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강서구청장 선거 이긴 쪽이 승자의 저주 빠진다?

[윤태곤의 총선읽기]

  •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3-09-2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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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vs 이재명 대리전 양상

    • 6개월 앞 총선 전초전

    • 시기·지역·인물 구도에서 중요한 선거

    [Gettyimage, 각 정당]

    [Gettyimage, 각 정당]

    10월 11일 하반기 정례 재보궐선거가 실시된다. 그런데 해당 지역은 서울 강서구 딱 한 곳이다. 국회의원도 아닌 기초단체장 한 명을 뽑는 선거인데도 주목도가 높다. 특히 언론이 관심을 쏟고 있다. 강서구청장 선거 승패에 따라 여야 지도부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총선 전초전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여야 지도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공천을 놓고도 긴 숙고와 갑론을박이 진행됐다.

    실제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의미는 크다.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인물 구도상으로도 모두 각이 서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 김태우 후보가 다시 출마해 민주당 진교훈 후보와 대결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리전과 같다. 이렇게 판이 커지다 보니 진보정당을 비롯한 제3세력들도 존재감을 부각할 기회로 삼고 있다.

    16년 만에 당선한 보수정당 강서구청장

    먼저 시기적으로 보면 이 선거는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실시된다. 총선 직전 마지막 선거이기에 승패는 물론 세세한 득표율 격차까지 총선 전망의 참고 자료로 지속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둔 현재 대통령 지지율,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평가, 여야 지지율은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다. ARS 자동응답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앞서는 결과가 많지만 전문가들이나 관계자들이 더 신뢰하는 전화면접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이 앞선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지만 야당 지지율은 그보다 못한 상황인 것.

    다만 내년 총선 전망과 관련한 여론조사에서는 최근 몇 달 동안 ‘정부견제론’이 ‘정부지원론’을 압도하고 있다. 양쪽 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상대평가로 치면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팽팽한 형편인 것이다.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모두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꺾었다. 그전 네 번의 전국단위 선거(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꺾었다. 다음 총선을 전망해 보면 현재로선 양쪽 다 질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이 같은 미묘한 시점에 치러지는 것이다.

    지역으로 봐도 서울 강서구는 함의가 깊다. 강서구는 서울시에서 서초구에 이어 두 번째로 면적이 넓은 구다. 인구도 송파구 다음으로 많다. 강서구 국회의원 선거구도 갑·을·병 세 곳이 편재돼 있다. 예전에는 김포공항이 있는 서울의 서쪽 끝 정도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2013년 입주를 시작해 이제는 자리를 잡은 마곡지구를 중심으로 서울에서 빨리 성장하는 자치구로 꼽힌다. LG전자 R&D센터를 비롯해 코오롱, 넥센타이어 등의 본사가 입주해 있고 중견 IT·바이오 단지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는 마곡이 용산, 잠실과 더불어 7대 광역중심으로 적시돼 있다. 서울식물원, 엘지아트센터는 지역 명소 수준을 넘어섰다. 김포공항 주변 지역이 여전히 그린벨트로 묶여 있고, 서울지하철 5호선을 연장하게 되면 관내 차량기지 부지가 비게 되는 등 개발 가능성이 높다.

    ‘지정학’적으로 봐도 이제 더는 서울의 외곽이라고 규정하긴 어렵다. 강서구는 북쪽으로는 한강을 맞대고 서울 마포구와 경기도 고양시와 접하고 동쪽은 영등포구, 남쪽으로는 양천구, 서쪽으로는 인천 계양구와 경기도 부천시, 김포시에 접한다. 과거 강서구는 광화문, 여의도, 마포 등의 베드타운 성격이 있었지만 이제는 강서구 인접 지역들이 베드타운 구실을 하고 있다.

    김포공항지하철역은 5개 지하철-전철-경전철 노선의 환승역이다. 강서구는 서울과 인천은 물론 김포, 부천, 고양, 파주 등 수도권 서부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노루목이다. 그만큼 정치적 위상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에 따라 표심도 꿈틀거리고 있다. 애초에 강서구는 구로구, 금천구와 함께 서울 서남권으로 분류되면서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인식됐다. 현역 국회의원 세 사람도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마곡 신도시 입주, 한강변 아파트값 상승으로 인한 인구 유입과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서울시의 표심 보수화가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치러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가 민주당 김승현 후보를 꺽고 16년 만에 보수정당 강서구청장으로 당선했다.

    인물 구도는 더 흥미롭다. 애초에 양당은 이번 선거에 로-키로 임할 분위기였다. 양당 모두 서울시 부시장 수준의 고위 관료 출신 인사 또는 마곡지구 입주 업체와 연결되는 대기업 고위 임원 출신을 물색하는 움직임이 보였다. 중도층이 많은 서울에서 펼쳐지는 선거인 만큼 ‘민생’ 콘셉트로 대응하려는 생각이 강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인사 모두 “국회의원 선거면 다른 곳에서 모셔라도 오겠는데 강서구에 사는 사람 중에 괜찮은 스펙을 지닌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고 필자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할 생각이 많지 않았다. 수도권 민심이 좋지 않은 데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전체에서 앞섰던 지난 대선에서도 강서구에서는 이재명 후보에게 밀렸을 만큼 지역 환경도 좋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괜히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다가 패해서 민주당 기를 살려주고 지도부가 책임론에 휩쓸려 가느니 차라리 공천을 하지 않고 선거의 김을 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재명 ‘원픽’ 진교훈

