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호

하루 50개 이상 댓글... 육두문자, 가짜뉴스, 무한반복

‘악성 여론몰이’ 헤비 댓글러 추적해 보니

  • 문영훈 기자 이현준 기자

    yhmoon93@donga.com mrfair30@donga.com

    입력2020-04-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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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총선 한 달여 전부터 댓글 이력 공개

    • 23일간 1000개 넘는 댓글 쓴 사람 10명 이상

    • 하루에만 57개 댓글 달기도

    •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 서슴없이 남발

    • ‘근거는 나 몰라라’ 가짜뉴스

    • 기사 내용 관계없이 ‘복사 붙이기’도

    “사탄이 장악한 통합당 대한민국이 풍전등화.” 

    “민주당과 신천지는 같은 몸통.” 

    네이버에서 활동하는 두 누리꾼이 4·15 총선 전 관련 정치 기사에 단 댓글이다. 각 ‘댓글러(온라인 기사나 커뮤니티에 자신의 의견을 남기는 사람)’는 서로 신천지예수교(신천지)를 자신이 반대하는 정당의 지지 세력이라고 우긴다. 양쪽 다 근거는 없고 주장만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정치 기사에 댓글을 달며 총선 전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뉴스 댓글창은 처음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인터넷만 연결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의견을 익명으로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2012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사건, 2018년 ‘드루킹 사건’으로 불리는 민주당원 여론조작 사건은 그 정점이었다. 정치권과 누리꾼들 사이에선 댓글창이 과연 여론을 그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새로 일기 시작했다. 

    이에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는 최근 새로운 댓글 관련 정책을 내놨다. 대표적인 사례가 네이버의 댓글 이력 공개다. 4·15 총선 과정에서 댓글창은 거대 양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각축장이 됐다. ‘신동아’는 네이버 댓글 이력란을 바탕으로, 최근 30일 동안 하루에 10개 이상의 댓글을 게시한 ‘헤비 댓글러’를 쫓았다.



    23일 동안 1000개 작성한 사람도

    그간 네이버에서 댓글 목록 공개 여부는 작성자 본인이 정할 수 있었다. 3월 19일부터 모든 이용자의 댓글 이력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상태로 전환됐다. 작성된 댓글에 기재된 아이디 오른쪽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누리꾼이 네이버에 가입한 후 작성한 모든 댓글과 답글(삭제한 댓글 및 답글 제외), 해당 기사가 별도의 창에 뜬다. 

    신동아는 4월 6~10일 매일 조회수가 가장 높은 정치 기사 각 10개 총 50개에 달린 댓글 14만4026개를 수집했다. 이 중 운영규정 미준수, 클린봇(불쾌한 욕설이 포함된 댓글을 걸러주는 인공지능)의 부적절한 표현 감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삭제된 댓글은 3만2886개다. 삭제되지 않은 댓글의 개수는 11만1440개로, 이는 4월 6~10일 사이 네이버에 게시된 모든 정치 기사 댓글 91만4228개의 약 12.2%에 해당한다. 셀레니움(Selenium·웹사이트를 분석해 정보를 긁어오는 프로그램) 프로그램을 사용해 총 50개 정치 기사에 달린 11만1440개의 댓글을 분석한 결과, 거기에 사용된 ID는 6만4017개였다. 하나의 ID로 평균 1.74개의 댓글을 쓴 셈. 이 중에는 하나의 ID로 34개의 댓글을 작성한 누리꾼도 있었다. 

    댓글 이력 중 ‘최근 30일 활동’란을 보면 해당 누리꾼이 30일간 몇 개의 댓글(삭제 댓글 포함)과 답글을 작성했는지 알 수 있다. 네이버가 ‘최근 30일 활동’을 공개한 3월 19일부터 4월 14일까지 23일 동안 1000개 넘는 댓글을 작성한 ID는 10개로 확인됐다. 해당 ID를 쓰는 누리꾼들은 각각 하루 평균 43개 이상의 댓글을 작성한 셈이다.

    1분마다 하나씩, 한 기사에 15개 댓글 달아

    ‘헤비 댓글러’들의 유형은 다양했다. 우선 일정 시간에 집중해 많은 양의 댓글을 작성하는 댓글러가 눈에 띄었다. ‘최근 30일 활동’에서 댓글 수가 가장 많은 아이디 rose****의 경우 3월 19일부터 4월 10일까지 1281개의 댓글을 작성했다. 일평균 55.7개의 댓글을 작성한 것이다. 

