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 기영노 | 스포츠평론가

    입력2014-08-20 1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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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참가하면 국제적 흥행
    • 개회식 총감독 임권택, 총연출 장진
    • 양학선-이세광, 박태환-쑨양 세기의 대결
    • 아시아 주방장 ‘요리 축제’ 함께 열려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를 슬로건으로 내건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패는 인천시민, 흥행 여부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쥐고 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간 열린다. 육상 수영 등 28개 올림픽 종목과 야구를 비롯한 비(非)올림픽 8개 종목 등 모두 36개 종목에 45개국 1만3000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다.

    36개 경기가 펼쳐질 38개 경기장 중 12개는 인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 마련됐다. 경기 하남시, 고양시, 안산시, 부천시, 안양시, 수원시, 화성시와 충북 충주시, 서울 양천구에서도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다.

    가장 큰 관심사는 흥행 여부다. 각 경기장에 관중이 가득 들어차지 않으면 중계 화면이 빈약해진다. 전국체전과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경기장에 매일같이 구름 관중이 몰려들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은 1974년부터 참가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손연재

    인천시는 대회 기간에 중국 일본 등지에서 20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경기장 수와 16일 동안의 경기 일정에 비하면 관광객 수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인천시민과 경기가 열리는 도시의 시민이 경기장을 자주 찾아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한다. 마침 대회 기간에 ‘국화축제’와 아시아 각국 최고의 주방장이 솜씨를 겨루는 ‘음식문화 축제’가 함께 열린다.

    북한의 참가 여부는 아시아경기대회가 지역 대회로 그치느냐, 아니면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빅 이벤트로 자리매김하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북한은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05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선수와 응원단을 파견해 지역 대회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대회로 격상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참가를 최종 승인하면 아시아경기대회의 흥행은 8할 이상 성공한 셈이다.

    아시아경기대회 입장료는 최저 무료(마라톤, 경보 등)에서 최고 10만 원(남자축구 결승전)이다. 그 밖에 각 종목 입장료는 박태환 손연재 이용대 같은 스타플레이어가 출전하거나 인기가 있는 종목은 3만~5만 원 안팎, 그렇지 못한 종목은 5000원~2만 원이다.

    IT 초강국에서 열리는 만큼 최첨단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 아시아경기대회’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IT를 경기 운영과 중계 등에 연계하는 것은 물론 참가자, 운영자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경기 상황과 결과, 교통, 맛집까지 한손에 찾아볼 수 있다.

    1951년 ‘영원한 전진’을 슬로건으로 인도 뉴델리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경기대회는 원래 아시아 각 국민의 우호 증진 및 세계 평화 기여를 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극동 선수권대회와 서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합해 창설된 것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한국 필리핀 미얀마(당시 국명 버마) 인도 타이완 스리랑카 6개국이 모여 4년마다 한 번씩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1951년 1회 대회 때 한국은 6·25전쟁으로 불참했다. 개최국 인도, 일본 등 11개국이 참가해 열린 뉴델리 대회가 끝나고 3년 후 마닐라에서 제2회 대회가 개최됐다. 마닐라 대회 이후부터는 4년마다 열린다.

    초창기에는 이스라엘도 참가했지만 중동 국가의 반대가 심해 1974년 테헤란 대회 이후 이스라엘은 출전하지 못했다. 대신 중국과 북한이 합류했다. 또한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아시아에 속하는 독립국이 된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이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가입했다. 이 5개국은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12회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종합 1위 中·日 8번씩

    1951년 1회 대회부터 1978년 8회 대회(방콕)까지 일본이 매 대회 가장 많은 메달을 땄다. 아시아경기대회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종합 시상제가 없지만 통신사와 각국 언론이 편의상 금메달 수 기준으로 종합 순위를 정한다.

