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투쟁은 비폭력 투쟁인가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의 싸움
‘나 자신을 파괴하라’는 발상
‘강제급식’이냐 ‘인공급식’이냐
굳이 투사 될 필요도 없거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단식농성 천막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를 주최하고 있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9월 3일 한 언론에 보도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다. 이재명은 8월 31일부터 “정부의 폭주에 맞설 방법은 단식뿐”이라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문제는 단식의 방법론이다. 일반적으로 정치인의 단식투쟁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벌어진다. 대체로 국회 내외, 혹은 광화문 등의 요지에 천막을 치고, 단식투쟁의 당사자가 정좌하며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많은 이의 지지 방문을 받으며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고 세 결집을 한다.
이재명의 단식투쟁은 다르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출퇴근’을 한다. 민주당의 설명에 따르면 밤 10시부터는 국회 본청 당대표실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대표가 잠을 천막에서 자면 당직자와 경호관 등도 덩달아 고생해야 하므로 그런 수고를 덜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단식투쟁의 ‘진정성’ 논란이 불거진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검찰 수사의 칼날이 바싹 다가온 시점에 불현듯 시작된 단식투쟁이기도 하거니와, 그나마도 ‘24시간 내내 굶고 있는지’ 대중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방식이니 말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용하는 보온병과 소금통 등을 두고 ‘과연 저 속에 뭐가 들었냐’는 식의 의혹이 제기되기까지 하는 상황. 이 모든 일이 부당하게 느껴졌는지, 결국 이재명은 ‘내가 아무것도 안 먹고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냐’라고, 한 마디 내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단식이라는 극한의 수단까지 동원해 항의하고 있는데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보온병에 사골육수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오고 있으니, 이재명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화가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이재명의 말은 이상하다. 단식투쟁은 어떠한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 곡기를 끊어 죽을 때까지 굶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아무것도 안 먹고 빨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단 한 명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단식투쟁을 선언하고 시작해버린 이재명 본인일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를 받던 야당 대표가 불현듯 단식투쟁을 한다. 제대로 굶는 게 맞긴 하냐며 단식의 ‘진정성’을 의심받자 ‘내가 굶어 죽기를 바라느냐’고 외려 화를 낸다. 이 웃지 못 할 희비극은 한국 정치,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가 빠져 있는 심각한 문제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2023년 가을, 대한민국 정치는 작동 불능 상태에 처해 있으며, 그 바탕에는 이재명의 단식투쟁을 통해 가시화된 생명 경시 풍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단식 8일차를 맞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단식농성장에서 소금을 먹고 있다. [뉴스1]
마리온 월리스 던롭의 발상
우리의 정치와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단식투쟁이라는 주제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단식투쟁은 비폭력 투쟁인가. 단식투쟁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약자가 행사할 수 있는 투쟁 방식 중 하나로 윤리성을 담보 받는가. 누군가가 단식투쟁을 벌일 때 그에 반대하거나 공권력이 제지한다면, 그 한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할까.예로부터 많은 이들은 본인의 뜻을 밝히고 관철시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 죽을 각오로 싸우거나, 죽을 각오로 굶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단식투쟁이라는 주제가 일회적인 에피소드에서 끝나지 않고 본격적인 사회적, 윤리적, 철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여성참정권 운동, 이른바 서프라제트(선거권을 쟁취하려는 여성들) 운동이 한창인 가운데 단식투쟁이 뜨거운 화두로 제시됐던 것이다.
유리창을 깨고 우체통을 폭파하며 달리는 마차에 몸을 던지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뜻을 밝히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감옥에 갇혀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를 중심으로 한 과격파는 투옥 후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투표권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요구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전달할 방법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의 집권당은 자유당이었다. 자유당은 여성참정권 운동에 외견적으로는 동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여성들의 투표권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판단에 여성참정권 허용을 언제나 ‘나중’으로 미뤄오고 있었다. 자유당의 이런 애매한 태도는 여성참정권 운동이 점점 더 과격해지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 많은 활동가들이 투옥됐고, 그 중에는 마리온 월리스 던롭이 포함돼 있었다.
던롭은 기발한 발상을 떠올렸다. 서프라제트는 무언가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며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외쳐왔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함으로써 내 의지를 밝힐 수도 있지 않겠는가. 1909년 7월 2일, 의회 벽에 벽보를 인쇄하려다 경찰에 체포된 던롭은 단식을 시작했고, 내무부는 던롭이 목숨을 잃을 경우 돌아올 파장을 우려해 사흘 만에 그를 석방했다.
