쟁 시대에서 혼자 살아남는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헬조선, 다시 말해 각자도생! 그리하여 혼밥, 혼술, 혼잠 같은 말들이 잔인한 블랙유머로 일상화하고 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면서, 스펙을 쌓고 성과를 올리고 사방으로 뛰어다녀도, 결국 혼자인 상태로 방치되고 버려지는 곳이 헬조선이다.

그런데 광장이 열렸고, 그래서 ‘혼자’인 사람들이 약간의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광장에 나오는 것이다. 광장에는 보란듯이 ‘혼자 온 사람들’이라는 깃발도 펄럭이고 있었다. 헬조선에서 혼밥을 먹고 혼술을 마신 사람들. 마땅히 어떤 모임이나 연합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사람들도 혼자 거리로 나와 광장으로, 청와대로 걸어간 것이다. 헬조선은, 혼자 탈출하기에는 불가능하지만, 여럿이 함께 움직이면 벗어날 수 있다. 그런 예감, 그런 기대, 그런 가능성을 위해 모인 광화문광장이었다.  





신동아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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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문화평론가,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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