    중국은 처음으로 참가한 1974년 테헤란 대회 때 일본은 물론 개최국 이란에도 뒤져 3위에 그치더니 1978년 방콕 대회 때는 일본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1982년 뉴델리 대회에서 처음 종합 1위를 차지한 후 2010년 광저우 대회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대회마다 전체 금메달 수의 40%까지 휩쓸며 아시아 스포츠의 거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북한은 1978년 방콕, 1982년 뉴델리, 1990년 베이징 대회에서 모두 4강 안쪽에 들었으나 이후에는 10위 안팎에 머물렀다.

    한국은 1954년 2회 마닐라 대회 이후 2~3위권을 맴도는데, 1986년 서울 대회 때는 종합 1위를 차지할 뻔했다. 중국과 금메달 수 93대 94, 단 한 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당시 한국은 중국을 물리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려고 양궁의 금메달 수를 4개에서 거리별로 메달을 수여하도록 해 12개로 늘리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2005년 제16회 아시아육상경기대회가 열린 인천을 찾은 북한 ‘ 미녀응원단’. 맨 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아내 이설주.

    아시아경기대회를 한 번이라도 개최한 나라는 9개국이다. 태국이 4번으로 가장 많다. 한국이 3번, 중국 인도 일본이 각각 2번, 필리핀 인도네시아 카타르 이란이 한 번씩 대회를 개최했다.

    인천 대회 다음인 18회 대회는 월드컵과 겹치지 않게 시기를 조정해 5년 후인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근 베트남이 개최권을 반납하는 바람에 공중에 떠 있다. 9월 20일 OCA 총회에서 다시 결정한다.

    한편 동계아시아경기대회는 1986년 제1회 삿포로 대회 이후 4년마다 꾸준히 열린다.

    금메달 40% 가져가는 중국

    최근의 아시아경기대회에선 4·7·9 법칙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금메달 기준으로 전체의 40% 가까이를 중국이 가져가고, 중국과 한국, 일본 세 나라의 메달 합계가 전체 금메달 수의 70%를 휩쓰는 것이다. 또한 메달 랭킹 1위부터 10위 이내의 10개국이 전체 금메달 수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 개최국 한국을 비롯해 북한 등 44개국이 참가했는데, 중국이 427개의 전체 금메달 가운데 36%에 육박하는 150개의 금메달로 1위 자리를 지켰고, 한국은 역대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가장 많은 96개의 금메달로 2위, 일본이 44개로 3위를 차지했다.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전체 금메달 수의 67%인 290개의 금메달을 휩쓴 것이다. 10위까지 10개국의 메달 합계는 376개로 전체의 88%를 차지했다.

    2006 카타르 아시아경기대회와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이번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아시아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종합 1위(금메달 51개)를 차지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미국과 옛 소련에 이어 종합 3위(16개 금메달),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소련, 동독, 미국에 이어 종합 4위(12개 금메달)에 올라 스포츠 강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니 중국 한국 일본이 아시아권에서 다수의 금메달을 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는 439개의 금메달이 걸렸다. 중국은 육상 수영 사격 탁구 배드민턴 역도 조정 등 대부분의 메달밭에서 강세를 보이며 금메달 150개 안팎으로 종합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최국 한국은 기본 종목인 육상, 수영에서는 여전히 약세를 보이겠지만, 사격 양궁 태권도 펜싱과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확하면서 90개 가까이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육상 수영 등 기본종목에서 중국과 금메달을 양분하면서 레슬링 복싱 유도 등 투기종목 등에서 최소한 60개 이상의 금메달로 3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경기대회 메달을 중국 한국 일본이 휩쓸어왔기에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를 일부 국가에만 편중된 잔치가 아닌 아시아 전체가 공감하는 나눔과 배려의 대회로 만들려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아시아경기대회유치를 확정한 이후 ‘Vision 2014’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2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스포츠 약소국에 전지훈련과 지도자, 용품 등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이는 아시아스포츠의 균형 발전을 꾀하고, 참가국 모두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인데, 단기간 투자로 얼마나 실효를 거뒀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스포츠에서 항상 선택과 집중에 주력한다. 특정 종목과 일부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해 아시아 또는 세계 정상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은 2012 런던 올림픽 때 남자 역도 56㎏급의 엄윤철, 62㎏급의 김은국, 여자 역도 69㎏급의 림정심, 여자 유도 52㎏급의 안금애 등 금메달리스트 4명을 배출했다. 이번 인천 대회에서도 역도 유도 사격 여자축구 등에서 10개 안팎의 금메달로 종합 10위 이내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스포츠는 라이벌을 먹고산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도 많은 라이벌전이 준비돼 있다. 수영에서 한국의 박태환과 중국의 쑨양이 벌일 라이벌전은 아시아를 넘어 세기의 대결이 될 것이다. 두 선수가 자유형 200m와 400m, 1500m에서 세계 정상권이기 때문이다.

