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세계는 주4일제 실험 중…현실성은?

심상정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 전문가 “노동 양극화 부추길 수도”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12-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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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정이 던지고 이재명이 받은 ‘주4일제’

    • 아이슬란드 노동시간 단축 실험 ‘성공적’

    • 일부 韓 기업도 ‘4.5일제’ 도입

    • “월요병 사라져” vs “어차피 업무량은 같다”

    • 주4일제 贊反 51% vs 41%, ‘임금 삭감’하면 29% vs 64%

    • “시간당 인건비 상승해 일자리 축소” 지적도

    • 전문가 “정규직·공공부문만 좋은 일…시기상조”

    11월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주4일제 로드맵과 신노동법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11월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재단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주4일제 로드맵과 신노동법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주4일 근무제(주4일제)’가 대선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부터 주4일제를 포함한 ‘신노동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0월 2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주4일제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화답했다.

    11월 12일 심 후보는 주4일제 로드맵을 제시하며 “일과 삶의 균형은 여유가 생기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말했다. 모든 직장인들은 그 권리를 누릴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 주4일제가 처음 언급된 것은 지난해 말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영국 켄트대와 함께 주4일제를 놓고 세미나를 열었다. 조 의원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로 출마하며 주4일제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2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주4일제로 생산성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4일제 실험 시작됐다

    그가 생산성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8월 4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수치가 집계된 OECD국가(38개국) 중 세 번째다. 참고로 OECD 평균 노동시간은 1687시간이다. 반대로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로, 1년 전(40.5달러)에 비해 높아지긴 했지만 27위를 기록했다. 근로시간이 길어 삶의 질도 낮은 데다 생산성마저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생산성은 증가할까. 일각에서는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며 주4일제를 반대한다. ‘잡플래닛’이 주4일제(주4.5일제 포함) 등 단축 근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경영자 2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87.6%는 “주4일제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주4일제 도입의 큰 장애물로 ‘업무 일정을 맞출 수 없을 것’(57.1%) ‘생산성이 줄어들 것’(41.6%)을 그 이유로 꼽았다.



    아이슬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실험에 나섰다. ‘노동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은 그대로거나 높아진다’라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5년간(2015~2019년) 아이슬란드 노동인구 1.3%에 해당하는 노동자 2500명이 노동시간 단축 실험에 참여했다. 이들은 주당 40시간 근무에서 35~36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줄였다.

    2021년 6월 영국의 리서치센터 ‘오토노미’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슬란드의 여정’ 보고서를 통해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향상됐다”며 “여기에 근로자들 삶의 질이 다양한 지표에서 증가한 것을 파악했다”고 평가했다. 이 실험의 성공으로 아이슬란드 노동인구의 86%가 근로 시간을 단축했거나 단축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스페인, 스코틀랜드, 일본 등이 정부 차원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6월 영국의 리서치센터 ‘오토노미’가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슬란드의 여정’ 보고서. [오토노미 보고서 캡처]

    6월 영국의 리서치센터 ‘오토노미’가 발표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슬란드의 여정’ 보고서. [오토노미 보고서 캡처]

    주4.5일제…“‘월요병’ 사라져”

    물론 인구와 계층 불평등 정도가 다른 아이슬란드의 실험 결과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아이슬란드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36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0.7% 규모다. 경제적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2017년 기준)는 아이슬란드는 0.250, 한국은 0.354다. OECD는 아이슬란드를 평등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불평등한 나라로 분류한다. 계층 불평등이 클수록 주4일제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신 한국에서는 기업 주도로 주4일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정확하게는 주 4.5일제로 방식은 다양하다. SK는 2018년 말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19년부터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회사에서 격주로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월요일 출근 시간을 늦추거나 금요일 퇴근 시간을 당기는 방법도 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7년부터 월요일 1시에 출근하는 4.5일제를 시행했다. 금융 앱 토스를 개발한 ‘비바리퍼블리카’는 4개월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10월부터 금요일 오후 2시에 퇴근하는 ‘얼리 프라이데이(early Friday)’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우아한형제들’에 근무하는 한모 씨는 “월요일 오전은 은행 업무를 보거나 주말에는 사람들로 붐벼 정신없는 카페를 한산할 때 찾아 여유를 즐기는 시간으로 쓴다”며 “무엇보다 일요일에 ‘월요병’ 스트레스가 덜한 점이 좋다”고 말했다. 비바리퍼블리카 관계자는 “‘주말이 늘어난 것 같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며 “기존에도 본인 판단하에 일하는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하는 유연근로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산성 저하는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다. 주 4.5일제를 도입한 스타트업 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김모(26) 씨는 “업무량은 도입 전과 달라진 게 없어 퇴근하고도 일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에 주4.5일제의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한 탓도 있다”고 말했다.

    임금 삭감한다면 뒤바뀌는 주4일제 贊反

    전문가 사이에선 “근로시간 단축이 시대 흐름인 것은 맞지만 주4일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다수다. 우선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 문제가 제기된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근로시간을 줄이면 단위시간당 인건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게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라며 “일자리가 넘쳐나는 상황일 때는 주4일제를 고려해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 삭감과 동반된 주4일제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다. 한국리서치가 10월 15~18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1%는 ‘주4일에 찬성(반대 41%)한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임금 삭감을 동반한 주4일제’로 물음이 달라지자 ‘반대’(64%)가 ‘찬성’(29%)보다 높아졌다.

    주4일제가 시행되면 노동시장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앞선 사례와 같이 생산성 강화와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근로시간을 줄인 기업은 대기업이나 IT기업이 다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여전히 높고 생산성은 낮은 편”이라며 “주4일제가 시행되면 정규직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만 그 혜택을 보고 노동인구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은 임금이 줄거나 취업시장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정책이 양극화를 부추기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정치권에서 화두만 던질 뿐 한국 사정을 고려한 연구나 실험이 이뤄진 적이 없다”며 “인공지능과 업무 자동화 등으로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인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4일제 #대선공약 #월요병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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