    이 같은 인식은 지도부 다수가 공유하고 있었다. 유죄판결을 받아 발생한 선거라는 점에서 당이 그 책임을 지고 후보를 내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사실 지난해 지방선거 이전에 이미 1심에서 유죄를 받았고, 법리적으로는 무죄를 받을 확률이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던 인사를 공천한 책임은 상당하다.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구청장이 직을 상실하고 수십억 원의 혈세를 들여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됐으니 선거 내내 족쇄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준석 전 대표는 “총선을 앞둔 서울 보궐선거에 무공천한다는 것은 지도부가 무능하다는 뜻”이라는 논리로 출마를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광복절 이후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전 구청장을 특별사면 복권 명단에 포함한 것. 대법원 확정 판결 3개월도 되지 않은 인사에게 피선거권을 회복시켜 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사면 복권 이후에도 국민의힘 인사들은 “꼭 구청장 선거에 출마시킨다는 말은 아니다. 당이 결정하는 것이다”라면서 “내년 총선은 혹시 모르겠다”고 거리를 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공산 전체주의와 대결’ ‘이념이 가장 중요’ 등의 강경 드라이브를 걸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기현 대표는 결국 9월 6일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쉽지 않은 선거인 것으로 예견되지만, 그럼에도 후보를 내는 것이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사람을 또 공천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불법 사실을 공익 제보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김명수 대법원이 얼마나 왜곡·편향됐는지 확인해 주는 일”이라며 “유재수(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와 조국(전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무마한 것이 유죄면 김태우는 무죄”라고 답했다. 김태우 전 구청장 본인이 애초부터 주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그를 사면 복권한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에 대한 민주당의 공천 역시 정치적이긴 마찬가지다. 지역 기반이 탄탄한 데다가 대통령 지지율도 낮고 김태우 전 구청장의 귀책사유로 벌어지는 선거라서 차분하게 임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사 10여 명이 출사표를 던졌고 서울 내 구청-서울시청-총리실-청와대에서 근무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강서구 내 마포고를 졸업한 권오중 전 세종시 정무부시장도 가세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 주위에서 경찰 출신 인사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고 전북 출신으로 강서구에 20년간 거주했다는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이 급부상해 일사천리로 공천장을 받았다. 진 전 차장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한 건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더민주 전국혁신회의 1차 전국대회장이었다. 한총련 의장 출신으로 이재명 대표 특보인 강위원 민주당 기본사회위원장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이 조직은 급속도로 덩치를 키우며 민주당 내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이 자리에서 강위원 사무총장은 진 전 차장을 소개하며 “강서구에서 활동하시고, 간판스타로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 중”이라고 말했다.

    진 전 차장은 사흘 뒤 국회에서 김태우 전 구청장의 사면 복권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민주당 입당과 함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기존 예비후보 13명을 확정하지 않고, 2차 공모를 낸 마지막 날이었다. 공관위는 후보자 신청 자격을 ‘6개월 이상 권리당원’에서 ‘신청일 현재 권리당원’으로 바꿨다. 일주일 뒤 민주당은 진 전 차장과 더불어 정춘생 전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관, 문홍선 전 강서구 부구청장 등 3인으로 후보군을 압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 4일 이재명 대표는 전략공천을 결정하고 단식 와중에 진교훈 전 차장에게 공천장을 수여했다. 진 전 차장의 전략공천 이후 민주당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 세 사람 모두 김태우 전 구청장을 상대로 승리 가능성이 높다.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이재명 픽’이라는 점이 진 전 차장의 장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움직임은 상당히 흥미롭다. 원내에서는 친명, 비명이 힘겨루기를 하고 이재명 대표 지지율도 지지부진하지만 이 대표가 당권을 십분 활용해 자기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경찰청 차장이라는 상당한 ‘스펙’을 갖춘 인사도 더민주 혁신회의라는 측근 친위 조직을 통해 영입하고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관이 경쟁자인데도 불구하고 경선 없이 전략공천을 단행한 프로세스는 향후 총선 공천에 대한 강력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작게 지고 크게 이기는 게 낫다?

    강서구청장 선거의 여야 라인업이 검찰 수사관 출신 김태우 후보와 경찰 고위직 출신 진교훈 후보로 결정된 것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리인 대결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두 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을 보면 ‘공생적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태우 전 구청장의 등장 가능성을 이유로 대항마 격인 경찰 출신 인사가 영입됐고 이재명 대표 후원으로 전략공천을 받자마자 국민의힘도 ‘해볼 만하다’면서 김태우 전 구청장의 족쇄를 풀어준 것이다.

    이로 인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정치적 난타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로선 민주당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에서 조차 “5%포인트 내외로 지면 총선 전망이 괜찮다는 뜻 아니냐”는 식의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다. 하지만 보궐선거는 통상 투표율이 낮다. 게다가 정치적 공방이 펼쳐지면 20~40대 투표율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나타났던 민주당 내부 알력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구청장에 당선된 이후 1년 가까이 직을 수행한 김태우 후보의 지역 이해도는 진교훈 후보보다 높을 것이다. 선거에 ‘만약’이란 없지만 ‘만약’이 겹친다면 결과는 모를 일이다.

    후보들의 명운이 달려 있기도 하지만 이 선거 결과에 따라 대통령-국민의힘 지도부나 이재명 대표 한쪽은 큰 타격을 받을 공산이 크다. 양당 선거 전문가들이 조용한 선거로 치르자고 이야기했지만 리더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판을 너무 키워 내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세력 전체, 당 전체 처지에서 보면 이번 선거에서 이기는 쪽은 오히려 승자의 저주에 결릴 가능성도 있다. 어찌어찌 이긴 쪽이 보궐선거 승리를 전체 민심의 선택인 양 포장하면서 구심력을 강화하고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할 것이고, 진 쪽은 강제적으로 혁신에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란 점에서다. 내년 4월 총선 결과를 고려한다면 작게 이기고 크게 지는 것보다는 작게 지고 나중에 크게 이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신동아 10월호 표지]

    [신동아 10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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