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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지근 향긋한 봄철 건강 밥상 [김민경 ‘맛 이야기’]

쑥, 유채, 미나리, 벚굴…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달착지근 향긋한 봄철 건강 밥상 [김민경 ‘맛 이야기’]

  • 요리 솜씨 없는 사람이 봄 향기를 식탁에 퍼뜨리고 싶다면 쑥국만 한 게 없다. 된장국을 슴슴하게 끓이고 마지막에 쑥 한두 줌을 넣어 살살 젓는다. 여기에 말랑하게 반죽한 수제비를 얇게 떠 넣어도 참 맛있다. 맨밥 옆에 쑥국 불룩 떠놓고 김치 한쪽 곁들이면 계절 문턱을 살며시 넘어가는 봄 밥상으로 충분하다.
향긋한 쑥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도다리쑥국 한 상. [향긋한 쑥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도다리쑥국 한 상.]

향긋한 쑥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도다리쑥국 한 상. [향긋한 쑥 향기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도다리쑥국 한 상.]

해쑥이 나오면 쑥버무리도 생각난다. 잘 씻은 쑥에 멥쌀가루를 넣고 부드럽게 버무린다. 이때 쌀가루가 쑥에 골고루 묻도록 꼼꼼히 섞는다. 준비한 반죽을 찜기에 넣고 한 김 푹 쪄서 쌀가루가 쫀득하게 익으면 완성이다. 찔 때 수분이 많으면 질어지니 찜기 바닥 물이 반죽에 닿지 않도록 조금만 넣는다. 반죽도 면포 등으로 가볍게 덮어 찌면 좋다. 

‘쑥털털이’라고도 하는 이 간단한 찜떡은 향기에 취해 먹는 봄날 간식이다. 엉성하게 엉긴 쑥버무리를 한 움큼 뜯어 맛보면 구수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쌀가루 반죽에 쑥 특유의 개운한 쓴맛과 진한 향이 옴팡지게 배어있다. 쑥버무리 반죽에 은행, 밤, 단호박, 콩 같은 것을 같이 넣고 찌기도 하지만, 내게는 쑥만 들어갔을 때 맛과 향이 제일인 것 같다.

쌉싸름 달착지근 향긋한 봄맛, 쑥

밀가루의 쫄깃쫄깃한 맛과 쑥의 은은한 향이 잘 어울리는 쑥개떡. [GettyImage]

밀가루의 쫄깃쫄깃한 맛과 쑥의 은은한 향이 잘 어울리는 쑥개떡. [GettyImage]

지금은 쌀가루가 흔하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쑥떡에는 밀가루를 넣는 게 흔했다. 이름은 쑥개떡이라 했다. 쑥개떡은 해쑥뿐 아니라 완연한 봄에 파릇하게 자란 쑥으로 해도 맛있다. 쑥을 삶아 물기를 있는 대로 꽉 짠 다음 잘게 썰어 밀가루와 물을 넣고 반죽해 둥글납작하게 빚어 쪄낸다. 반죽에 소금으로 간을 조금 맞추고, 설탕도 약간 넣으면 당연히 더 맛있다. 요즘에는 쑥을 블렌더에 곱게 갈아 건더기 없이 곱게 반죽해 개떡을 만들기도 한다. 한 번 만들 때 여러 장 쪄낸 다음 식으면 냉동실에 두고 몇 장씩 꺼내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별미다. 먹을 때 설탕을 솔솔 뿌려보고, 조청에도 콕 찍어 맛보자. 은은한 향과 쫄깃쫄깃하게 씹는 재미가 정말 좋다. 

쑥은 화전처럼 얄팍하게 전을 지져 먹어도 맛있다. 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 먹어도 맛있다. 쑥개떡 만들 듯 간 쑥을 칼국수나 수제비 반죽에 섞으면 색도 곱고, 은은한 향도 낼 수 있다. 

봄날 쑥을 생각하면 바다 마을에서 맛보는 제철 도다리쑥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집에서 도다리 대신 광어나 문치가자미(도다리처럼 눈이 오른쪽에 쏠려 있어 도다리랑 비슷해 보이는 생선) 등과 쑥을 같이 끓여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자 식탁에 놓인 도다리쑥국 맛에 견줄 수 있을까. 바닷길을 걷고, 낯선 식당에 들어가 설레는 마음으로 받는 밥상은 ‘여기’가 아니고 ‘거기’이기에 특별했다. 곱게 펼쳐진 봄날의 통영 바다를 떠올리며 수년 전 먹은 도다리쑥국을 잠깐 만나본다. 기억이라도 있어 감사하다.



깨끗한 물처럼 상쾌한 맛, 파릇파릇 봄 유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어이 두 번째 봄을 맞이한 요즘,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게 비슷한 메시지를 연이어 받고 있다. 서둘러 핀 봄꽃 사진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여행을 못 가서인지 꽃을 보자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이 들뜬다. 얼마 전엔 친환경 제품 매장에서 사은품을 하나 받았다. 손바닥만 한 병에 든 ‘유채기름’이었다. 병에 그려진 노란 유채꽃을 보는데 문득 노란 불이 머릿속에 켜지는 것 같았다. 

