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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탐닉하는 사회, 활개 치는 ‘방구석 코난’

[노정태의 뷰파인더㊴] 광주 건물 붕괴에서 故손 모씨 사건까지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비극에 탐닉하는 사회, 활개 치는 ‘방구석 코난’

  • ● 쓰러진 에릭센과 BBC의 영상
    ● ‘꼭 내 눈으로 봐야겠다’는 대중
    ● CCTV를 통해 ‘진실’ 엿보다?
    ● 경각심 없는 블랙박스 방송
    ● 수술실 CCTV 설치? 환자 인권은…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5월 28일 고(故) 손 모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수색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CCTV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보인다. [뉴스1]

5월 28일 고(故) 손 모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수색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CCTV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보인다. [뉴스1]

6월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차전. 레바논을 상대로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었다. 상대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처리했다. 역전골을 성공시킨 손흥민은 카메라를 향해 달려가며 손가락으로 ‘23’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언가 말하며 카메라에 키스를 했다. 시청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이유를 알게 됐다.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위한 세레모니였다.

에릭센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손흥민과 함께 뛴 적 있는 덴마크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다. 그는 6월 13일(한국시간) 열린 2020 유럽축구챔피언십(유로 2020) D조 1차전 덴마크 대 핀란드 경기에 출전했다. 그런데 전반 42분 무렵 다른 선수와의 충돌 없이 갑자기 쓰러졌다. 경기장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의료진이 달려와 응급처치를 하는 가운데 동료 선수들이 에릭센을 둘러싸고 벽을 쳤다. 환자의 모습을 방송 카메라나 관중이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중계 카메라 역시 처음에는 (카메라맨의 ‘본능’에 따라) 쓰러진 에릭센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으나, 곧 경기장의 원경과 관중석의 모습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BBC 스포츠를 비롯한 유럽의 몇몇 방송사들은 지탄을 받았다. 에릭센이 쓰러진 직후 모습이 다소 노출됐을 뿐 아니라, 그의 아내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도 방송을 통해 나갔기 때문이었다. BBC 스포츠 해설위원 게리 리네커는 “중계 화면은 대회 주최 측인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송출한 장면이고 BBC는 통제할 수 없었다”고 변명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볼 권리’와 상식선

프로 스포츠는 대중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손흥민이나 에릭센 같은 축구선수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탁월한 축구 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즐기는 수많은 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릭센의 모습을 촬영해 ‘알 권리’를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한 시청자는 없다. 외려 시청자는 에릭센이 쓰러진 모습을 클로즈업하고 이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는 점을 이유로 유럽축구연맹과 각국 방송사를 비난했다. 즉 시청자에게는 ‘볼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 걸맞은 상식과 감수성을 근거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에 반대할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식’이 막상 우리 현실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 4월 25일 발생한 고(故) 손 모 씨의 사망 사건을 떠올려보자. 논의해야 할 점이 많지만, 특히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패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는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CCTV가 왜 없느냐”, 혹은 “CCTV 영상을 무편집본으로 공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인이 익사한 지점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CCTV 영상을 공개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욱 당연한 사실이 있다. 설령 그런 영상이 존재한다 한들 경찰이 그것을 아무에게나 보라고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 씨가 익사한 현장의 CCTV 영상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영상은 누군가가 사고로 죽은 모습, 혹은 (일각에서 꾸준히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사람 죽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라는 소리다. “경찰은 진실을 공개하라”는 이들은, 그러므로 “경찰은 사람이 죽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대중에게 공개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잠시 멈춰서 이 상황을 제3자의 눈으로 보자. 누군가가 죽기 직전, 혹은 죽는 그 장면을, 대중이 ‘꼭 내 눈으로 봐야겠다’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 아닌가?

우리 사회는 CCTV를 통해 ‘진실’을 엿보는 행위에 대해 너무 무감각해졌다. 그러한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 자체가 거의 없다. 오히려 정 반대로, 다양한 사건 사고 현장을 담은 CCTV나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흔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의 놀이터