    이색 스타들

    父子가 금메달 7개 합작(日 해머 무로후시)

    “적 심장 쏘는 각오”로 백발백중(北 사격 서길산)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해머 무로후시 고지(왼쪽), 사격 서길산.

    일본의 무로후시 부자(父子)와 북한의 서길산을 빼놓고 아시아경기대회를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아들 무로후시 고지는 해머던지기에 관한 한 아시아의 무적부자(無敵父子)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1970년부터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까지 남자 해머던지기 5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아시아경기대회 5연속 금메달은 시게노부가 유일하다. 시게노부는 1968년 유럽주니어 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창던지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세레피나 모리츠와 결혼을 했다.

    무로후시 시게노부는 아시아에서는 천하무적이었지만 세계무대에서는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2세는 세계를 정복하도록 하고자 유럽의 여자육상 선수와 정략(?)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했다.

    무로후시 시게노부와 세레피나 모리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인 무로후시 고지가 1998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와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해머던지기 2연패에 성공해 무로후시 부자는 ‘아시아경기대회 7개 금메달 합작’을 달성했다. 고지는 또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해머던지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아버지의 숙원을 풀어줬다.

    무로후시 부자가 7번의 대회에서 7개의 금메달을 딴 반면 북한의 서길산은 한 대회에서 7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길산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권총에 걸린 7개의 금메달을 독차지해 아시아 사격의 영웅으로 불렸다. 개인전에서 4개, 단체전에서 3개 등 권총에 걸린 금메달을 모두 휩쓴 것. 현재 사격은 한 선수가 세 종목까지만 출전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따라서 개인전과 단체전까지 모두 출전해 전 종목을 석권하더라도 6관왕 이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아시아경기대회 7관왕은 다른 종목을 통틀어도 앞으로는 나오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이다.

    서길산은 명중 비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적의 심장을 쏜다는 각오로 했더니 백발백중이 됐다”는 섬뜩한 말을 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이어서 이 발언은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돼 공분을 사기도 했다.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박태환과 쑨양의 맞대결은 아시아를 넘어 세기의 대결이다.

    지상 최대 라이벌戰

    다만 아시아경기대회 성적은 박태환이 쑨양보다 월등하게 우세하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200m·400m·1500m를 석권하며 3관왕에 등극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도하와 같은 3종목에서 정상에 오르며 ‘아시아경기대회 2회 연속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태환은 또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차지해 쑨양에 우위를 보였다.

    하지만 둘의 우열은 2012 런던 올림픽을 계기로 역전됐다. 당시 박태환이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억울한 실격 판정 후 번복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선에 진출해 은메달을 획득한 반면, 쑨양은 자유형 400m·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해 2관왕에 올랐다.

    이후 쑨양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3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자유형 400m와 800m, 1500m 등 3개 종목을 석권하며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돼 수영 중장거리의 1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음주운전 등으로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다. 반면 박태환은 별 탈 없이 성실하게 훈련해 이번에 200m와 400m에서 대등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배드민턴에서는 여러 라이벌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남자복식의 이용대-유연성 조와 김기정-김사랑 조는 세계랭킹 5위권인 인도네시아의 모하메드 아흐산-헨드라 세티아완 조, 중국의 쉬천-마진 조와 함께 9월 28일 결승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말레이시아의 국보급 남자단식 선수 리총웨이와 최근 10년간 세계 최고의 단식 선수로 군림한 중국의 린단이 결승전에서 맞붙는다면 세계 최고의 배드민턴 이벤트가 될 것이다. 린단과 리총웨이는 2008 베이징 올림픽, 2012 런던 올림픽 결승전에서 만나 두 번 모두 린단이 이겼다.