    해당 댓글러는 4월 14일 오전 1시 29분 조선일보의 ‘범여권 180석 얻으면,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다’ 기사에 “(이렇게 되면) 독재사회주의가 완성된다. 후회하지 말고 투표 잘하라”는 논지의 댓글을 달았다. 그 후 2~9분 간격으로 여러 기사에 “사회주의 찬양자 필요없다” 등의 댓글 11개를 오전 2시 7분까지 달며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그가 다시 등장한 것은 같은 날 오전 4시 12분. 그 뒤 4시 53분까지 10개의 댓글을 달았다. 이어 오전 10시, 오후 4시, 오후 7시께 한 번에 10여 개의 댓글을 달았다. 해당 댓글러는 당일 총 54개의 댓글을 썼다. 이는 네이버가 규정한 하루 댓글 수 최대치 60개에 근접한 수치다. 

    아이디 shal****는 4월 10일까지 1005개의 댓글을 달았다. 일평균 43.7개의 댓글을 단 셈. 해당 작성자의 댓글은 대부분 야당을 ‘왜구’와 ‘수꼴’로 칭하는 내용이었다. 4월 14일 해당 댓글러는 46개의 댓글을 게시했다. 오전 0시 52분부터 1~9분 간격으로 15개 댓글을 오전 1시 40분까지 작성했다. 오전 2시 43분에 다시 등장해 오전 3시 12분까지 12개의 댓글, 오후 5시 51분부터 오후 6시 27분까지 15개의 댓글을 썼다. 오후 5시 59분에는 조선일보가 게재한 ‘청와대로, 석좌교수로 ‘신라젠’ 이철 주변인들의 수상한 행적’ 기사에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다. 토착 왜구 박멸하자”는 내용의 댓글을 작성했다. 

    3월 19일부터 4월 10일까지 23일 동안 1018개의 댓글을 작성한 malo****의 경우 4월 14일 “선거 전날이라 조선족 XXX들 우르르 몰려와 댓글창을 더럽히고 있다”는 내용의 같은 댓글을 정치·사회·국제 분야의 기사 10개에 달았다. 

    같은 기간 946개의 댓글을 단 아이디 born***는 세계일보가 보도한 ‘김종인 “문 정부, 총선 다가오니 코로나19 확진자 수 줄여”’ 기사에 오후 12시 49분부터 3시 6분까지 15개의 답글을 달았다. 답글의 내용은 “9년 동안 보수 정권이 역성장을 만들었는데 왜 현 정권을 욕하느냐” 등 현 정부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육두문자부터 먼저, 막무가내형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쪽을 막무가내로 비난하는 댓글러도 보였다. 이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았다. 아이디 kobr****를 쓰는 누리꾼은 정치 기사에만 댓글을 달았다. 댓글의 내용은 야권 정치인들에 대한 서슴없는 비난이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향해선 “선거 때만 되면 XXXX처럼 기어나와 XX하는 너 같은 X아치 말을 누가 믿냐”라고 힐난했다. 

    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에겐 “교활한 장로XX”라며 욕설을 쏟아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겨냥하기도 했다. “간철수야 XX 좀 그만하고 없어져라. 이 초딩아 니X XXXX보면 토 나온다”고 했다. 이 밖에도 이 누리꾼은 “미친X들 집단 통합당X들 한X도 남기지 말고 사살해버리자”와 같은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반대로 여권에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는 댓글러도 있었다. 아이디 tnsq****를 사용하는 누리꾼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XX야할 X” 등 극언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향해선 “대깨문”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문X앙을 지지하면 정신병자 또X이 사회부적응자 취급 받는다”와 같이 폭언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며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정부 인사들에 대해선 “학창시절에 데모만 하던 XX들이 뭘 하겠냐ㅋㅋ”라며 비난했다. 

