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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감독은 ‘독이 든 성배’ 배구 발전 위해 기꺼이 마시겠다”

국가대표 감독으로 돌아온 ‘컴퓨터 세터’ 김호철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국가대표 감독은 ‘독이 든 성배’ 배구 발전 위해 기꺼이 마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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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시절 ‘컴퓨터 세터’로 불리며 배구 코트를 주름잡던 김호철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야인 생활을 하던 그가 2년 반 만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코트에 복귀했다.
그눈빛은 여전했고, 그 여전함이 반가움으로 이어졌다. 호탕하게 웃고 있어도 늘 날카롭게 빛나던 눈빛이 기억나 “감독님 눈빛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배구장 밖에서는 게슴츠레하게 보이는데 코트로 돌아오면 날이 섭니다” 하고 받아친다.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돌아온 김호철(62) 감독. 2014~2015시즌 이후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내려온 그가 2년 만에 ‘독이 든 성배’로 대변되는 대표팀 감독직을 맡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대표팀 감독 자리는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독박’을 쓰기 마련이다. 프로팀 감독의 연봉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대우를 받고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자리다.

배구 프로화가 이뤄지면서 국가대표팀의 비중은 예전만 못하다. 인기와 명예를 안겨줬던 대표팀 감독 자리는 고생을 각오해야 버틸 수 있는 자리로 바뀌었다. 이런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대표팀 ‘구원 투수’로 등장한 김 감독을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김호철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건 2006년(도하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획득)과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그가 2년여의 ‘야인’ 생활을 정리하고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지인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뭐 하러 욕을 더 먹으려 하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리운 선수들의 기합소리

그에게도 인간적인 흔들림이 있었다. 2014~2015시즌을 마치고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일 때문에 소홀히 했던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또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스트레스 받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그가 대표팀 감독을 맡은 건 사명감,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았다.
“백수로 살다 다시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되니 불편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지만, 가끔은 코트에서 선수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그리울 때가 있었다. 덕분에 지금은 원 없이 듣고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제2의 고향’인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가족여행도 다니고 친구들과 골프도 쳤다. 배구 외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다(아들 김준이 골프선수다). 한마디로 자유를 만끽했다. 배구만 알고 달려온 시간에 대한 휴가라고 여기고 즐겁게 놀았다.”

잘 쉬어서인지 표정이 밝더라. 2시간가량 연습하는 걸 지켜봤는데 ‘버럭’과 ‘호통’으로 대변되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구만 안 하면 표정이 더 좋아질 자신 있다(웃음). 지금 모인 대표팀 선수들은 1.5군이나 다름없다.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문성민, 김요한, 한선수, 전광인 등이 부상과 재활 등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배구는 비시즌이 되면 주전 대부분이 재활 치료에 돌입한다. 그때 열리는 대표팀 경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표팀 소집을 앞두고 각 팀 감독들에게 직접 전화해 선수 좀 보내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했다. 전에는 내가 그런 전화를 받았는데….”


옅어진 태극마크 자부심

감독들 중에는 후배나 제자들도 있을 텐데.
“그래도 대표팀 감독은 프로팀 감독에게 부탁하는 입장이다. 다들 서로의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도와주려 했지만 결과적으론 소득이 별로 없었다.”

김호철 감독은 소속팀에서 제자의 연을 맺은 문성민이, 그리고 대표팀에서 만난 한선수가 모두 결혼해 아이 아빠가 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그들과 비슷한 세대의 김요한은 여전히 싱글이라는 사실에 걱정(?)을 나타냈다. 처음 만났을 때 20대 초반이던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자신도 나이를 먹었음을 절감한다는 그는 김요한이 배구를 잘하려면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애정 가득 담은 질타와 함께.

선수 소집이 어느 정도 힘들었나.
“각 팀 주전급 선수들을 뽑지 못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대표팀을 위한 희생정신을 강조했겠지만 정규시즌을 위해 몸을 만들어가는 선수들에게 대표팀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하기 어려웠다. 대표팀도 살아야 하지만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구단도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기량은 좀 떨어져도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들 위주로 선발했다.”