    진종오·탄쭝량의 4번째 대결

    체조에서 ‘도마의 신’으로 불리는 양학선은 팀 동료 김희훈과 북한 이세광 등의 도전을 받는다. 이세광은 2006 도하아시아경기대회 도마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고 있으며 2012 런던 올림픽에는 북한 체조팀이 출전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다. 이세광은 비록 체조선수로 환갑인 29세지만 잔실수만 줄인다면 아시아권에서는 양학선을 무너뜨릴 유일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양학선이 ‘양학선 2(도마를 옆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반 비틀기)’에 성공한다면 금메달이 무난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걸림돌이다. 김희훈은 지난해 일본 도요타 컵 기계체조대회 도마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사격에서는 한국의 진종오, 중국의 탄쭝량의 라이벌전이 불꽃을 튀길 것이다. 진종오와 탄쭝량은 2002 부산, 2006 카타르, 2010 광저우 대회에 이어 4번째 맞붙는다.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탄쭝량은 10m 공기권총 등 3관왕에 오른 반면 신인이던 진종오는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2006 카타르 대회에서도 탄쭝량이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땄고, 진종오는 동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2010 광저우 대회에서 진종오가 공기권총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올랐고, 탄쭝량은 은메달 1개에 그쳐 진종오가 판정승을 거뒀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김장미는 25m 권총과 10m 공기권총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의 이쓰링을 넘어서야 한다. 이쓰링은 런던 올림픽 첫 번째 금메달이 걸린 10m 공기권총을 석권했고, 김장미는 25m 권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리듬체조의 손연재는 중국과 일본 선수를 넘어서야 대망의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4년 전 아시아경기대회 때 손연재는 카자흐스탄의 랴브예바와 우즈베키스탄의 울리아나 트로피모바에 밀려 동메달에 그쳤지만 지금은 기량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손연재는 현재 개인종합 세계랭킹 5위권이다. 아시아에서 손연재의 기량에 가장 근접한 우즈베키스탄의 자밀라 라크마토바는 15위권이고, 일본의 미나가와 가호는 20위권 밖에 있다. 한때 중국의 덩센유에가 손연재보다 세계랭킹이 높았으나, 지금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구기종목에서도 수많은 라이벌전이 벌어질 예정이다.

    프로선수가 주축을 이룬 한국 야구와 사회인 선수로 구성된 일본 야구가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인다. 대만 야구도 다크호스다. 축구의 한국과 일본, 남자 핸드볼의 중동국가들과 한국, 이제는 탈(脫)아시아급이라고 불리는 이란에 도전하는 남자농구의 한국과 중국, 여자농구의 한국과 일본 중국의 3파전, 여자배구의 한국 태국 중국 일본의 4파전, 탁구의 한국과 중국, 필드하키의 인도와 파키스탄 등.

    3가지 금기

    마라톤 선수 없는 이란


    아시아경기대회에는 3가지 금기가 있다.

    하나는 이란의 마라톤, 둘은 카자흐스탄의 축구, 셋은 오스트레일리아(호주)라는 단어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30㎞ 떨어진 지역 이름이다.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마라톤은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마라톤 벌판을 달려가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 1회 아테네 올림픽 때 채택된 종목으로 알려졌다.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이란은 마라톤을 금기시한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대회와 아시아경기대회의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이란 선수는 지금껏 단 1명도 없으며,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마라톤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카자흐스탄은 옛 소련의 붕괴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 더불어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주최의 대회는 물론 AFC(아시아축구연맹) 주관의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그런데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축구 종목만을 유럽의 UEFA(유럽축구연맹)로 옮겨버렸다.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축구경기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들을 볼 수 없게 됐다.