봄에 캐 먹는 것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톡 쏘고, 쌉싸래하고, 향이 진하고, 맛도 세다. 달래, 냉이, 씀바귀, 머위, 취 등이 그렇다. 유채도 봄채소 가운데 하나지만 앞서 말한 것들과 조금 다르다. 봄 이파리치고는 맛이 순하고, 언뜻 고소하며, 시원함도 있다. 

유채는 물에 살살 헹궈 물기만 잘 빼 그대로 버무리면 된다. 버무리는 양념도 어지간하면 다 맛있다. 간장·다진 마늘·고춧가루·식초·매실액을 섞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도 좋고, 소금·식초·오일에 버무려 샐러드처럼 먹어도 된다. 소금 넉넉히 뿌리고 매실액과 통깨 끼얹어 버무려 먹으면 반찬과 샐러드 중간쯤의 맛이 난다. 

샌드위치 만들 때 햄과 유채를 같이 넣어도 조화롭고, 루콜라처럼 피자 위에 듬뿍 올려 아삭하게 먹어도 잘 어울린다. 마늘만 넣고 간단하게 만든 오일 파스타에 유채를 수북이 올려 재빠르게 섞어 맛보면 근사한 봄 기분이 난다. 

유채는 기름진 맛과도 잘 어울린다. 조개류나 새우살 등과 같이 볶아 소금으로 간하면 맛있다. 간장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해진다. 매운 고추 송송 썰어 넣으면 입맛 살리기에 제격이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썰어 넣으면 든든한 일품요리가 된다. 유채를 고기나 큼직한 해산물과 섞어 볶은 뒤 두반장과 굴소스로 간을 맞추면 뜨거운 밥에 곁들이기 좋다. 중화풍 양념 사이에서 파릇파릇 살아나는 유채가 또 다른 맛의 재미를 준다.

달콤, 시원, 매운맛! 봄철 밥도둑 미나리

전남 나주 한 미나리 재배단지에서 농민들이 싱그러운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전남 나주 한 미나리 재배단지에서 농민들이 싱그러운 미나리를 수확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봄에 먹기 좋은 채소 하면 미나리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1세대의 현지 정착기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화제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가난한 동양 이방인이 그곳에서 얼마나 고달프고, 기댈 곳 없었을까 싶은 애잔함이 앞선다. 

미나리라는 제목이 안된 마음을 더 부추긴다. 사람들이 밟기 꺼리는 축축한 습지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 가느다란 줄기를 아무리 길게 뻗어도 영 힘이 없어 결국 땅에 누워 자라는 미나리가 떠올라서다. 

그렇지만 습지를 떠나 시장에 나오는 순간 미나리는 어엿한 봄의 주연이 된다. 미나리 자리를 대신할 채소는 없다. 생생한 아삭함, 버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독특한 향, 달고 시원한 가운데 살금살금 피어나는 매운맛. 길고 가는 미나리 줄기에는 부드러운 이파리가 나풀나풀 달려 있는데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깨끗이 씻어 날로 먹으면 가장 맛있다. 아삭함이 남을 정도로 조리하면 우적우적 많이 먹을 수 있으니 또 좋다. 

맑은 복국, 생선 매운탕, 해물찜이나 아구찜 등에 미나리를 넣지 않으면 씹는 맛과 향이 쏙 빠진다. 오이무침, 봄동 겉절이, 비빔밥, 비빔국수, 묵무침 등에도 생생한 미나리를 조금 넣으면 입맛을 돋운다. 밀가루나 감자가루 반죽에 미나리 듬뿍 넣고 전을 부치면 맛있고, 미나리를 잘게 썰어 양념간장에 넣어도 잘 어울린다. 장아찌 담글 때 미나리를 조금씩 함께 넣으면 향도 맛도 좋아진다. 미나리만 갖고 열무처럼 시원하게 김치를 담가도 초여름까지 먹을 개운한 밥반찬이 된다. 

나물이나 볶음은 말할 것도 없다. 조금 색다르게 먹고 싶다면 칼국수나 수제비, 잔치국수에 고명으로 조금씩 얹어본다. 유부초밥을 만들 때 양념한 밥에 미나리를 쫑쫑 썰어 섞거나 김밥을 쌀 때 다른 재료와 함께 넣어도 산뜻하고 맛있다. 

엇비슷해 보이는 미나리 중에도 슈퍼스타가 있다. ‘한재미나리’다. 경북 청도군 한재마을(청도읍 초현리·음지리·평양리·상리 일대)에서 나오는 미나리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습지에서 자란다. 미나리는 대체로 속이 비었는데 한재미나리는 마늘종처럼 속이 차 있다. 그렇다고 줄기 껍질이 질긴 것도 아니다. 가볍게 베어 물면 톡 끊기는 아삭거림이 좋고 향이 풍성하며, 촉촉하고 상쾌한 맛이 가득하다. 