‘요즘 선수들’이란 말이 있다. 혹시 지금 그 말이 확 와 닿는가.
“예전엔 선수들이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프로화된 후에는 선수들이 대표팀보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걸 탓하긴 어렵다. 대표팀에서 훈련이나 경기 도중 자칫 부상이라도 입으면 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 선수 마인드를 탓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뭐라도 한 가지 이상은 가르쳐 소속팀으로 돌아가게끔 도와주고 싶다. 그래야 감독이 나중에 또 보내줄 테니까.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시키는 편이다.”



‘개인’이 아닌 ‘원팀’

월드리그 예선전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유럽 팀들과의 기량 차이가 큰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문성민, 전광인 등 주전들이 다 들어온다고 해도 거기서 살아남을까 말까다. 에이스도 없고, 부상 선수도 많아서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고 절대 ‘대충’하진 않을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싸우겠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정신력만 강조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맞는 얘기다. 선수들의 정신력 고취를 위해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지도력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지금은 선수들 분위기도 살피고, 훈련을 재미있게 이끌면서 선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한다.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진 상태에서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했다.”

예전보다 상당히 부드러워졌다는 얘기가 들리더라.
“나도 내가 변한 걸 느낀다. 지금은 큰소리칠 필요가 없다. 실력이 부족한 선수들을 상대로 소리치고 화를 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대표팀에선 선수들 기량을 만들어가기가 어렵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지금은 ‘개인’이 아닌 ‘원팀’을 만들어야 하고, 팀을 위해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자꾸 호통치면 결정적일 때 그 호통이 먹히지 않는다.”

김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6월 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월드리그 국제남자배구대회에 출전했다. 월드리그 남자배구대회는 올해 36개국이 참가했고, 지난해 성적에 따라 그룹별로 나뉘어 조별예선을 치르는 중이다. 한국은 2그룹에 속했고, 2그룹에는 한국·중국·일본·터키·포르투갈·이집트·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체코·호주·네덜란드·핀란드까지 12개국이 포함됐다. 2그룹 12개팀은 4개국씩 3조로 나뉘었는데 1주차는 한국, 2주차는 일본에서 치렀고, 네덜란드에서 3주차 경기가 펼쳐진다.

한국은 1·2주차 6경기에서 3승 3패, 승점 7점으로 8위에 자리했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1주차 3연전에서 대표팀은 체코와 핀란드를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격파했고, 일본 원정길에선 2그룹 단독 선두 슬로베니아를 상대로 선전 끝에 2-3으로 패했고, 터키한테 3-2로 승리했다. 일본에 0-3패를 당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현대캐피탈과의 애증

배구를 떠나 있는 동안 아예 배구 경기를 보지 않았다던데 사실인가.
“현대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몸도 마음도 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반 넘게 배구장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 현대 최태웅 감독의 요청으로 두 차례 배구장을 찾은 것 외엔 아예 배구와 연을 끊고 지냈다. 당시 이런저런 구설에 시달리면서 지치기도 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 같아서 ‘아, 이제 내가 손을 놔야겠구나’ 싶더라. 정규시즌 마친 후 구단이랑 얘기를 나눴고 계약기간 1년이 남아 있었지만 자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배구에 대한 회의가 심해지니까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회의를 느낀 건가.
“성적이었다. 프로는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하는 운명을 안고 산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구단에서 자꾸 간섭한다. 그런 부분이 스트레스를 줬다. 성적은 내야 하고, 변화를 주려니 시간이 없고, 구단과 마찰을 빚으며 점점 배구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구단에선 총감독직을 제안했지만 미련 없이 팀을 떠났다.”



잘못 꿴 단추

2015년 3월 초, 현대캐피탈은 김 감독의 자진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구단은 만류했지만 김 감독은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책임을 졌다.