    한때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가 OCA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편입은 흥행 면에서 엄청난 호재이기는 하나 그렇게 되면 ‘아시아경기대회’라는 순수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논란 끝에 일부 국가의 반대로 호주의 OCA 편입은 물거품이 됐고, 이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호주’라는 말은 분란만 일으키는 단어로 취급받는다.


    ‘굴렁쇠 소년’의 재현

    2014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은 아시아 전체의 공감을 유도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주제로 열린다.

    개회식과 폐회식은 ‘45억의 꿈, 하나 되는 아시아’라는 전체 주제 아래 구성된다. 개회식과 폐회식은 각각 ‘아시아의 미래를 만나다’ ‘아시아는 이제 인천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주제로 시작과 끝을 장식할 예정이다.

    9월 19일 오후 6시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개회식은 고은 시인의 헌시인 ‘아시아드의 노래’에 곡을 붙여 성악가 조수미 씨와 인천시민합창단이 부르는 문화 행사로 시작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전 세계에 감동을 준 바 있는 ‘굴렁쇠 소년’의 등장과 함께 무대가 전환돼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는 내용의 공연으로 이어진다. 이후 국기 입장을 시작으로 선수와 심판 대표의 선서까지 공식 행사가 진행된다. 그러곤 성화가 점화되고 가수 싸이가 불꽃놀이 속에서 축하 공연을 펼친 뒤 선수단이 퇴장하며 개회식의 막이 내린다.

    16일간의 열전이 끝난 뒤 10월 4일 오후 6시 열리는 폐회식은 아시아라는 이름 아래 추억을 만들고 친구가 된 이들이 대회를 기억하는 자리로 꾸며질 예정이다. 공식 행사에서는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배경으로 국기와 선수단이 입장하고 폐회 연설과 폐회 선언, 대회기 이양이 이어진다. 16일 동안 아시아를 밝힌 성화가 꺼지면 빅뱅을 비롯한 한류 가수의 축하공연으로 행사가 마무리된다. 개·폐회식은 거장 임권택 감독과 아이디어 뱅크로 손꼽히는 장진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다.

    스포츠 거인이 몰려온다.

    가장 눈에 띄는 아시아 스포츠 영웅은 앞서 언급한 수영의 박태환과 쑨양이다. 두 선수 모두 남자 자유형 중·장거리에서 세계 정상을 다투는 스타플레이어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의 간판스타로 손색이 없다.

    육상에서는 중국의 필드종목 3인방의 기량이 벌써부터 세계무대를 향해 있다.

    류샹의 뒤를 이어 세계적 선수로 떠오른 남자 110m 허들의 셰원쥔과 남자 장대높이뛰기 쉐창루이, 남자 멀리뛰기 왕젠난은 아시아에 적수가 없다. 쉐원쥔은 110m 허들에서 13초23의 세계적인 기록을 갖고 있고, 쉐창루이는 장대높이뛰기 국제대회에서 항상 정상에 오를 수 있는 5m80cm, 왕젠난은 멀리뛰기에서 8m09cm를 뛴다.

    카타르의 무타즈 에사 바심은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2m42cm의 엄청난 기록을 갖고 있다. 쿠바의 쇼토마요르가 보유한 세계신기록 2m45cm와 3c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다. 바심은 2013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2m38cm를 넘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금메달이 유력하다.

    이란의 남자농구 센터 하메드 하다디(2m18cm)는 중국의 야오밍에 이은 역대 최고의 아시아 출신 센터다. 키가 큰 데다 팔도 길고 미국 NBA 출신답게 기량도 절정에 올라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남자 농구대표팀 감독은 하메드 하다디를 막을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푸념이다.

