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서민은 尹·상위 30%는 李 택해
野 지지층,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 단절선
소득·자산 불평등, 文 정부 때 심화
“살아남은 고소득층만 빼고 이탈”
[동아DB, Gettyimage]
최근 을지로위원회가 출범 10주년을 맞아 ‘민주당 재집권전략보고서’를 발간했다. 본문에는 “민주당은 부동산값 급등 등 불평등·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잃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1기 을지로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사회경제 개혁을 해야 하는 데 첫해에 다 놓쳤다”며 “국민의 삶을 챙기는 일에 대한 어젠다만 던졌지 그걸 실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없었고 할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우 의원이 을지로위원회에서 가진 상징성을 고려하면,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한 문장으로 갈음하면 ‘을(乙)에게 제출한 반성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을(乙)은 민주당의 골간이 아니다. 외려 이들은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을 비토했다. 학력이 낮고 가난할수록 보수정당을 택했다. 고학력 중산층이 주로 민주당에 표를 줬다.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城안에 있는 사람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대 대선 직후인 지난해 3월 10∼15일 실시한 대선 패널 2차 조사가 있다. ‘여의도 머니볼’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조사다. 이에 따르면 월 가구소득 200만 원 미만 유권자 중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를 찍은 비율은 35.9%에 불과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택한 유권자는 61.3%다. 월 200만~300만 원 미만 유권자에서는 57.2%가 윤 후보를, 38.3%가 이 후보를 지지했다. 월 300만~400만 원 미만의 경우 후보 간 격차가 줄기는 하지만(윤석열 49.0%, 이재명 45.7%) 어쨌든 윤 후보가 앞섰다.이 후보는 중상층이라 할 월 600만~700만 원 미만에서 61.7%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같은 유권자층에서 윤 후보는 32.6%를 얻는 데 그쳤다. 조사 대상 유권자 중 소득 구간이 가장 높은 월 700만 원 이상에서도 이 후보는 49.6%를 얻어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윤 후보(47.9%)를 제쳤다.
월 600만~700만 원 미만 유권자는 한국의 소득 사다리에서 어느 위치에 있나. EAI 조사가 이뤄진 2022년 기준 통계를 소개한다. 통계청이 2월 23일 발표한 2022년 연간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3만4000원이다. 이 중 소득 4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589만4000원이다. 5분위 월평균 소득은 1042만7000원이다. 조사 대상 인구를 20%씩 떼서 5분위로 나눈 자료이니 4분위는 상위 21%에서 40% 사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재명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월 600만~700만 원 미만의 경우 통계상 4분위(상위 21~40%) 평균보다 다소 높고 5분위(상위 20%) 평균에는 크게 못 미친다. 편의상 단순화하면 소득 상위 30%라 표현할 수 있다. 수출 대기업 혹은 공기업·공공기관 정규직이거나, 전문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기업·공기업 노조는 강력한 교섭력을 갖고 있다. 임금의 그래프가 우상향할 개연성이 크다. 무슨 말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분절된 노동시장, 흔한 말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고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은 을(乙)이라 말할 수 없는 그룹이다. 되레 성(城)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직업에 따라서도 성향이 갈린다.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사이에 또렷한 단절선이 있다. 화이트칼라에서는 이 후보가 54.5%, 블루칼라에서는 윤 후보가 53.9%로 상대를 앞섰다. 대선 이후에도 추세는 이어졌다. 한국갤럽이 같은 해 12월 15일 발표한 ‘2022년 월별·연간 통합-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정당 지지도, 주관적 정치 성향’을 보면, 화이트칼라에 해당하는 사무/관리직에서 민주당 지지율(40%)이 가장 높다. 윤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68%)도 도드라진다.
국회 보좌진 출신인 김형호 동국대 산학협력중점교수는 “소득보다는 세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는 보수정당 소속으로 서울 지역구에서 여러 차례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렀다.
“지금의 40대 이상 세대는 직·간접으로 학생운동을 경험했다. 시기상 각계각층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을 시기다.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위치에 있을 확률이 높다. 즉 고소득이기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애초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세대의 소득이 높은 것이다. 서울에서 선거를 치르면서 40·50세대로부터 늘 듣던 얘기가 ‘나는 민주당 지지자인데, 국회의원은 당신네 후보를 찍겠다’는 거였다. 인물 경쟁력이 있으니 표는 주겠지만, 지지 정당은 민주당이라고 명확히 밝히는 거다.”