현대캐피탈과는 오랜 인연을 맺었다. 2004년 감독으로 부임한 후 2005~2006, 2006~2007시즌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가 2010~2011시즌 도중 경질됐다. 이후 2012~2013시즌 드림식스 사령탑으로 코트에 복귀했고, 2013~2014시즌에는 현대캐피탈로 돌아왔다. 그때 현대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가 뭔가.
“구단의 의지가 강했다. 두 번이나 고사했지만 안남수 전 단장이 간곡히 부탁했다. 당시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제안했기 때문에 나로선 선택받는 게 아닌 선택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8년간 정들었던 현대로 돌아갔다. 그때 그 선택만큼은 지금 후회한다.”

2011년 5월 3일 현대캐피탈 총감독으로 추대되는 동시에 하종화가 후임 감독으로 내정됐다. 사실상 감독 경질이었는데.
“당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 배구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런 방식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 회사에선 날 총감독으로 추대한다고 발표했지만 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는 나를 그렇게 내보낸 현대에 오기가 생기더라. 다른 팀에 가서 현대캐피탈만큼은 꼭 이길 것이라는 오기가. 그때 정말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품은 오기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단추를 잘못 꿰다 보니 그 이후 계속 일이 꼬이기만 했다.”

결국 2012년 10월 한국배구연맹(KOVO) 관리구단인 드림식스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했다. 드림식스는 모기업을 구하지 못해 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의 ‘네이밍스폰서’ 방식으로 운영 자금을 충당했다. 당시 여러 팀에서 김 감독 영입 작전에 나선 걸로 아는데 왜 드림식스였는지 궁금하다.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원래 드림식스는 우리캐피탈 드림식스로 팀 창단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2011년 우리금융그룹이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배구단 운영에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KOVO가 위탁받게 된 것이다. 그러다 2012~2013시즌엔 대부업체인 아프로서비스그룹(러시앤캐시)이 명칭 후원을 약속하며 러시앤캐시 드림식스라는 이름의 팀이 창단됐다. 그때 그 팀을 맡았는데, 이후 드림식스는 우리카드가 다시 배구단 운영에 나서면서 ‘우리카드 위비’란 이름으로, 드림식스를 후원했던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새로운 브랜드인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을 창단해 운영 중이다. 드림식스와 한 시즌을 보낸 후 현대캐피탈로 다시 옮겨간 셈이다. 그때 다시 돌아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처음 현대를 나올 때 ‘타도 현대’를 목표로 했다는데, 드림식스를 이끌며 어느 정도 성공한 부분도 있었다.
“참 인생이 재미있다. 그땐 내가 다시 현대로 돌아갈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다른 팀은 몰라도 현대를 만나면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덕분에 팀 분위기가 엉망이던 드림식스를 시즌 막판까지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벌일 수 있을 만큼 강팀으로 만들었다. 그 후 친정팀의 부름을 받게 됐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다시 현대로 돌아간 게 의외였다.
“현대로 돌아간 상황은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위안 삼았지만 너무 내 마음만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성적 문제로 구단과 마찰이 빚어졌고, 날 데려간 안남수 단장이 먼저 경질되면서 나 또한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내겐 그만두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후임 최태웅 감독

이후 현대캐피탈은 지도자 경험이 전무한 최태웅을 사령탑에 앉혔다. 김 감독도 예상한 카드였나.
“어느 정도 예상했다. 정태영 구단주가 팀에 신선한 변화를 원했고 최태웅이 림프암을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걸 높이 평가하던 터라 내 뒤를 잇지 않을까 싶었다. 나 또한 최태웅을 추천했다. 결과적으론 현대가 아주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본다.”

김호철 감독의 뒤를 이어 현대캐피탈 사령탑에 오른 최태웅 감독은 2년 만에 2016~2017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거머쥐며 10년 만에 팀에 챔피언트로피를 안겼다. 최 감독은 인터뷰 때마다 스승인 김 감독을 언급했다.