    리총웨이(말레이시아), 린단(중국) 이용대(한국)의 세계 남자배드민턴 삼총사와 쉬신(중국) 마룽(중국)의 남자 세계탁구 1, 2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중국의 ‘마녀 3인방’(류수원, 딩닝, 리샤오사)은 여자탁구 세계랭킹 1, 2, 3위다. 세계랭킹 8위인 한국 여자탁구의 미녀스타 서효원도 탁구장으로 관중을 끌어모을 선수다.

    일본에는 세계적인 체조 선수가 많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체조 남자개인종합 금메달리스트 우치무라 고헤이가 금메달을 예약해놓았다. 18세 여자체조 선수인 사다 나쓰미, 데라모토 아스가는 키 1m40cm대에 몸무게가 40kg도 나가지 않는 체격이지만 기량만큼은 올림픽 수준이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영웅들

    인어 최윤희, 물개 조오련, 마녀 백옥자…


    아시아 넘어선 빅 스타들 지상 최대 라이벌전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여자배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딴 최윤희.

    아시아경기대회 최초의 영웅은 마라톤의 이창훈이다. 이창훈은 마라톤을 국기(國技)처럼 여기는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을 획득해 일본인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1958년 5월 29일. 당시 도쿄는 30년 만의 무더위로 푹푹 쪘다. 이창훈은 교통사고 부상 후유증을 이겨내고 줄곧 선두로 달린 끝에 2시간 31분 55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창훈은 골인한 뒤 그대로 실신해 2시간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모든 체력을 레이스에 쏟은 결과였다.

    탁구의 김충용은 아시아경기대회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2위로 이끈 선수다.

    1966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당시만 해도 중국 북한이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에 이어 종합 2위를 하는 것이 최대 목표였다. 한국은 필리핀, 인도 등에 번번이 2위 자리를 내줬다.

    1966년 12월 29일 밤, 3위에 머무르던 한국이 당시 남자탁구 세계 최강이던 일본을 물리치고 금메달 1개를 추가해 개최국 태국에 이어 종합 2위를 차지했다. 당시 탁구는 중국이 죽의 장막 속에 머무르며 세계무대에 나오지 않았기에 일본이 세계 정상급에 올라 있었다. 방콕 대회에서도 일본은 탁구에 걸린 7개의 금메달 가운데 6개를 휩쓸었고 마지막 남자단식에서도 세계랭킹 1, 2위인 하세가와 노부히코, 기무라 고지가 버티고 있어 금메달이 유력했다. 그런데 김충용이 준결승에서 기무라 고지를 세트스코어 3대 2로 제압하고, 결승에서도 하세가와 노부히코를 3대 2로 제압해 기적적으로 금메달을 딴 것이다.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조오련이 일본이 금메달을 거의 독식하던 남자수영 자유형 400m와 1500m를 2연속 제패해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최윤희가 여자수영 배영 100m와 200m, 개인혼영 200m를 석권해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의 인어’라고 불렸다. 최윤희는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배영 100m와 200m를 석권해 모두 5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동양의 마녀’로 불린 백옥자는 1970년 방콕, 1974년 테헤란 대회 투포환을 2연패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양창훈이 양궁에서 4관왕에 올라 단일 대회 한국 선수 최다 금메달을 땄고, 장재근은 남자육상 200m에서 1982년 뉴델리 대회에 이어 2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봉주는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남자마라톤을 2연패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마라톤 2연패를 한 선수는 이봉주가 유일하다.

    남자마라톤은 1958년 도쿄 이창훈, 1982년 뉴델리 김양곤, 1990년 베이징 김원탁, 1994년 히로시마 황영조, 이봉주의 2연패에 이어 2010 광저우 대회 지영준까지 모두 7명의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해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나카야마 다케유키 등 5명에 그친 일본에 앞선다.

    수영의 지상준은 1990년 베이징,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 남자 배영 200m를 석권했다. 박태환은 2006 카타르, 2010 광저우 대회 남자자유형 200m, 400m, 1500m 3관왕 2연패를 한 후 인천 대회에서도 다관왕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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