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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지분경쟁... 고려아연 최윤범 新사업 못마땅한 장형진

[이현준의 G-zone] 점입가경 張‧崔 지분경쟁… “장형진이 영풍정밀 손대면 전면전 선포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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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09-27 13:5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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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준의 G-zone’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을 중심으로 경제 이슈를 살펴봅니다.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고려아연]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고려아연]

    세계 1위 아연제련업체 고려아연을 둘러싼 장‧최 두 가문의 지분경쟁이 격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측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영풍기업사를 설립한 이래 74년간 공동으로 지분을 보유하는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영풍그룹을 운영해 왔습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인데요, 그간 장 씨 일가가 더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최 씨 일가는 ‘경영’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습니다.

    2021년 최기호 창업주의 손자 최윤범 씨가 고려아연 회장 자리에 오르며 이 구도에 균열이 생겼죠. 지난해 8월 최윤범 회장이 이끄는 고려아연 이사회가 ‘한화H2에너지 USA’를 대상으로 제3자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 두 가문의 지분경쟁이 본격화됐고, 갈등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17일 주주총회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최근 다시 불이 붙은 모양새입니다. 최윤범 회장이 불을 댕겼습니다. 먼저 8월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유상증자를 진행해 우군으로 확보했습니다. 유상증자 규모는 약 5200억 원으로 고려아연 지분 5% 상당입니다. 또 9월 5일부터 18일까지 8차례에 걸쳐 약 60억 원을 들여 1만1915주를 사들이면서 지분율을 끌어올렸고요.

    물론 장 씨 일가도 가만있진 않았습니다. 장병희 창업주의 아들 장형진 영풍 고문은 개인회사인 ‘에이치씨’를 통해 5월부터 8월 말까지 8만4000여 주를 추가 매입했습니다. 그의 자녀들도 ‘씨케이’ 등 계열사를 통해 주식을 사들였습니다. 5월부터 9월까지 에이치씨와 씨케이가 매입한 고려아연 주식은 약 15만 주로 매입 규모는 700억~800억 원, 지분율로 치면 0.75%입니다.

    그럼에도 승기는 최 씨 일가 쪽으로 다소 넘어간 상황입니다. 앞서 언급한 유상증자를 통해 현대차그룹이 최 회장의 우군으로 가세한 영향이 컸죠. 6월 30일 기준 장 씨 일가 지분은 32.91%, 최 씨 일가 지분은 28.86%였는데, 유상증자로 지분율이 희석돼 각각 31.26%, 27.41%가 됐습니다. 이 상태에서 현대차그룹의 5%가 최 씨 일가에 더해지니 역전된 것이죠. 지난해 8월 지분 경쟁 본격화 전 장 씨 일가 지분율이 최 씨 일가 지분율보다 약 10%포인트 더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최 씨 일가가 무서운 기세로 지분율을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 씨 일가로선 당연히 달가울 리가 없겠죠. 지금껏 함께해 온 최 씨 일가가 노골적으로 독립‧분리 의사를 드러낸 셈이니까요. 특히 장형진 고문은 이사회 불참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습니다. 장 고문은 고려아연 이사회에 항상 참석해왔는데 유독 지난해 한화그룹, 올해 현대차그룹에 대한 유상증자를 결의하는 이사회엔 불참했죠. 유상증자가 결국 최 씨 일가의 지분을 높이고, 장 씨 일가의 지분을 희석시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최윤범 회장의 자금 차입에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입니다.

    내년 3월 주주총회서 한 쪽 쫓겨날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영풍그룹은 두 창업주의 창립으로부터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남의 돈 끌어다 일 벌리지 않기’가 바로 그것인데요, 최윤범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적극 추진하면서 대규모 차입금을 들여왔습니다. 6월 말 기준 고려아연 차입금 규모는 총 1조575억 원입니다. 2021년 말 4460억 원이던 것에 비해 약 2.3배나 늘었죠. 이는 1993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역대 최대치 수준입니다.

    여기에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아직 가시적 성과를 보이진 않고 있다는 점도 장 씨 일가를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불투명한 미래 사업을 위해 회사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못마땅한 셈이죠. 실제로 올해 상반기에만 고려아연은 금융비용(이자 납입)으로 269억 원을 썼는데, 2021년엔 42억 원에 비해 6배 넘게 늘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영풍그룹은 장‧최 두 가문이 공동으로 이끌어왔긴 하지만 전체 지분율로만 보면 장 씨 측이 오너, 최 씨 측이 경영인인 셈이다. 장 씨 측으로선 경영 방향이 불만스러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사실상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최 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영풍그룹에서 떼어내려면 장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을 3% 미만으로 줄이고 임원 겸임을 없애야 합니다. 고려아연 시가총액이 약 10조 원이니 3조 원가량의 현금이 필요한데, 대규모 차입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 이만한 현금을 갖고 있을 리 없는데다 장 씨 일가도 핵심 계열사 고려아연을 포기할 리 만무하죠. 2020년 기준 영풍그룹 전체 매출 가운데 고려아연의 매출 비중은 76.8%에 이릅니다. 5년간(2018~2021) 장 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통해 얻은 배당금만 2967억 원으로 전체 배당 수익의 97.2%를 차지합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죠.

    결국 최 씨 일가로선 신사업을 하고 싶고, 장 씨 일가는 이게 못마땅하니 각자 뜻을 더 관철하기 위해 지분을 늘리며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장형진 고문과 최윤범 회장 모두 이사 임기가 만료됩니다. 양가의 지분경쟁이 극단 상태에 이르면 최악의 경우 어느 한 쪽이 이사회에서 쫓겨나게 될 수 있다는 점도 더더욱 서로 물러날 수 없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계열사 ‘영풍정밀’이 향후 상황을 결정할 가늠쇠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양가의 갈등이 ‘극단 상태로 가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회사라는 것인데,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약 1.8%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배하면 고려아연 지분 1.8%가량을 얻는 셈이죠. 현재 최윤범 회장의 모친 유중근 경원문화재단 이사장(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이 가장 많은 지분(6.27%)을 보유하는 등 최 씨 일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장형진 고문은 지분 5.71%를 보유한 2대 주주고요. 그런데 의아한 부분이 있습니다.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회사인 만큼 최 씨 일가는 꾸준히 지분을 사고 있는데, 장 씨 일가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장형진 고문이 영풍정밀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마지막 선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영풍정밀의 시가총액이 약 2200억 원이고 최 씨 일가의 지분이 장 씨 일가의 그것보다 10%가량 많은 상황입니다. 장 씨 일가가 약 200억 원만 들이면 영풍정밀을 지배할 수 있고, 그럴만한 현금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장형진 고문이 영풍정밀을 건드리는 순간 두 가문의 지분경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리라 여기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그간 최 씨 일가와 장 씨 일가는 이러한 경쟁에 대해 대외적으론 “경영 활동의 일환일 뿐”이라며 갈등 사실을 부인해왔지만 이젠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갈등이 있다”고 말하진 않지만 “갈등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도 않고 있죠. 더는 부인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상황이 심화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지분경쟁은 최소 올해 연말까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 대한 주주명부폐쇄일이 12월 말 무렵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숨길 수도, 부인할 수도 없을 만큼 양가의 갈등이 표면화된 상황. 그들의 동행이 74년간 이어져온 것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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