최 감독은 2010년 6월 삼성화재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보상선수로 현대캐피탈을 향했고, 그해 발목 수술과 함께 림프암 진단까지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라 은퇴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김 감독은 선수 최태웅을 끝까지 챙겼다. 몸 상태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때까지 훈련 참가를 배려해줬고, 그 덕분에 최태웅은 재활 후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었다.



라이벌 신치용 감독

최 감독은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김 감독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어 연락도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번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스승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했고, 김 감독은 최 감독이 내민 손을 거절하지 않고 잡았다.

최태웅 감독이 스피드 배구로 배구판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스피드 배구는 김 감독도 실전에서 활용하지 않았나.
“최 감독과 내가 추구한 스피드 배구엔 약간 차이가 있다. 최 감독은 4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배구이고, 난 콤비 배구를 추구했다.

나보다는 최 감독이 세계 배구 흐름에 맞게끔 전술과 전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 감독을 맡고 스피드 배구 연습을 많이 했다. 세터 권영민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최 감독은 나랑 같이 연습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잘 알고 있다. 나와 차이점이 있다면 최 감독은 노재욱이란 장신 세터를 데려오면서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단에선 최 감독의 스피드 배구가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려줄 의향이 있었다. 난 무조건 성적을 내야 했기 때문에 스피드 배구를 하다가 잘 안 되면 포기하고 방향을 틀어야 했다. 만약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조건 스피드 배구를 밀고 나갔을 것이다.”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과는 배구계의 유명한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한 사람은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다른 사람은 단장으로 팀을 맡았다.
“신 단장과 함께 코트에 섰을 때는 많은 이슈가 만들어졌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기사화됐을 정도이니 말이다. 난 신 단장이 감독을 더 오래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나오자 그도 코트를 벗어났다. 우리 세대가 저물어가는 듯해서 아쉬움이 컸다. 신 단장이 팀을 이끌 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난 쫓아가는 입장이었고, 그는 지키는 입장이었으니까. 우리가 지는 건 이슈가 안 됐지만 삼성이 패하는 건 이슈가 됐을 정도다. 현대와 삼성은 배구계의 공존 관계다. 나와 신 단장이 물러났다고 해도 그 공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를 위해선 그런 라이벌 팀이 필요하다. 선수들한테도 동기부여가 된다. 감독인 나도 그랬으니까. 신치용 감독과는 경쟁을 하면서 정이 들었는지 요즘도 가끔 전화 통화를 한다. 이번에 대표팀 코치로 임도헌을 데려오면서 신 단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배구인으로 살아온 인생에 후회는 없나.
“전혀. 한 번도 배구한 걸 후회한 적 없다. 배구를 해서 김호철이란 이름도 알려진 게 아닌가. 작은 키에 스포츠 좋아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배구였고, 세터였다.”


몰빵배구의 원인

배구계에선 외국인 선수한테만 집중되는 공격 성향을 ‘몰빵배구’로 칭하며 폄하한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한국 배구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전에 신인 드래프트를 하면 대학에서 걸출한 신인이 쏟아졌다. 지금은 대학생 배구 선수도 학점 관리하느라 훈련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 그런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면 설 자리가 없다. 도태되는 경우가 더 많다. 눈에 띄는 공격수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선수들은 어떻게 실력을 키워갈 수 있을까. 모두가 같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만약 삼성화재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았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
“거기서 날 오라고 할 일도 없겠지만 오라고 했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삼성은 신치용의 색깔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지도자 인생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꼽는다면?
“현대캐피탈을 맡아 처음으로 삼성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5~2006시즌 우승 이후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는데 그때 신치용 속이 많이 쓰렸을 것이다.”

프로팀에서 감독직 제의가 온다면 다시 프로배구로 돌아갈 건가.
“글쎄,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은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리그는 물론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팀 문화와 조직력을 다지고 경기 결과까지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그런데 사람 일은 예단할 수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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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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