이재명 대표도 모르지 않는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아는 바로는 고학력·고소득자, 소위 부자라고 하는 분이 우리 지지자가 더 많습니다. 저학력·저소득층이 국민의힘 지지가 많아요. 안타까운 현실인데, 언론 때문에 그렇죠. 언론 환경 때문이에요.”(7월 29일 유튜브 라이브 중)
지난해 11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꽃달기 행사에 이재명 당대표가 입장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무색해진 ‘교과서적 원리’
과연 언론 환경 때문일까. 을(乙)에게 더 도움을 주는 당은 민주당인데, 을(乙)이 언론에 ‘속아서’ 국민의힘을 지지할까. 실은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다”(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중)던 정부에서 을(乙)의 삶은 신산했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문재인 정부는 그리 좋은 정부가 아니었다. 통계는 그렇게 웅변한다.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3월 10일 공개한 국세청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 분석 결과는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2017~2021) 기간 소득 하위 64% 이하 구간의 소득 상승률은 1.1%다. 박근혜 정부(2013~2020) 기간의 상승률은 2.1%다. 경제적 하층의 소득 상승률이 ‘진보’ 정부에서 반토막이 났다. 대신 문재인 정부 기간 상위 10%의 소득 상승률은 1.3%로 박근혜 정부(0.9%) 기간의 수치를 웃돈다. 2017년 48배였던 하위 80% 대비 상위 1% 연소득은 2021년 53배로 늘었다. 소득 불평등이 악화했다. 진보가 불평등 문제에 대처할 역량이 더 뛰어나다는 ‘교과서적 원리’는 무색해졌다.
자산 시장 상황도 매한가지다. 민주연구원이 1월 25일 공개한 ‘2022 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가구의 평균 자산 격차는 2016년 8500만 원에서 2021년 2억600만 원으로 커졌다. 발표의 주체가 민주연구원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문재인 정부 때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탓에 자산 격차가 커졌다는 점을 민주당 싱크탱크가 인정했다. 민주연구원이 2020년 가구소득 지니계수를 분석한 결과를 보더라도, 전체 지니계수에서 부동산 소득의 기여도는 54%로 임금소득(36%)보다 높다. 역사적으로 자본소득이 임금소득에 비해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는 점을 입증해 ‘세습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토마 피케티가 떠오른다.
이렇게 보면 을(乙)이 민주당에 눈길을 주지 않는 건 언론 탓이 아니다. 이해관계를 고려한 투표다. ‘계급 배반 투표’라고 갈음해 버릴 성질의 일이 아니다. 정치학자인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탈’이라는 렌즈로 이 현상을 해석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민주당을 지지하던 ‘러스트벨트’ 백인 노동자들이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를 지지했다. 민주당이 구제하지 못하니 다른 정당을 택한 거다. 한국 민주당이 정권을 뺏긴 과정도 유사하다. 20·30 세대는 일자리가 필요한데, (민주당은) 20만~30만 원 수당을 준다고 한다. 결국 세금 걷어야 하니 ‘밑 빠진 독’이다. 그와 같은 포퓰리즘은 저소득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했는데, (지금의 민주당은) 실질적인 중산층 회복 정책은 내놓지 않는다. 투기꾼 잡겠다며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잘못된 비정규직 정책을 내놨다.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하면서 고통 분담은 상인들에게 전가했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고소득층만 빼고 지지층에서 이탈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더 갖고, 더 벌게 된 사람일수록 민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높다. 의심할 여지없는 이익 투표다. 이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점에 주목한 이가 조귀동 작가다. 그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생각의힘)에서 민주당이 ‘상위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거스르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책의 제3장은 ‘촛불연합의 붕괴와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121~123쪽에 나온 내용을 축약하면 이렇다.
“실제로 민주당 내 활동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는 서울 등 대도시에 살고 대기업 정규직으로 안정된 경제적 지위를 가진 40~50대가 많다. (중략) 문재인 정부의 적극 재정 기조에도 GDP 대비 조세 비중은 2017~2020년 1.2%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2013~2017년 증가폭 1.8%포인트보다 못하다. (중략) 민주당 정부에서 약자를 위한 재정을 늘릴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들 지지층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데 있다.”
부당한 낙인이지만…
민주당이 을(乙)을 내팽개쳤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와 같은 낙인은 부당하다. 을지로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의원들의 분투기가 생생히 담겨 있다. 하청노동자의 단식농성 현장에 방문하고, 사립대 청소·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총장과 면담했다. 가맹점주의 권익을 위해 활동한 기록도 있다. 10년간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이 정책에도 꾸준히 반영됐다. 어떤 을(乙)에게 을지로위원회는 예나 지금이나 든든한 버팀목이다.그렇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의 역학은 보기보다 복잡다단하다. 정당이라면 이해관계에 따라 선후관계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지갑 사정이 두툼한 유권자가 지탱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로 문재인 정부 시기의 불평등 악화는 의도였다기보다는 결과다. 선거에 이기려면 지지층의 표심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다만 이에 따른 유탄을 을(乙)이 맞았다는 점이 역설이다. 먹고살기 힘든 이들에게 ‘진보’ 정권 시기는 호시절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얻은 오명은 고약하다. “민생 문제는 귀퉁이로 밀어내고 검찰개혁 등 권력기관 이슈에 너무 몰입하는 정당.” 민주당이 그간 무엇을 잃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