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조달 패러다임 바꿔 中企 집중 지원한다”

기관 개혁 나선 김윤상 조달청장

  •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입력2023-09-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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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소 공급 부족 대비, 수입량 늘려

    • 원자재 비축은 미래 위험 대비한 ‘투자’

    • 유망 중소기업 지원, 유엔·국제기구 조달도 추진

    김윤상 조달청장. [조영철 기자]

    김윤상 조달청장. [조영철 기자]

    김윤상 조달청장이 국가 조달 체제를 바꾸고 있다. 연간 200조 원에 달하는 공공 조달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 시스템을 고치기 시작했다.

    기존의 공공 조달은 정부가 필요한 물자를 주문받아 그대로 공급하던 수동적 체계였다. 그런데 이 같은 조달 체제를 더는 유지하기 힘들게 됐다.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기 흔하디흔했던 마스크도 공급하지 못했다. 2021년에는 중국이 요소 수출을 중단하자 물류 운송수단인 화물차가 전국 도로에서 운행을 줄이기도 했다.

    국가 조달 체제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조달청은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조달 물자는 수급(需給)과는 별개로 여유 있게 비축해 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존 조달 시스템이 수술대에 올랐다.

    김 청장은 여기에다 ‘신성장 조달’을 위한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공정 조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LH의 공공주택 건설에서 철근이 빠진 ‘순살’ 아파트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는 치밀한 품질관리를 목표로 부당한 이권 카르텔을 과감하게 혁파하겠다는 의지도 천명했다.

    2023년 9월 8일 대전청사에서 서울로 출장 온 김 청장을 만나 국가 조달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물어봤다. 이날은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 소식이 전해진 때였다. 올해 7월 7일 취임한 김 청장은 기획재정부 재정차관보, 예산총괄과장, 주미 대사관 재경관 등을 거친 예산·재정 전문가로 기재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닮고 싶은 상사’에 뽑히기도 했다.



    공급망 위기에 적극 대응하는 조달청

    조달청 부산 비축 기지를 방문한 김윤상 조달청장이 원자재 비축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조달청]

    조달청 부산 비축 기지를 방문한 김윤상 조달청장이 원자재 비축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조달청]

    중국이 요소 수출을 중단하거나 조절하면서 한국에서 2021년과 같은 ‘요소 대란’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온다.

    “조달청은 비축 품목을 금속 자원 중심에서 경제 안보 품목 및 국민생활 밀접 물자로 확대하기로 하고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있다. 차량용 요소, 고도정수처리용 활성탄, 제설제용 염화칼슘도 그런 물자에 해당한다. 이들 물자는 ‘긴급수급조절물자’로 지정된 상태로 공급 부족이 우려되는 품목은 수입 계약을 늘리고 있다. 수입 수요 기준으로 볼 때 요소 비축량은 15일분에서 30일분으로 늘렸고, 활성탄은 30일분에서 60일분 이상으로 늘려놓았다. 전자제품 소재로 쓰이는 형석도 비축량을 크게 늘릴 것이다.”

    긴급수급조절물자란 국가가 긴급하게 비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물자로, 기획재정부 장관이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지정한다. 2020년 마스크, 2021년 요소수, 2022년 활성탄이 긴급수급조절물자로 지정된 바 있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비철금속은 어느 정도 비축돼 있나.

    “알루미늄, 니켈. 구리, 아연, 주석, 납 등 비철금속 6종의 비축량은 지난해 50일분에서 2027년까지 60일분으로 늘릴 계획이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재 비축 자금 500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부족하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현금이 준비돼 있다는 얘기다.”

    공공 비축 물량이 늘어나면 유지관리 비용도 덩달아 늘어나지 않나.

    “비축량이 늘면 창고도 늘려야 하는 등 재고 부담이 증가한다. 수돗물 정화에 쓰이는 활성탄도 수분에 노출되면 금방 변질되기 때문에 장기간 비축하기 어렵다. 요즘 같은 자원 무기화 시대에는 조달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과거에는 재고를 최소화하도록 조달 체계를 가동했다. 적시(Just in Time)에 공급하고 불필요한 물량은 줄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코로나19,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과거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닥치면서 자원 부국인 중국은 희귀 자원에 대한 수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미국이나 유럽 각국도 주요 광물이나 소재 등을 핵심 자원으로 지정해 자국 위주로 수급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공급망 위기에 충분한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재고의 최소화라는 과거의 조달 관념은 ‘미래 위험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공 조달 규모는 연간 200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9%에 이른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공공 조달이 정책의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나.

    “그렇다. 최근 공공 구매력은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또한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조달청은 공공 조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수출 활성화, 내수 진작 등 정부 정책을 적극 뒷받침할 계획이다.”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이 업무의 태반이던 조달청이 국내 기업의 수출까지 적극 지원하겠다는 얘기는 다소 새롭게 들렸다. 김 청장은 이 대목을 특별히 강조하며 중소기업 육성과 해외 진출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성장 발판 마련해 줄 것”

