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바로 지금, 공교육 역할 재정립할 때

[김태일의 대자보]

  • 김태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前 신전대협 의장

    입력2023-10-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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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 인류 생존 전략

    • 韓 교육, 수십 년째 제자리걸음

    • 공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 가르치는 것!

    공교육 멈춤의 날인 9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공교육 멈춤의 날인 9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사람들은 교육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 유치원이나 초·중·고 교실? 입시? 아니면 대학이나 직업 연수? 각자 처한 환경과 관심에 따라 교육이라는 기표(記標)에 대해 나타나는 기의(記意)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 ‘인재 양성’에 대해 논하면 다른 한편에선 ‘기본권으로서의 교육’과 ‘교육격차’를 지적한다. 동서양 간 관점 차이도 있다. ‘가르치고 기른다’는 동양의 ‘敎育’과는 달리, 서양의 ‘education’은 ‘내면의 가치를 이끌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 시민부터 정책결정자까지 누구나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대부분 좀처럼 교육의 ‘수요 당사자’로서 교육의 개념을 고찰하진 않는다. 공급자로서 서로 다른 이해와 관점을 바탕으로, 각 집단의 우선순위를 다투다가, 예산분배 제로섬에 빠져 논의는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 학생들은 하루하루 크고만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교육은 인류의 생존 전략이다. 선대의 역사·문명을 압축해 전수하고 또다시 발전을 도모하는, 유지·재생산·확산·연대를 위한 관념적 DNA다. 새로 태어난 인간이 현대 인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관을 잇는 행위다.

    20세기 인류는 역사상 가장 큰 세계대전을 치른 후 전례 없는 평화와 풍요를 누렸다. 전쟁 승리와 생존이라는 목표하에 과학·기술은 분야를 막론하고 폭발적 발전을 거듭했고, 전후 삶의 양태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풍요의 원천은 기술 발전으로 생산된 부가가치였다.



    1980년 이후부터 과학·기술 발전이 더뎌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 인터넷, 2010년대에 스마트폰이 상용화하기 시작한 것 외에는 삶의 양식을 바꿀 만큼의 기술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술혁신 침체는 현재 세계경제 부진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배터리와 반도체 기술은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이상 기후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자유무역 체제의 불완전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한창 지속되고 있고, 미·중 두 강대국이 양극으로 세계질서를 편성해 나가고 있다.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국가가 새로운 교육 방향 제시해야

    이런 상황에 한국 교육의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한국 교육의 문제점으론 입시 경쟁, 대학 서열화, 교육격차, 사교육비, 주입식 교육 등이 꼽힌다. 이들 모두 현재 한국 교육의 한계를 방증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우열을 변별하기 위한 경기·대결·게임의 규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교육은 그저 대입 관문 통과를 위한 과정이고, 그 이후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여진다. 흔히 한국을 ‘교육으로 발전한 나라’라고 하는데, 이런 정체 상태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5월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한 입시학원의 고교 및 대입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5월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한 입시학원의 고교 및 대입 설명회에서 학부모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최근에야 ‘대학 교육’ 문제가 대두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 역시 의대·로스쿨·고시·수도권 쏠림 등 기존 입시 문제의 연장선이다. 정해진 시험 유형을 익혀서, 많은 문제를 맞히고, 더 높은 점수를 받아 그에 대한 안정적 보상을 받는 체제라는 점은 다를 게 없다. 이 제도의 완결성을 지켜내는 것이 ‘공정’의 가치라고도 하지만 고도의 선진 문명 환경이 아닌 자연 상태에선 오히려 그것이 지켜지는 일이 드문 것이 현실이다.

    시험을 보고 얻는 점수는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 생산 가능성을 평가할 척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개인이 제도권 안에서 순위로 변별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자신만의 차별화된 역량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쯤엔 이미 시간이 꽤 지나버린 후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하고, 또 이 전공과도 무관한 직업을 얻으려 준비하고, 평균 28세가 돼서야 사회 진출을 한다는 통계나 30대에 수능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국민 대다수가 20~30년간 시험의 굴레에 갇혀 생산 가능 시기를 허비하고 있다. 이젠 국가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때다.

    교육개혁 = 現 최우선 과제

    공교육의 역할은 현대인이자 한국인이라면 어떤 세계관과 국가관을 가져야 하는지 정립해 제시하는 것이다. 선도 국가에 걸맞은 세계관을 형성하고 한국의 국가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앞으로는 어딜 향해 나아갈지, 후세에게 무엇을 물려줄지도 고민해야 한다.

    현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문제를 맞혀나간다. “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야”라는 말에 맹목적으로 지식의 파편들을 수집해 나간다.

    공교육의 역할은 그 파편들이 사실 세상이란 큰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퍼즐 조각이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각 국가의 국부 총량이 얼마인지, 자원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각 분야 중요 기술이 무엇이고 어느 단계까지 도달해 있는지, 국가 부처는 왜 이렇게 조직돼 있는지, 대학 학과 구성은 왜 이렇게 됐는지 등 세상에 대한 메타인지도 길러줘야 한다.

    현대인은 사회구조적으로 미숙한 시기부터 무분별한 정보를 수용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 마약·도박 등 전통적 가치를 등한시한 채 탐닉할 수단이 너무 많아졌다. 한 인간이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온전하고 성숙하게 자립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재기 불능의 삶으로 무너질 수 있는 세상이다. 필자가 ‘교육개혁’이 현재 가장 시급한,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삶이 고달프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때다. 누구나 역사 변혁의 주체로서 세계를 무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인류 최전선의 고민을 함께 해낼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고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 돼야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서로 경계하던 당대 최고 과학자들이 협업할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해낸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한국 교육의 중장기적 비전을 고민하는 기구다. 국민 참여를 기반으로 10년 단위 국가교육발전계획을 수립한다. 한국은 늘 위기를 기회로 삼았던 나라다. 국민과 함께 수요 당사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고민해 보고 싶다. 한국은 다시 한번 기적의 합심이 필요하다.


    김태일
    ● 1993년 출생
    ● 한국외대 국제학부 졸업
    ● 前 신전대협(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 現 국가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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