몇 년 전, 특히 남자들이 많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여성 보행자나 자전거 운전자 등이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이는 모습을 담은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자주 올라오곤 했다. 그런 영상에는 흔히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단어와, 종종 로드킬(야생동물 찻길사고)을 야기하는 ‘고라니’를 합친 비하 용어가 첨부됐다. 현실에서 벌어진 일을 찍은 영상 속의 폭력을 무감각하게 돌려보면서 그 위에 여성혐오까지 끼얹고 있던 셈이다.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것은 여성 보행자들이 차에 치이는 모습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교통사고 현장을 담은 모습이 여러 방식으로 촬영되고, 때로는 편집돼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갔다. ‘폭력에의 탐닉’은 많은 경우 여성혐오와 공생 관계를 이뤘다. 여자가 차에 치이면 ‘X라니’, 여자가 차를 몰다가 사고를 내면 ‘김여사’라고 손가락질하는 식이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이 유출되고 유통되는 데 대해 진작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상황이 정 반대로 흘러갔다. 공적 논의의 기준을 세워야 할 공중파 방송이,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을 모아놓고 방송하는 별개의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지금도 매주 방송되고 있는 SBS의 ‘맨 인 블랙박스’ 얘기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곳이 있지 않은가? 교통사고가 나는 상황을 찍은 블랙박스 영상으로 공중파 방송을 만들어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방심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방심위가 ‘맨 인 블랙박스’를 제지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런 식의 잣대를 들이대면 남아날 방송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광주에서 벌어진 재건축 현장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한 언론 보도만 해도 그렇다.

사고 당일, 다음날, 그 다음날까지 사고 당시의 모습이 수도 없이 뉴스로 보도됐다. 건물이 풀썩 쓰러지는 광경, 자동차가 깔리는 모습, 간신히 사고를 피한 차량의 블랙박스 같은 것이 아무런 제지 없이 노출됐다.

이미 남들이 그런 영상을 찾아서 시청률과 조회 수를 끌어올리고 있다면, 다른 언론사는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정부 역시 특정 언론이 사건 현장의 CCTV나 블랙박스를 공개하는 것을 막지 않는데, 다른 언론에 대해서만 제지를 가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한국의 미디어는 여과 없이 쏟아지는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바람직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실에 대한 보도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자 사회적 책무다. 하지만 사건 사고 현장의 모습을 쉴 새 없이 경쟁적으로 취재하고 공개하는 것은 언론의 바람직한 사회적 기능에 부합하는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사안을 해석하고 이에 대해 논의하는 기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6월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찰, 소방서가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6월 10일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찰, 소방서가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불필요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광주 재건축 현장 건물 붕괴 영상을 온 국민이 되풀이해서 보는 게 과연 이 시점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건축 현장에서 벌어지는 안전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되새기게 해주는가? 왜 그 현장에서 그런 사고가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사고 현장의 부상자를 구조하는데 일말의 도움이라도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식의 보도 행태가 성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영상을 가져다 써야 조회 수가 늘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는 온갖 ‘유출 영상’에 우리가 중독돼 있는 탓이기도 하다. 언론이 나쁜 대중을 만든다고 할 수도 있고, 언론 소비자가 언론을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최근 현안으로 넘어와 보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80% 이상의 국민이 찬성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반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해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다.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찬반론을 깊게 들어가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몰래 찍는’ 데 익숙해졌는가. 왜 우리는 교통사고 현장, 기타 사고 장면, 범죄 현장 등 통상적으로 보기 어렵고 보지 말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 ‘볼 권리’를 요구하는가.

환자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면 환자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될까. 지금까지 이 글을 읽어온 분이라면 짐작할 수 있다시피, 나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충격 수술실 CCTV 영상’ 따위가 수없이 돌아다니며 더 많은 환자의 인권이 유린될 위험을 생각해봐야 한다.

수술실로 간 ‘방구석 코난’

찍어놓은 영상은 언제 어떤 식으로건 유출될 수 있다. CCTV 영상을 돌려보고 품평하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인권을 짓밟을 여지가 생긴다. 의료진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CCTV를 설치할 경우, 의료진은 CCTV에 익숙해지고 그 중 위험성이 높은 ‘예비 범죄자’는 CCTV를 피해 어떻게든 범죄를 저지를 방법을 모색할 테다. 마취된 채 알몸으로 수술을 대기하는 환자는 CCTV의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CCTV와 차량용 블랙박스가 차고 넘친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방구석 코난’ 혹은 ‘네티즌 수사대’의 놀이터가 되고 말았다. 수술실 내 CCTV 의무화 법안은 ‘방구석 코난’을 수술실에 들여놓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문제다. 우리에게 인권이란 대체 무엇인가?

#광주참사 #손모씨사건 #수술실CCTV #신동아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1년 7월호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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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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