    김 청장의 요즘 중점 업무와 일정도 중소기업 지원에 맞춰져 있다. 인터뷰 직전인 9월 7일에는 주한 베트남, 캄보디아 대사 등 외교사절단 20여 명을 상대로 국내 중소기업의 우수 제품을 알리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당초 이 모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사절단에 한국의 조달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온라인 공공 입찰 사이트인 ‘나라장터’의 최신 버전인 차세대 프로그램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김 청장은 같은 자리에서 한국 기업이 만든 포터블 엑스레이 장비, 투척용 소화기, 마개형 살균기 등을 외교사절단에 보여줬다. 손가방 크기의 포터블 엑스레이는 병원을 갈 수 없는 환자의 상태를 현장에서 진단하는 장비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마개형 살균기는 안전한 식수가 없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생수병 마개 대신 장착해 살균 효과를 내는 제품으로 현지 주민들로부터 우수성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김윤상 조달청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주한 외교사절단을 초청한 조달 설명회에서 국산 혁신 제품 소개를 들으며 웃고 있다. [조달청]

    김윤상 조달청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주한 외교사절단을 초청한 조달 설명회에서 국산 혁신 제품 소개를 들으며 웃고 있다. [조달청]

    국산 제품의 해외 진출은 산업자원부나 중소기업청이 주로 지원해 왔다. 조달청의 지원 업무가 다른 부서의 업무와 겹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조달청 업무는 B2G, 다시 말해 다른 국가나 국제기구에 물품을 공급하는 국내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반면 다른 부처의 해외 지원 업무는 B2B, 즉 수출 대상이 주로 외국 민간기업이다. 조달청은 B2G 시장에서 신성장 유망 제품의 적극 발굴, 공공 판로 촉진, 해외 시장 진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조달 생태계를 구축해 신성장산업 발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김 청장이 국내 외교사절단에 홍보한 포터블 엑스레이 장비나 투척형 소화기 등의 혁신 제품은 6월 국제개발협력(ODA) 사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 조달청은 이들 제품을 국내에서 구매하고 외교부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무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망 중소기업 제품의 해외 조달 시장 진출을 돕는 예산은 10억 원을 새로 편성했다.

    조달 참여 기업 16%만 수출 실적 보유

    해외 조달 시장에 진입하려는 국내 기업은 어떻게 검증하는가.

    “조달청은 2013년부터 해외 조달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G-PASS (Government Performance Assured) 지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조달 시장에서 기술력과 품질 등이 검증돼 해외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하는 제도다. 올해 8월까지 G-PASS를 통과한 기업은 1148개사다. 이들 기업의 수출 실적은 2013년 1억 3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15억1000만 달러로 11배 이상 늘었다. 그렇지만 전체 조달 참여 기업 중 16%만이 수출 실적을 보유하고 있고, 그중 3.5% 소수 기업이 전체 수출 실적의 98.5%를 차지한다. 대부분은 수출 기반이나 역량이 취약하다. 역량이 취약한 기업에 대해서는 해외 입찰 정보를 제공하며 수출 상담회 참여 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수출 대상국 조달 규정에 따른 납품 검사, 수출 검사 통관, 운송 지원은 물론 분쟁 관련 법률 지원과 상담 등 종합 지원 사업의 다양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조달청 예산은 2415억 원이다. 혁신 제품에 대한 직접적 금융지원은 한계가 있다. 이것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우선 9월 13일 기술보증기금과 양해각서(MOU)를 개정 체결했으며 기술보증 수수료를 할인받는 기업을 늘릴 것이다. G-PASS 등 수출 기업은 기술보증 수수료를 0.2% 인하하고 신용도 검토 기간도 6개월로 단축한다. 일반 기업의 검토 기간이 1년이니까 G-PASS기업은 패스트트랙(Fast Track) 혜택을 보는 셈이다. 9월 21일에는 기업은행(IBK)과도 양해각서를 체결해 혁신적 조달 기업에 대한 금융 우대 상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리나 수수료 감면은 물론이고 수출대금 결제서비스와 환율 우대 등의 혜택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혁신 기업에 대한 투자 유치도 지원한다. 혁신적 조달 기업이 IBK 투자유치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벤처캐피털(VC)이 혁신 기업에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다른 기관과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다.”

    “유엔도 엄청난 조달 시장”

    8월 9일 해외조달 전문인력 양성과정 교육생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김윤상 조달청장. [조달청]

    8월 9일 해외조달 전문인력 양성과정 교육생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김윤상 조달청장. [조달청]

    김 청장은 유엔이나 국제기구 조달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이 유엔에 갖다주는 분담금 비율은 유엔 정규 예산에서 2.26%인 반면 조달 시장 참여 비율은 1% 안팎으로 미흡하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유엔과 같은 조달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가.

    “주미 대사관과 유엔 대표부 근무 경험을 살려 복잡한 장벽을 넘어보려고 한다. 유엔본부나 산하 기구의 간부들을 초청해 한국산 혁신제품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사용되는 장비 중 일본산이 유독 많은데, 한국산 비율을 크게 늘려야 한다. 장기적으로 문을 두드리면 우리 기업들도 엄청난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조달 물품의 품질이나 공정 조달에도 새로운 대책이 있나.

    “국제 경쟁력 향상은 품질과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이 함께 가야 한다. 불공정 조달 행위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담합 등 중대 위반 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제재하고 있다. 입찰 담합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등 유관기관과 협업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사설 중개 플랫폼을 이용한 공공 입찰 참여에 대한 근절 대책도 시행하고 있다. 납품 단계에서는 전문 검사기관에 의한 검사 작업을 늘릴 것이다.”

    조달청 조직 내부에서는 직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상사와 부하 간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강조한다. 상사는 부하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대민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민간업체 직원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나부터 역지사지 마음을 갖기 위해 2개월간 20여 차례 간담회를 열고 상호 시각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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