    사실 여부 파악이 불가능한 ‘가짜뉴스’를 사실인 양 게시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네이버 아이디 chba****을 사용하는 한 누리꾼은 “코로나19는 중국과 박원순의 음모”라고 하거나 “대통령이 사전투표한 사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뭔가 속이 보인다. 사전투표는 조작 가능성이 있다. 사전투표를 하지 말고 본투표를 하자”며 근거가 희박한 음모론을 주장했다. 이어 “샤오미 휴대폰을 들고 다니면 조선족 또는 중국인”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jhki****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누리꾼은 근거 없는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그는 “네이버 댓글 70% 이상이 일베”라고 주장했다. 이어 “천안함은 적군 구경이라도 했나? 싸우다 죽었나? 적군 구경도 못하고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전사자라고 할 수 있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비교당해 매우 기분 나빠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한국 정부에 열등감을 느껴 한국에 트집을 잡고 있다”는 자의적인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사람인가 로봇인가 무한반복, 매크로형

    ‘복제품’으로 봐도 무방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해서 게시하는 헤비 댓글러. 댓글 간격은 채 2분을 넘지 않는다.

    ‘복제품’으로 봐도 무방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해서 게시하는 헤비 댓글러. 댓글 간격은 채 2분을 넘지 않는다.

    ‘도플갱어’ 수준으로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반복적으로 게시하는 유형도 발견됐다. 해당 유형 댓글러는 2~3분 간격으로 장문의 댓글을 ‘복붙(복사해 붙이기)’하고 있었다. 댓글 게시 사이의 시간이 짧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사를 읽기보다는 댓글 달기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는 보는 시각에 따라 여론조작 시도라고 보일 여지도 있다. 

    fufu****를 아이디로 사용하는 누리꾼은 4월 9일 오세훈 미래통합당 광진을 후보의 유세 차량에 흉기를 들고 돌진한 괴한이 체포된 사건을 보도한 여러 매체의 기사에 1분 간격으로 “조작인지 확인해 봐라” “신원미상의 일베X이 알바비를 받고 한 것” “자작나무 타네(조작했다는 뜻의 은어)” “자작나무 타들어가는데 안 먹히네” 등의 댓글을 써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댓글러는 4월 13일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안산 단원을 후보 과거 팟캐스트 방송 발언 논란 기사에 다시 등장했다. 1~3분 간격으로 “얼마나 떡밥이 없으면 이런 걸 지적하나” “너네 일베X 여자가 치킨 주문하면 침 뱉어서 배달 보낸 거나 해명해라” “장제원 아들 노엘이는 100명의 여자와 자겠다고 했다는데ㅋㅋㅋㅋ”와 같은 댓글을 달며 김 후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다른 주제로 ‘물타기’ 하려 시도했다. 

    네이버 아이디 agap****를 사용하는 누리꾼은 비슷한 내용의 댓글을 며칠에 걸쳐, 수분 간격으로 게시했다. 4월 15일 기준 이 누리꾼이 최근 30일 동안 게시한 댓글은 966개에 달한다. 그는 4월 초부터 지속적으로 통합당을 ‘신천지당’이라 부르며 성경 구절과 함께 “신천지 이만희가 전국 12지파에 당원가입을 지시해 신천지당을 만든 신천지 내부문건 공문캡처”라며 링크를 게시했다. 댓글의 시간 간격은 1분 남짓이었다.

    “댓글이 곧 여론인 건 아니다”

    이와 상반되는 정치 성향을 나타내는 ‘매크로형’ 댓글러도 있었다. 아이디 babr****를 사용하는 댓글러는 “신천지 신도 중 전라도 베드로파가 제일 머릿수 많고 민주당같이 주체사상 운동권이 장악해서 좌파로 썩어빠졌다” “민주당과 신천지는 같은 몸통” “신천지=문천지”라는 댓글을 2~4분 간격으로 달았다. 

    해당 누리꾼은 여당 지지자들을 향해 비난 댓글을 퍼붓기도 했다. 그는 여당 지지자들을 “북한 옹호하는 X덕” “달빠순이 맘베충”이라고 지칭하며 선거 관련 기사에 “민주당이 승리하면 40대 X덕좌파들 토사구팽당하고 조선족한테 팔려감” “찌질한 좌파X덕들이 40년 넘게 삼성 탓, 부자 탓, 보수 탓, 기독교 탓 등 남 탓만 함” 등의 댓글을 2~3분 간격으로 달았다. 이 댓글러는 4월 15일 기준 최근 30일 동안 851개의 댓글과 답글을 달았으며 2011년 가입일 기준으로는 총 3만6804개의 댓글과 답글을 게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용국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시선의 규제를 받지 않는 인터넷 공간에서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해 많은 양의 댓글을 쓴다. 하지만 댓글을 보는 이들도 이제는 수준이 높아져 ‘댓글이 여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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