서프라제트는 단식투쟁이라는 새로운 투쟁 도구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영국 정부의 고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던롭 한 사람을 급하게 석방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뒤이은 단식투쟁가들을 모두 내보내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 정부는 그해 9월 17일 체포된 메리 리를 시작으로, 단식투쟁을 벌이는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강제급식(force feeding)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고 서프라제트 운동이 마무리되기까지 수백 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강제급식을 당했다.
강제급식은 매우 거칠고 잔인했다. 죄수를 힘으로 제압한 후 사지를 묶어놓고, 식도로 긴 튜브를 삽입한 후 계란, 우유, 기타 등등 유동성 음식물을 말 그대로 ‘강제’로 집어넣었다. 이미 굶주려 체력이 떨어진 죄수들은 그 과정에서 탈진하거나, 식도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음식이 역류해 질식하거나, 목과 위장에 상처를 입거나,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는 등 온갖 부작용이 뒤따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9월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 촛불문화제’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평화적’이지 않은 투쟁
영국 정부의 태도는 분명했다. 단식투쟁은 스스로의 건강과 목숨을 해치는 행위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일종의 자해 내지는 자살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을 거부하는 정신질환적 증상을 방치하는 것은 죄수를 사회로부터 격리할 뿐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하며 교화하는 수형기관의 임무와 어긋난다. 이런 논리 하에 영국 정부는 강제급식을 ‘인공급식’이라고 부르며, 의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규정짓고,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갔다.현장에서 강제급식을 시행하는 주체, 특히 의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며, 설령 죽음이라는 결과가 발생한다 해도 의도적으로 식사를 중단해 본인의 의사를 관철하고자 하는 사람은,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치료받아야 할 정신질환자로 여겨질 수 없다. 그런 이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폭행이다. 1909년부터 1914년까지, 여성참정권 운동이 한창 벌어지며 서프라제트의 단식과 강제급식이 이어지던 무렵 영국의 의료계는 침묵, 협조, 반대의 갈래로 나뉘었지만 결국 그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강제급식에 대한 의료계의 논쟁이 일단락된 것은 1975년의 일이었다.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embly)가 이른바 ‘도쿄 선언(Declaration of Tokyo)’을 발표한 것이다. 교도소나 기타 수형시설에서 일하는 의사 또한 의사로서 윤리적 책무를 지닌다. 고문이나 가학행위에 동참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다. 강제급식은 그러한 가학행위 중 일부로 간주됐다. 재소자가 음식물 섭취를 거부할 경우 그 의지에 반해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여성참정권 운동과 단식투쟁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할 것. 황혜진, ‘서프러제트의 단식투쟁과 강제급식(1909-1914): 여성의 신체, 국가의 개입, 의사의 담론’, ‘역사와세계’, 62호, 2022, 35~70쪽)
서프라제트와 강제급식은 단식투쟁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의 핵심을 매우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착각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식투쟁은 ‘평화적’이지 않다. ‘비폭력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사실에 더욱 가깝다. 단식투쟁은 어떤 죽음을 발생시킬 수 있는 행위, 즉 단식을 의도적으로 수행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려 하는 전투적이고 폭력적인 투쟁의 방식이다. 인질을 붙잡은 채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겠다’고 말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볼 때 단식투쟁은 일종의 인질극이라는 평가 역시 가능하다.
보비 샌즈와 마가렛 대처
문제는 그 대상이 타인이 아닌 투쟁 행위자 본인이라는 데 있다. 어떤 악당이 인질을 붙잡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평화롭게 그 상황이 마무리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악당을 저격하거나,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무장해제해야 인질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악당과 인질이 동일한 인물이라면? 공권력은 인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악당에게 폭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그 이전의 수많은 단식투쟁과 달리 서프라제트의 단식투쟁이 새삼스럽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바로 거기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어떤 남자가 스스로 굶어서 죽겠다고 할 경우, 세상은 그의 의지를 존중해왔다. ‘너를 위해 강제로 먹인다’는 것은 상대를 살해하는 것보다 더 큰 인격적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었다.