여느 때 같으면 지금쯤 한재마을은 외지 사람으로 가득 찬다. 갓 수확한 미나리를 구하려는 인파가 몰려서다. 아쉽게도 지금은 사람 이동이 조심스러운 때이니 미나리가 전국으로 바쁘게 이동하고 있지 싶다.

통통한 살집에 감칠맛 듬뿍, 섬진강 벚굴

벚굴에 향이 세지 않은 식초나 레몬즙, 오렌지 등의 과즙을 곁들이면 풍미가 더해진다. [GettyImage]

벚굴에 향이 세지 않은 식초나 레몬즙, 오렌지 등의 과즙을 곁들이면 풍미가 더해진다. [GettyImage]

코로나19만 아니라면 가고 싶은 곳이 한재마을 말고 또 있다. 섬진강이다. 이맘 때면 곳곳이 산수유꽃으로 샛노랗게 일렁이고, 구름 같은 매화도 나무에 가득 걸렸을 테다. 그 풍경이 눈에 삼삼하다. 온통 예쁜 강을 따라 하루 종일 거닐어도 좋은 곳, 거기엔 이름도 고운 벚굴이 있다. 

벚굴은 강에서 나는 굴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 서식한다. 수심 10m 정도의 깊은 강 속 바위에 붙어 자연적으로 큰다. 3~4년쯤 자라 큼직해지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벚굴은 봄에 부지런히 캐어 먹는다. 산란기인 5월에 접어들면 벚굴 채취도 끝난다. 

벚굴을 처음 보는 사람은 하나같이 크기에 놀란다. 섬진강에는 손바닥 크기 벚굴이 흔하고 두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것도 만날 수 있다. 워낙 커서 생으로 호로록 마시듯 먹는 건 다소 버거울 수 있다. 게다가 바다 굴처럼 자연 조미가 돼 있지 않아 좀 맹맹하게 느껴질 수 있다. 

벚굴은 굽거나 쪘을 때 더 맛있다. 통통한 살집에서 감칠맛과 구수한 향이 진하게 배어난다. 보들보들 말랑하게 익은 굴 살을 한입 가득 채워 먹는 맛은 정말 진미다. 초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구수한 풍미를 제대로 즐기려면 소금이나 연한 간장을 곁들인다. 고추냉이나 겨자, 머스터드처럼 알싸한 맛과 향을 가진 재료와도 잘 어울린다.

묵은지에 푹 싸서 삶은 고기 먹듯 한입에

벚굴을 구워 파는 식당에 가면 묵은지를 함께 내주는 곳이 많다. 잘 익은 벚굴을 묵은지로 말아 삶은 고기 먹듯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새콤하고 아삭아삭한 묵은지가 둥글둥글 구수한 굴맛에 산뜻하고 짭짤하게 양념을 치는 격이다. 씹는 재미가 좋고, 먹는 맛도 좋아 한입 두입 말아 먹기 바빠진다. 

섬진강 벚굴은 이맘때면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생생한 벚굴이 집에 도착하면 작은 것으로 몇 개 골라 날것 그대로 맛본다. 그 다음에는 알만 바른 벚굴을 잘게 썬 양파와 함께 식초나 레몬즙에 살짝 절인다. 이때 식초는 향이 세지 않은 게 좋다. 양파 외에 오이나 고추를 잘게 썰어 넣거나, 오렌지나 귤 등의 과즙을 살짝 곁들여도 맛있다. 굴을 식초와 채소에 버무려 10~15분 뒤에 바로 먹으면 된다. 

벚굴로 전을 부쳐도 고소하고, 무나 콩나물을 넣고 밥을 지어 먹어도 좋다. 튀김을 하면 당연히 맛있고, 매운 고추와 피망 등을 넣고 기름에 달달 볶아도 맛나다. 봄동이나 미나리와 함께 겉절이 양념에 쓱쓱 버무리면 상큼하고, 애호박이랑 함께 국을 끓이면 달고 시원하다. 마른 표고버섯 불려서 함께 죽을 끓이면 향기롭고 든든한 한 끼가 된다. 

뭐니뭐니 해도 벚굴 먹는 맛 중 제일은 역시 찜이다. 손바닥만 한 굴은 껍데기째로 찌면 15분 내외로 속이 익는다. 너무 푹 익히는 것보다는 살짝 덜 익어 말랑한 맛이 살아 있는 게 낫다. 찐 굴은 하나씩 꺼내 관자 쪽(입이 벌어지는 반대편)으로 칼을 넣으면 껍데기가 쉽게 열린다. 하나를 까면 몇 입을 베어 먹을 수 있으니 곁들이는 양념을 다양하게, 묵은지도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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