서프라제트를 대상으로 한 강제급식은 이 원칙을 깨뜨린 것이다. 강제급식을 당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고, 강제급식을 경험한 여성참정권 운동가가 그 후 오래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급식은 의학적 보호나 치료보다 정치적 의지의 박탈에 중점을 둔 조치였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단식투쟁을 무조건 옹호할 수도 없다. 앞서 말했듯 단식투쟁은 그 본성상 본인의 생명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일종의 자기 인질극이기 때문이다. 단식투쟁의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세계의사회가 도쿄 선언을 한 지 6년이 흐른 1981년으로 돌아가 보자.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단체 IRA 대원들이 수감되고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IRA 무장 대원이던 보비 샌즈는 영국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됐고, 자신을 정치범으로 대우해달라며 단식을 시작했다.
샌즈를 정치범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IRA를 정치 단체로 인정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는 영국의 북아일랜드 정책 전부를 뒤흔드는 결과를 낳는다. 영국 정부로서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강제급식이라는 선택지가 있었겠으나, 도쿄 선언 이후 그것도 불가능해진 상황.
당시 영국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없다”며 그 요구를 묵살하는 것뿐이었다. 샌즈 역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샌즈는 단식투쟁 후 66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IRA의 인질극으로 인해 IRA 대원이 사망한 셈이었다.
단식투쟁은 비폭력 투쟁이 아니다.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가장 처절한 유형의 폭력 투쟁에 더 가깝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바로 투쟁하는 당사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1975년 이후로는 단식투쟁자에게 강제로 음식물을 급여할 수도 없으니, 국가나 사회가 단식투쟁을 다른 종류의 폭력투쟁처럼 ‘진압’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달라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해 서프라제트가 목숨을 걸고 굶어야 했던 것 역시 10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굳이 단식투쟁 같은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라면 평화적으로 본인의 의사를 표출하며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정치적 경로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IRA조차 1998년부터 ‘신 페인’이라는 정당으로 탈바꿈해 합법 노선을 걷고 있다. 폭탄을 터뜨려 요인을 암살하고 대중을 공포에 떨게 하는 대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의회에 진출하고 정권을 잡아 세상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여지를 갖게 됐다는 말과 같다. IRA가 폭탄 테러로 악명을 떨쳤던 수십여 년 전과 비교해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이러한 변화가 모두 ‘비폭력적 투쟁’만으로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단식투쟁은 ‘비저항’은 맞을지 모르지만 ‘비폭력’ 투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식투쟁으로 인해 위험에 빠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단식투쟁 역시 엄연한 폭력적 행위이며, 때로는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고 애꿎은 생명을 소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의사표현 자유 누리며 투사 자처하다
단식투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폄하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것인 본인의 생명을 내거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 어떤 저항의 수단도 갖지 못한 이가 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방편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어떤 요구를 하고 있다면, 그 입에 음식물을 강제로 밀어 넣기 전에, 그 말을 들어보긴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세상의 절반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 것이 당연한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서프라제트가 바로 그렇게 목숨 걸고 여성참정권을 외친 덕분이다.하지만 우리는 1910년대가 아니라 2020년대에 살고 있다. 2023년 9월 초,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가진 거대 야당 당대표의 단식투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프라제트의 단식투쟁을 보는 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이자 현직 국회의원이다. 체포 구금 억압의 상태에 있지도 않다.
이재명은 투사가 아니다. 투사가 될 필요도 없다. 본인에게 주어진 다양한 의사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본인에게 돌아온 법적 책임 앞에서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겸허하고 진솔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꾸준히 이어지는 정치 언어의 인플레이션 때문인지, 우리는 단식투쟁이 얼마나 큰일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굶으면서 앉아있다 보면 여당이나 사측에서 적당한 요구 조건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합의와 협상을 하면 되는 어떤 요식행위로 취급하는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내가 아무것도 안 먹고 빨리 죽어버리길 바라는 거냐”는 이재명의 발언 역시 그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는 모두 심각하게 잘못됐다. 단식투쟁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벌이는 가장 격렬한 폭력투쟁의 한 방식이다.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시민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원론적으로 볼 때 그 모든 폭력투쟁과 마찬가지로 단식투쟁에 대해서도 반대하거나, 적어도 유보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남의 목숨을 인질로 잡아 어떤 요구를 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자신의 목숨을 인질로 삼는 행위 역시 다른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